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7월6일 한나라당 공작정치특위 의원들이 국정원 입구에서 “야당 후보 내사 문건이 유출됐다”며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은 본선과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경제 살리기’는 경선의 지배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상당수 한나라당 지지자가 “한나라당이 정권교체만 하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 박근혜 후보로도 경제를 살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에선 ‘이명박 검증’이 최대 이슈가 됐다. 이명박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국면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이 이슈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경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 이슈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새로운 거대 이슈를 제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새로운 거대 이슈가 뜨는 사건이 경선 중반인 7월13일 발생한 다.
이날 ‘동아일보’는 1면에 “국가정보원 5급 직원 K씨가 국정원 전산망에 접속해 이명박 후보의 처남 김재정(58)씨의 부동산 거래 기록을 조회한 사실이 국정원 내부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도 1면에 “국가정보원 직원 1명이 정부 전산망에 접속,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의 처남 김재정씨 등 이 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거래 내역을 열람한 혐의를 잡고 국정원이 감찰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정원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7월13일 이전에는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국정원의 한나라당 후보 자료 조회 의혹을 제기했으나 뚜렷한 물증이 없어 흐지부지됐는데 이 보도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명박 후보 측은 즉각 ‘노무현 정권의 이명박 죽이기’ 이슈를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이때 ‘조선일보’는 “국가정보원이 2년 전 한나라당 경선후보인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을 스크린(조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던 것으로 13일 확인됐다”고 속보를 내보냈다. 국정원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태스크포스팀은 아니었다고 즉각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명박 죽이기’ 이슈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한나라당 경선 정국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한국언론재단의 기사검색시스템(KIN DS)에 따르면 이 이슈가 처음 보도된 7월13일부터 8월13일까지 한 달 동안 9개 종합일간지에서만 ‘이명박 죽이기’ 이슈와 관련해 504건의 스트레이트, 해설, 논평 기사가 쏟아졌다.
권영세와 이진동
7월13일자 ‘국정원의 이명박 후보 처남 부동산 정보 조회’ 보도는 사실 확인에 충실한 보도였다. 기사에는 이 보도의 취재원(source)이 “정치권 관계자와 국정원 관계자”라고 되어 있는데 그중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원 소관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었다.
이 무렵 권영세 의원은 ‘국정원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으며 한 직원이 정부 전산망에 접속하여 이명박 후보 친인척의 개인정보를 열람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사정기관 사이에서 ‘선수’로 통하는 권 의원실 음종환 보좌관의 레이더에 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