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시기,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전국(NNSA·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은 영변 원자로심의 온도 및 냉각수의 온도를 MTI(Multi Thermal Imager) 위성을 통해 살피고 있었다. 2000년 3월 궤도에 오른 이 위성은 핵 활동과 관련된 열 감지를 주 목적으로 미 에너지부가 쏘아올렸다. 이 위성에서 수신한 정보를 미국은 영변 원자로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대략 어느 정도의 출력으로 가동됐는지, 현재는 어떤 상태인지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여러 가지 불활성 기체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그 중에서 크립톤85는 다른 기체보다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폐연료봉에서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의 양을 역산하는 가늠자 구실을 한다. 의심 지역의 대기 중에 흩어져 있는 크립톤85의 양을 계산하면 실제로 생산된 무기급 플루토늄의 양을 알 수 있다. 크립톤85를 검출하는 데 쓰이는 LIDAR(Light Detector and Ranging)라는 장비는 레이저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겨울 영변에서 폐연료봉을 재처리할 경우 발생하는 크립톤85의 양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은 LIDAR가 탑재된 정찰기 RC-135를 띄웠다(위성은 거리가 너무 멀어 이 경우에는 측정하기 어렵다). 편서풍의 영향으로 남동쪽으로 이동하는 대기 중의 크립톤85를 검출하는 방식이었다. 대기 샘플을 공중에서 채취해 방사성 물질을 추출하고 분석하는 작업도 병행됐다.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 정보당국은 무기급 플루토늄의 양을 계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3월2일, 동해상에서는 북한의 미그23, 29 전투기가 RC-135를 위협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의 민간 전문가들과 언론에서 극히 제한된 정보만을 갖고 ‘과감한 추측’을 늘어놓고 있을 무렵, 미국 정부는 모든 데이터를 확보해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이러한 미국측 정보가 한국 정부에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입은 타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정보’의 힘은 그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실감하기 어렵다. 그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느끼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정보의 가장 큰 힘이다. 흔히 응용경제에서는 ‘불확실한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정보를 수집하는 작업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이런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겨울의 한국은 분명 그 불확실성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북한 핵개발 관련 정보의 부족은 국가신용도의 하향평가를 초래했고, 주식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에 놓였다. 정보 수집능력 및 가공능력의 부재가 엄청난 국가적 손실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글에서는 주로 주변국들의 위성 정보 역량과 그 전략적 활용에 중점을 두고 설명하기로 한다. 한반도 정세에 이해관계가 있는 주변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떠한 위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여기서 수집된 정보를 자국의 이익과 국가 전략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하나하나 확인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