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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한인 학생은 SAT 만점 받아도 하버드대 합격 장담 못해”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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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엘리트 양성소’아이비리그의 비밀

예일대 교정.

자라면서 나는 미국과 이 나라의 대학입시가 실력 중심이라 믿어왔다. 이민자인 내 부모는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분들은 현명하게 살아오면서 박사 학위를 얻고 매사추세츠 대학의 종신 교수로 우뚝 섰다. 나는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와 코넬 두 대학교를 지원했고, 그 두 학교에 모두 합격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연줄이 없는 학생들이 아이비리그에 합격할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았다. 내가 입학한 1974년에는 하버드대에 1만1166명이 지원해 1600명이 합격했다. 2005년 지원자는 두 배인 2만2797명으로 증가했으나, 입학 정원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버드와 다른 명문대를 지원하는 지원자는 풍선처럼 점점 불어나는데, 특혜 집단을 위한 자리를 유지해야만 하니 일반 지원자 합격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지금은 내 성적(SAT 1410, 고교 10등, 심화과목 한 과목 수강) 수준의 지원자가 동문자녀나 기부 입학자, 체육특기생, 교수 자녀, 소수인종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아마 원서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교육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2002년에 입학 특혜에 대한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곧 특종을 캐냈다. 결국 나는 특권층의 입학 특례에 대한 기사를 네 번 1면에 썼다. 이후 찬반양론이 엇갈린 독자의 e메일이 쇄도했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도 후속 기사를 내보냈다.

하버드대 입시 경쟁률은 10대 1이 넘으며, SAT 만점자도 반 이상이나 불합격한다. 신입생 열에 아홉은 출신고교 상위 10%에 드는 학생이다. 하버드 로스쿨은 전체 지원자의 11%만이 합격한다.

주요 기부자들의 자녀들은 이보다 훨씬 합격률이 높다. 명사 인명록과 동창회 명부, 기타 자료를 통해 424명의 하버드재정위원회 회원 가운데 218명이 하버드에 자녀를 보냈음을 확인했다. 많은 기부자들이 한 명 이상의 자녀를 보냈으므로 하버드에 진학한 전체 자녀의 숫자는 최소한 336명이다. 거의 300명이 학부에 입학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미국 권력의 복도로 진입하는 관문인 로스쿨과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재정위원회 회원 자녀들이 하버드에서 얻는 것은 단지 지적인 세련됨만은 아니다. 최고의 취업을 보증하는 졸업장과 힘 있는 친구, 그리고 배우자를 얻게 되며, 미국 귀족사회 내에서 가문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게 해준다.

하버드는 지원한 동문자녀의 3분의 1 정도를 합격시키는데, 이는 일반적인 평균 합격률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동문자녀들은 전체 학생수의 13%를 차지한다. 하버드 입시에서 동문 특혜의 가장 큰 명분은 돈이다. 동문 기부가 하버드 기금을 주도하며, 졸업생의 기부 의지와 능력은 그 자손에게 학교가 베풀 특혜의 깊이에 영향을 미친다.

제2의 유대인-차별받는 아시아계

헨리 박은 명문 그로톤 고교의 1998년 졸업생 79명 중 14등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SAT 수학 과목에서는 800점 만점을, 영어와 합계 점수에서는 1600점 만점에 1560점을 기록했다. 전국 상위 0.25%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이고 크로스컨트리 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급우들과 공저한 수학 논문이 저명한 학술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그로톤 고교의 수업료에 허리띠를 졸라매던 근면한 중산층 한국인 이민 가정의 아들로서 헨리는 대학입학사정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로톤 고교의 진학 상담교사는 헨리의 성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헨리가 아이비리그에 합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다음 등급 학교에 지원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헨리는 진학 상담교사의 조언을 무시했고 결국 하버드, 예일, 브라운, 컬럼비아, 스탠퍼드, MIT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 사이 아이비리그 학교들은 그로톤고 출신 학생 34명을 받아들였는데 브라운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딸을, 하버드는 거액 기부자의 손자를, 컬럼비아는 흑인 지원자를, 스탠퍼드는 대학 이사장인 석유재벌의 딸을 각각 받아들였다.

헨리의 어머니 수키 박씨는 “제가 순진했어요. 저는 대학입시에서 당락이 오로지 성적으로만 결정되는 줄 알았습니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대학 진학에 있어 제2의 유대인이다. 1950년대 이전 유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세워진 동문 특혜와 리더십 같은 입학 기준들이 이제는 아시아계를 거부하는 데 적용된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다른 소수인종들처럼 인종에 따른 특혜도 없고, 백인 상류층이 축적해놓은 부와 가문에서 오는 이익도 누리지 못한다. 입학사정관들 사이에서 아시아계 학생은 수학과 과학과목을 만점 받도록 부모에 의해 조종되는 준로봇이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됐다.

1990년에 발표된 미 교육부의 보고서는 하버드대에서 아시아계 학생이 백인 학생보다 약간 우수한 SAT 점수와 학교 성적에도 불구하고 합격률이‘현저하게 낮았다’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1979년에서 1988년 사이 하버드대 입시에서 아시아계는 13.2%, 백인은 17.4%의 합격률을 보였다고 결론지었다. 연방 조사관은 백인과 아시아계의 전반적인 합격률 격차를 비교하며 ‘백인이 독점하는 동문 입학과 체육특기생 분야에서 특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아시아계는 전체 하버드 지원자의 15.7%를 차지했지만 동문 자녀군에서는 3.5%, 체육특기생군에서는 4.1%에 불과했다.

대학입학사정관의 편견

연방 조사관은 또한 하버드대 입학사정관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하버드 입학사정관들은 ‘개인적 자질’ 항목에서 백인보다 아시아계에게 평균적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 아시아계 학생들에게는 지원자 파일에 적힌 메모에 반복적으로 ‘조용함/수줍음, 과학/수학 지향, 성실함’과 같은 표시를 한 것이 조사에서 밝혀졌다. 어떤 사정관은 한 아시아계 학생의 지원서에 이러한 메모도 해놓았다. ‘조용한 편임. 그리고 물론 의사가 되고 싶어함.’ 또 다른 메모에는 ‘성적과 지원 서류가 그동안 내가 읽은 아시아계의 전형적인 서류임. 수학에는 놀랄 만한 재능이, 영어는 그와 반대’라고도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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