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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남자 이야기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음식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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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미국 최고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밥보의 성공 비결도 나온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주방 안에서 할머니가 요리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해야 해.” 덧붙여 ‘주방의 인식’을 강조한다. “오감을 다 사용하고, 시각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할 거예요. 뭔가가 다 익었을 때 나는 소리, 요리가 다 됐을 때의 냄새를 알게 되죠.”

빌은 2002년 1월부터 2003년 3월까지 14개월 동안 밥보의 주방에서 일하며 이 말을 이론이 아닌 몸으로 배운다. 예를 들어 ‘주방의 인식’이란 추상적인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끈거리는 양의 혀를 150개쯤 다듬고 껍질을 벗기고 썰어봐야 하고, 반죽 문지르는 기술을 익혀 작은 귀처럼 생긴 오레키에테 파스타를 2000개쯤 만든 다음, 단테가 머릿속에 그렸던 지옥처럼 열기가 온몸을 감싸는 그릴 앞에서 누군가 주문을 ‘쏘면’ 재빨리 고기를 구워야 한다. 브란지노 25인분, 오리 23인분…250여 명의 손님을 받는 동안 그릴에 그을린 팔뚝 털은 거의 사라진다. 대신 ‘불꽃’이 다 됐다고 말해줄 때까지 스테이크 익히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물론 요리책으로는 이런 걸 배울 수 없다. 이런 느낌, 냄새가 기억에 저장될 때까지 반복해서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도 요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단순함 터득하는 데 한평생

이제 ‘주방 안에서 할머니가 요리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배울 차례다. 어디서? 뉴욕의 유명 주방장들은 모두 성지순례를 하듯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로 떠난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포시즌즈 호텔의 수석 주방장이 된 마리오조차 ‘할머니의 요리를 흉내내기 위해’ 사표를 내고 조상의 고향 이탈리아, 볼로냐와 피렌체 사이의 온천마을 포레타 테르메에 3년간 머무른 적이 있다.

빌은 마리오가 밟은 길을 따라 먼저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는 마리오의 콤플렉스 대상이자 초기 스승인 천재 주방장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가 있다. 화이트는 새 요리를 앞에 놓고 말한다.



“좋은 냄새, 좋은 맛. 더하고 뺄 것 없이 너무나 영국적이죠. 불필요한 장식은 들어가지 않아요. 문제는 단순한 것을 제대로 해내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예요. 나는 과도하고 강렬한 맛의 간섭 없이 엽조(獵鳥)의 순수한 맛을 즐기고 싶어요.”

빌은 ‘단순하다’는 말이 주방장에게는 “터득하는 데 한평생이 걸린다”는 뜻임을 깨닫는다. 단순한 것은 바로 시골의 해묵은 레시피가 아닌가. 기계로 뽑은 국수가 아니라 나무 도마 위에서 나무 밀대로 밀어 ‘고양이 혓바닥 같은 질감’이 나는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그는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 산골 마을 출신인 베타로부터, 베타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숙모들에게서 배웠던 전통적인 파스타 만드는 법을 전수받으며 빌은 단순함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탈리아 요리의 공통점은 단순함이며 그 단순함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파스타만으로는 부족했다. 이탈리아 고기 조리법을 배우려면 600년 전통의 푸주한(?廚漢) 다리오 체키니만한 스승이 없다. 그곳에서 그는 칼을 들고 고기 부위를 만지며 투스카니 음식을 배웠고,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한 예술가를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한 경험은 빌에게 ‘손맛’을 일깨워주었다. 손으로 반죽을 미는 법, 칼로 허벅지 살을 도려내는 법, 소시지와 라르도와 폴페토네 만드는 법을 배웠다. 요리사는 사람들이 손으로 먹을 음식을 손으로 만드는 사람이고, 손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손맛도 좁은 우리에 가둬 화학적 처리로 키운 돼지의 햄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슈퍼마켓에서 파는 음식들에 밀려 덧없이 사라지고 있다.

진정한 요리사가 되고자 하는 한 문학 전문 기자의 음식 탐구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의 왕비가 되면서 이탈리아의 요리비법이 모두 프랑스로 넘어가 이탈리아 요리의 르네상스가 막을 내렸다는 전설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는 다시 프랑스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이 책을 덮으면서 충고 하나. 행여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주방으로 갈 생각은 하지 마시라. 요리사란 직업은 ‘남이 놀 때 일하고, 남이 더 놀 수 있도록,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는 사 먹지도 못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이니까.

신동아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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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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