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2014

4장 46 용사

  • 입력2010-10-18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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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2014년 7월25일 금요일. 오후 12시15분. 개전 1시간25분25초 경과. 합참 지하 벙커 안.

    안쪽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합참의장 장세윤, 육참총장 조현호,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 해병사령관 정용우 등이 일제히 머리를 돌려 이쪽을 보았으므로 하중복 중장은 긴장했다.

    “어이, 하 중장, 일루 와봐.”

    조현호가 부르자 하중복은 입맛부터 다셨다. 육사 2기 선배인 조현호하고는 육사 때부터 체질이 안 맞는다. 하지만 서로 으르렁대면서도 진급은 언제나 각각 1순위였다. 다가선 하중복에게 입을 연 사람은 장세윤이다.

    “하 중장, 지금 즉시 연합사령관께 보고를 하도록, 한국군 지휘부가 이 순간부터 연합사령관 지휘하에 들어가겠다고 말야.”



    놀란 하중복이 눈만 치켜떴을 때 장세윤이 말을 잇는다.

    “당연한 일인데 너무 늦었어, 그리고 난 지금 대통령께도 그렇게 보고를 하겠네.”

    “의장님, 그러면,”

    하중복이 말을 잇는 순간에 조현호한테 잘렸다.

    “이봐 서둘러! 뭐하고 있는 거야!”

    조현호가 버럭 소리친 것이다. 벙커 안의 모든 시선이 모였을 때 조현호의 외침이 이어졌다.

    “지금도 국군이 죽어가고 있단 말야! 전쟁 상황에서 지휘 계통에 혼선이 있으면 되겠나!”

    “함정을 팠군.”

    한미연합사령관 겸 미8군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에게 직통 전화를 걸면서 하중복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이다. 버튼을 누르는 하중복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떠올라 있다. 난데없이 불을 지르고 나서 함께 끄자고 하는 꼴이다. 연합사 한국 측 작참차장인 하중복은 미국 측이 이 전쟁에 얼마나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데프콘2 상황에서 발생한 이 충돌은 한국군의 독자적 행동이었지만 연합사 책임이다. 하지만 연합사 측은 우발적 사고로만 간주해 말려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 좀 보라. 한국군은 일을 다 저지르고 나서 방위조약을 내세우며 미군 뒤에 숨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우드워드 대장의 부관이 전화를 받았으므로 하중복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 문득 자신의 가슴이 개운해져 있음을 깨닫는다. 역시 자신도 한국군인 것이다.

    “갓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욕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뒤통수를 맞은 것은 분명했다. 아주 정확하고 적절하게.

    “좋아.”

    호흡을 가다듬은 한미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그는 지금 합참에 파견한 하중복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중이다.

    “사령부는 오산의 전시사령부 벙커다. 30분 내로 한국군 지휘부 자식들이 도착하라고 이르도록.”

    뱉듯이 말한 우드워드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앞에 선 참모장 해리슨을 보았다.

    “갓뎀.”

    해리슨은 외면한 채 못 들은 척했다.

    7월25일 오후 12시20분. 개전 1시간30분25초 경과. 평양 주석궁의 지하벙커 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늘 세 번째로 대한민국 대통령 박성훈과 통화를 한다.

    “예, 대통령 각하.”

    김정일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 있다. 주위에 둘러선 당과 군의 원로들은 숨을 죽인 채 김정일을 응시한다. 그때 박성훈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린다.

    “위원장님. 5분 전에 한국군의 작전권이 한미연합사로 완전히 이관되었습니다. 그것은 한국군이 더 이상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하지만 대통령 각하.”

    눈을 치켜뜬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남해에 진주한 해병대와 영해를 침범한 한국 해군 함대가 있는 이상 우리는 이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양국의 해군과 공군이 원상태로 복귀할 것을 제의합니다. 그러고 나서 남해에 진입한 한국군 문제를 상의합시다.”

    “좋습니다.”

    김정일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 즉시 영해에서 물러나주시지요.”

    북한 측으로서는 전혀 손해 볼 일이 없는 조건이다. 개전 한 시간 반이 경과한 지금 서해상의 제공·제해권은 한국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다. 언제나 기습을 했던 북한군이 이번에는 한국군의 기습적인 반격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것이다. 북한이 아군 헬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한국군 해군 함대는 북한의 서해함대 6개 전대 중 3개 전대를 무력화했으며 옹진반도 주변의 12개 미사일 기지와 포대가 초토화되었다. 또한 공군은 황해남도 누천과 태탄 기지에서 발진한 북한군 MIG31편대를 괴멸시켰고 한국군 해병 1개 연대가 남해시를 장악하고 북진 중이다. 마치 도발을 기다렸다는 듯이 육해공군이 용의주도하게 반격해온 것이다. 그때 박성훈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위원장님, 남해의 한국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양측 상황이 정리가 됩니다.”

    “알겠습니다.”

    김정일이 다시 동의했다.

    “내가 지시를 하지요. 하지만 한국군은 그 즉시 철수해야 될 것입니다.”

    7월25일 오후 12시24분35초. 개전 1시간35분 경과.

    남해시 중심부. 해병 제7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보위부 건물 지하실 안.

    제7사단 고달호 소장이 참모장 김길중 준장에게 물었다.

    “수색대대는 어때?”

    “그쪽도 적의 저항이 그쳤습니다.”

    귀에서 무전기를 뗀 김길중이 말을 잇는다.

    “전(全) 전선이 소강상태가 되었습니다.”

    2분쯤 전부터 북한군의 공격이 그친 것이다. 쓴웃음을 지은 고달호가 반쯤 허물어진 지하실 밖을 보았다. 이곳은 반지하여서 불타는 남해시가 보인다.

    “김정일의 명령이 먹히는 것 같구먼.”

    “동무는 누구 지시를 받고 이곳에 왔소? 근무지를 이탈한 것 아니오?”

    그때 벙커 철문이 열리더니 군관 네 명이 들어섰다. 네 명 모두 중좌 계급장을 붙였고 허리에는 권총을 찼다. 그들이 김경식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는 바람에 안은 잠깐 어수선해졌다. 몸을 부딪친 장군들의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그때 김경식이 말했다.

    “호위사령관 동지를 밖으로 모셔라.”

    김경식의 목소리가 시멘트벽에 부딪혀 울렸다.

    “아니, 김경식이. 너, 이 새끼!”

    놀랍고 화가 난 강창남이 버럭 소리쳤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을 붙였던 강창남은 어느새 다가온 중좌에게 팔을 잡혔다.

    “네 이놈! 이 반역자!”

    강창남의 고함이 벙커 안을 울렸다. 그러나 강창남은 어느새 군관들에 둘러싸여 머리만 빠져나와 있다.

    “놔라! 이놈들아!”

    다시 강창남이 아우성을 쳤을 때 김경식이 몸을 돌려 성종구를 보았다.

    “부장동지, 820군단을 개성공단으로 진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남조선 105전차사단을 깨부숴야 승기를 잡습니다.”

    김경식이 소리치듯 말을 잇는다.

    “남조선 놈들의 수작에 끌려들어가면 안 된단 말입니다.”

    “옳습니다.”

    장성 서너 명이 따라 소리쳤다.

    “우리는 놈들의 지연전술에 속고 있었습니다. 105전차사단을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심철은 숨을 들이쉬었다. 예민한 성품의 심철은 벙커 안 지휘부의 분위기를 읽은 것이다. 김경식은 밖에 무장병력을 대기시켜놓았을 것이다. 어깨를 편 심철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820군단을 개성으로 보냅시다. 그래서 남조선군 주력을 깨부수는 것입니다.”

    7월25일 오후 12시55분. 개전 2시간05분25초 경과.

    옹진 동북방 2㎞지점, 중대원은 이제야 비상식량으로 점심을 먹는다. 이동일이 앞쪽 산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저 앞쪽 산 뒤의 북한군 보급대로 정찰병 둘을 보내.”

    뒤쪽 대대 본부와는 8㎞ 거리로 간격이 벌어졌다. 아래쪽에 엎드린 조한철 중위가 부하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사방은 조용하다. 뒤쪽에서 드문드문 울리는 총성도 갑자기 한가롭게 느껴졌다. 다시 지도를 내려다본 이동일이 옆에 엎드린 황찬우 중위에게 지시했다.

