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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화제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 박상철│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scpark@snu.ac.kr│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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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화 및 장수 연구 전문가인 서울대 박상철 교수가 ‘100세인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건강비법과 그들의 기쁨과 고통 등 인간적 면모가 담겨 있다. 박 교수가 소개하는 초장수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감탄을 넘어 존경심을 자아낸다.‘편집자’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장수마을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 나산면 안영마을 주민들.

처음 백세인(百歲人) 조사를 시작한 것은 밀레니엄이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 즈음이었다. 조사의 계기는 단순했다. 인간 생애 최후 순간, 그 상태는 어떠할까? 사람은 25∼30세를 정점으로 신체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100세란 정말로 환상적인 나이인데 그렇게 오래 사는 사람은 누구인지 의문이 들었다. 노화에 따라 변화하는 생체의 구조와 기능을 외삽(外揷·extrapolation)하면 생애 최종시기, 즉 100세 정도 되었을 때는 신체의 기능이 형편없고 활동이나 인지기능 등도 아주 나빠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999년 계획을 잡고, 2001년부터 통계청에서 뽑아든 자료를 지도 삼아 본격적으로 백세인 조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의료진만으로 시작했지만 탐방이 길어지면서 인류학, 지리학, 가정학, 사회학, 복지학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한국의 백세인’ 조사팀이 꾸려졌다. 전국 방방곡곡 첩첩산중 어디든지 찾아갔다. 그래서 많은 초장수인을 만났고 다양한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조사팀은 조사를 하면서 19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3세기를 걸쳐 살아온 백세인들을 만났다. 우리나라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직도 ‘조선’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3분의 1이나 됐다. 젊었을 때 중국에서 활동했다면서 “상하이와 베이징이 많이 변했다는데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들은 역사의 격동기이던 한말의 혼란과 일제의 강압, 광복 후의 격변을 모두 이겨낸 이들이었다.

“빈둥대려면 왜 살아?”

지난 몇 년 동안 조사팀이 해온 장수인 관련 학술 조사결과는 많은 보고서와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한국인 건강 장수의 의학적, 심리적, 영양학적, 생태적, 사회적 특성을 알리는 데 큰 구실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초장수인들의 삶의 질 실태와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실제로 백세인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전달할 기회가 없었다.



고백건대, 조사를 해온 필자 역시 백세인들과 만나며 그들이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소설 속 걸리버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어떻게 백 살이 넘은 분들이 저러실 수 있을까?”하면서 조사 도중 감탄사를 연발했다.

수많은 백세인과의 만남과 그에 따른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백세인들에게 가장 감명받은 부분이 뭐였는지 묻는다면, 노동과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라고 말하겠다.

100세가 넘어서도 노동은 계속된다. 올해 101세인 전남 곡성의 이판순 할머니는 “우리나라 노인들 문제가 많다. 늙었다고 일하지 않고 빈둥대기만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일해야 한다”면서 노인문제에 대해 일갈했다.

백세인이 일을 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 이유 때문은 아니다. 강원 횡성에서 만난 98세의 추영엽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성공한 재력가임에도 매일 농사를 짓고 소도 직접 관리한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곳간에 가서 바구니와 삼태기를 만든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바구니를 조사단에게 나눠주는 할아버지는 일흔여섯의 아들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경북 예천에서 만난 98세의 권점녀 할머니는 조사단이 집에 방문했을 때도 열심히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노인이 끊임없이 일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쉬면서 하라고 말했더니 “옛 생각 하기 싫어 낮잠도 안 잔다”고 답했다. 때로 노동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의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동은 사실 장수의 주된 비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 좋다. 많은 백세인이 하나같이 매일 무언가 일을 한다. 건강한 장수를 원한다면 어떤 것이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100세 시어머니, 여든 살 며느리

하지만 백세인은 긴 수명만큼이나 일반인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이를 이겨낸 이들이기도 하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아내나 남편은 물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백세인의 평균 출산 자녀수는 5.4명인 데 반해 생존자녀는 2.9명에 그쳤다. 그리고 대부분 가족과 살고 있지만 9% 정도는 100세 넘어서도 혼자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홀로 사는 백세인의 경우 직계 자녀의 방문빈도가 월1회 이상은 40%에 불과했고 아예 접촉이 없는 경우도 20%가 넘었다.

물론 효자, 효부도 많다. 조사를 다니다 보면 가끔은 민망한 현실과 마주치기도 한다. 백세인을 모시는 가족이 대개 큰아들, 며느리이다 보니 그들도 대부분 지긋한 나이가 돼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여든 다 된 며느리가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상대적으로 더 건강해 보이는 100세 시어머니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전남 곡성에서 만난 또 다른 백세인 이수경 할머니의 며느리는 80이 넘었다. 65년째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80 며느리의 평생 소원은 다리 쭉 뻗고 잠 한번 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까이 사는 동서에게 시어머니를 맡기고 도회지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가서 쉬고 오면 어떠냐는 제안에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요?” 하며 반문했다. 어떻게 어르신을 두고 집을 비울 수 있느냐는 핀잔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은 자신의 할 일이라는 순명(順命) 의식이 철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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