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대 부부 가운데 10%가 섹스리스라는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섹스리스 커플이 늘고 있다.
A 주변 사람이나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지내는 커플이 많다. 심한 경우 신혼 초가 지난 뒤부터 결혼생활 내내 성관계가 없다는 커플도 있다. 시작은 어느 한쪽에서 피로 등의 이유로 관계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방은 한동안 화를 내거나 조르면서 관계를 시도하다가 이윽고 포기 상태에 이른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서로의 성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성관계 없이 무덤덤하게 생활만을 공유하는 부부다. ‘생활만을 공유하는 부부’라는 말에서는 어쩐지 건조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함께’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부터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리고 두 사람의 내면생활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부부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던 내면의 비밀스러운 욕동(欲動)을 풀어놓고 상대를 통해 충족시킬 수 있는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울 수 있고, 서로에게 합치감과 완성감을 줄 수 있는 소중한 반려자인 것이다. 그런데 부부로 살면서 내적 생활은 각자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외적 현실만을 공유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섹스를 통한 유대감 강화는 인류 진화의 산물
“에로티시즘은 죽음에 이르도록 황홀한 생의 찬미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가 한 말이다. 많은 예술가는 성관계에서 극치감에 이르는 순간을 인간이 살아가며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으로 묘사하곤 한다. 굳이 예술가들을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성욕이 식욕, 수면욕과 함께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성적욕동(sexual drive)이 인간의 욕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섹스를 통해 우리는 활력과 기쁨을 얻고 동시에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완성됐다는 느낌, 상대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선물받는다.
물론 섹스의 본질적인 목적은 종족 번식이다. 남성이나 여성의 오르가슴은 모두 수태가 더 잘 되도록 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섹스의 다른 기능까지 발달시켰다. 파트너와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유지하는 기능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식능력이 없는 긴 유년기를 보낸다. 이 기간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양육과 아버지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섹스를 통해 부부간의 상호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인간에게 섹스를 통한 종족 번식과 유대감 강화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중요하다. 성행위를 하면서 두 사람이 느끼는 친밀감도 성적 쾌락 못지않게 가치 있다는 뜻이다.
에로틱한 욕동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즐거움을 추구한다. 즐거움의 대상은 다른 사람으로, 관통하거나 침범하고 싶은, 또는 관통당하거나 침범당하고 싶은 존재다. 에로틱한 욕동 속에서 사람은 상대방과 친밀함과 합침 그리고 섞임을 열망한다. 서로의 경계를 강하게 넘어 들어가 그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이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성적으로 흥분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것을 보며 희열을 강화한다. 자신의 성적 욕망에 상대가 사랑으로 반응하면 인간은 황홀의 극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 순간에는 성을 구분하던 일반적인 경계가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치감을 통해 자신이 남성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남녀의 성기가 합쳐지고 감싸지면서 즐거움과 완성감을 느끼게 된다.
에로틱한 욕동의 세 번째 특징은 성의 오이디푸스적 구조에서 유래된 금기를 극복하는, 일종의 반란의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스탕달이 지적한 대로 옷을 벗는 행위는 수치심이라는 사회적 관념을 무효화한다. 성행위 후 다시 옷을 입으며 우리는 관례적인 수치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또한 성행위는 상대의 경계를 깨뜨리고 파고듦으로써 상대방을 관통하고 먹어버리는 공격성의 의미도 갖고 있다. 이러한 공격성은 사랑과 결합해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행복감과 미움의 양가감정을 거뜬히 담아내는 틀이 된다.
멕시코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옥타비오 파스는 사랑을 구성하는 삼위일체적 요소로 배타성, 운명의 끌림, 영혼이면서 동시에 육체인 인간을 꼽았다. 그는 “사랑은 존재의 위험과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고,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지도 않지만, 시간을 확장시켜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며 사랑을 ‘인간 존재와 실존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정의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자유롭게 선택한 운명이다. 영혼과 육체가 펼치는 이중주 안에서 인간은 시간의 속박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틈을 발견한다. 그래서 사랑은 ‘지구상에서 축복받은 자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된다.