    “본대는 10분 후 출발이다.”

    “예, 중대장님.”

    손등으로 입을 닦은 황찬우가 벌떡 일어서더니 풀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황찬우가 선봉인 것이다. 이동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앞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이제 가슴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그러자 전원이 켜진 순간 신호등이 반짝이면서 손에 쥔 휴대전화기가 생명체처럼 떨었다.

    저쪽에서 연락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발신자는 송아현이다. 심호흡을 한 이동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5m쯤 떨어진 왼쪽에서 무전병 엄 병장과 김 하사가 쪼그리고 앉은 채 맛있게 소시지를 씹고 있다. 이동일이 영상장치 버튼을 켰다. 송아현 쪽에서 영상통신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그래, 나야.”

    화면에 송아현의 얼굴이 떴다. 크게 뜬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화면이 깨끗해서 송아현의 콧등에 박힌 점까지 드러났다.

    “지금 어디야?”

    송아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지금 북상하고 있어.”

    화면에 드러난 송아현의 얼굴을 보면서 이동일이 홀린 듯이 말한다.

    “어딘지는 말할 수 없어. 아현아.”

    “몸은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그래, 난 괜찮아.”

    “주위를 함 비춰봐.”

    했으므로 이동일이 휴대전화를 들어 사방을 비춰주었다. 아직도 밥을 먹는 엄 병장과 김 하사, 아래쪽의 조한철과 10여 명의 부하, 짙은 풀숲, 그리고 앞쪽의 산까지 보여주고 난 후에 화면을 정면으로 보면서 물었다.

    “거긴 어떠냐?”

    “여긴 평온한 편이야. 한국군이 이기고 있어서 그런가봐.”

    “그래?”

    “계엄령이 선포되었어. 글고 서해는 우리가 완전히 장악했어. 알아?”

    “그랬겠지, 그렇구나.”

    이동일의 얼굴이 환해졌다.

    “전장에서도 이렇게 네 얼굴을 볼 수 있다니, 내가 휴대전화를 반납하지 않고 갖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30분에 한 번씩 나하고 통화할 수 있지?”

    불쑥 송아현이 울었으므로 이동일이 눈썹을 모았다.

    “아현아, 난 지금 전쟁 중이야.”

    “그래도 받아.”

    송아현이 눈을 부릅떴다. 다시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보고 싶단 말야.”

    그때 앞쪽 황찬우가 풀숲에서 몸을 일으켰으므로 이동일은 화면을 보았다. 출발인 것이다.

    “아현아, 출발이다.”

    이동일이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우리는 북한 땅 깊숙이 전진하고 있어.”

    같은 시간. 소공동 국제신문 건물의 방송실. 화면이 꺼지면서 송아현이 의자에 등을 붙였을 때 투덕투덕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서너 명의 박수 소리다.

    “됐어. 첫 통화로는 훌륭해.”

    편집국장 백한섭이 말하자 방송담당 국장 하기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대본대로 합시다. 그럼 멋지게 만들어질 겁니다.”

    그러더니 PD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서둘러, 이거 바로 내보내야 돼.”

    자리에서 일어선 송아현은 분주해진 방송실을 나왔다. 복도를 나와 비상계단 문을 열었더니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송아현은 계단 끝에 쪼그리고 앉아 벽에 어깨를 붙였다. 그 순간 이동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 수건.”

    토하고 난 송아현이 수건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이동일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수건이 날아와 머리 위에 덮여졌다. 그러고는 욕실 문이 닫혔으므로 송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더럽군, 개자식.”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이 나왔다. 더럽다는 것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개자식은 이동일을 향해서다. 허리를 편 송아현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얼굴은 창백한데다 눈이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구토하느라 힘을 썼기 때문이다. 양치질을 평소의 두 배쯤 오래 하고나서 욕실을 나왔더니 이동일은 침대 밑에 시트를 깔아놓고 누워 있었다. 방의 불이 환해서 송아현은 전등 스위치를 껐다. 그때 눈을 감고 누워 있던 이동일이 말했다.

    “잘 자라.”

    “침대로 와, 자식아.”

    침대로 오르던 송아현의 입에서 또 저절로 욕설이 뱉어졌다. 그때 이동일이 손을 뻗어 송아현의 발목을 잡았다.

    “놔, 안 놔?”

    송아현이 소리쳤을 때 이동일이 투덜거렸다.

    “이거 무드 더럽군.”

    “무드 좋아하네, 안 놔?”

    “양치질 했냐?”

    “놔, 이 자식아.”

    그때 이동일이 다른 한쪽 발목도 잡아당기는 바람에 송아현은 주르르 미끄러졌다. 몸부림을 쳤지만 곧 이동일의 사지가 온몸을 빈틈 없이 감는다.

    “안 놔?”

    입은 막히지 않아서 그렇게 소리쳤을 때 이동일의 입술이 덮쳐왔다. 그 순간 송아현이 두 팔을 빼내 이동일의 목을 감아 안는다. 이동일의 입안에서 알코올기가 섞인 신선한 향내가 맡아졌다. 거친 숨결, 옷이 어떻게 떼어져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방바닥에 눕혀진 채로 이동일의 뜨거운 몸이 진입해 들어왔을 때의 느낌, 마치 전기 스파크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비상구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으므로 송아현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어, 여기 있었구먼.”

    편집국장 백한섭이다. 백한섭이 들뜬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방송 내보냈더니 난리가 났어, 연합사는 물론이고 해병대에서도 말야. 하지만 눈 딱 감고 내보낸 재방송 시청률이 67%야, CNN, BBC, NHK가 필름을 사겠다고 난리라고.”

    옆에 선 백한섭의 입가에 게거품이 일어나고 있다.

    “다음 방송의 시청률은 80% 이상으로 솟을 거야. 이러면 연합사도 중지시키지 못하고 타협하려고 들겠지, 우리 예상이 맞아들어가는 거야.”

    그러더니 바쁜 듯 몸을 돌리며 말한다.

    “앞으로 25분 남았어.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여기서 담배나 피워.”

    7월25일 13시05분. 개전 2시간15분25초 경과.

    오산 근처의 연합사 전시사령부 벙커 안.

    상황실 안쪽 원탁에 앉은 제임스 우드워드 연합사령관이 상황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고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820전차군단이 한 시간 후면 105사단과 마주칠 거요. 그땐 전면전이지.”

    장세윤은 물론이고 그 옆쪽의 육참총장 조현호, 작참부장 박진상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때 우드워드 대장의 뒤쪽에 서 있던 8군 참모장 겸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이 말했다.

    “남해로 내려가던 815기계화군단이 잠깐 멈췄지만 이놈들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수도권이 위험하단 말입니다. 이 시점에서 105전차사단을 뒤로 물리고 휴전을 하면 남해의 해병도 살려낼 수가 있습니다.”

    “105사단장이 말을 안 듣습니다.”

    조현호가 다부지게 말하자 우드워드는 눈을 치켜떴다.

    “이봐요, 장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 하시오. 다 짜놓고 하는 수작인 줄 내가 모를 것 같소?”

    “아니, 짜다니요? 날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이요?”

    조현호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 양반이 나를 지금 완전히 사기꾼으로 몰고 있지 않아?”

    그때 연합사 소속의 한국군 대령 하나가 서둘러 우드워드에게 다가가 손에 쥔 통신문을 내밀었다. 통신문을 읽은 우드워드가 주위의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 방금 감청 보고에 의하면 북한군 지휘부가 바뀌었소.”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우드워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2군단장 김경식 대장이 북한군 지휘부를 장악한 것 같소.”

    조현호와 장세윤, 박진상까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김경식은 강골이다. 강경파의 리더, 물론 김정일의 측근 중 하나다.

    “그렇다면 820전차군단도 김경식이 보낸 겁니까?”

    갈라진 목소리로 조현호가 묻자 우드워드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리고 이 정보는 정확합니다.”

