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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2

포용의 작가 강익중

일상에서 빚어내는 화합과 조화의 ‘소통 미학’

  • 정준모 미술비평가 curatorjj@naver.com

포용의 작가 강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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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의 작가 강익중

프린스턴 공립도서관 로비의 ‘행복한 벽화’ 부분. 지역주민들이 기증한 애장품 중 2억년된 돌이 보인다.

이렇게 고된 삶 속에서 제작한 1000점의 작품을 가지고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처음 개인전을 연다. 뉴욕에 당도한 지 2년 만에 개인전을 연 그에게 그림은 일상이었으며 작품은 생활 속에서 얻어진 재료와 방법, 소재로 이뤄졌다. 그린버그류의 모더니즘이나 주관적인 신표현주의가 범람하는 뉴욕 미술동네에서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매우 친근하게 다가갔다.

당시 작품에는 이방인에게 약속의 땅인 동시에 절망의 도시였던 뉴욕에서 겪는 소수인종의 낯설음과 자유로움이라는 이중성이 공존한다.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한 화면에서 공존하는, 아니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마치 용광로처럼 서로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녹여내어 새로운 합금으로 재탄생되는 형국이다. 이는 백남준이 늘 이야기하던 ‘비빔밥론’과 맥을 같이한다.

서로 다른 것들의 조화

촌음을 아껴 지하철에서 작업하던 그는 한 달간 갤러리 내에 텐트를 치고 하루 10시간씩 작업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뉴욕에 존재를 알린다. 1988년에 그때까지 제작한 6000여 점의 그림을 브로드웨이 윈도갤러리에 설치한 그는 다음 개인전에서는 ‘사운드 페인팅’을 발표한다. 작품 뒤에 소형 스피커를 설치해 조각그림의 집합과 함께 파도소리, 천둥소리, 바람소리들을 교차시켜 자연에 인공적 화면을 결합한 새로운 자연을 창조했다.

이후 그는 3인치 정방형 캔버스 대신 목판을 선택한다. 일상을 목판에 새기기 시작한 것은 당뇨로 시력을 잃은 아버지를 위한 것으로,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미술의 시도였다. 목판에 새기는 일은 자신에게 몰입하는 과정이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것으로 팔만대장경을 떠올려보면 그의 작업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991년 빙리와 함께한 2인전 ‘많은 것이 더 좋다’를 통해 목각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또 같은 해 한인 밀집지역인 퀸스 플러싱에서 맨해튼 타임스퀘어까지 왕래하는 7호선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역에 벽화 ‘해피월드’를 제작한다. 2000여 조각그림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뉴요커’라는 하나의 단어로 규정되는 다양한 인종군상의 일상을 담아 ‘다른 것들의 조화’를 표현해 뉴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뉴욕에 도착한 후 그를 괴롭힌 것은 생활고와 언어 소통의 부재 였다. 그는 뉴욕이라는 생경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무작정 암기했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 이미지가 사라지고 영어 단어가 등장한다.

주로 GRE 시험 가이드북에서 발췌한 영어 단어와 숙어는 붉은색으로 그리고 한글 뜻은 파란색으로 칠해 마치 영한사전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연상시키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영어 사전 한장에 수록된 단어를 모두 외운 후 이를 찢어 씹어 먹던 공부법과 닮았다. 또 스펠링을 반복해서 쓰면서 외우는 방법이 바탕이 됐다.

그는 부처님에게도 영어 공부를 시켜 ‘영어를 배우는 부처’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기도 했다. 당시 작품에 동양을 상징하는 부처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동양에서는 현인이며 깨달음을 얻었지만 뉴욕에서는 부처도 소통을 위해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

반복해서 읽는 방식은 한국식 영어수업법 중 하나다. 이런 방법은 마치 절에서 스님들이 목탁을 치며 불경을 암송하는 것과 흡사한 것으로, 그는 어릴 때 절에서 보던 전통적인 방식을 작품에 차용함으로써 뉴욕에서 적응하고자 했다. 이런 작업의 결과물들은 퀸스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3×3’전과 퀸스 직업학교 벽화를 통해 선을 보였는데, 이를 통해 그는 뉴욕 화단의 주류에 확실하게 얼굴을 알린다.

1994년은 그의 화업에 큰 의미가 있는 해다. 2만여 점의 3인치 작품을 모아 ‘모든 것을 함께 넣어 더하다’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하는 한편, 샌프란시스코 공항벽화를 제작한다. 높이 3.2m 길이 22m의 이 벽화는 모두 5925개의 단위화면으로 이뤄졌는데 일상에서 채집한 단어, 그림, 오브제 등 다양한 제재를 동원해 장식적이면서도 친숙한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이는 ‘3인치의 미술’이 자리 잡았음과 동시에 미국생활 10년을 결산하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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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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