섹스리스 부부는 왜 생겨나는가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섹스리스(sexless) 부부가 점점 늘고 있다. 20~40대 부부의 10%가 섹스리스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의사나 변호사 펀드매니저 같은 고스트레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중에 섹스리스 커플이 많다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부부의 30%가 섹스리스라고 하니 점차 우리 생활에서 섹스가 추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섹스 문제에 관한 한 정답은 없다. 얼마에 한 번씩 해야 한다는 원칙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30대는 주 2회, 40대는 주 1회, 50대는 2주에 1회씩 성관계 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장기간 섹스를 하지 않고도 부부 사이에 아무런 불만이나 문제가 없다면 섹스리스로 보지 않는다. 보통 1~3개월간 섹스를 전혀 하지 않은 부부를 섹스리스 부부라고 하는 것은, 이 경우 흔히 부부 사이에 섹스리스로 인한 문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섹스가 사라지는 주된 이유는 부부간의 갈등이다. 성이 본능이라고 해도 상대가 밉고 싫은데 욕구가 생길 리 없다. 성행위란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욕구나 환상을 상대에게 여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 받기도 쉽다. 만일 성행위 도중 한쪽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구만을 채운 뒤 뒤돌아 자버리면 배우자는 성적 모욕감 및 좌절감에 빠진다. 또 성행위 뒤에 상대로부터 “애걔~ 난 간에 기별도 안 갔는데?”라는 조소를 받으면 성적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신의 성적 능력에 대한 회의도 생기게 된다. 이 경우 상대에 대한 분노는 섹스 거부로 이어지기 쉽다.
또 다른 이유로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상대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출산 후에 가속화되는데, 육아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서로에 대한 긴장의 끈이 풀리면 부부끼리 더 이상 성욕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로는 성행위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 있다. 남자의 경우 ‘발기가 잘 안 되면 어쩌나’ 혹은 ‘조루가 생기면 어떡하나’ 같은 불안감이 들면 성욕이 떨어진다. 스트레스도 성욕을 감소시킨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뇌에서 프로락틴이라는 여성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한다. 또한 스트레스는 말초혈관의 수축을 가져와 남성 음경의 평활근을 수축시키고 성기능을 떨어뜨린다. 동시에 활성화산소를 증가시켜 호르몬의 주성분인 아미노산을 파괴하기도 한다. 여자는 분비물이 적거나 조이는 힘이 약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성적인 쾌감과 반응을 떨어뜨린다.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기의 근육이 수축돼 성기능이 떨어진다.
섹스리스의 넷째 원인으로는 배우자의 외도를 꼽을 수 있다. 외도는 상대방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 절망감 등을 일으킨다. 이 경우 섹스리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심리적인 억압 등의 개인적인 문제가 섹스리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섹스는 우리가 즐겨야 할 생의 선물
섹스리스 상태가 지속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특히 여성의 경우 성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상대방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심리적 박탈감까지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경우 성적 능력의 저하로 인한 섹스리스 상태에 놓이면 ‘부인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못난 남자’라는 자괴감 때문에 위축되기 쉽다. 이러한 갈등은 부부 대화의 단절을 가져온다. 또 자신의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확인받기 위한 수단으로 외도를 할 수 있어 가정생활이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성도 높아진다.
섹스리스가 계속되면 부부간의 갈등도 증폭된다. 섹스를 하는 동안 뇌에서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이는 각각 사람에게 기쁨과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행복한 성행위를 하면 웬만한 부부 갈등쯤은 눈 녹듯 사라진다. 섹스리스 관계가 이어지면 부부는 상호간의 갈등을 녹일 수 있는 따듯한 난로를 잃게 되는 셈이다.
섹스는 두 사람이 나누는 신체적 대화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환상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비밀스러운 대화이기도 하다. 이 대화를 통해 부부는 서로의 몸뿐 아니라 영혼에까지 더욱 가까워진다. 물론 섹스 없이도 이런 관계는 가능하다. 그러나 섹스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명력의 기쁨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성기능은 다른 모든 기능과 마찬가지로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섹스를 무시하고 살다 보면 훗날 다시 성욕이 생겨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따라서 섹스리스가 지속되면 적극적으로 원인을 찾고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고민 의뢰인의 경우 부인이 성적 불만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눠야 한다. 허심탄회하게 그동안 느꼈던 성적 욕구를 밝히고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에 대해서도 털어놓자.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 긴장을 이완시킨 뒤 애무를 하면서 서서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좋다. 자신의 성감대와 배우자의 성감대를 알고 자극하는 것은 서로에게 배려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이때 상대방에 대한 찬사와 칭찬 등을 통해 서로를 북돋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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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배우자가 섹스를 거부한다면 혹시 그동안 성적으로 좌절감을 느꼈는지, 자신의 배려가 부족한 점이 있었는지를 묻고 그러한 면을 개선해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서로의 몸을 향해 한발씩 다가가는 노력을 통해 부부는 다시금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고, 그들의 가족은 은밀한 기쁨으로 더욱 더 단단히 맺어질 것이다. 섹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고 우리가 즐겨야 할 귀중한 생의 선물이다.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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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