    북한군은 전연지대라고 불리는 휴전선에 4개 군단이 배치되어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4, 2, 5, 1군단이 배치되었는데 사령부는 각각 황해남도 해주시, 황해북도 평산군, 강원도 이천군, 강원도 회양군이다. 이 4개 정규군단 외에 820전차군단은 황해북도 사리원시 고불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815기계화군단의 사령부는 황해북도 시흥군 송월리에 있다. 820전차군단은 전차여단 5개를 주축으로 구성되었는데 1개 여단은 4개 전차대대와 1개 경전차대대, 1개 기계화보병대대, 2개 자주포병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군단 전체로는 20개 전차대대, 5개 경전차대대, 5개 기계화보병대대, 10개 자주포병대대로 이뤄졌으니 결국 전차 총 대수는 620대, 경전차 200대, 장갑차량 215대, 자주포 180대라는 가공할 전력이 된다. 북한의 유일한 기갑군단이 바로 820전차군단인 것이다. 상황실에 잠깐 정적이 흘렀는데 구석에 서 있던 해병사령관 정용우는 그것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 정적을 우드워드가 깨뜨렸다.

    “김경식이 820을 개성에 보냈다면 105를 물릴 수가 없겠는데.”

    혼잣말 같지만 주위의 한미 양국의 지휘부는 다 들었다. 우드워드의 혼잣말이 이어졌다.

    “105를 물리면 김경식은 곧장 개성공단으로 진입할 놈이야.”

    개성공단에서 서울까지는 자유로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인 것이다. 이것으로 105전차사단은 820을 맡게 되었다.

    우드워드가 상황판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정용우가 장세윤 옆으로 다가가 섰다.

    “사령관님, 저기, 해병 방송 말씀입니다. 그것을 저.”

    장세윤의 시선을 받은 정용우가 입맛을 다셨다. 시선도 금방 아래로 옮겨졌다. 해병 방송이란 지금 다섯 번도 넘게 재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이동일 대위와 송아현의 화상통신을 말한다. 3분20초짜리 방송이었지만 화면이 생생했고 대화가 실감이 났다. 거기에다 첫 부분에 소리로만 들려준 격렬한 총성과 병사의 울부짖음, 그리고 송아현의 외침이 절절해서 그것만 들어도 모두 운다고 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이 다음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선을 내린 채로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그놈이 휴대전화로 사적 통신을 한 것은 군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대국민 사기 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용우가 머리를 들고 장세윤을 보았다.

    “그놈들은 대대본부의 지시도 받지 않고 북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국민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용우가 잠깐 말을 멈췄을 때 장세윤이 묻는다.

    “그냥 방송에 내보내란 말이요?”

    “예, 사령관님.”

    장세윤은 계엄사령관이다. 정용우가 말을 이었다.

    “예, 놈들이 명령을 어기고 독단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짜고 하는 수작인 줄 알 텐데.”

    장세윤이 찌푸린 얼굴로 정용우를 보았다.

    “위치라든지 군 기밀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도록 하시오. 편집을 하란 말이오.”

    장세윤도 조금 전에 방송을 본 것이다.

    7월25일 13시10분. 개전 2시간20분25초 경과.

    주석궁의 지하 벙커 안.

    소파에 앉은 김정일이 앞에 선 평양방위사령부, 즉 평방사 사령관 전백준 차수를 보았다. 전백준은 70대 중반으로 군 원로다.

    “심철이 김경식한테 붙었어. 강창남은 벙커 안에 억류되었고, 성종구는 대세에 밀려 김경식을 따르는 모양이야.”

    “곧 김경식이 김형기를 풀어내어서 합류시키지 않겠습니까?”

    전백준이 말하자 김정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김경식이는 항상 김형기한테 밀렸거든. 그러다가 이런 기회가 왔는데 김형기를 풀어 내줄까?”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전백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풀어내주면 김형기가 다시 주도권을 잡을 테니까요.”

    “난 항상 경쟁을 시켰기 때문에 두 사람 간에는 적개심이 가득 차 있지.”

    충성심 경쟁이다. 그리고 군 지휘관 사이는 나쁠수록 유리하다. 몇 년 전에는 사단장 셋이 모여 술을 마셨다가 모두 교화소로 보내졌다. 김정일이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연합사 놈들은 820군단이 김경식의 지시로 내려간 줄 알고 있겠지, 놔둡시다.”

    긴장한 전백준이 눈만 끔벅였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마침 가려운 곳을 긁어준 기분이야. 820이 남조선 105사단을 깨부수면 서울까지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지거든.”

    “그렇습니다.”

    엉겁결에 맞장구친 전백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김정일의 머리회전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반란을 일으켜 강창남을 억류시킨 김경식을 즉각 처단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가려운 곳을 긁어준 기분이라니, 그때 김정일이 지친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남조선 박성훈이도 군 핑계를 대고 기회를 노리는 참에 잘되었어. 나도 군 강경파를 앞세우고 잠깐 상황을 보자고.”

    7월25일 13시15분. 개전 2시간25분25초 경과.

    서울. 영등포구 신림동의 우일아파트 17동 1003호. 민족문제연구소장 임준성이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옆에 선 아내 하민숙을 보았다. 두 눈을 치켜뜬 모습이다.

    “이놈들이 다 잡아가고 있어. 박우섭이, 오태영이, 조달원이, 그리고 윤성현이까지.”

    놀란 하민숙이 입만 쩍 벌리고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이른바 친북 성향이 강한 사회단체장, 대학교수, 변호사, 그리고 윤성현은 현역 국회의원이다. 임준성이 이를 악 물었다 풀었다.

    “이놈들이 전쟁을 기회로 공안정국을 만들었어. 이 기회에 정권 반대 세력을 모조리 제거하려는 거야.”

    임준성은 남북한협력위원회 남측 위원장으로 지난 정권 때는 대통령과 함께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일을 만난 적도 있다.

    “여기서 나갑시다.”

    하민숙이 말했다. 이미 국보법 위반으로 10여 년 전에 두 번이나 구속된 적이 있던 임준성이다. 그 뒷바라지를 하면서 하민숙도 정국에 예민해졌다. 지금은 무조건 도망쳐야 할 때인 것이다. 심호흡을 한 임준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곳도 안심할 수가 없어. 당분간 산속으로나 들어가 숨어 있습시다.”

    이 아파트는 이혼한 딸이 혼자 살고 있던 곳이어서 전쟁이 터지자마자 재빠르게 옮겨왔지만 불안해진 것이다. 하민숙이 서둘렀다.

    “내가 명희한테 우리 떠난다고 연락할 테니까 어서 준비합시다.”

    “준비래야 할 게 있나?”

    그때 문에서 벨 소리가 났으므로 둘은 소스라쳤다.

    “명희인가?”

    임준성이 혼잣소리처럼 물었다. 그때 다시 벨 소리가 울리더니 곧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임준성씨, 계엄군이요! 문 여시오!”

    7월25일 13시20분. 개전 2시간30분25초 경과.

    옹진 동북방 3.5㎞ 지점. 산 중턱에 엎드린 이동일이 앞쪽의 군부대를 본다. 단층 벽돌 건물 세 채가 나란히 석 삼(三) 자로 세워져 있었는데 그중 앞 건물이 사무실 겸 막사 같았다. 위장망이 쳐진 옆쪽 산 귀퉁이를 파서 차고가 만들어졌고 트럭이 7대, 지프가 1대다. 정문에 보초가 넷, 마당과 건물을 들락거리는 인민군 병사는 10여 명 정도, 막사 규모를 보면 1개 소대 40명 정도의 병력이 예상된다. 그때 옆에 엎드린 황찬우가 눈에서 망원경을 떼고 말한다.

    “정문 앞 기관총좌부터 쳐야겠습니다.”

    “거긴 내가 맡겠다.”

    이동일이 바로 말을 받고는 머리를 돌려 왼쪽에 엎드린 조한철 중위를 보았다.

    “조 중위, 넌 1소대를 이끌고 우로 돌아서 뒤쪽에서 공격한다.”

    “예, 중대장님.”

    눈을 가늘게 뜬 조한철이 앞쪽을 응시한 채 간단하게 대답했다. 군말이 없다. 이동일이 황찬우를 보았다.

