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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대 권력승계 공식절차 시작됐다

‘김정철 후계’ 명시한 학습자료,北 최전방부대 배포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북한, 3대 권력승계 공식절차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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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철의 사업체계 구축하자”

북한, 3대 권력승계 공식절차 시작됐다

김정일의 처이자 정철, 정운 형제의 생모인 고영희. 2004년 5월 사망했다.

1981년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유도의 창시자 고태문의 딸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철은 1990년대 중반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유학한 후 1999~2000년 무렵부터 노동당 조직지도부 중앙기관지도과 책임부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리는 김 위원장이 대학졸업 후 후계수업을 시작하던 1966년 무렵 맡았던 자리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직함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해봐도 김정철의 후계자적 위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김정철이 형 김정남을 제치고 후계구도에 본격 진입한 것은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이 사망한 2002년 이후라는 것이 정설이다. 국내외에서 김정철을 주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2년 8월과 9월 조선인민군출판사 등에서 발행한 강연 및 해설담화 자료들이 2003년 외부에 전해지면서부터. 김정철과 동생 김정운의 생모 고영희를 우상화하는 내용이 담긴 이 문서들은 그에게서 태어난 아들 가운데 한 명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2년 배포된 ‘고영희 개인숭배’ 문건에서는 김정철은 물론 고영희 본인의 이름도 명확히 거명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국내에 알려진 세 건의 관련 문서에서는모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가장 몸 가까이에서 보좌해드리시는 존경하는 어머님” 같은 식으로 우회적으로 지칭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는 달리 최근의 제강에 김정철의 실명이 나왔다는 것은 권력승계 작업이 3년 전의 ‘사전준비’ 차원이 아니라 ‘내부 공식화’라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력승계 준비작업과 관련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 연구위원이 7월18일 한국정치학회보(2005년 여름호)에 게재한 ‘김정일 시대의 북한의 후계 문제 : 징후와 후계구도’ 논문에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실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환갑을 맞은 2002년경부터 평양의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사무실에 “김정철 동지의 사업체계를 세우자”는 구호가 걸려 있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조직지도부는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공식 승계하기 전까지 비서를 맡았으며 현재는 비서가 공석인 조선노동당의 최고 핵심부서. 또한 구호가 걸린 시기는 공교롭게도 앞서 설명한 ‘고영희 제강’이 배포된 시점과 일치한다. 이 시기부터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정철에 대한 후계구도 준비작업이 궤도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김정철의 현재 위상과 관련해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의 근거가 되고 있는 또 한 가지 징후는 2003년 리을설, 김철만 등 쟁쟁한 군부원로들을 대신해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된 ‘백세봉’이라는 인물에 관한 것이다. 북한의 최고위직급인 국방위원은 인민군 원수도 자리를 넘보기 어려운 실세 중의 실세. 눈여겨볼 것은, 순식간에 당과 군의 요직을 겸직하는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 전까지의 경력이 확인되지 않는 데다 이후 TV 등에 한번도 얼굴이 공개된 적 없는 이 인물의 이름이 범상치 않다는 점이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기동 연구위원은 ‘백세봉’이라는 이름이 ‘백두산 세 봉우리’의 약자일 수 있으며, 이는 백두산 3대 장군(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가리키는 것으로 백세봉은 백두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인물, 즉 후계자 자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정철의 대외용 가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년 내 당 중앙위 통해 선포할 듯

김정일 위원장의 승계 과정을 돌이켜보면, 1969년대부터 당 조직지도부에서 ‘훈련’을 받던 김 위원장은 1972년 김일성 주석의 환갑을 계기로 ‘혁명 1세대’의 ‘낙점 동의’를 받는다. 이듬해 9월 당 중앙위 비서국 회의에서 ‘지도자’로 공식 선출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선전담당 비서 겸 선전담당부장으로 임명되어 확고한 2인자 자리를 굳힌다. 이러한 권력장악이 마무리된 1974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으로 선출, ‘당과 인민의 지도자’로 발표되었다. 이후 ‘노동신문’ 등을 통해 ‘당중앙’이라고 호칭된 그는 사실상 김일성 주석과 공동으로 정권을 운영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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