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 통수식(10월1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빛을 볼 것으로 기대됐던 문화재 일부가 훼손되거나 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흐르는 물은 복원할 수 있어도 한번 훼손된 문화재는 결코 복원할 수 없는데….
중랑하수종말처리장 인근 공터에 뒹굴고 있는 청계천 문화재들.
지난해 초 중앙문화재연구원이 모전교에서 발굴한 장대한 호안석축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수표교의 흔적과 오간수문 터의 기초석과 석재들은 언제쯤이나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혹시나’ 해서 청계6가 다리 아래로 내려가 오간수문 터를 둘러봤지만 ‘역시나’였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공사 관계자에게 물었다.
“오간수문 터 근처에서 발굴된 문화재 일부를 복원한다고 들었는데 그곳이 어딥니까?”
답은 뜻밖이었다.
“문화재 복원요? 그런 이야기 처음 듣는데요.”
청계천 문화재 훼손 논란이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앙문화재연구원이 2003년 12월11일부터 청계천 일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다량의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고, 그때부터 훼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청계천에서 발굴한 문화재를 어떻게 처리하도록 했을까. 서울시는 이를 제대로 지켰을까.
‘신동아’는 청계천 문화재 발굴 작업이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와 청계천 유적복원관련 소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다. 이 회의록에는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공사 현상변경 신청내용과 이에 대한 위원회의 회의결과가 담겨 있다. 청계천 문화재 처리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특히 문화재 복원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문화재청 사적분과 및 소위원회는 청계천 발굴 문화재 중 광통교와 수표교, 오간수문 처리방침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 가운데 수표교는 ‘복원을 원칙으로 한다’는 기본방침을 정하고 2010년까지 복원키로 결론지어졌다.
문제는 광통교와 오간수문. 모두 서울시가 사적으로 지정한 것으로 발굴 초기부터 ‘원형 복원’이 원칙으로 정해진 문화재다. 하지만 두 사적은 이미 원형 복원이 불가능해진 상태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광통교는 현재 유일하게 ‘원형에 가깝게’ 복원된 다리다. 2004년 10월8일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는 제4차 회의에서 광통교를 원위치에서 상류 방향으로 155m 이전해 복원키로 결정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는 다리 상판에 금속동판으로 표시토록 했다.
광통교에서 발굴돼 원형 복원 결정이 내려진 문화재는 북측교대(23.4m)와 남측교대(19.74m), 지대석, 교각 16개(2행8열), 멍에석 13개, 귀틀석 15개, 난간석 6개(엄지기둥 2, 난간주석 4), 바닥재인 장대석 박석과 자연석 등.
그런데 지난 3월 광통교 교각 기초석 6개 중 3개가 4~9cm 잘리는 일이 발생했다. 광통교 아래로 지나는 하수관로 때문에 수평이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광통교가 조선 태종 10년(1410)에 만들어져 영조 36년(1760)에 수리된 점을 감안하면 이 기초석은 최소 240년 된 문화재다.
또한 서울시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전허가를 받지 않고 이를 훼손했으면서도 4월2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자료의 ‘당초 현상변경 허가사항’에 ‘차집관로(하수관로) 위에 설치예정인 광통교 북측교각 기초석 및 바닥석 밑부분 일부를 가공해 설치’라고 마치 사전허가를 받은 것처럼 기록했다.
이날 소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은 이와 관련해 분명한 방침을 정리했다. 기록에는 ‘북측교각 기초석 및 바닥석은 원부재를 사용토록 함(가공은 안 됨). 서울시에서 제시한 당초 현상변경 허가사항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와 문화재청에서 허가한 바 없음’이라고 돼 있다.
양안석축의 행방
왼쪽은 발굴 당시의 양안석축이고 오른쪽은 서울시가 복원했다는 양안석축이다. 석축을 깎아 쌓은 흔적이 역력하다.
“광통교 주변 양안석축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새로 넣을 돌을 깎아야지, 어떻게 문화재를 깎아서 석축을 쌓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현장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문화재위원들이 발굴된 석축을 활용하라고 해서 깎아서 썼다’고 그러더라. 문화재위원들에게 확인해보니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많던 양안석축은 다 어디로 갔는가. 조만간 다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 역사문화팀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마 새로 만들어 넣은 석축을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다. 문화재 복원시공을 맡은 업체가 원형에 가깝게 철저히 복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광통교보다 사정이 더 심각한 것은 오간수문이다. 현재 오간수문 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오간수문을 본떠 만든 모형 석축이 청계천 한쪽에 장식돼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사적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이곳에서 발굴한 기존 교각은 물론 홍예석, 잡석, 기초바닥석이 모두 사라졌다.
관련 회의록을 살펴보면 청계천 문화재보존전문가 자문회의는 2004년 3월19일 회의에서 오간수문은 현장에 복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확인된 유물은 문화재 보수업체에서 안전하게 해체해 박물관 또는 청계천문화관 등 안전한 장소에 이전 보관토록 결정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계획과 연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울성곽 복원 계획의 일환으로 이를 추진키로 하고 2004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기본구상 용역을 의뢰했다.
서울시는 곧바로 문화재위원회에 현장복원을 전제로 오간수문 일대 문화재를 해체해 이전할 수 있도록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한다.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는 이에 ‘원형 복원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한 후에 시행하도록 한다’고 결정했다. 이후 문화재위원회는 오간수문 바닥돌(유구)의 현장 복원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서울시에 지시했다.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는 2004년 9월24일 서울시에 오간수문 바닥돌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완 설계하라고 했다. 현장 원형보전을 위한 사전조치였다. 뒤이어 10월8일에는 바닥돌을 수평으로 복원하는 방안을 세우고 설계 보완을 지시했다. 이와 함께 다리상판과 홍예교각 등 중요한 문화재에 대해 금속(동판)으로 구분 표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1년이 다 되도록 이를 지키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했다. 이제 통수식까지 원형 복원은 불가능하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 연구소장은 “오간수문 기초바닥돌 등은 원형 복원키로 위원회에서 결정했고 여러 차례 서울시에 요구했으나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 역사문화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오간수문은 위원회에서도 바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과제로 한다고 결정했고,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복원 여부는 통수 후에 검토”
취재 결과 오간수문 터 발굴 문화재를 비롯해 양안석축 등이 서울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 인근 수풀이 무성한 야적장에 방치돼 있었다. 다른 곳에서 옮겨진 문화재들과 뒤섞여 어떤 것이 오간수문 문화재인지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또한 아무런 보안장치가 없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어 도난당할 우려도 있다.
문화재청 사적분과 관계자는 “올해 연말까지 서울시로부터 청계천 문화재 복원 종합보고서를 받을 예정”이라면서 “이 자료를 토대로 문화재청에서 허가한 대로 복원됐는지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계천에 물이 흐르기 시작한 뒤에 복원실태를 조사하겠다는 이야기다. 순서가 뒤바뀐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