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업종의 유망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는 ‘맨파워’다.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드는 업종은 경쟁력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사교육 시장은 승승장구할 조짐이다. 의사, 약사, 한의사, 컨설턴트, 기자, 아이비리그 출신 박사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이 최근 강남 사교육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는 것. 탄탄한 전문직을 내던지고 ‘교육자’의 길을 택한 5인방 이야기.
‘황앤리한의원’ 황치혁(黃致赫·43) 원장은 ‘에듀클리닉’이란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수험생 컨설턴트’ 1세대다. 학생의 심리·건강 상태를 진단해 최적의 공부법을 알려주는 것이 그의 일. 공부와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서비스를 표방한다.
그의 이력을 보면 수험생 컨설턴트란 직함이 맞춤옷 같다. 문과와 이과, 학력고사와 수능을 넘나들며 수차례 입시를 치르다 보니 어느새 ‘공부의 달인’이 된 것.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체육부에서 4년간 기자로 일했다. 그러나 심장 부위의 통증과 체력 저하로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 그는 마라톤 같은 인생에서 오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을 찾기로 결심한다.
1997년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하며 인생역전이 시작됐다. 한의대 재학시절, 그는 중·고교생에게 과학탐구영역을 가르치며 명강사 반열에 올랐다.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습 컨설팅에 눈떴다. 2000년엔 ‘황앤리 교육연구소’를 설립, ‘수능 막판 뒤집기’ ‘대한민국 0.1%’ ‘수험생 어머니들이여, 프로 매니저가 되라’ 등 수험생 관련서적도 펴냈다. 2003년 ‘황앤리 한의원’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수험생 건강 및 학습관리 사업에 나섰다.
“저만큼 다양한 입시제도를 경험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재수한 82학번인 저는 고3 전반기까지 본고사를 준비했죠.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대입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를 도입한다고 발표한 겁니다. 바뀐 입시정책에 당황해 첫해 입시에 실패했지요. 수학성적이 문제였습니다. 1982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할 때도 수학은 50점 만점에 28점이었으니…. 수학이 아킬레스건인 문과생 출신이 고등학교 졸업한 지 10여 년 만에 한의대 시험을 준비하니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니 공부법이 보이더군요.
한의대 다닐 때 ‘과외판’에서 학생들의 잘못된 공부 습관을 콕 찍어주곤 했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학생이 일주일 동안 공부한 것을 체크해 특정 과목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도록 하거나, 체력 조절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진도가 끝나도 학생들이 저를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았어요. 그때 교육 클리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죠.”
오랜 입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그의 교과별 공부 노하우를 잠시 들어보자. 수학은 오랜 숙성과정이 필요한 과목이다. 개별 단원의 학습을 마치고, 복습을 통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후 모든 단원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빠른 선행학습보다는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과학은 실생활과 연결해보면 쉽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다. 그는 수능을 준비하면서 가장 해설이 잘된 교과서 한 권을 13~14번 정독했다. 원심력이 나오면 인공위성 그림을 떠올리는 등 원리와 현상을 묶어서 공부하니 문제 출제자의 의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영어 공부는 쉬운 단문 위주의 독해를 지양하고, 소설같이 긴 글을 골라 꼼꼼하게 중요 구문을 파악하고 익혔다. 영어성적은 단기간에 오르지 않는 만큼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공부도 식습관도 체질 따라
황 원장의 컨설팅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머리가 뜨겁고 아파서 공부를 못하겠다”고 찾아온 한 고시생은 그의 처방 덕에 사법시험에 무난히 합격했다. 열이 많은 체질인 그에게 열을 내리는 약과 음식을 처방했고, 막판 컨디션 관리법을 전수한 것. 지방에서 서울의 고교로 전학 온 후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던 한 여학생은 그에게 ‘총체적 진단’을 받고 생활습관을 바꿨다. 성적 하락의 요인이던 휴대전화 사용을 줄이고, 집중도를 높이는 학습계획에 맞춰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황 원장은 자녀를 공부기계로 내모는 학부모들을 비판한다. 자녀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바로 부모라는 것. 수백만원이 넘는 사교육비 지출도 불사하며 자녀를 학원 감옥으로 몰아넣는 부모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4시간 자고 진짜 열심히 공부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수면박탈 증후군’ 때문입니다. 잠이 부족하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하던 게 바로 잠 고문 아닙니까. 매일 4시간만 자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10분의 1도 안 돼요. 무조건 ‘잠을 줄이라’는 강요는 되레 자식을 망칩니다. 체력에 맞는 공부습관을 들여야죠.”