    “넌 우측을 맡아. 난 정면이다.”

    “예, 알았습니다.”

    그래놓고 황찬우가 묻는다.

    “사무실과 막사는 누가 맡습니까?”

    “내가 정문을 깨고 바로 사무실로 진입할 테니까 넌 막사를 쳐라.”

    “그럼 제가 외곽을 맡지요.”

    조한철이 말을 받았다. 모두 시가전 훈련도 받은 터라 손발이 맞는다. 이동일이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간 맞춰, 현재시간 13시22분. 15, 16, 17, 18, 19, 20초다.”

    소대장들이 시간을 맞추자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13시30분 정각에 공격이다. 자, 위치로!”

    그들이 엎드려 있는 풀숲에서 인민군 보급대까지는 직선거리로 170m. 그러나 뒤로 돌아가는 조한철은 서둘러야 한다. 중대원 46명, 그래서 이동일은 중대를 재편성했는데 각각 10여 명의 3개 소대가 되었다. 이동일도 15명을 이끈 중대장 겸 소대장이다. 조한철이 부하들을 이끌고 반쯤 몸을 숙인 채 풀숲 사이로 달려 내려가고 있다.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여름의 한낮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7월25일 13시25분. 개전 2시간35분25초 경과. 소공동 국제신문 건물의 방송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송아현이 앞쪽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계속해서 눌러.”

    방송국장 하기호가 PD에게 말했다.

    “손가락이 문드러질 때까지 누르란 말야.”

    하기호는 의기가 충천한 상태다. 조금 전에 계엄사령부의 공보관으로부터 이동일과의 방송을 허가한다는 공식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전투 중인 해병대위 이동일은 국제방송 종군기자나 같게 되었다. 물론 여러 가지 제한이 따랐지만 그쯤은 문제가 아니다.

    “아, 시발. 지금 수천만, 아니, 수억의 시청자가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조바심이 난 하기호가 머리칼을 손으로 움켜쥐면서 말했다. 방송실 안에는 국제신문, 방송 관계자들이 모여서 떠들썩했다. 방송 내용을 다시 보도하려는 것이다. 송아현은 빈 화면을 향하고 앉아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가슴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때 이동일의 목소리가 또 울렸다.

    “네 몸이 뜨거워.”

    귀에 입술이 딱 붙여져서 숨결에 섞인 더운 열기가 고막에 닿는 순간 송아현은 온몸이 저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과연 뜨겁다. 이동일의 몸은 불기둥 같다. 송아현은 제 입에서 터지는 탄성을 들으면서 몸을 솟구쳤다. 그러고는 다 잊고 함께 타올랐다. 끝없이 터지면서, 그 순간 송아현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송아현은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손등으로 볼을 씻는다. 그립다. 다시 한 번 이 남자를 안게 될 수 있을까?

    “계속 눌러!”

    다시 뒤에서 하기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7월25일 13시32분. 개전 2시간42분25초 경과. 옹진 동북방 3.7㎞ 지점의 북한군 보급대.

    “타타탓, 타타타탓!”

    “꽈앙!”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문밖으로 무수한 파편이 쏟아졌다.

    “타타탓! 타타타타!”

    사방은 총성과 폭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총성의 대부분이 한국군의 K-5자동소총 발사음이다.

    “꽈앙!”

    다시 뒤쪽에서 폭음이 울렸다. 막사 건너편 건물이다. 그쪽은 조한철이 맡고 있다. 이동일은 연기가 품어져 나오는 사무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뒤를 부하 두 명이 따른다.

    “타타타탓!”

    안쪽 캐비닛 뒤에서 비틀거리던 인민군 하나가 이동일의 총탄을 받고 쓰러졌다. 손에 권총을 쥔 것이 장교 같다.

    “타타타타!”

    좌우로 갈라선 병사들이 소총을 난사했다. 됐다. 장악했다. 그 순간 이동일의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아 오른다. 그로부터 5분쯤 후에 이동일은 두 번째 건물 앞 공터에 서 있다. 주위에는 조한철 중위와 10여 명의 병사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오가고 있다. 이제 총성은 그쳤다. 3동의 막사 중 앞쪽 동이 불타고 있어서 제172보급대는 전멸했다. 4군단 산하의 제22보병사단 소속으로 야전장비를 공급하는 병참부대다. 적 전사 27명, 포로 12명, 그리고 아군 피해는 3명 경상이니 대승이다. 병사들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다. 자부심, 자신감으로 가득 찬 표정들이다.

    “소속과 계급, 이름을 대라.”

    포로 12명 중 8명이 부상, 그중 3명이 중상이어서 옆쪽 건물 옆에 눕혀놓고 의무병이 치료 중이다. 그래서 이동일 앞에는 4명이 끌려와 있었는데 지금 세 번째 병사에게 조한철이 묻는다.

    “22사단 172보급대 소속 중위 윤미옥.”

    여자의 목소리가 한낮의 마당에서 울린 순간 이동일은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진 느낌을 받는다. 오가던 병사들이 모두 시선을 주었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여자를 보았다. 군복 차림이었지만 언뜻 봐도 여자다. 단발머리는 헝클어졌고 볼과 이마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본인이 흘린 것 같지는 않다. 여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옮겨져 왔으므로 이동일이 조한철에게 짧게 지시했다.

    “묶어놔, 입까지.”

    7월25일 13시38분. 개전 2시간48분25초 경과.

    “됐다!”

    발신음이 울린 순간 방송국장 하기호가 소리쳤다. 송아현은 숨을 죽였다. 방송실 안도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발신음이 커다랗게 울리고 있다. 앞쪽 대형 화면에 무수한 흰점이 나타나 반짝인다. 발신음이 네 번 울렸을 때 받는 기척이 났다.

    “여보세요.”

    그 순간 화면에 이동일의 얼굴이 드러났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 뒤쪽의 건물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다. 저곳이 어디인가?

    “나야, 다친 데 없어?”

    송아현이 소리쳐 묻는다. 마음 같아서는 거기 어디냐고 묻고 싶었지만 군 당국의 보도금지 항목이다. 그때 이동일이 대답했다.

    “잘 있어, 보다시피.”

    “지금은 전투중지 상황이라고 들었어. 거긴 괜찮은 거지?”

    “아니, 여긴 아냐. 난 방금 전투를 끝냈거든.”

    이동일이 눈을 부릅뜨고 송아현을 보았다. 화면에 이동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다시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고립되어서 빠져나가는 중이야. 그런데 그럴수록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되는구나.”

    고달호는 조금 전에 사령부로부터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합의 내용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김길중이 말했다.

    “사단장님. 그런데 수색대대의 최전방에 나가 있던 제2중대하고 연락이 안 된다고 합니다.”

    고달호의 시선을 받은 김길중이 말을 이었다.

    “그 2중대장으로 사령관 부관이던 이동일 대위가 가 있는데요. 2중대장이 전사했기 때문에….”

    그 순간 지하실 안으로 1대대장이 들어섰으므로 김길중은 말을 멈췄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이 많은 것이다.

    같은 시각. 남해시 서북방 4㎞ 지점의 야산 밑. 이동일이 옆에 쪼그리고 앉은 제1소대장 황찬우 중위에게 묻는다.

    “몇 명이야?”

    “저까지 포함해서 18명입니다.”

    가쁜 숨을 고른 황찬우가 말을 이었다.

    “부상자, 전사자는 두고 왔습니다.”

    이동일이 머리를 들고 옆쪽을 보았다. 1소대는 절반 이상을 잃었다. 부상자를 놔둔 것은 죽게 버려둔 것이나 같다. 제3소대와 중대본부의 전력은 이동일과 소대장 조한철을 포함해서 여섯. 어깨를 부상당한 박대규 하사도 500m쯤 남쪽 골짜기에 남겨두고 왔다. 그때 조금 아래쪽에 엎드려있던 조한철이 소리쳤다.

    “저기 4소대가 옵니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우측의 낮은 비탈을 따라 달려오는 병사들을 본다. 일렬횡대로 열심히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려졌을 때 이동일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4소대 또한 생존자가 22명, 43명 중 21명이 전사했거나 낙오했다. 전사자 중에는 소대장 박기출 중위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지금 4소대 지휘는 1분대대장 이용섭 하사가 맡고 있다. 선임하사도 전사했기 때문이다. 앞장선 병사의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났을 때 이동일이 말했다.

