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논객’ 진중권 탕수육

배고픈 신경세포 잠재우는 새콤달콤한 보복

  • 글·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 사진·김용해 부국장 sun@donga.com

    입력2005-10-14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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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객’ 진중권 탕수육
    “‘대통령이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거울을 보고 정치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노회찬 의원이 한 말이랍니다. 만일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진정하니?’ 거울이 이렇게 대답하면 어떡하죠? ‘그야 물론 수첩 공주님이죠.’”(9월9일 진중권의 SBS전망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천박함이라고 할까요? 전여옥 대변인의 학력 발언은(중략) 공당의 대변인 자리에는 정상적인 사람을 앉혔으면 좋겠습니다. ‘대변인’ 됐다고 입으로 ‘대변’보는 해괴한 분이 아니라….”(6월4일 진중권의 SBS전망대)

    진중권(陳重權·42)씨가 매일 아침 출근시간대에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클로징멘트 중 일부다. 제3자라면, 그리고 그의 말에 동조한다면 박장대소할 만한 어깃장이다. 어떤 이는 배설욕구를 대리 충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라면 웃으려야 웃을 수 없는, 때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불쾌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에게 ‘논객’이라는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의 표적이 되는 순간 논쟁의 전장으로 끌려나올 수밖에 없다. 2000년 그는 정치풍자집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통해 대표적인 보수논객 조갑제씨의 논리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안티조선 운동의 선봉에 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조갑제씨의 “친북은 친일보다 더 악질적이다”라는 발언에 대해 진씨는 “강도보다 나쁜 것은 유영철이란 말과 같다. 친일 자체가 잘못인데 이를 옹호해서 피해가겠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다. 안쓰럽다”고 적절한 비유를 섞어가며 상대방 논리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쳐버린다.



    ‘논객’ 진중권 탕수육

    “어디서 이런 걸 배웠어?” 어머니 서화순(70)씨가 아들 진중권씨가 만든 탕수육을 맛보며 기특하고 희한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는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다. 그는 성향이 비슷한 진보논객이자 한때 글을 기고했던 ‘인물과 사상’의 발행인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향해서도 비수를 날렸다. 그가 지지했던 유시민 의원(열린우리당)이나 당원으로 가입했던 민노당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표현처럼 그는 자신의 신경세포에 불쾌한 자극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복한다. 그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인터넷에서 주로 논쟁을 하는데 저는 그걸 즐깁니다. 누구나 즐겨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표현 방법이 아니라 논쟁에서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고 시시비비보다 누구편이냐를 먼저 따진다는 거죠.”

    요리 중에도 그의 표적이 된 것이 있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도 미학을 전공한 진씨가 1994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 기숙사에서 지내며 언어철학과 박사과정을 밟을 때다. 가난한 유학생들은 음식을 직접 해먹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자신이 터득한 요리비법을 전수하곤 한다. 그때 그가 다른 유학생에게서 전수받은 것이 탕수육이다.

    그는 탕수육 장사를 했다. 매주 화요일 기숙사 건물 반지하층에 있던 바를 저녁식사 이후 빌려 맥주와 함께 탕수육과 스시, 우동을 팔았는데 탕수육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수입도 꽤 괜찮았다. 두 달쯤 장사해서 방학 때 일본인 아내와 함께 처가와 친가를 방문할 비행기표 값을 해결한 것.

    요리법은 먼저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가늘고 길게 썰어 간장과 후추, 청주를 약간 쳐서 3~4시간 재놓는다. 밑간이 골고루 배면 고기에 달걀과 녹말가루를 섞어 만든 튀김옷을 입혀서 튀긴다. 이때 기름이 너무 뜨거우면 타기 때문에 불의 온도조절이 중요하다. 고기는 튀긴 후 식혔다가 한 번 더 튀겨야 고소해지고 제 맛이 난다.

    ‘논객’ 진중권 탕수육

    탕수육을 먹는 모자의 모습이 단출하다. 방학을 맞아 독일에서 국내로 들어온 아내와 아들이 마침 일본 처가에 가 있어 식구가 줄었다.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당근과 양파, 오이, 목이버섯, 죽순 등 준비된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그 다음 프라이팬에 물을 붓고 당근과 양파, 죽순을 넣어 끓인 후 설탕과 간장, 식초로 간을 맞춘다. 설탕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고, 식초는 맛을 봤을 때 시큼할 정도로 넣는다. 여기에 오이와 목이버섯을 넣고 다시 끓이다가 녹말가루 푼 물을 부으면 소스가 걸쭉해진다. 기름기를 거둔 고기튀김에 이 소스를 부어서 먹으면 식도를 살짝 자극하는 시큼한 식초맛을 달콤한 소스가 부드럽게 감싸준다.

    진씨는 현재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 겸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문화평론가나 논객 직함이 더 어울린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풀어대는 그의 독설에 수많은 사람이 웃고 울고 상처받고 때론 분노한다.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원인을 그는 한국사회의 원시성에서 찾는다.

    “우리 사회의 일반 대중에게까지 폭넓게 문자문화가 전파된 것은 고작 50여 년밖에 안 됐어요. 서구사회에 비해 역사가 매우 짧죠. 과거 구술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그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지체현상이 인터넷을 만나면서 폭발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인터넷은 사실상 구술문화거든요. 발음하는 대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문자가 변형되고, 문장은 짧아지고 문자보다는 영상을 선호하는 2차 구술문화가 등장한 거죠.”

    ‘논객’ 진중권 탕수육
    그가 꿈꾸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문적 난제에 독창적 해법을 제시하는 책을 쓰는 것. 세계에서 500명만 읽어도 좋다. 그 텍스트를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단 몇 명이라도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뒤집어보면 그가 던지는 독설과 풍자는 한없이 가벼워지는 우리 사회를 향한 고독한 외침인 것이다.

    그가 매일 아침 방송말미에 전하는 한 토막의 칼럼은 촌철살인이다.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나가니 열흘은 조용할 것이다.’ 그 입은 침묵해도 대통령에게는 또 하나의 입이 있지요. 걸어다니는 대통령의 입, 유시민 의원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노무현 신하가 국민 왕에게 매일 상소를 올리고 있다. 하도 올리니까 국민 왕이 지겨워서 그만 올리라고 명령했는데 또 올린다. 그래서 국민 왕이 ‘한번 더 상소를 올리면 목을 치겠다’ 이러니까 목을 들이밀면서 상소를 올린 격이다.’ 이러니 국민 왕이 답답하지요. 배고파서 수라상에 밥 좀 올리라고 했더니, 신하가 밥은 안 올리고 계속 상소문만 올려요. 그것도 목을 들이밀면서요. 아니, 국민 왕이 무슨 종이 뜯어 먹고 사는 염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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