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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무한 욕망’이 기립한 초근대적 인공도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인천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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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국제공항은 극한의 기술과 노력이 집산된 거대한 무기질의 공간이다. 공항의 긴 회랑은 일상에서 탈주하려는 이들로 붐빈다.
  • 수많은 재난 영화에서 보았던 관제탑의 긴장은 팽팽하고, 출국장의 무국적성은 점점 더 미끄러지는 삶을 사는 우리를 닮았다.
인천국제공항
# 05:30 :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초여름의 새벽은 황홀하다. 그 흔한 학생용 24색 크레파스는 물론이고 전문가의 색채 도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빛들이 우주의 어둠과 밝음 사이를 서성거린다. 한강 북단을 가로지르는 강변북로가 자유로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지점, 가양대교를 지나자마자 곧 이어지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는 유려한 주황색으로 빛나는 방화대교로 인해 금세 세속의 온갖 도로와 이별한다.

오직 공항을 향해 질주하는 신생의 속도! 새벽 5시의 초여름은 검푸른 하늘과 그 아래의 조명들, 그리고 그 조명들이 이내 하나둘씩 꺼지면서 갑자기 익숙했던 시공간을 탈주해버리는 듯한 환영을 제공한다. 차창을 열면 고속도로의 일직선이 선사하는 싱싱한 바람이 차 안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와 이내 쾌청한 하루를 예고한다. 자동차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극한의 속도로 내달린다.

터널과 톨게이트와 영종대교를 스쳐 지나가면 이제 골격을 드러내기 시작한 공항 배후단지의 수많은 건물이 보인다. 곧 현대적 삶의 대표적 이정표이자 아이콘인 공항터미널이 나타날 것이다. 공항은, 일반 이용자가 길어야 서너 시간밖에 머물지 않는 일시적 거처이지만 극한의 기술과 노력, 야망이 집산된 거대한 무기질의 공간이다.

극한의 인공 도시, 인천국제공항은 198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향상, 그리고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항공운송 수요가 증대한 뒤 최첨단 미래형 동아시아 허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국책사업의 장쾌한 결산이다. 김포국제공항이 있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이를 확장하려면 서울 서북부와 김포 일대의 민원을 해결해야만 했다. 김포국제공항은 30분 안에 서울 도심으로 들어선다는 입지 조건에도 고소음 발생 항공기 운항 금지, 심야시간 운항 및 정비 금지 등의 조처를 시행해야 했으므로 신공항 건설은 불가피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00km 이내의 모든 지역이 신공항 후보지로 검토 대상에 올랐다. 장애물 제한 요건, 기상조건, 지형조건, 접근성, 환경영향 평가, 장래 확장 가능성, 지원시설 확보 용이성, 건설비용 등 10여 개 항목에 따라 수도권 인근과 경기, 충남 등에 위치한 22개 지역을 검토했고, 예비조사를 거쳐 영종, 시화, 송도, 송산, 이천, 발안으로 압축됐다가 최종적으로 영종도가 낙점됐다.

용(龍)이 여의주를 물다

영종도와 막판까지 경합을 벌인 곳은 시화. 두 곳 모두 개발이 용이한 갯벌에 위치한다는 점과 지형, 기상, 장애물 제한 요건 등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다만 시화가 영종도보다 바다 수심이 2m가량 깊어 지반조성 공사비가 많이 들고, 수원·오산·평택 등 군 항공시설과 중첩, 긴장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 영종도를 최종 입지로 선정했다.

1990년 12월27일부터 20년 가까이 인천국제공항과 더불어 한 생애를 보낸 인천국제공항공사 윤영표 영업본부장은 그 나름의 독특한 해석으로 영종도가 공항 부지로 결정된 것은 ‘유구한 역사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국제공항은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마루(永宗島·영종도)에서 활주로 위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유유히 날아오르는(龍游島·용유도) 곳이니 곧 21세기 동아시아 허브라는 해석이다. 극한 기술의 집합체인 인천국제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사이를 매립한 땅에 들어섰다.

윤 본부장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은 건설비가 비교적 저렴했다. 영종·용유도 사이 간석지는 만조 때 수심이 1∼2m에 그쳐 부지매립 비용이 3.3㎡ 당 14만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수년 앞서 바다를 매립한 일본 간사이공항은 평균 수심 18m의 바다를 매립하면서 인천국제공항의 10배나 되는 비용을 썼다.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항공기 이착륙의 안전 조건으로 활주로 반경 4km 주변의 높이 45m 이상 구릉을 제거하도록 권고하는데, 인천국제공항은 용유도, 영종도, 신불도, 삼목도의 구릉을 절토하는 데 큰 장애가 없었고, 더욱이 절취한 석자재는 방조제와 활주로 공사 때 재활용됐으며, 흙과 소나무 역시 공항 조경에 쓰였다. 소음 피해에 따른 민원 발생 없이 연간 1억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이 가능한 점은 인천국제공항의 또 다른 이점이다.

개발 초기, 젊은 나이의 ‘항공맨’ 윤영표는 버스를 타고 동인천으로 가서 그곳의 월미도에서 하루 5회 운항하는 연락선을 타고 용유도와 영종도로 출근했다. 점점이 떠있는 두 섬의 현장 막사에서 바라본 영종도 일대는 초현대식 공항이 들어서는 부지답지 않게 태고의 생태와 삶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섬과 섬 사이, 갯벌과 갯벌 사이, 연락선과 작은 고깃배 사이, 오래 이어져온 전통의 삶과 머지않아 펼쳐질 초현대 공간 사이에서 젊은 시절의 윤영표는 서해의 황홀한 낙조를 바라보았다. 한 생애를 바칠 만한 거룩한 처녀지가 눈앞에 장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또 한 사람의 기억을 따라가보자.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팀 이재훈 차장은 개발 초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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