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운 도시에는 아픔이 떠 있고, 진실의 눈 속에는 고통이 있고, 답답한 내 가슴에 간절한 소망….’
화려한 조명이 터지고 레이저 광선이 어둠을 갈랐다. 애니메이션이 투사된 장막을 뚫고 나와 노래하는 조용필은 화려한 의상을 숨 가쁘게 갈아입었다. 5인조 밴드 ‘위대한 탄생’의 열광적인 연주, 백 코러스의 화음, 솟아오르는 연기, 객석 위에 흩날리는 색종이….
그러나 관객은 무대가 아무리 요동쳐도 인형처럼 앉아 있다 노래가 끝나면 조용히 박수를 쳤다. 관객의 복장은 남성은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 여성은 빛깔만 달랐지 한복 일색이었다. 원색의 치마저고리가 객석을 화사하게 수놓았다.
조용필의 공연은 평양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북한 관객의 태도는 예의바른 유치원생들 같았지만 카메라를 통해 클로즈업된 얼굴에는 조용필과 무대에 빨려든 표정이 역력했다.
조용한 북한 관객
서울 강남 YPC 프로덕션 사무실에서 평양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거인’을 만났다. YPC는 ‘용필 조’의 영문 이니셜. 보라색렌즈 안경을 쓴 조용필은 청색 재킷에 노란색 계열의 면바지 차림이었다. 머리숱이 짙고 흰머리가 한 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 “염색하셨나요?” 하고 가볍게 물었으나 대답이 없어 묻는 사람이 조금 머쓱해졌다. 나중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됐지만, 그는 과거사와 프라이버시에 관한 질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TV로 평양 공연을 보았습니다. 북한 관중은 노래 도중엔 아무 반응이 없다가 노래가 끝나면 얌전히 박수를 치더군요. 나중에 북한에서 ‘박수를 세게 쳐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성의 없이 쳐도 안 된다’는 사전 교육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관중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에 당황하지 않았나요.
“긴장했죠. 사람끼리 만났을 때도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상대방이 무뚝뚝하게 나오면 무안하고 어색하잖아요. 익숙지 않은 광경이라 곤혹스러웠죠. 그쪽의 문화적 정서 같아요. 북한 분들이 노래를 중간에 따라 부른다든지, 박수를 치는 것은 관객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더군요. 북한 당국자들이 사전에 그런 이야기를 해줬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 조용한 관객을 바라보자니 난감했죠.”
-공연 전반부에 북한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띄웠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전략적으로 북한 노래를 먼저 넣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연출상 점점 더 올라가는 것이 좋지, 처음에 푹 올라갔다 떨어지는 것은 안 좋아요.”
-북한 노래를 100곡가량 들어보고 두 곡을 골랐다면서요. 북한 가요를 들어보면 군가나 새마을 노래 같은 느낌이 들어요.
“거기 음악은 민요적인 게 많아요. 보천보 악단이 잘해요. 제가 고른 ‘자장자장’과 ‘험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리’는 둘 다 가곡이죠. ‘험한 풍파…’는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주제가였더군요. 우리가 오랜 기간 갈라져 있는 분단 민족인데 이번에 만나서 동심(童心)의 세계로 가보자는 취지에서 자장가를 불렀죠. ‘험한 파도…’는 멜로디도 익숙하고 가사가 이산가족 찾기 주제가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공연 마지막에는 관중의 기립박수와 함께 ‘재청(앙코르)’이 나왔다. 조용필이 무대에 다시 나와 ‘홀로 아리랑’을 부르자 관중은 그때서야 따라 부르며 손뼉을 쳤다. ‘홀로 아리랑’은 환영 만찬에서 북한측 인사들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조용필이 북한에서 급하게 연습한 남쪽 민요. 북한 관객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홀로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조용필이 공연한 ‘유경 정주영체육관’은 보통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현대아산이 지은 건물이다. 필자도 평양에 갔을 때 본 적이 있다. 외관이 아름다운 체육관이다. 보통강변에는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유경(柳京)이라는 평양의 이명(異名)도 버드나무에서 유래했다. 평양에서 남한 가수의 단독 콘서트가 열린 것은 2002년 이미자씨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