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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그놈의 情’때문에

‘그놈의 情’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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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실패했지만 정의 이미지는 남았다. 그가 권위주의를 없앤다며 대통령의 권위마저 상실하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좌충우돌했으며, 지방분권의 이상을 좇다 전국의 땅값만 올리는 등의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많은 사람은 그가 보였던 진정성, 즉 정은 믿었다고 본다. 욕하고 조롱하고 비난했지만 ‘그 놈의 정’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조문 행렬에 참여한 게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용산 참사’를 이토록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는 정치적 무감각은 놀라울 지경이다. 법대로만을 외친다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메마른 법치’는 지도자의 편협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법치 이전에 덕치(德治)는 여전히 진리다.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경우, 대통령은 진작 대운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어야 한다. “국민이 원한다면 안 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할 게 아니라 “대운하는 절대 안 한다”고 못을 박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운하로 의심받을 만한 소지가 적지 않은 터에 대통령이 분명하게 매듭을 지어주지 않으면 국정에 대한 불신만 높아질 것이다.

보(洑)로 강물을 막으면 그 안의 물이 썩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따라서 4대 강 살리기가 아니라 ‘4대 강 죽이기’라는 등의 비판에도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실무적 홍보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청계천 복원도 처음에는 반대하는 소리가 많았지만 다 해놓고 나니까 다들 잘했다고 하더라, 4대 강 살리기가 끝나면 대운하 하자고 여론이 바뀔 것이다.’ 행여 대통령이 이런 생각이라면 위험하다. 4대 강과 청계천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경부대운하는 환경은 둘째 치더라도 경제성부터 떨어진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지 않은가.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이라고 주장할 증거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이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으니 타살적 요소는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물론 ‘타살적 요소’를 전면 부인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세청이 재계 순위 600위권에 머무는 태광실업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이고 지난해 11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그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는 점을 의심한다. 한 전 청장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났다. 국세청-검찰로 이어진 ‘표적수사설’이 나오는 이유는 한 전 국세청장의 ‘기획출국설’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박연차 로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씨가 귀국해도 불러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결론이다. 두 개의 설, 즉 기획출국설과 표적수사설을 말끔하게 해소시키지 못한다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타살설도 해소되지 못할 것이다.

때로 드러난 사실보다 개연성 있는 심증이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타살설도 그런 경우다. 이는 근원적으로 전 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듯한 우리 정치문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더구나 이른바 좌파정권에서 우파정권으로 바뀐 지난 1년 반은 ‘좌파 청소기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은 좌파세력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러니 그가 ‘최종 타깃’이었고 그 결과 죽음으로까지 내몰렸으리라.” 이런 정도의 분석은 요즘 시정(市井)의 어느 주막 술청에서도 어렵잖게 들을 수 있다. 부패 혐의는 사라지고 정치적 죽음의 심증만 떠돌고 있다.

아무튼 현재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사죄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간접적이라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일반의 의혹 어린 심증을 해소시켜야 한다. 그 효과적인 방법이 국정기조의 변화요, 국정쇄신이다. 이제 효율성만 따지는 밀어붙이기식 국정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남은 3년 반의 임기 내내 ‘죽은 노무현’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의 불행이자 나라의 불행일 수 있다.

‘그놈의 情’때문에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얼마 전 한 우파논객은 “좌파가 진보냐?”고 했다. 한국의 ‘수준 낮은 좌파’를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검은 백조’처럼 형용모순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꼭 맞는 것도 아니다. 그의 말이 더욱 높은 설득력을 가지려면 ‘우파는 보수인가? 우파는 무엇을, 어떤 가치를 보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얘기했어야 했다. 전문적 지식이나 어려운 개념 설명을 떠나 이를테면 예의염치 같은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보편적 가치를 준거로 말했으면 더욱 좋았겠다. 비록 이념적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을 ‘조폭 두목’에 비유하는 수준의 우파는 진정한 보수인가? 그들이 지키려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등에 대해 자문했어야 한다. ‘수준 높은 우파’가 늘어나야 보수정권도 성공할 수 있다. 오래된 생각이다.

신동아 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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