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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남자 이야기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음식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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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남자 이야기

호사스러운 미식 여행기 ‘사색기행’과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의 성공기 ‘앗 뜨거워 Heat’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술꾼으로서 프랑스 와인 생산지 탐방을 최고의 여행으로 꼽는다(‘사색기행’, 청어람미디어). 일본 소믈리에 콩쿠르 우승자를 동행 취재한 이 여행은, 오전에는 와이너리를 방문해 양조장과 카브(지하 와인 저장고)를 견학하며 와인 몇 병을 시음하고, 점심에는 그 지방에서 가장 음식 솜씨 좋다고 알려진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풀코스 식사를 즐기고(무려 3시간 동안), 오후에 또 다른 와이너리 방문과 만찬이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3주 동안 시음한 와인이 300병이 넘었다! 화이트와인으로 유명한 마크 브레디 와이너리에서 1975년산 와인의 숙성된 맛에 감탄할 사이도 없이 지배인이 1947년산의 마개를 여는 순간,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음미하고 내뱉는다’는 시음 원칙은 사라지고 모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셨다.

가르강튀아적 폭음, 폭식

와인 컬렉터인 마르셀 지로의 카브에서 열린 와인 파티는 미식가의 호사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암반 속에 마련된 카브에서 50여 명이 풀코스 요리를 즐기며 라벨을 떼어낸 와인 8종의 맛을 보고 이름과 연대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했다. 아페리티프로 나온 부브레 1955년산, 전채요리인 돼지고기 요리와 함께 나온 부브레 1978년산, 이어 돼지 내장과 채소를 파이로 감은 요리와 함께 나온 보르도의 샤토 블랑 몬타이 1979년산….

대연회는 저녁 7시에 시작돼 심야까지 계속됐다. 넘칠 듯 풍족한 와인과 산더미 같은 요리, 어지러울 정도로 열기 띤 논쟁…. 다치바나는 망연한 얼굴로 ‘이거야말로 가르강튀아(16세기 라블레가 쓴 소설의 주인공으로 술고래이자 대식가)적’이라고 감탄한다. 다치바나는 독자를 한껏 약 올리며 여행기를 마친다.



“그날부터 위와 같은 가르강튀아적인 나날이 3주에 걸쳐 계속되었다. 그 여행을 자세하게 전하려면 가르강튀아적인 스케일의 지면이 필요하므로 유감스럽게도 이야기를 여기서 그만 접어야겠다.”

하지만 다치바나의 혀는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부르고뉴와 보르도 와인의 차이를 설명하고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의 치즈 제조 역사와 치즈산업에 대해 일장 연설할 수 있는 지적이고 노련한 혀를 가졌지만 정작 그의 글에서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손맛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화려한 미식 기행을 해도 그는 요리사가 아니라 글쟁이일 뿐인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을 때의 만족감은 굉장히 다채로운데, 그걸 직접 먹는 건 만족감의 일부일 뿐이고 중요도에서도 많이 밀린다. 사랑으로 만드는 요리 외에 음식을 만드는 행복이라는 말도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이때는 준비나 조리가 아니라 만든다는 게 중요하다.”(‘앗 뜨거워 Heat’ 빌 버포드 지음, 해냄)

펜 놓고 ‘주방 노예’ 자처

‘뉴요커’의 베테랑 문학담당 기자인 빌 버포드는 23년의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마리오가 운영하는 맨해튼의 유명 레스토랑 ‘밥보’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빌이 매료된 마리오 바탈리란 남자를 보자. 마흔한 살에 이미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가 됐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TV 요리 프로그램 ‘몰토 마리오’의 진행자이며, 떡 벌어진 체격에 꽁지머리를 하고 뉴욕의 어떤 주방장보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활동한다. 그래서 뉴요커들은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허기를 느낀다! ‘앗 뜨거워 Heat’는 펜 대신 칼을 쥔 빌의 주방 체험기이자 스타 요리사 바탈리의 성공기다. 빌은 금요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재료준비팀에서 오리뼈를 바르는 일로 주방의 도제 생활을 시작했다.

마리오는 레스토랑의 본질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고, 그걸 팔아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선 ‘일관성’이 기본이다. “언제나 한 번 본 맛을 못 잊어 다시 찾아온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건 천하에 쓸모없는 머저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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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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