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문자녀 우대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명문대학을 SAT 고득점자만으로 채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형과정에서 ‘순수한 의미의 능력주의’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견해를 당신이 반박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리고 동문자녀 우대제도가 당신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인가.
“나는 대학이 입학사정을 할 때 ‘부(富)’보다는 ‘능력’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SAT가 지원자 능력의 유일한 혹은 최고의 척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 대학은 대학 정신에 맞는 재능과 잠재력을 갖춘 학생들을 뽑을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대학은 최고의 공과대 학생을 원할 수 있고, 어떤 대학은 최고의 예술가를 뽑을 수 있다. 또 다른 대학은 수학자를 선호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SAT 점수가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에서는 드로잉 능력이나 교사 추천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이 그런 능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가하건 간에 학생 가족의 지위나 재산보다는 지원자의 능력과 성취에 근거해 합격을 결정하는 것이 낫다.”
▼ 요즘은 한국에서 고교과정을 마친 한국학생들이 미국 대학에 곧바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대학입학 전형과정에서 부닥치는 문제는 뭐가 있나.
“다른 해외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지원자가 미국 대학에 진학할 때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재정문제다. 하버드나 예일대 등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대학은 외국학생에게 재정지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많은 미국 대학은 전형과정에서 자국 학생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재정형편을 감안하지 않는다. 그런데 해외학생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아마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중산층 한국학생은 미국에서 학부교육을 받으려 할 경우 상당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2006년 하버드대는 중산층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조기입학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몇몇 대학이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 당신은 이런 변화가 그동안 부유층이나 동문 자제들에게 특혜를 줘왔던 기존 대학전형 절차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유층 자녀에 대한 특혜는 그들이 지원하는 시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에 ‘언제’ 지원하건 특혜를 받는다. 실제로 하버드대가 부유층 학생에게 유리하도록 자격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전형 초기가 아니라 입학전형 마지막 순간이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Z리스트’라고 하는데, 배경이 좋은 고교졸업생을 일단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은 뒤 나중에 합격시키는 것이다.”
▼ 당신 책에서 듀크대와 브라운대가 흥미로운 사례로 소개됐다. 그런데 이 두 대학은 어떤 의미에서 현명한 전략을 쓴 것 아닌가.
“마케팅 측면에서 그들의 전략은 성공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후원자(듀크대 사례) 혹은 영화배우(브라운대) 자녀를 합격시키기 위해 입학과정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부도덕했다고 볼 수 있다.”
▼ 입학전형 과정에서 동문자녀 및 기부자 자녀 우대제도 등을 완전히 없애면 대학기부금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신화인가. 당신이 책에서 소개한 칼텍, 쿠퍼유니언, 베리어(berea) 사례는 대안모델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런 우려는 신화다. 텍사스 A&M 대학의 경우 동문우대제도를 중단했는데 기부금 모집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없었다. 오히려 기부금이 증가했다. 텍사스 A&M이 2004년 동문 우대제도를 중단한 이후 기부금모금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대학재단에 대한 기부금액이 두 배로 늘어났다. 칼텍, 베리어, 쿠퍼유니언은 입학전형 과정에서 지원자가 동문자녀인지 아닌지를 전혀 고려사항으로 참조하지 않고 있지만 재정적으로 잘하고 있다. 이 대학들은 대학의 설립취지와 운영방식에 뜻을 같이하는 충성스러운 기부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 당신은 이 저서에서 명문대 전형방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책 출간 이후 반응은 어땠나.
“어떤 대학들은 나의 건설적인 비판을 환영했다. 그런데 내 모교인 하버드대는 그들의 입학관행을 밝힌 점에 대해 상당히 불만을 가졌다. 그러나 아무도 내 책에 도전하지 않았고, 책에 나온 내용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그동안 대학들과 이른바 그 분야 전문가들은 대학 입학에 대해 토론할 때 동문자녀 우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욱이 내가 밝힌 내용을 뒷받침하는 스캔들이 몇 차례 이어졌다. 최근에는 ‘시카고트리뷴’이 일리노이주립대학이 정치인, 대학재단이사, 기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추천한 지원자들을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수백명 합격시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당신은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만약 지금 시점에서 과거와 똑같은 SAT, 고등학교 시절 학점, 에세이를 가지고 하버드에 지원한다고 했을 경우 합격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불합격했을까.
“불합격했을 것이다. 우선 하버드대학 지원자가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입학 정원은 거의 같다. 때문에 과거보다 합격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다음으로 나는 합격선 근처에 해당하는 지원자였기 때문에, 당시 내 수준의 실력으로 지원했다가는 요즘은 불합격했을 것이다.”
▼ 한국에선 최근 많은 대학이 입학사정관 숫자를 늘려가면서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신입생 선발비율도 높이는 추세다. 전통적으로 한국 대입에서는 수학능력시험 성적이나 내신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동문자녀 우대나 기부입학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한국의 대입전형에 대해 충고 한다면.
“나는 한국의 대학입학 전형에 대해 잘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데 홍콩, 싱가포르,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대학이 그동안 정부 재정지원에 주로 의존해오다가 동문들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적극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재정의 기반을 확충하려는 이런 노력은 평가받아야 하지만, 이런 것들이 앞으로 대학전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것 같다. 이런 대학들은 필연적으로 고액기부자들로부터 기부에 대한 대가로 자신들의 자녀들을 입학시키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대학들은 이런 압력에 저항해야 하며, 전형과정의 공정성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뉴욕 명문고인 헌터고교. 아시아계 비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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