
삼성에 비판적인 한 변호사의 탄식이다. 삼성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한 이른바 X파일 사건은 정(政)경(經)언(言) 유착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X파일에 따르면 삼성은 정치권의 협박에 의해 마지못해 자금을 건넸다기보다는 대통령후보들을 선별 지원하는 등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늘’과는 딴판으로, 삼성은 국부(國富) 창출의 일등공신으로 한국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삼성의 상품 가치는 세계 21위이며 지난 한 해 동안 삼성전자 한 기업이 벌어들인 돈만 해도 11조원에 이른다. 10대 기업에서 차지하는 매출과 순이익 비중은 각각 30%가 넘는다. 경제 기여도에 비례해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정치 문화 교육 스포츠 등 삼성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다. 우리 사회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키워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삼성과 더불어 공화국 소리를 듣는 또 하나의 집단은 검찰이다. 검찰의 힘은 수사권과 기소권에서 나온다. 검찰이 우리나라 권력기관 중 가장 힘이 세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의 권력은 실속이 없어졌고, 군사독재정권 시절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던 국정원(안기부, 중앙정보부)과 기무사(보안사)의 위세는 한풀 꺾인 지 오래다. 탄탄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과 검찰, 두 ‘공화국’ 중엔 어느 쪽이 더 셀까.
“언제부터인가 삼성의 막강한 로비력에 검찰이 밀리는 형국이다. 단지 수사권이 없을 뿐이지 삼성의 가공할 정보수집력, 인맥과 자금력은 검찰을 압도하고 있다.”
검찰 특수통 출신인 최용석 변호사의 조심스러운 분석이다. X파일 사건은 바로 이런 삼성과 검찰 관계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돈이 전달됐는지 여부를 떠나 삼성의 고위 임원과 언론사 사주가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들의 이름을 꼽으며 ‘떡값’ 액수를 논의하는 광경은 놀랍기만 하다.
MBC 보도에 따르면 X파일 녹취록(1997년 9월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나눴다는 대화)에 등장하는 전현직 검찰간부는 모두 10명으로 그중 실명이 언급된 사람은 5명이다. 대다수 언론이 이 숫자대로 보도했지만, ‘조선일보’는 최근 그 대상자를 7명으로 수정 보도했다.
“검찰 최고의 엘리트들”
‘신동아’가 입수한 X파일 녹취록에도 10명이 아니라 7명이 등장한다. 그중 실명이 거론된 사람은 4명. 4명 중 당시 현직 검찰간부는 법무부 모 고위간부, 모 지청 차장, 모 지검 부장 3명이다. 법무부 고위간부는 나중에 장관을 지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현재 검찰 고위직에 몸담고 있다. 4명 중 유일한 전직인 모 변호사는 과거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다.
그밖에 녹취록에는 직책만 언급됐으나 누군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세 사람이 있다. 당시 모 지검장, 모 지검 차장, 대검 모 간부가 그들. 이중 대검 간부는 아직 현직에 있다.
7명 중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서울의 명문 K고 동문이다. 지방 명문고 출신인 나머지 한 명은 장관을 지낸 모 변호사의 친척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7명 중 4명은 요직으로 꼽히는 법무부 모 부서장을 역임했다. 이들은, 모 지검장의 표현대로라면 “검찰 주류인 K고 출신 중에서도 가장 잘나갔던 검사들”이다. 모 지청장도 이들에 대해 “검찰 최고의 엘리트들”이라며 “그만한 인재가 없다. 다들 실력도 좋고 명망이 높던 사람들”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