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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노무현 그후

뉴레프트가 진단한 노무현 추모 현상

집단 이지메 속죄와 신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

  • 임혁백│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hyugim@paran.com│

뉴레프트가 진단한 노무현 추모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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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레프트가 진단한 노무현 추모 현상

‘바보 노무현’이 추구했던 가치는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으로 다시 살아났다.

3.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노무현을 애도했는가

노 전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열광과 실망의 4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보 노무현,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 노무현, 청문회 스타이자 노동현장에 직접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인권 변호사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과정에서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젊은 차세대 지도자로 부각돼 지역, 계급, 성, 세대를 넘어 ‘각계각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경선 기간에 그는 대중스타였다. 지지율이 60%가 넘는가 하면 그를 상징하는 마스코트, 로고가 가게에서 팔렸다.

그에 대한 지지는 ‘묻지마 지지’였다.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장인의 좌익경력으로 공격받았을 때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나는 후보직을 버리겠습니다”라고 반발하자 인기가 더욱 올라갔다.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던 강남 아줌마들에게도 이 발언만큼은 ‘짱’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아내 권양숙 여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바보 노무현은 아내를 버리지 않고 자신을 버려 아내를 구출했다. 이것이 노짱의 인기 비결이다. 질풍노도와 같이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가 되었을 때 노무현은 이미 정상에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주류 보수세력과 당내 주류세력의 흔들기, 말꼬리 잡기 그리고 자신의 말실수 등이 겹쳐 노무현의 인기는 이미 ‘하산’하고 있었다.

열광과 실망의 두 번째 사이클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시작되었다. 월드컵 거리응원에 자발적으로 동원된 젊은 유권자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원칙에 충실한 ‘노무현 구하기’에 나서면서 바닥을 친 지지율은 두 자릿수로 끌어올려졌다.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로 절정에 올랐고, 그 여세를 몰아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의 갑작스러운 노무현 지지철회 선언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노무현의 원칙주의자적인 면모가 부각됐고 수십만의 젊은 네티즌이 잠을 자지 않고 댓글을 보내면서 지지를 호소하자 1200만표가 그에게 쏟아졌다.



죽음으로 아내를 구출하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그 자체로 열광과 실망의 두 번째 사이클 중 열광의 또 다른 정점이었다. 이제 열광의 정점에서 실망, 냉소, 불인정, 조롱의 골짜기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노무현은 보수세력과 불화하고, 집권 여당과 불화하고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과 불화했다. 결국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까지 나와 버렸다.

말이란 일단 뱉으면 다시 삼킬 수 없다. 주류 보수세력과 잔류 민주당은 못해먹겠으면 못하게 해주겠다면서 탄핵을 강행했다. 탄핵은 법리논쟁을 떠나서 바보 노무현, 기득권 세력에 포위된 사회적 약자 노무현 대통령, 민주적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세력에 의연하게 맞서 싸우는 국민의 대표 노무현의 이미지를 강화했고, 이제 다시 ‘국민’이 노무현 구하기에 나섰다.

국민에 의한 탄핵 역풍은 대단했다. 노무현은 이를 통해 단숨에 정국의 향방을 역전시켰다. 노무현은 세 번째 열광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된다. 탄핵 이후 노무현은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집권 후반기의 레임덕과 겹쳐 이번의 하산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었고, 그 길의 종착점은 봉화산 부엉이바위였다. 세 번째 사이클의 종착역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이제 열광과 실망의 네 번째 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노 전 대통령은 죽음으로써 가족, 특히 아내 권양숙 여사를 구출하고 실망의 골짜기에서 급상승해 열광의 사이클로 사태를 역전시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역전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음으로써 국민과의 불화를 끝내며 추모민심을 만들었고, 그 추모민심이 정치권의 세력판도를 뒤바꾸어놓았다.

역시 역전의 명수 노무현다운 행동이었으나 무엇으로 죽음과 바꿀 수 있을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노도와 같은 500만이 넘는 추모 열기를 어떻게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참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자유의 후퇴에 대한 반작용

첫째, 이명박 대통령의 신권위주의적 국정운영과 정치적 자유의 후퇴에 대한 반작용이 노무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많은 시민으로 하여금 분향소로 향하게 했다. 세계적인 민주주의와 인권NGO(비정부기구)인 프리덤하우스가 매년 매기는 한국의 정치적 자유등급은 김영삼 정부 때 자유민주주의로 불릴 수 있는 2등급으로 격상된 이래 인권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말에 최고등급인 1등급으로 올라 한국인은 선진민주주의 국가 수준의 정치적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 많은 국민이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을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자유가 만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열망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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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hyugim@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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