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거 그대로 써도 됩니까? 2년 전 수중에 단돈 19만8000원뿐이던 사람이 현재 500억원의 자산을 일궜다고….”
“왜 안 돼요?”
“국세청에서 조사 나오지 않을까요?”
“거리낄 것이 없는데요.”
‘신동아’가 9월호 권말부록으로 기획한 경매 마스터 코스는 ‘경매 귀재’로 불리는 김길태(金吉泰·54) 회장이 집필했다. 그는 경매 전문업체 지엔비 인베스트와 부동산TV, 지엔비 종합건설, 지엔비 주택관리, 법무사무소를 아우른 지엔비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정도 직함쯤이야 부동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가 보유한 자산이 500억원에 달한다니 부동산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재산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불과 2년 만에 일궈낸 자산이라는 점이다.
‘법무부 대학’에서 보낸 4년
2003년 1월2일, 그의 수중엔 단돈 19만8000원이 있었다. 1998년 부동산실명제를 위반해 창원지검에 구속된 뒤 4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었다. 19만8000원은 교도소에서 지급한 돈. 그래도 마음은 가벼웠다. 죗값을 치렀고, 전 재산을 처분해 42억원의 추징금도 빠짐없이 납부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복역한 4년 동안 부동산 관련법을 줄줄 외우다시피 공부했다. 숱한 실전 경험도 깔끔하게 이론으로 정립했다. 다시 출발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비빌 언덕 없이 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속 당시 이혼한 아내를 찾아갔다. 혹시 처가 재산까지 해를 입을까 우려해 위장 이혼했던 터였다. 그러나 환대해줄 것으로 믿었던 아내는 초인종을 누른 그에게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머리가 멍했다. 추위도 잊고 한동안 집 앞에 서 있다가 근처 여관으로 일단 짐을 옮겼다. 뭔가 오해가 있으려니 했다. 다음날 다시 아내의 집을 찾아간 그는 아내가 이미 다른 남자와 함께 산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피눈물이 흘렀다.
김 회장은 오뚝이 같은 사람이다. 두 번의 큰 시련을 만났지만, 이를 이겨내고 사업을 이전보다 더욱 활짝 꽃피웠다. 그가 경매와 인연을 맺은 시기는 1979년 지인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자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 때부터다. 미국 브리검영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율산실업과 삼환기업 기획실에서 일하다가 주택사업을 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던진 즈음이었다. 당시 경매업계엔 조직폭력배가 들끓었다. 그러나 ‘듣고, 부딪치고, 협상하면서’ 경매가 위험하지만 수익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도가 쉬운 토지를 대상으로 경매에 참여하면서 그는 막대한 돈을 벌었다.
1986년부터 김 회장은 경매로 모은 돈을 전남 화순의 온천개발에 쏟아부었다. 그때는 온천사업이 붐을 이뤘다. 하지만 돈 있는 서울 사람들이 가기엔 너무 멀어 이용객이 줄자 투자한 돈이 회수되지 않았다. 결국 부도를 맞았고,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빈털터리가 됐다.
1994년 김 회장은 다시 경매사업에 매진하기로 결심한다. 경매 방식이 호가제에서 입찰제로 바뀌자 경매의 대중화를 직감했다. 조직폭력배가 설칠 여지가 많은 호가제가 입찰제로 바뀐 것은 경매 과정이 투명하게 집행되고, 실력으로 낙찰받는 시대가 열림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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