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우리는 왜 일 하는가 ‘일의 발견’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입력2005-09-12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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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일 하는가 ‘일의 발견’

    ‘일의 발견’ 조안 B. 사울라 지음/안재진 옮김/다우

    여름으로접어들면 양보리수 열매가 홍보석처럼 빨갛게 익는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크기다. 나뭇가지가 찢어질 듯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다. 성숙한 열매는 떫은맛이 엷고 달콤함은 깊다. 양보리수 열매는 새들의 훌륭한 먹잇감이다. 마침 내가 일하는 방 창 밖에 양보리수가 있어 종일 새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이 열매를 따먹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양보리수를 두고 새들의 먹잇감에 대한 지배권 쟁탈도 치열하다. 새들 나름의 순서가 정해진다. 까치와 물까마귀, 멧비둘기와 박새들이 차례로 날아든다. 까치가 있을 땐 다른 새들은 날아오지 않는다. 박새는 다른 새들이 없을 때만 날아온다. 새들이 앉으면 그 하중으로 가지가 활처럼 휜다.

    양보리수가 익을 무렵 그 나무 주변은 새들의 활기찬 날갯짓 소리로 시끄럽다. 나는 일을 멈추고 양보리수 가지에 곡예하듯 매달려 붉은 열매를 따먹는 새들의 노동을 눈여겨본다. 새들은 수렵도 하고 채취도 하며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낳고 키운다. 아마도 그 두 가지 일은 새들의 생존에 부과된 가장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새들은 먹잇감이 있는 곳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다른 새들과 경쟁하며 먹잇감을 확보한다. 쉼 없이 일하는 새들을 보며, 나는 노동이 “밤낮의 삶의 템포”이며, “원자의 진동이며 별들과 태양을 움직이는 힘”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한 고찰

    사람은 평생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며 보낸다. 과연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자기 삶을 돌아보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일의 의미를 물어본다. 조안 B. 사울라가 쓴 ‘일의 발견’이란 책은 인문학·사회과학·경영학적 관점에서 일과 일 뒤에 숨어 있는 여러 의미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사울라의 책은 20여 년 전에 읽은 D. 미킨이 쓴 ‘인간과 노동’(이동하 옮김, 한길사)보다 덜 무겁고 덜 학술적이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쉽게 읽히는 미덕을 갖고 있다. 사울라는 인류 역사 속에서 일의 개념과 본질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과연 일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해 매우 깊이있게 고찰했다.

    동물이나 사람에게서 먹이를 구하는 노동은 삶의 기본적인 전제 중의 하나다.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빈곤의 고통과 함께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에 따른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일은 나와 사회를 매개하는 요소이며 나아가 삶의 의미와 지위,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규정하고 지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일을 통해 “규율, 소속감, 규칙성, 자기 효능감 같은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태도가 당당하다.



    일은 물질적 필요와 같은 보상뿐만 아니라 자기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윤리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정체성과 자기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인 것이다. 실직(失職)에 따른 고통의 가장 큰 부분은 한 사회 내에서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내밀한 느낌과 도덕적 동기 상실에 따른 고통이다.

    현대에 와서 일은 행복의 추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균형과 평화로운 조화야말로 행복의 기본적인 전제다. 일의 가치는 그것이 바로 나와 세계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일이 행복의 추구와 무관한 것일 때 그것은 무거운 의무로 전락한다.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는 일은 사람의 시간과 자유를 속박하고 결국은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의 추구는 생명이나 자유가 그렇듯 천부의 권리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은 일을 통해 먹고 입고 사는 것, 그리고 직업과 같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충족된 뒤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제 밥벌이도 못한다고 비난할 때 그것은 사람으로서 최소한도의 의무도 다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비난이며 인격을 무시하는 모멸적 평가다. 이것은 우리가 인격적 존재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일을 통해 최소한도의 자기 부양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에서 자유롭기 위해 일한다”

    일을 통해 얻는 소득이 없다면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할 수 없고, 그럴 때 사람은 불행해진다. 행복은 작게는 오감(五感)의 만족에서 느끼고, 크게는 사회적 관계의 평화와 일의 만족감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광고를 통해 소비가 삶의 더 큰 의미와 행복을 보장해줄 것이니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라는 자극을 받는다. 실제로 사람들이 여가도 반납한 채 일에 몰두하면서 잃어버린 시간과 꿈을 보상받기 위해 ‘소비욕구와 구매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에 빠진다. 그런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하는 데 여가시간을 보내고, 소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일에 매달린다. 주변에서 ‘일과 여가, 그리고 소비주의’의 악순환에 갇힌 사람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고도소비사회로 진입한 뒤 사람들의 소비 욕망은 더욱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진다. 그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과도한 업무로 내몰린 사람들은 누적된 피로에 절지만 휴식과 충전을 위해 쉴 시간이 부족하다. 여가 없이 일에 매인 사람은 일하고 싶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행하다. 사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데는 일에서 놓여나 자유로운 여가활동을 누리려는 동기도 크게 작용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은 일에서 자유롭기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과 여가의 황금비율

    우리는 일하는 사회에 산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일은 ‘돈과 지위, 소속감, 자존감’을 주지만, 반대로 시간과 에너지를 뺏어간다. 일찍이 알베르 카뮈는 “일하지 않는 영혼은 타락한다”고 말했지만, 일에 매여 자기를 돌볼 시간이 없는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타락한다. 일은 분명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활동에서 얻는 만족감을 주며 사람을 의미 있는 존재로 고양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행복이 오직 일을 통해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일이 삶의 목적과 의미의 전부가 아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정말 잘 살기 위해서는 일과 놀이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일과 여가활동 사이에 균형과 조화가 무너질 때 피로가 쌓이고 삶은 비속해진다. 사회학자 세바스티안 디 그라치아는 일이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부유하게 하지만, 정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여가라고 말한다. 여가는 인간을 더욱 더 완전하게 만드는 ‘존재의 상태, 인간의 조건’이다.

    구약성경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구절이 있다. 인류 최초의 노동은 타락과 신을 배신한 데 따르는 혹독한 대가인 셈이다. 군대에서 일정한 크기로 땅을 파게 한 뒤 다시 그것을 메우게 하는 벌이 있다고 한다. 결국 몇 시간의 노동이 ‘쓸모없고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쓸모없고 헛된 노동보다 더한 벌은 없다. 일은 소득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줄 때 비로소 보람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보장받는 일을 갖기 위해 경쟁한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점점 더 많은 젊은이가 실업에 내몰린다. 보수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좋은 일자리를 획득하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보수와 가치의 위계에서 더 낮고 비천한 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일에 대해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지표면 혹은 지표면 가까이에 놓인 물질의 상대적 위치를 바꾸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일은 인간 활동의 전부를 포괄한다. 일의 그 광범위한 범주를 생각할 때 러셀의 정의는 너무 단순하고 좁은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를 표현하고, 나와 남을 위한, 인간 본성과 인간의 조건에서 발현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일과 삶은 하나다. 건강한 사회는 일하려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고, 일을 통해 더 나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해야 한다. 일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이 주어져야 한다. 그게 자유와 평등,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겠지만 일은 삶의 필연적 부분이며,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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