    “4소대 무전기를 쓸 수 있나 모르겠다.”

    조금 전에 4소대를 불렀던 1소대의 무전기까지 유탄에 맞아 파손되어서 대대본부와 연락이 뚝 끊겼다. 현대전에서 통신 수단이 제거되면 그야말로 눈뜬 장님이 되는 것이다.

    7월25일 오후 12시25분. 개전 1시간35분25초 경과.

    소공동 국제신문 편집국. 벽에 붙은 대형 TV앞에 수십 명의 기자가 모여 있다. 송아현의 모습도 보인다. 그때 화면에 대통령 박성훈이 등장한다. 편집국 안이 조용해졌고 박성훈이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랑인 국군장병 여러분, 저는 5분 전인 12시20분에 북한 지도자 김정일씨와 다음 사항을 합의했습니다.”

    박성훈이 잠깐 호흡을 고르는 동안 편집국 안은 기침소리도 없다. 전황은 극히 제한적으로 보도되어서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 국민 모두가 TV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박성훈의 목소리가 편집국 안에 울려 퍼진다.

    “현 상황에서 남북한 양군의 교전은 중지할 것, 그래서 서해상의 한국군은 NLL 이남으로 철수할 것입니다.”

    그러더니 박성훈이 똑바로 이쪽을 본다. 지친 표정이었지만 눈빛이 강하다. 그것은 이기자는 표정 같다고 송아현은 생각했다.

    “하지만 남해에 진주한 한국군은 남북한 양군이 완전 철수한 후에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철수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동일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오빠.”

    마침내 송아현이 오랫동안 안 쓰던 호칭으로 부른다. ‘자기야’가 맞겠지만 비위가 안 좋다. 송아현이 물었다.

    “오빠 부하는 몇 명이야?”

    그것까지는 군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이다. 그때 이동일이 대답했다.

    “46명.”

    “오빠 부대원 비춰봐”

    그러자 화면에 불타는 막사와 오가는 해병대원, 그리고 막사 벽에 기대앉거나 누운 인민군 부상자들, 포로로 잡혀 꿇어앉은 채 이제 묶여 있는 인민군 네 명까지 비쳐졌다. 생생한 현장 화면이었고 송아현의 뒤쪽에서 억눌린 탄성까지 울렸다. 송아현이 다시 묻는다.

    “이기고 있는 거야?”

    “적 부대 하나를 점령했어. 전과는 적 사살 27, 포로가 12명이다. 그리고 아군 피해는 부상 셋.”

    “우와.”

    하고 뒤쪽에서 서너 명이 탄성을 뱉었지만 송아현은 시큰둥했다. 실감도 안 날 뿐만 아니라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빠, 지금 이 장면 방송되고 있어. 전국으로 말야.”

    송아현이 불쑥 말했을 때 방송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 사실은 밝히기로 결정한 것이다. 송아현도 강하게 주장했다. 그 순간 이동일이 똑바로 화면을 보았다. 그러고는 굳어진 얼굴로 묻는다.

    “너, 기자로 나하고 이야기하는 거냐?”

    “아냐, 아냐.”

    질색한 송아현이 손까지 저었다.

    “전화하다가 국민 사기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그래야 오빠하고 통화할 수도 있고. 또, 군에서도 허락했어.”

    그 순간 이동일의 눈썹이 치켜올라갔으므로 송아현이 서둘러 말을 잇는다.

    “군도 오빠의 북진을 비공식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아. 이런 방송을 허가한 것을 보면 말야.”

    어차피 이 말은 편집될 것이었다. 그때 이동일이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알았다. 나, 지금 다시 움직여야 돼, 이만 끊는다.”

    그 시간에 105전차사단장 차봉호 소장은 장갑차 안에 설치된 레이더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 사단의 3개 전차연대는 이제 배치가 끝나는 중이다.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는 북한군 820전차군단은 5개 여단의 대군이지만 주력 전차의 총 대수는 600여 대, 1개 여단이 120여 대씩이다. 그러나 한국군 105사단은 1개 연대의 전차가 240대, 총 대수는 720여 대다. 더구나 주력 MBT인 MIAI의 성능은 북한의 천마호보다 뛰어났다. 차봉호가 헤드셋의 마이크에 대고 각 연대장에게 지시한다.

    “먼저 준비하고 치는 놈이 이기는 법이다. 서둘러라!”

    이 무선통신은 위성을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까지 중계되겠지만 이젠 상관할 것 없다. 연합사도 820이 달려오는 것을 보더니 전투준비를 지시한 것이다. 차봉호가 한마디 덧붙였다.

    “저 개떡 같은 양아치 시키들의 진면목을 이제야 보여줄 때가 왔다. 분발하라!”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생각해낸 문구다. 전투는 지역만 지적해주면 연대장들이 다 알아서 하는 것이다. 전차 연대장이면 고참 대령으로 다 한가락씩 하는 놈들이기 때문이다. 차봉호가 장갑차 앞쪽 좌석에 앉은 작전참모 윤상기 중령에게 묻는다.

    “어때? 내 격려사. 괜찮았냐?”

    “예, 적절했습니다.”

    정신없이 지도를 보던 윤상기가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눈의 초점을 잡고 차봉호를 보았다.

    “현재 속도로는 45분 후에 820군단 제2여단과 제1연대가 부딪칩니다.”

    차봉호가 머리만 끄덕였다. 1연대는 105사단의 좌측에 배치되었다. 3연대는 우측, 그리고 2연대가 3㎞쯤 후방에서 예비대로 사단본부와 함께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때 다시 윤상기가 말했다.

    “대전차헬기 대대가 조금 전에 발진했습니다.”

    차봉호의 시선을 받은 윤상기는 말을 잇는다.

    “적도 준비하고 있겠지요.”

    북한군도 대전차공격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남북한 정상 간의 정전 제의로 한 시간이 넘도록 양국의 교전이 중지되어 있었지만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45분 후에 양국의 전차가 충돌했을 때 공군의 대전차 공격헬기는 물론이고 전폭기, 그리고 그 전폭기를 노리는 전투기까지 총출동하게 될 테니까, 이제는 전장이 육지로 옮겨와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7월28일 13시41분. 개전 2시간51분25초 경과.

    주석궁 지하 벙커 안에서 김정일이 TV 화면을 보고 있다. 화면에 클로즈업 된 한국군 장교가 말했다.

    “적 부대 하나를 점령했어. 전과는 적 사살 27, 포로 12명이다. 그리고 아군 피해는 부상 셋.”

    그러더니 인민군 부상자와 묶여서 무릎 꿇린 포로가 화면에 비쳐졌다. 장교가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나, 지금 다시 움직여야 돼, 이만 끊는다.”

    그때 다시 불타는 막사가 비치면서 열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상으로 46용사의 두 번째 보도를 마칩니다. 국제방송이었습니다.”

    김정일이 눈짓을 하자 호위장교가 리모컨으로 화면을 껐다. 방안에 둘러앉은 군과 당의 원로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정일은 몸이 여윈 후부터 눈빛이 더 강해졌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앞쪽의 검은 TV 화면을 응시하던 김정일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놈이 지금 어디에 있소?”

    “군에 지시해서 찾겠습니다.”

    평방사 사령관 전백준이 바로 대답했다.

    “즉시 잡아들이지요.”

    “남조선 애들은 매스컴을 잘 이용해.”

    김정일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저놈들을 잡으시오. 그럼 심약한 남조선 인민들이 금방 겁을 먹게 될 테니까.”

    같은 시각, 오산 근처의 연합사 지휘벙커 안.

    연합사령관 우드워드 대장이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에게 말한다.

    “이제 40분쯤 후면 전차전이 시작될 거요. 아니, 전면전이지.”

    우드워드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장세윤을 똑바로 보았다.

    “미국과 한국의 방위조약에 의거해서 내가 이 빌어먹을 상황을 지휘하고 있지만 확전은 안돼요. 무슨 말인지 이해합니까?”

