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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내가 경상도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고생 안 했다”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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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국세청과 한상률

5월6일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는 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권력 앞으로

정책적으로 새 정부에 협조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 전 청장은 인수위 시절부터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과 본격적으로 스킨십을 갖기 시작했다. 인수위 관계자들과 한 전 청장의 만남이 여러 차례 있었다.

당시 시중에는 이명박 정부 측 인사들과 한 전 청장을 연결해주는 사람이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한 전 청장은 1994년 추 전 장관이 국세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비서관으로 일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추 전 장관이 청장으로 있을 때 한 전 청장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한 전 청장은 윗사람이 하나를 요구하면 10개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다. (추 전 장관이) 국세청을 떠난 뒤에도 한 전 청장을 각별하게 챙겼다”고 말했다.

당시 한 전 청장은 이상득, 정두언 의원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들과 두루두루 접촉했고 빠르게 친해졌다고 전해진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도 여러 번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 의원과는 노무현 정부에서 준비했던 BBK 관련 세무조사 결과 등을 매개로 접촉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 전 청장이 열심히 ‘권력 앞으로’ 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인수위에는 국세청 몫으로 현 서울청 이현동 청장(행시 24회)이 나가 있었다. 이 청장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경북고를 나온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는 그다지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국세청 내에서는 같은 기수 중 선두주자로 조홍희 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을 꼽는 시각이 많았다.



이 청장의 인수위원 발탁은 한 전 청장에게 ‘굿뉴스’가 아니었다. 일단 이 청장은 한 전 청장 사람이 아니었다. 이 청장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직접 지원을 받는다는 소문도 귀에 거슬렸다. 인수위와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2008년 6월 국세청에 돌아온 이 청장은 곧바로 ‘국세청의 꽃’이라 불리는 국세청 조사국장에 임명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 청장 지인의 얘기다.

“한 전 청장이 취임 초기부터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후배인 이 청장과도 좀 부딪친 것 같고 현 정부 실세들과 친분이 있는 경상도 출신 국세청 인사들의 움직임에도 무척 신경을 썼습니다. 이런 말도 한 일이 있어요. ‘내가 경상도 출신이었으면 이렇게까지 고생하겠느냐’고. 아마 그때가 신성해운 사건이 막 터졌을 때인 것 같습니다. 식사자리에서였는데 생각해보면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일이 꼬였어요.”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 의혹

그러나 앞서의 일들은 한 전 청장에게 닥칠 수많은 시련을 생각하면 짧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한 전 청장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인수위 시절이던 2월 초 불거진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 의혹’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전 사위였던 이재철(37)씨와 신성해운 전 간부 서민호(58)씨가 정 전 비서관과 신성해운을 세무조사했던 국세청(서울청 조사4국) 공무원들을 뇌물 수수혐의로 고소·고발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 전 청장은 2004년 당시 담당 국장(조사4국장)이었다.

사건 초기부터 국세청과 검찰 주변에서는 ‘2004년 당시 서울청 조사4국장이었던 한 전 청장이 신성해운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로 이재철씨가 검찰에 제출한 로비 리스트(이씨는 이 로비 리스트가 검찰의 요구에 따라 사후에 작성한 것이라고 진술했다)에도 이 내용은 포함되어 있었다. 언론에도 공개됐던 당시 리스트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신성해운의 간부 김OO으로부터 현금 5000만원을 전달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의혹이 증폭되면서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한 전 청장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2월1일이지만 검찰은 이미 두 달 전인 2007년 12월경부터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인사검증을 하던 인수위에도 보고됐다. 당시 인수위에서 인사검증 작업에 참여했던 한 사정기관의 관계자는 “정보가 국세청에서도 들어왔고 검찰의 보고를 통해서도 들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한 전 청장을 반대하는 측에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당시 떠돌던 의혹은 사실이었을까. 실체적 진실이야 알 수 없지만 의혹을 가질 만한 단서는 얼마든지 있었다. 수사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들도 속속 나왔다. 검찰의 수사기록 몇 개를 공개한다. 다음은 고발인인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전 사위 이재철씨의 2007년 12월13일 진술기록이다.

□ 피고발인 김OO(신성해운 상무)이 2004년경 서울지방국세청 한상률 국장에게 현금 5000만원을 전달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검찰 : 위 한상률은 누구인가요.

이재철 : 당시 신성해운 세무조사의 담당국인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이었습니다.

검찰 : 위 한상률에게는 어떻게 돈을 전달하였는가요.

이재철 : 2004년 5. 중순 11:00경 신성해운 본사 사무실에 전화로 김OO에게 “점심 같이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김OO이 저에게 그 전화로 “나 지금 바쁘고, 점심 먹고 누구와 같이 한 국장에게 5000만원을 전달하러 가야 된다. 그러니 내일 같이 점심을 하게 OO일식집으로 와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검찰 : 그럼 진술인은 김OO이 한 국장에게 위 5000만원을 전달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단 말인가요.

이재철 : 예, 김OO으로부터 한 국장에게 5000만원을 전달하였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검찰 : 어떻게 말을 들었는가요.

이재철 : 그 다음날 12:00경 위 OO일식집에서 김OO이 저에게 “어제 누구하고 같이 한 국장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 한 국장이 하는 말이 청와대, 중부청장, 본청 차장님이 염려를 해주고 신경써 주셔서 세무조사는 잘 해결된 것 같다. 추징세액은 담당하고 상의를 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추징세액도 잘 알아봐라”라고 하였습니다.

검찰 : 어떤 명목으로 주었는가요.

이재철 : 신성해운 세무조사의 담당국장이니까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명목으로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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