올바른 식습관도 중요한 요소다. 황 원장은 “시험 보는 날엔 머리를 맑게 하는 된장시금치국을 먹으면 좋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홍삼과 알로에 같은 건강식은 체질에 따라 가려 먹어야 한다. 홍삼은 열이 많은 사람에게 오히려 독이 되고, 알로에는 몸이 찬 사람에게 냉한 기운이 돌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전·현직 기자가 논술교육을 맡는 온라인 논술교육업체 ‘기자논술 이지21’의 대표를 맡아 어린이 논술 캠프도 진행했다. 빠른 시간에 글의 리드(lead)를 잡고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받은 기자 시절의 경험을 살리고 있는 것. 그의 최근 관심사는 2008학년도 입시부터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문과·이과형 통합 논술이다. 수능시험의 모든 교과부터 논술까지 섭렵한 그를 ‘전천후 입시전문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교육을 향한 열정이다.
“돈 버는 것에 관심을 뒀다면 하루 수십명의 손님을 진찰하며 ‘총명탕’을 지어주는 데만 열을 올렸겠죠. 제게 더 즐거운 일은 학생들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겁니다. 하루 3~4명의 학생만 받아 건강과 학습 상태를 진단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한 인간이 꿈을 성취하도록 돕는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지요.”
약국도 학원도 ‘감동경영’, 메가스터디 엠베스트 대표 김성오
경남 마산의 ‘육일약국’은 지역사람들에게 성공 신화로 불린다. 1983년 당시 최소 허가면적인 4.5평의 공간에서 출발한 변두리 약국이 창업 12년 만에 매출이 200배나 늘어난 대형 약국으로 성장한 것.
처음엔 손님이 1시간에 한 명이 올까말까 했던 이 약국엔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한번 방문한 손님의 이름은 절대 잊지 않고, 행인이 전화 한 통 쓰겠다고 들어오면 절대 사용료를 받지 않는 ‘별난’ 약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을 사지 않는 고객에게도 20~30분씩 정성껏 상담해주고, 고객의 편의를 위해 카운터를 낮춘 약사의 친절은 어느새 동네 주민의 입소문을 통해 퍼져나갔다.
또한 늘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1980년대 백화점에서나 구경할 수 있던 자동문을 출입구에 달았고, 밤엔 홀로 네온사인을 밝혔다. 자정이 되면 온 세상이 깜깜한데 오직 ‘육일약국’ 간판만 빛났다. 약사는 택시를 타면 늘 “육일약국 갑시다” 하고 외쳤다. 택시기사가 “거기가 어딘데요?” 하고 물으면 친절하게 위치를 설명해줬다. 3년이 지나자 “마산·창원에서 택시기사 한 달 하고 ‘육일약국’ 모르면 간첩”이란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별난 약사는 훗날 교육사업가로 변신한다. 온라인 중등교육 사이트 ‘메가스터디 엠베스트’의 김성오(金成五·47) 대표가 바로 그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줄곧 약국을 경영해온 김 대표가 강남 사교육 시장에 진출한 것은 매제인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 때문. 1996년 사회탐구영역 단과학원을 운영하던 손 대표가 그의 사업 수완을 알아보고 “학원 경영을 맡아달라”고 청한 것.
김 대표는 학원의 부원장직을 맡았다. 손수 칠판을 닦으면서 좋은 교사를 보는 눈을 키웠다. 5년간 열차와 비행기로 500번도 넘게 마산과 서울을 오갔지만 학생들을 키운다는 보람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마침내 2000년 7월 국내 최대 수능 전문 사이트 ‘메가스터디’가 탄생하면서 그는 교육사업에 미래를 걸기로 결심한다.
현재 그가 대표로 있는 메가스터디 엠베스트는 메가스터디의 자회사. 메가스터디는 스타강사를 영입해 고교생들에게 입시 강의를 제공하고 엠베스트는 예비 중학생부터 중 1∼3학년, 예비 고교생에게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제공한다. 2003년 개설한 이 사이트는 오픈 1년여 만에 랭키닷컴(웹 순위 분석평가 전문사이트) 중등부 온라인 교육부문 1위에 오를 정도로 괄목할 만한 신장세를 보였다.