    “이해합니다.”

    턱을 치켜들고 있었지만 장세윤이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놈들 탱크들을 박살낸 후에 평양으로 달려가지 않겠단 말씀입니다.”

    “하지만 말이요. 그 반대로.”

    우드워드가 숨을 돌릴 기회도 주지 않고 말을 잇는다.

    “저놈들이 105사단을 부수면 서울행 고속도로를 타지 않겠소?

    “그땐 한미 방위조약에 의거해서….”

    “닥쳐요! 장군.”

    버럭 소리친 우드워드가 어깨를 부풀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작은 키를 의식했는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날 갖고 놀지 말란 말이요!”

    “어쨌든 그런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린 최선을 다해야 될 것입니다.”

    장세윤이 열심히 말했으므로 우드워드의 어깨가 늘어졌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한국군 지휘부가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면 문제는 지금 고속도로를 달려 내려오는 북한군 820기갑군단을 함께 깨부수는 일이다.

    우드워드의 표정을 살핀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머리를 돌려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을 보았다. 둘의 시선이 2초쯤 마주쳤다가 떨어졌지만 제각기 굳은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다만 정용우의 콧구멍이 아주 조금 벌름거렸을 뿐이다. 이제 우드워드와 장세윤, 그리고 육참총장 조현호까지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의 브리핑을 듣고 있는 중이다.

    “지금 그놈들 어디에 있소?”

    박진상이 낮게 묻자 정용우가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이동일을 물은 것이다.

    “그놈들은 북진 중이오.”

    주위를 둘러본 정용우가 구석으로 발을 떼었으므로 둘은 벽에 나란히 붙어 섰다.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대대본부하고도 연락이 끊긴 상태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박진상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으면 정전 합의를 깬 셈이 되는 것이다. 소란스러운 상황실 안을 잠깐 둘러보던 박진상이 불쑥 물었다.

    “묘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안 드시오?”

    “뭐가 말입니까?”

    “46용사.”

    그러자 정용우가 눈을 치켜뜬 채 머리만 끄덕였다. 이제 이동일과 부하들의 방송 타이틀은 ‘46용사’가 되었다 그 46용사가 누구인가? 2010년 3월26일, 백령도 해상에서 북한군의 기습 공격에 격침된 천안함의 전사자들인 것이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정용우가 잇새로 말했다.

    “그, 천안함 영령들이 도와줄 겁니다.”

    7월25일 13시45분. 개전 2시간55분25초 경과.

    옹진 동북방 7㎞ 지점의 산기슭을 인민군 1개 부대가 행군하고 있다. 모두 등에 군장을 멨지만 걸음이 빠르고 말이 없다. 이곳은 자갈투성이의 황무지여서 잡초만 우거졌고 인가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총성도 뚝 그쳐 있어서 마치 딴 세상 같다. 앞쪽 대열을 바라보던 이동일이 손에 쥐고 있던 지도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동일은 인민군 소좌 계급장을 붙인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조금 작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127부대장의 군복이다. 그리고 옆을 따르는 윤미옥은 그대로 중위 차림이다. 묶인 손을 풀고 권총과 AK-47자동소총을 멨지만 탄창은 비었다. 지금 포로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때 이동일의 뒤로 무전병 엄 병장이 서둘러 따라 붙었다.

    “중대장님, 대대본부하고 통신이 안 됩니다.”

    엄 병장이 헐떡이며 말했다. 지금 10분이 넘도록 교신을 했지만 받지를 않는 것이다. 이동일이 눈을 치켜떴다가 내렸다.

    “알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돌려 뒤쪽의 조한철에게 말했다.

    “우리 행동은 방송으로 보도된다.”

    조한철이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떴을 때 이동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전을 받지 않는 것은 그대로 진행하라는 신호야. 공식적으로 승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지.”

    “어떻게 보도됩니까?”

    조한철이 묻자 이동일이 손바닥으로 가슴 주머니를 가볍게 쳤다.

    “내 휴대전화로.”

    그러고는 덧붙였다.

    “너희들의 일거수일투족도 다 보여주고 말하게 해줄 테다, 그러면 헛된 죽음은 안 되겠지.”

    그때 옆을 따르던 윤미옥이 물었다.

    “날 어떻게 할 겁니까?”

    윤미옥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넌 안내역 겸 위장용이야.”

    주위는 조용해져서 돌멩이가 군화에 밟히는 소리만 났다.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협조하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죽여주마.”

    윤미옥은 입을 다물었다. 일렬횡대로 늘어선 해병대원 46명은 지금 태탄 방향으로 전진하는 중이다. 산기슭을 돌았을 때 이동일은 앞쪽에 가로로 뻗은 국도를 보았다. 그때 앞장서 가던 황찬우 중위가 서둘러 다가왔다.

    “국도에 군용트럭이 다닙니다.”

    이동일도 오가는 차량 대열을 보았다. 모두 군용트럭이었고 장갑차도 보인다. 머리를 돌린 이동일이 윤미옥을 보았다.

    “중위, 검문소가 어디냐?”

    그러나 윤미옥의 입은 꾹 닫혀 있다.

    (5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그래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아현 옆으로 편집국장 백한섭이 다가서며 나섰다.

    “금방 철군시키면 안 되지. 남해하고 옹진반도는 한국령이 되어야 해.”

    목소리가 컸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백한섭이 송아현에게 말했다.

    “자, 송 기자, 준비되었어.”

    그러고는 송아현의 팔을 잡고 끌었다.

    “가자.”

    그 시간에 수색대대장 강규식은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버럭 소리쳤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남해시 서북방 1㎞ 지점이다. 대대본부는 작은 야산의 바위투성이 골짜기에 설치되었는데 주위에 병사 10여 명이 은폐하고 있다. 그때 이동일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무전기가 부서져서 이제야 4소대 무전기를 받아 씁니다.”

    “너, 지금 어디야?”

    “좌표 327.246 지점입니다.”

    “네가 가장 멀리 나갔다.”

    감탄했던 강규식이 금방 이맛살을 찌푸리고 땅바닥에 펼쳐놓은 지도를 보았다.

    “네 우측 1㎞ 지점에 4군단 22보병사단 1개 대대가 있어. 알고 있나?”

    “압니다.”

    “거기 가만있다가 몰사당한다.”

    그래놓고 잠시 지도를 내려다보던 강규식이 작전참모 박성무 대위를 보았다. 박성무도 마침 엉거주춤 지도를 굽어보는 중이다.

    “북상시켜야겠다.”

    무전기를 쥔 채 강규식이 말했을 때 박성무가 머리를 끄덕였다.

    “예, 좌측은 바다라 그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강규식이 어금니를 물었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오라고 할 수는 없다. 내려오나 올라가나 22사단 측에 발각당할 확률은 같다. 이윽고 강규식이 말했다.

    “조금 전에 대통령과 김정일 간 교전중지 합의를 했다는 거다.”

    이동일은 듣기만 했고 강규식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거기 있을 수는 없어. 북상해라.”

    “예, 대대장님.”

    “북상하면 우리하고 간격이 더 벌어지겠지만, 알아서 빠져나가.”

    강규식이 장교 생활하면서 ‘알아서’라는 명령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동일은 성실하게 대답한다.

    “예, 대대장님. 알아서 북진하겠습니다.”

    강규식은 심호흡을 했다. ‘북진’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친 것이다. 그러고는 문득 물었다.

    “2중대 현황은 어떠냐?”

    “예, 2소대는 실종, 전원 전사로 추정됩니다. 제 1, 3, 4소대와 중대본부까지 합한 현 병력은 46명, 나머지는 전사와 실종입니다.”

    기가 막힌 강규식은 숨을 멈췄고, 옆에서 듣던 박성무는 외면했다. 다시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부상자는 총을 쥐여주고 현장에 버렸습니다. 물론 버린 위치와 군번, 이름을 적어놓았습니다.”

    강규식은 어금니를 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2중대 출동 인원은 4개 소대와 중대본부 병력까지 합해 169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46명이 남았다. 4분의 1이 되어버린 것이다.

    7월25일 오후 12시30분. 개전 1시간40분25초 경과.

