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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 박상철│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scpark@snu.ac.kr│

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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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를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장수노인과 대화하는 박상철 교수.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전북 순창에서 만난 102세 라영호 할머니는 고령에도 집안 살림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며느리는 오히려 한가했다. 며느리는 놀아도 라 할머니는 쉬는 법이 없었다. 100세가 된 시어머니가 여든이 된 며느리를 아직도 돌보고 있는 집이었다.

백년해로(百年偕老)

경남 거창에서 만난 104세의 정규상 할아버지는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와 둘이서 지내고 있었다. 자신은 나이 50에 혼자됐으나 그 무렵 홀로된 며느리가 불편할까 봐 재취를 하지 않고 그냥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둘이 살아온 기간이 벌써 50년이 넘었다. 서로가 서로를 안쓰러워하며 살아온 반백년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외로움은 백세인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다. 전남 담양에서 만난 99세 유남수 할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와서 스물네 살에 유복자를 하나 얻고 평생을 청상과부로 살아왔다. 찾아온 조사팀을 너무도 반가워했다.

“사람들이 온께 좋소. 오래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오잉. 사람들이 귀해라우.”



할머니는 조사팀이 떠날 때는 마을 어귀까지 따라오면서 인사를 여러 번 했다. 전해 듣기로는 조사팀이 떠나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한다.

조사대상 백세인들의 평균 사별 시기는 남자 79세, 여자 58세로 배우자와 사별 후 30~40년을 홀로 산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배우자가 생존한 경우도 3% 된다. 물론 오래된 부부 사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강원도 산속에서 만난 98세 김석준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유명한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여자문제에 재산문제도 더러 있었을 터였다. 같이 지내는 할머니와는 아직도 상당한 긴장관계였다. 할머니에게 약간 위로의 말을 던지자 “더러워서 질투도 안 했어” 하고 내뱉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92세 전수동 할아버지는 아내가 둘이었다. 본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해 첩을 둔 것. 같은 집에 함께 살면서 본부인은 남편을 제외한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눈 다친 것, 벌 받아서 그래.” 여자에게 원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맺힌다는데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나누는 부부들도 있다. 강원 화천에서 만난 98세 송기구 할아버지 부부는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모시고 살겠다고 하는데도 이를 뿌리치고 부부가 단둘이 함께 살 수 있는 강원도 산골을 절대적 삶터로 여겼다. 노부부의 사랑은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조사 중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호호호” 하며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가로막고 나섰다. “이 할멈 부끄러워 말 못해. 이 할멈, 나 사랑해.”

너무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표현이었다. 강원 횡성의 권순경(98세) 할아버지 부부는 더욱 뜨거웠다. “요새도 잘 때는 영감 손잡고 자.” 할아버지가 거기에 덧붙였다.

“사랑하지.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유토피아

초장수인 조사를 다니면서 인상적인 지역을 많이 다녔지만, 소록도는 특히 잊지 못할 곳이다. 도연명은 꿈만 같은 무병장수 만년 청춘의 땅을 도화원(桃花源)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모든 사람이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 채 화목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존재한다면 소록도가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사실 소록도 조사는 원래 계획된 건 아니었다. 최고령자를 조사하다가 전남 고흥에 들렀을 때였다. 조사단을 수행하던 보건복지가족부 직원이 고흥까지 왔는데 꼭 소록도를 한번 방문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이 소록도에 7년을 근무하다가 본부로 갔는데 여기까지 와서 인사라도 하고 가고 싶다는 간청에 마지못해 찾아갔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소록도 화장터를 들렀고 거기서 지나가는 말로 “화장하는 분들의 평균 나이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가 예상외의 놀라운 답을 들었다. 평균적으로 여든이 훌쩍 넘는다는 것. 놀라운 마음에 한센 환우의 사망통계를 구해 찾아보니 실제로 한센병을 이겨낸 이들의 평균수명은 일반인보다 높았다. 질병이 있거나 회복됐다손 쳐도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만 하는 한센병 환자들이 일반인보다 훨씬 오래 산다니…. 한센병이라는 험한 질병 때문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채 평생을 살아온 이들이 바로 대표적인 장수 그룹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마음에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어떻게 질병과 그로 인한 지체부자유, 소외 등의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오래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의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이들과의 면담조사에서 깨달은 답은 삶에 대한 진지하고 낙천적인 태도였다.

열두 살에 발병해 열일곱에 소록도에 들어와 86년째 살고 있는 103세 정동수(가명) 할아버지는 바로 전설 그 자체였다. 안 해본 일이 없고 온갖 고생과 수모를 다 이겨낸 세월, 그런데도 지난 세월에 대해 한을 품고 있지 않았다. 노인우울증 검사 모든 항목에 대한 그의 답은 모두 “아니올시다” 였다. 어떻게 그토록 걱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단히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어”라고 말했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로부터 소외당해도 신앙으로 험난한 생을 버텨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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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sc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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