‘30고초려’도 불사
“우리 사이트가 감히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강사를 선발하기 위해 강의를 10번 가까이 지켜볼 만큼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쳤으니까요. 좋은 강사를 모시기 위해 ‘30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교사는 정확한 지식을 알고, 그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명확히 짚어줄 줄 알아야죠.”
김 대표는 특히 학습관리 기능을 강화해 온라인 사이트가 지닌 한계를 극복했다. 담임교사와 상의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는 날짜와 스케줄을 정하고 학습 진도와 성취도를 체크하는 ‘1대 1 담임교사제’를 도입한 것. 정해진 시간에 학생이 동영상을 시청하지 않으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바로 문자 메시지가 날아간다. 이렇듯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학부모의 신뢰를 얻었다.
성적 올리기가 최상의 가치인 사교육 업체가 인성교육을 목표로 삼는 것이 이채롭다. ‘큰사람으로 키웁니다’라는 엠베스트의 모토는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김 대표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지난 5월엔 ‘효 이벤트’를 벌여 학생들이 매일 한 번씩 부모를 돕고, 양로원 봉사활동 등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인성교육은 공교육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보란 듯 깨뜨렸다.
“사교육을 ‘공공의 적’으로 매도할 때 가장 가슴 아픕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엠베스트가 제공하는 양질의 교육 서비스는 강남뿐 아니라 전국 모든 지역에 전달됩니다. 지역 격차와 부의 대물림 현상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 있죠. 6개월 동안 70만원으로 저희 사이트의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공교육이 손대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사교육의 할일 아닐까요?”
그는 부끄럽지 않은 교육자가 되자고 늘 되새긴다. 그래서 교육환경이 열악한 전북 장수군의 ‘상록수 공부방’에 컴퓨터를 기증하고 온라인 교육강좌를 무료로 제공할 뿐 아니라, 장애 학생에겐 수강료의 50%를 할인해준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이 없도록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그의 다음 목표다.
컨설턴트에서 ‘인생코치’로 변신한 와이즈 멘토 대표 조진표
국내 최초로 ‘통합 라이프 멘토링 서비스’ 개념을 도입한 진로 컨설팅업체 와이즈 멘토의 조진표(趙眞杓·34) 대표. 미국계 경영자문회사인 딜로이트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던 그가 3년 전 메가스터디 전략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못다한 형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1990년대 논술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형 진만(眞晩)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폐렴으로 2001년 9월 세상을 떠났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무료 강의도 마다 않고, 학생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새벽 3시에도 일어나 고민을 상담해주던 형은 조 대표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언젠가 형이 밥을 먹다 그러더라고요. ‘시(詩)를 어떻게 공부해요?’ ‘고전문학은 어떻게 접근하죠?’ 같은 질문에는 얼마든지 대답해줄 수 있는데, ‘무슨 학과를 갈까요?’ ‘어떤 일을 선택할까요?’ 하면 말문이 막힌다고….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인생의 길을 찾아주는 게 아니겠냐’는 형의 말에 맞장구를 쳤죠.”
이 말은 곧 형의 유지(遺志)처럼 느껴졌다. 메가스터디에 근무하면서 조 대표는 본격적으로 진로 컨설팅 업체를 론칭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경제학)에 들어갔고, 진로 컨설팅 프로그램 마련을 위한 시장 조사와 네트워크 구축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난해 봄 100여 명의 전문가 자문단을 보유한 와이즈 멘토가 탄생했다. 여기에 메가스터디 창립 멤버이자 과학탐구영역의 명강사인 이범씨가 힘을 보탰다.
자녀의 모든 것 MRI 촬영하듯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교육 컨설팅 업체 대부분이 학습관리에 주력한다면 와이즈 멘토는 전공과 직업 선택을 돕고 전 생애의 밑그림을 제시하는 ‘인생 코치’ 역할을 한다. 조 대표는 기업을 진단하던 노하우를 ‘직업 경로 디자인(Career Path Design)’에 그대로 적용했다. 학생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검토 항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학생의 역량 분석(장단점, 적성, 관심분야 등), 학부모 분석(경제력, 성격, 가정환경 특성 등), 사회 트렌드 분석이 그것.