    소공동 국제신문 건물 안 방송센터에서 송아현이 휴대전화의 영상통신 장치를 켠다. 그러자 화면이 방송 화면으로 연결되면서 앞쪽 대형 화면이 펼쳐졌다. 방송 준비가 된 것이다. 주위에는 긴장한 표정의 편집국장 백한섭, 사회부장 홍동수, 방송 담당 국장과 진행요원 서너 명까지 모여 있지만 조용하다. 그때 PD가 말했다.

    “자, 준비됐습니다. 연락하세요.”

    송아현이 휴대전화의 버튼을 누른다. 이동일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다. 긴장한 방송실 안은 조용해서 버튼 누르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 시간에 시내로 나간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 김순기는 강남대로변에 서 있었다. 언제나 번잡한 강남대로의 교통량은 그대로다. 많아지지도 적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개전 1시간이 되었을 때 계엄군은 경부고속도로의 출입을 통제했다. 화물차와 군용차량을 제외하고 진입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국도나 다른 고속도로가 심각한 교통체증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앞쪽의 1차선을 군용트럭 10여 대가 속력을 내어 한남대교 방향으로 달려갔다. 트럭 안에는 완전무장을 한 병사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인도의 시민들이 손을 흔들었다. 군인 몇 명도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한다. 송아현 말로는 소공동에서 지나는 군인들한테 시민들이 만세를 불렀다는데 아직 이곳은 담담하다. 시내 상황을 취재 나온 터라 사진기자 양흥일이 옆에서 사진을 찍다가 김순기에게 묻는다.

    “인터뷰 더 하실랍니까?”

    “둘만 더.”

    그래놓고 김순기가 옆을 지나는 50대쯤의 여자를 불러 세웠다. 바쁘게 걷던 여자는 가로막히자 눈썹을 모은다.

    “저 한 말씀만 물을게요.”

    김순기가 서두르며 물었다.

    “이 기회에 국군이 북진해서 통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싫어요.”

    머리까지 흔든 여자가 쏘아붙이듯 말을 잇는다.

    “혼 좀 냈으니까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이 교전 중지를 시킨 건 잘한 일이에요.”

    그러더니 이제는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통일, 민족, 해쌓는데. 난 여동생이 미국으로 이민 간 지 30년 되었어요. 그동안 세 번 만났다고요. 그런데 같은 말 좀 쓴다고 꼭 민족이 합쳐 살아야 한다고 나대는 것들을 보면 다 위선자 같더라고요. 놔두세요, 놔둬.”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버렸으므로 김순기는 입맛을 다셨다.



    오산의 한미연합사 지휘 벙커로 날아가는 헬기 안이다. 맨 마지막 순서로 함께 탑승한 해병대 사령관 정용우 중장이 옆에 앉은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 중장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헬기에 장착된 통신장치를 쓰지 않고 직접 육성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도청을 경계하는 것 같다.

    “세 시간 후면 815기계화군단이 남해시로 진입할 거요. 그럼 7사단 1연대는 전멸이야. 서둘러야 돼.”

    소리치듯 정용우가 말하자 박진상이 눈을 치켜떴다. 그러더니 정용우의 귀에 입술을 붙인다.

    “10분 후에 105기갑사단이 개성공단으로 진입할 거요.”

    박진상이 소리쳐 말한 순간 정용우는 머리를 끄덕였다. E-3상륙기동 훈련을 기획했을 때부터 만들어놓은 작전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붕괴나 침공에 대비한 이른바 ‘작계’가 수십 개 만들어졌지만 군 내부의 반역 세력에 의해 노출된 것도 많다. 그래서 이번은 극비리에 지휘관 몇 명만이 모여 만들었다. 그중에 제3군사령관 이강진 대장, 참모장 배명술 중장, 그리고 105기갑사단장 차봉호 소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괜찮을까?”

    어깨를 늘어뜨린 정용우가 다시 소리쳤을 때 박진상은 쓴웃음만 지었다. 괜찮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한미연합사 통제를 받기에 105기갑사단은 지금 당장에 정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용우의 시선을 받은 박진상이 마침내 얼굴에 대고 소리쳤다.

    “기갑사단까지야, 그 다음부터는 물 흐르는 대로 놔두라고!”

    7월25일 오후 12시35분. 개전 1시간45분25초 경과.

    소공동 국제신문 건물의 방송실에서 송아현이 5분째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귀에 이어폰을 낀 송아현의 앞쪽 대형 화면은 비어 있다. 통화 연결이 되면 곧 화면에 이동일의 영상이 나타날 것이다. 생생한 북한땅 전장의 화면이다.

    “이봐, 네가 버튼을 눌러.”

    PD가 지시하자 곧 사내 하나가 다가와 대신 버튼을 누른다. 뒤쪽 구석에 앉은 편집국장 백한섭은 몰래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고 사회부장 홍동수는 보이지 않는다. 송아현이 물끄러미 빈 화면을 본다. 그때 문득 이동일의 정색한 얼굴이 떠올랐다. 장소는 신촌의 모텔방 안.

    “가만있어.”

    이동일이 바지의 호크를 풀었으므로 눕혀졌던 송아현이 허리를 비틀었다.

    “야, 뭐 하는 거야?”

    “바지 입고 잘래?”

    기어코 호크를 푼 이동일이 바지 끝을 두 손으로 쥐더니 잡아당겼다. 바지가 뱀 껍질처럼 후르르 벗겨지면서 팬티만 걸친 송아현의 두 다리가 침대 위로 떨어졌다.

    “안 놔?”

    와락 소리치자 금방 대답이 왔다.

    “놨어.”

    밤 12시 반. 이동일은 모처럼 1박2일 휴가를 나왔고 내일은 일요일이다. 둘은 신촌 주변에서 3차까지 마시고 모텔에 들어온 것이다. 이동일이 이불을 펴더니 송아현의 하반신을 덮고 나서 그제야 상의를 벗는다. 이동일은 사복 차림이다.

    “나, 씻고 올 테니까 넌 그냥 자.”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송아현에게 이동일이 말했다. 사귄지 넉 달쯤 되었고 오늘, 처음 둘이 모텔로 들어온 것이다.

    “토하려면 여기다 해.”

    하면서 휴지통을 침대 옆에다 놓은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내가 다 치울 테니까 침대에 쏟지는 말란 말이다.”

    술을 많이 마셨다. 소맥을 열 잔 정도, 거기에다 3차는 소주 네 병을 나눠 마셨다. 그러나 취하지 않았다.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을 때 송아현은 눈을 떴다. 술에 취한 척하고 어영부영 이동일을 이곳으로 몰아온 것이다. 냅두면 생전 여관 가자는 소리를 안 할 놈 같아서 날 모텔로 데려가 눕히라고 지시했다.

    “좀 쉬었다 합시다.”

    지친 PD가 말하는 바람에 송아현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이동일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저기 능선만 넘으면 옹진입니다.”

    척후로 보낸 하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을 때 이동일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12시37분. 소강상태가 된 지 약 15분이 지났다. 이제 22사단 우측 경계선 위쪽으로 빠져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앞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대대와의 간격은 더 벌어졌으니 대대장 말대로 알아서 헤쳐나가야만 한다. 이동일이 좌우에 엎드린 황찬우와 조한철을 보았다.

    “옹진을 지나 북상한다.”

    두 중위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시발, 6·25때 휴전선이 어떻게 그어진지 알지? 잠깐이면 우리가 몇 백만 평 먹고 들어간단 말이다.”

    철수는 나중 얘기다. 군인은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7월25일 오후 12시38분. 개전 1시간48분25초 경과.

    오산의 한미연합사령부 지휘 벙커 안에서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지금 막 도착한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 대장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대뜸 묻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문산의 105기갑사단이 개성공단으로 진입하고 있단 말요! 이놈들이 연합사 지시를 받지도 않아!”

    “작전권이 연합사로 넘어간 걸 믿지 않는 것 같은데.”

    정색한 장세윤이 함께 온 육참총장 조현호를 보았다.

    “조 총장이 직접 지시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우드워드 앞이어서 장세윤은 영어를 쓴다. 머리를 끄덕인 조현호가 우드워드를 향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장군, 놈들이 815기갑군단을 내려 보내기에 우리도 105기갑사단을 움직였던 겁니다. 개성공단을 돌파하면 평양으로 통하는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지거든요.”

