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5일 ‘르피가로’의 보도
그러나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훨씬 심도 깊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이 치안이나 안전관리를 넘어 이란 등 UAE와 긴장관계에 있는 외국과의 분쟁에 한국이 개입하겠다는 의사표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중동에서 UAE가 연루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자동적으로 혹은 UAE의 요청에 따라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의혹을 낳는다는 문제제기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원전 수주 과정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을 들으면 이러한 우려가 배가된다는 사실이다. 해당 조항이 “수주 경쟁국이었던 프랑스가 UAE와 맺고 있는 군사협력 관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급히 마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수주전이 최고조에 올랐을 무렵 프랑스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군사협력 격상’을 꺼내놓는 바람에 한국도 그에 대응하는 카드가 필요했다는 배경설명이다.
프랑스와 UAE의 군사협력 관계는 연원이 깊다. 1990년대 프랑스제 전차와 전투기를 대량으로 도입한 UAE는 1995년 프랑스와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고 이후 육해공군이 모두 참여하는 합동군사훈련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5월부터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해·공군 기지가 포함된 500명 규모의 주둔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6월15일 ‘르피가로’지는 프랑스가 UAE에 핵우산을 제공키로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에 개정되는 양국간 군사협정 비밀조항에 ‘UAE가 공격받을 경우 프랑스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UAE를 보호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여기에는 핵무기 사용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UAE와 프랑스의 관계가 한미동맹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뜻이다.
군 주둔이나 핵우산 제공이 모두 원전 수주 경쟁이 한창일 당시 이뤄진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전하는 프랑스의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군사협력 격상’제의는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호해주겠다’는 프랑스 측 카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MOU를 체결했다면 그 역시 군사동맹에 준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는 유추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UAE가 ‘유사시 군사적 지원’을 자국 연루 분쟁에 대한 파병 및 자동개입 공약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30억달러 내외의 국방예산과 5만명 규모의 병력을 운용하고 있는 UAE는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와의 조약이나 협력을 통해 안보 강화를 추구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변국, 특히 잠재적국(潛在敵國)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란에 비해 취약한 군사력을 동맹 맺기로 극복한다는 취지다. 물론 실제로 UAE와 주변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한국이 개입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격상된 군사협력협정이 갖는 국제정치적 함의는 사뭇 다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란 등에 한국이 새 잠재적국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UAE와의 협정 격상 과정에서 “이란과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가 최전선에 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이후 발간한 안보정책 백서를 통해 UAE가 위치하는 페르시아만 인근의 안보문제를 자국의 ‘사활적 이해’로 간주해 적극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란과 잠재적 적대관계를 감수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UAE와의 협정 개정을 추진했다는 뜻이다. 중동 정세에 직접적인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과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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