한국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각 분야 전문가가 이렇게 분석된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진도를 올바로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서비스를 이용한 한 학부모는 “심리검사, 학습검사, 학부모 검사 등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보니 전신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은 것 같다”고 했다. 와이즈 멘토는 직업이라곤 의사, 판사, 변호사, 교수밖에 모를 만큼 정보력이 취약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1만2000개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세계를 보여준다.
오픈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와이즈 멘토의 토털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벌써 800여 명에 달한다. 조 대표의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니 한 달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진로 컨설팅’이 이토록 인기 있는 것은 왜일까.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여고생 김지연(가명·19) 양이 지난해 부모와 함께 조 대표를 찾아왔다. 부모는 “아이가 제발 고등학교만 마치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지연이는 학교 결석을 밥 먹듯 했고, 오직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에 뽑힌 이후로 연기자의 꿈을 키워온 것. 고등학교를 마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와이즈 멘토 자문단의 비주얼 테스트 결과 그가 배우로 성공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문단의 검토 과정에서, 그를 픽업한 연기학원이 원생을 엑스트라로 출연시키고 그 비용을 착복하는 악덕업체로 밝혀지기도 했다.
조 대표는 연기자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지연이가 새로운 꿈을 갖도록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외향적 성격에 어울리는 항공사 스튜어디스나 5~10년 후 유망할 것으로 분석되는 이미지 컨설턴트를 제시하자 지연은 뒤늦게 마음을 잡았다.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대학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
고3 중반이 돼서야 입시생의 자리로 되돌아온 지연에게 대입은 막막한 얘기였다. 워낙 공부해놓은 것이 없어 수능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조 대표가 제시한 묘안이 적중했다. 미달 확률이 높은 전문대 수시입학을 노려 합격의 기쁨을 맛본 것. 합격증을 받아든 지연은 영어 공부에 매달리며 자신의 꿈에 다가섰다. 적성과 능력에 대한 면밀한 평가, 사회 트렌드를 꿰뚫는 비전, 구체적 실천방안 제시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진 사례다.
1주일에 네 번 와이즈 멘토를 방문해 진단을 받고 최종 제시안을 받아들기까지 드는 비용은 77만원. 진로 결정이 생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도 이 서비스가 아직은 강남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한 달 사교육비로 100만원이 넘게 지출하는 걸 생각하면 일생에 딱 한번 받는 컨설팅 비용으론 결코 비싼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적성을 분석하고 진로를 제시하기 위해 적어도 7~8명의 컨설턴트가 관여하니까요. 우선 여윳돈이 있는 상류층이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그 필요성을 알림으로써 점차 중산층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1만8000원이면 와이즈 멘토가 제공하는 온라인 적성검사를 받아볼 수 있어요. 고가 프로그램과 저가 프로그램을 고루 갖춰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영작문 전도사’ 된 아이비리거, 에세이라인 원장 제리박
“자, 영어 에세이를 쓸 때 주의해야 할 요소는 뭘까요? 먼저 독자의 감정에 호소해선 안 되겠죠. 예를 들어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글을 쓸 때 그저 ‘한 민족이니까 도와야 한다’는 논거는 설득력이 떨어지지요. 또 주장을 내세울 땐 유의미한 데이터를 페어(fair)하게 트리트(treat) 해야 하고….”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6층의 ‘에세이라인’ 강의실. 제리 박(34) 원장의 강의에 10명 남짓한 학생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제리 박 원장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PPE(철학·정치학·경제학 연계과정)를 전공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이비리거(미국 동부의 8개 명문대 출신)다. 지적 욕구가 강한 그가 학문의 길을 잠시 접고 교육사업에 뛰어든 것은 냉철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인류의 지적 진보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비트겐슈타인이나 러셀처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철학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업적을 남길 철학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뛰어난 화가를 발굴하고 지원했던 메디치가 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지요. 한때 저의 지적 영웅은 존 스튜어트 밀이었지만, 이젠 메디치가 저의 롤 모델입니다.”
2001년 그는 미국에서 온라인 영어작문 사이트를 개설, 영작 강사로 첫발을 내디딘다. 이용자들이 써보낸 에세이를 다듬고 조언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자 결단을 내렸다.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지난해 5월 귀국, 영작문을 가르치는 에세이라인을 설립한 것.
