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의 종합판매순위 1위를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비룡소)가 차지하고 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폭발적 인기 덕분이다. ‘모모’의 뒷심은 드라마 원작소설 ‘내 이름은 김삼순’(지수현 지음, 눈과마음)조차 누르고,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순위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출판사도 기회를 놓칠세라 ‘삼식이가 읽은 바로 그 책’이라며 집중광고를 하고 있다. 그 효과로 한 달 사이에 15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브라보!
‘삼순이 히트상품’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 물건, 장소 심지어 삼순이의 직업(파티시에)까지 떴다. 그 가운데 기대하지 않던 수확에 함박웃음을 짓는 곳이 출판계가 아닌가 싶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원작소설이 뜨는 거야 예상된 행운이라지만, 원작에는 한 줄도 언급되지 않은 ‘모모’가 대박이 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원작소설이나 ‘모모’만큼은 아니더라도, 행운을 나눠 가진 곳은 또 있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오래된 미래)은 드라마 마지막회에서 삼순이가 읽어주는 시가 실려 있다는 이유로 판매율이 수직상승했다. 사람들은 이를 ‘삼순이 후폭풍’이라고 한다. 책이 드라마에 직접 등장하진 않았지만 파티시에라는 삼순이의 직업 덕분에 제과·제빵 분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관련 요리책 판매도 덩달아 호조다. 7월 중 ‘김영모의 빵 케이크 쿠키’(동아일보사)라는 책이 전달에 비해 3배쯤 더 팔렸을 때 어리둥절했던 나의 무딘 감각이 부끄러울 뿐이다.
방송제작진의 선구안에 박수
그러나 출판계에 분 ‘삼순이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앞으로는 방송을 끼지 않으면 베스트셀러는 언감생심이라고 한탄한다. 그렇다면 이제 출판사들이 PD나 방송작가를 상대로 “우리 책 좀 소품으로 사용해주십시오” 하고 세일즈를 해야 한단 말인가.
다행히 방송에 등장한 책들이 그런 거래의 대상이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책을 고른 방송작가와 PD의 선구안에 박수를 쳐줄 일이다. 삼순이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말을 잃어버린 진헌(삼식이)의 조카 미주에게 다가가기 위해 ‘모모’ 이야기를 꺼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모모는 말을 안해.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듣는 걸 아주 좋아해. 마을사람들한테 고민거리가 있으면 다 들어주는 거야. 귀기울여서. 그게 중요한 거야. 귀기울이는 거….”(삼순)
이후로도 드라마는 미주가 입을 열기까지 고수머리 고아소녀 모모를 여기저기 등장시킨다. 이 정도면 모모는 드라마의 소품이 아니라 조연급이다.
그리고 분명히 해둘 일은 소설 ‘모모’가 방송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책이 아니라 이미 20여 년도 훨씬 전에 처음 한국에 소개됐고, 6년 전 재번역되어 꾸준히 팔리는 현대의 고전이라는 점이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또한 올봄에 출간돼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이다. 그 시집의 제목이 ‘내 이름은 김삼순’ 마지막회 제목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드라마를 엮어가는 데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드라마에 무수히 등장하는 제과·제빵 관련 전문지식은 어디서 왔겠는가.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자. 오히려 방송이 출판에 큰 빚을 진 셈이다. 이즈음 ‘삼순이 효과’를 놓고 방송에 편승해 책 몇 권 더 팔려는 얕은 수작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