    우드워드가 조현호의 긴 사설을 듣는 동안 두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이쪽은 연합사 사령관이지만 저쪽도 같은 계급인 대장이다. 한국 놈들은 직책보다 계급을 먼저 따지는 버릇이 있고 특히 조현호 같은 부류는 더 심하다. 어깨를 편 조현호가 말을 이었다.

    “105사단이 815 측면을 찌를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면 남해의 해병들이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개성공단에 진입한 명분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3000명의 안전을 확보해야 되거든요.”

    우드워드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개성공단은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되어 한국인뿐만 아니라 북한 노동자도 4만명이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진입을 중지시키시오. 이것은 남북 정상 간의 합의를 위반한 거요.”

    눈을 치켜뜬 우드워드가 조현호를 노려보았다. 뻔한 수작인 것이다.

    “장군, 어서 서두르시오.”

    사령부 벙커 안에 긴장감이 덮였다.

    7월25일 오후 12시42분. 개전 1시간52분25초 경과.

    개성공단 안을 질주하는 장갑차 안. 제105기갑사단장 차봉호 소장이 연대장들과 연결된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전속력으로! 목표 지점에 도착 즉시 연대별 포진하라!”

    전차의 굉음이 대지를 울리고 있다. 제105기갑사단은 한국 육군이 심혈을 기울여 창설한 지상군의 중심 전력이다. 2012년에 창설된 105기갑사단은 3개 전차연대와 1개 장갑차연대로 편성되었으며 각 1개의 미사일대대와 장갑보병대대, 장갑공병대대, 자주포대대가 배속된 거대한 기동군이다. 따라서 1개 연대는 3개의 전차대대를 포함해 1개의 장갑차대대, 각 1개씩의 미사일중대, 장갑보병, 장갑공병, 자주포중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1개 전차연대의 주력 MBT인 MIAI전차는 240대, 105기갑사단의 전차 대수는 730여 대가 된다.

    “사단장님, 사령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장갑차 뒤쪽에서 참모가 무전기를 내밀면서 말했다.

    “연합사 사령부입니다.”

    그러자 차봉호가 다시 앞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소리쳤다.

    “잘 안 들린다!”

    어깨를 부풀린 차봉호가 앞쪽을 향한 채 다시 외쳤다.

    “목표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안 들린다!”

    그 시간에 이동일은 맹렬하게 달리는 중이어서 숨결에 쇳소리가 뱉어졌다. 이동일의 앞뒤에도 해병들이 달리고 있다. 이윽고 완만하게 비탈진 능선 윗부분에 닿은 이동일이 몸을 던지듯이 엎드린다. 그 순간 잡초 사이로 전방의 도로가 보였다. 도로 앞쪽은 드문드문 주택이 세워져 있었는데 바로 옹진시인 것이다. 먼저 와 엎드려 있던 황찬우 중위가 몸을 구부리고 옆으로 다가왔다. 황찬우의 호흡도 아직 가쁘다.

    “중대장님, 건물은 모두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소개시킨 모양인데요.”

    “당연히 그랬겠지.”

    호흡을 고른 이동일이 망원경으로 전방을 보았다. 말 그대로 개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도로 주변에는 저격병을 잠복시켜놓았을 거다.”

    오른쪽으로 망원경을 돌린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서쪽 야산을 타고 옹진을 우회해 전진한다.”

    오른쪽은 나무와 풀이 제법 무성한 낮은 야산이다. 몸을 일으킨 이동일이 지금 막 도착한 조한철 중위를 돌아보았다. 조한철이 후위를 이끌고 있다.

    “북진하는 거야. 자, 출발!”

    그러자 선발대 역할인 황찬우가 낮게 소리쳐 척후를 보내더니 곧 출발했다.

    7월25일 오후 12시45분. 개전 1시간55분25초 경과.

    개성공단의 관리청장 집무실 안. 관리청장 오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섰다. 그러자 앞쪽의 건물 뒤쪽 도로를 통과하는 전차 대열이 보인다. 진동으로 유리창이 흔들리고 있다.

    “공단 북쪽으로 갑니다.”

    옆에 선 행정국장 서기수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뒤쪽의 진성희는 얼굴이 굳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서기수가 말을 잇는다.

    “통일부에서는 동요하지 말고 대기하랍니다.”

    개전 두 시간이 되어가면서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진다. 공단 외곽경비를 맡고 있던 북한군 제4군단 소속의 43사단 병력이 전쟁 발발 직후에 공단에 진입했다가 우왕좌왕하는 것 같더니 30분쯤 전에 철수했다. 그러자 이제는 한국군의 전차 수백 대가 공단 안으로 진입해온 것이다. 공단 안에는 한국인 3000여 명, 북한 근로자 4만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공단에 파견된 보위부 소속의 경비대는 경무장 병력이다. 오대현이 머리를 돌려 서기수를 보았다.

    “경비대가 보이지 않는데, 철수했나?”

    “글쎄요.”

    서기수의 시선이 진성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성희의 직책은 관리국장으로 북한 측 근로자와 한국 측과의 교섭 담당이다. 개성공단 안의 북한인을 총괄하는 직책인 것이다. 그때 진성희가 말했다.

    “공단 안에 한국군 탱크가 질주한 것은 공단법 위반입니다. 한국군도 즉각 철수해야 합니다.”

    진성희의 얼굴은 굳어 있다. 치켜뜬 눈빛이 강했고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 미인이다. 인적 사항에는 36세, 김일성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기혼이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북한 권력층 실세의 딸이라는 소문이다. 진성희의 시선을 받은 오대현이 머리를 끄덕였다. 공단에 진입했던 북한군 43사단 병력도 철수했으니 한국군도 물러가야 형평이 맞는다.

    “그래야지요. 통일부에 연락하겠소.”

    그러나 이번 경우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행해졌던 경우와 정반대다. 아니.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이다. 한국군이 밀고 올라오고 있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한국군이 즉각 치고 올라가는 바람에 북한군은 지리멸렬 상태가 되었다. 두 시간 동안 개성공단 안에서 사태를 주시해온 오대현은 물론이고 북한 측 책임자 진성희의 생각도 같다. 서해상에서 북한군은 거의 궤멸 상태가 되었고 지금 옹진군은 한국군이 점령한 상태인 것이다. 그때 오대현이 말을 이었다.

    “이제 한미연합사가 지휘권을 인계받았다니 그쪽에서 명령을 내리겠군.”

    오대현이 다시 머리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전차 대열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7월25일 오후 12시50분. 개전 2시간0분25초 경과. 평양 외곽 제55호위대 벙커 안.

    벙커 안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한국군의 반격은 치밀했다. 조금 전, 한국군 수뇌부가 한미연합사 사령부로 옮겨간 것까지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집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한미연합사와 북한군의 전쟁이다. 결국에는 중국이 지원해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반면에 북한군은 먼저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린 총참모장 김형기가 체포된 시점부터 군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자연히 수세적 상황이 된 것이다. 구석자리에 앉은 심철 상장이 어금니를 물었다. 그때 앞쪽의 철문이 열리더니 제2군단사령관 김경식 대장이 들어섰다. 김경식은 황해북도 평산의 군단 사령부에서 달려온 것이다.

    “도대체 이기 뭐야?”

    버럭 소리친 김경식이 주위를 둘러보았으므로 벙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수십 명의 장군이 모두 김경식을 주시하고 있다. 벙커 중앙에 선 김경식의 시선이 강창남에게서 멈췄다. 강창남은 김정일의 대리인이다.

    “여기 오는 중에 들었는데, 남조선 제105전차사단이 개성공단 북방으로 진출한다는데, 사실이오?”

    강창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직 벙커 안은 조용하다. 기계음만 울리고 있다. 그때 강창남이 말했다.

    “왜 나한테 묻소? 이곳 지휘관은 무력부장 동지야.”

    호위사령관 강창남은 김경식보다 나이도 위일 뿐만 아니라 서열도 높다. 눈을 치켜뜬 강창남이 말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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