지금까지 그에게 영작문 지도를 받거나 에세이 교정을 받은 사람은 2000여명에 달한다. 그중엔 정치인, 법조인, 고위 공무원 등도 상당수. 미국 대학 진학을 위해 SAT를 준비하는 중·고교생, 영어권 국가에서 석·박사 학위과정을 밟기 위해 준비하는 성인까지 학원은 그의 제자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다. 그는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식(式)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알려준다. ‘한국식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대상을 나누고 잘라 세밀하게 분석하는 영어권의 학문 방식을 소개하는 것이다.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쓰기까지 15년에 걸쳐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영어 문장의 4가지 기본 구조만 완벽히 익히면 어떤 문장을 구사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됐지요. 학생들에게 영어를 정복하는 ‘최단거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아깝잖아요.”
박 원장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교수를 지낸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다. ‘당연히 교수가 될 줄 알았던’ 그의 엇나간(?) 선택을 보수적인 집안 어른들이 반대한 것은 불 보듯 훤한 일. 그러나 스스로 ‘청개구리과’라고 말하는 그의 소신을 꺾을 순 없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땐 주위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젠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어섰습니다. 컬럼비아대에 입학할 때도 장학금을 받아 경제적 고민을 해소할 수 있었고…. 지금껏 받은 게 너무 많아요. 이젠 제가 받은 걸 교육사업을 통해 돌려줄 생각입니다.”
‘영어도서관’ 일군 의사, 닥터정이클래스 원장 정형화
“제 꿈은 ‘영어도서관’을 만드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영어책을 읽고, 영어로 사고하며 지적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닥터정이클래스는 그런 취지에서 탄생했어요.”
영어도서관을 표방하는 닥터정이클래스의 정형화(鄭熒和·40) 원장은 서울대 출신의 의학박사(약리학)다. 의학을 전공한 그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6년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의 임상연구부장으로 근무하면서부터. 외국인과의 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을 때나 영문 문서를 작성하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영어만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가슴을 쳤다. 그때부터 독하게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닥치는 대로 영어책과 영어 테이프를 구입해 반복해서 읽고 듣는 것이 그의 공부법이었다.
2000년 그는 하버드, 스탠퍼드, 와튼 MBA 스쿨에 지원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맛봤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수중에 있던 자금으로 어린이 놀이교실 ‘블록피아’를 창립했다. 2002년엔 안목을 넓힐 생각에 미국 시애틀에 있는 바스티어(Bastyr)대 자연의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비록 학업을 마치진 못했지만, 정 원장은 그 시절 두 자녀를 캐나다에서 공부시키기로 결심한다. 자녀에게 영어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
닥터정이클래스의 커리큘럼은 정 원장이 두 자녀의 영어공부를 돕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두 아들이 캐나다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해리포터’ ‘피노키오’와 같은 다양한 영문소설을 읽혔다. 책을 읽을 땐 그 내용이 녹음된 영어 테이프도 함께 듣게 했다. 내용 이해에 꼭 필요한 구문이나 해석이 어려운 문장은 따로 정리해 아이들이 숙지하고 넘어가도록 했다. 두 달 동안 하루 10시간씩 영어책을 독파한 정 원장의 두 자녀는 영어 독해, 듣기, 말하기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다.
그의 특별한 교육법을 눈여겨본 캐나다 밴쿠버 ‘명문학원’ 관계자가 지난해 10월 그의 독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어 그는 올해 5월 서울 대치동에 닥터정이클래스 1호점을 열었다. 두 달 후 서울 대치동(본점과 다른 곳)과 개포동에 2호점, 3호점을 냈다.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거나 1년 이상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이 커리큘럼에 공감한다. 이들은 고전, 인문, 과학에 걸친 다양한 명서를 접하며, 단순히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소양까지 키워나간다. 독서가 끝나면 영어로 독후감을 쓰고 중요 구문을 익힌다. 담당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의 공부 의욕을 돋우고, 난관에 부닥칠 때 격려하는 것.
“자기주도적인 학습에 익숙지 않은 학생은 이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요. 그러나 고비를 넘기면 비로소 독서의 참맛을 알게 됩니다.
저는 그저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구입한 1000권이 넘는 영어책을 다른 분들과 함께 볼 수 있도록 개방했을 뿐이죠. 제가 의사였다면 손님에게 약을 잘 처방하지 않아서-대부분의 질병은 휴식과 음식 조절로 자연스럽게 치유되기 때문에-가난뱅이가 되고 말았을 거예요. 제가 발견한 가치를 나누고 전파하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