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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민 상담소⑥

명예퇴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어요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명예퇴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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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오에 맞는 위기

40세는 인생의 정오라 하여 자신의 인생과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시기다. ‘제2의 사춘기’라고 하는 이 시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지표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다. 더구나 지금의 40~50대는 평생직장의 신화를 믿고 회사를 위해 가정까지 희생해가면서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바친 세대다. 자신이 한창 나이에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만둔 후의 생활에 대한 준비 또한 없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정리해고는 그동안 기울여온 모든 노력을 무효화하면서, 믿고 의지하던 기반마저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이제 무능한 중늙은이를 반겨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집에서는 무능한 가장이자 아버지가 돼 설 곳을 잃고, 사회에서는 인생의 패배자로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손에 쥐어진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들고 온 가족의 생계와 아이들의 교육을 마저 책임져야 하는 가장은 불안하기만 하다. 배운 것이라고는 해오던 일밖에 없는데 새롭게 창업을 하려 해도 자본금이 부족하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쇠해버린 상태에서 새롭게 무얼 시작하는 것은 겁나는 일이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은 건 아무 데서도 불러주지 않는, 그 어느 곳에서도 소용가치가 없는 인생의 실패자요 패배자로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뿐이다.

이처럼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 많은 사람은 그 의미를 축소하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서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려다보면 분노와 좌절감과 두려움이 해소되지 못하고 쌓여 자칫 우울증이나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실패자라고 느낄 수 있다. 창피하고 사람 만나기 싫고 모든 것에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끝까지 뛰어봐야 아는 마라톤처럼 결국에는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해왔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얼마나 행복과 기쁨을 누려왔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당신이 지금 정리해고를 당한 것은 무능하거나 모자라서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왔어도 세상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의외의 일은 항상 일어난다. 지금의 시련 역시 그렇게 일어난 일일 뿐이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세상의 변화 속도를 예측하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이런 일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달리 생각하면,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느라 놓친 잘못 아닌가. 그러니 이 시련을 혼자 끙끙 앓으며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자. 가족이란 고통이나 기쁨을 같이 나누며 함께 가는 사람들이다. 부인과 아이들에게 현재 당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라. 당분간 이 위기를 이겨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같이 의논하고 결정하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면 모두 다 같이 노력할 수 있다.

이 기반 위에서 충분한 조사와 검토 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자칫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는 판단력을 잃기 쉽다.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전까지 자신이 누리던 사회적 지위나 체면 등은 덮어두고 무시하는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일의 전망이 어떤지,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얼마나 맞는 일인지만을 생각하라.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이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가능성을 배제하다보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로 다시 한 번 뛰어들어야 한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지는 이때 당신에게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라

미래가 암담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현실의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더구나 매스컴에서는 수시로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젊을 때부터 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 않은가. 맞다. 당신은 이미 늦었다. 그러나 한 달 후, 일 년 후와 비교하면 결코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당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자식에게 쏟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일정 부분은 꼭 떼어 남겨두어라. 경제적인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당신이 좋아하는 그 무엇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것. 부부가 함께라면 더욱 좋다.

명예퇴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어요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現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희대, 인제의대 외래교수

저서: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지금 당신은 삶의 위기를 맞았다. 일단 한 템포 늦추고, 그 위기가 당신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 위기가 당신에게 변화를 요구한다면 거기에 맞춰라. 절대 지금의 당신을 과거의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한다. 만일 새롭게 도전할 일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라면, 더 잘됐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져라. 당신은 위기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극복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경쟁에서 승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했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필요하고 사랑받는 존재였느냐 하는 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당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은, 그렇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고민을 spring@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

신동아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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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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