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MB-박근혜 ‘화해’의 속내

‘여권 결집’ 대가는 2012년 경선 중립?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10-28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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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음공주’의 표정이 환하다.
    •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 회동한 데 이어 친이계 의원들과 밥을 먹고, 이 대통령이 참석한 공식석상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건배를 들었다.
    • 얼음공주의 ‘천적’은 친박계와 맥주잔을 부딪치며 “다 잊자, 다 씻자”를 복창했다.
    • 도대체 MB-박근혜 회동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 깜찍한 평화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MB-박근혜 ‘화해’의 속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8·21 회동’. 지난해 9월 이후 11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광폭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계파를 초월해 그룹별로 당 소속 의원들을 만나는 ‘식사 정치’에 나섰고, 미니홈피와 트위터 등을 이용해 국민과의 소통도 강화했다. 또 국정감사를 위해 한나라당 취약지역인 충청과 호남을 다녀오기도 했다.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선 좀 썰렁한 유머를 구사하면서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끈다.

    그러자 당장 지지율이 올라갔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10월 첫 주에 실시한 주간 정례 여론조사 결과, 박 전 대표는 여야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전주보다 1.5%p 상승한 30.0%를 기록해 지난 4월말 이후 무려 23주 만에 30%대로 다시 진입했다. 6월말 세종시 수정안 국회 부결 직전에 최저점(22.7%)을 찍은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그동안 박 전 대표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나라당 지지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최고점은 지난해 11월 넷째 주에 기록됐다. 무려 60.2%(이하 리얼미터 조사)를 찍었다. 그러나 8월 셋째 주 조사에서는 34.8%로 반 토막이 났다. 박 전 대표에게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대선 본선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은 만큼 비상상황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층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 지지율이 급반등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태호 해명’도 주효한 듯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8월21일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 회동한 직후부터. 이후 친이계 의원들과의 오찬(8월23일)→대구 당정회의 참석(9월10일)→당 소속 여성의원들과의 오찬(9월14일)→청와대 만찬 참석(10월1일) 등을 거치면서 상승세가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화해하고 국정운영에 협력할 자세가 돼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 국민, 특히 보수층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친이계의 국정협력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자신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일일이 참견하면 오히려 부담이 되므로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란 생각이었다. 세종시 문제나 미디어법 처리 등에서 목소리를 낸 것은 국민 생활에 워낙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각종 선거 때 당 지도부의 지원유세 요청도 모두 뿌리쳤다.

    정치행위를 자제해온 이유 중에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쌓인 불신도 있다. 박 전 대표를 상징하는 ‘한마디 정치’도 대부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까지 화해하지 못하리라는 견해가 많았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차기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도 이 대통령의 지원을 받기보다는 투쟁해서 쟁취하는 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8·21 청와대 회동 이후 두 사람 사이에 화해 기류가 급속히 조성됐다. 친박계 한 의원은 “이 대통령과 회동한 이후 박 전 대표가 확실히 달라졌다. 활동반경을 넓힌 것도 그렇지만,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뭔가 깊숙한 얘기가 오갔던 것 같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8·21 회동 이후 40일 만에 이 대통령을 다시 만났다. 이 대통령이 10월1일 한나라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한 자리에서다. 이날 박 전 대표의 자리는 이 대통령 바로 옆에 마련됐다. 이 대통령이 예우에 각별한 신경을 썼음을 보여준다. 박 전 대표는 사회자가 예정에 없던 건배사를 부탁하자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18대 국회의 성공을 위하여 건배하겠습니다. 이 뜻을 담아 건배!”라고 했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도 참석한 공식석상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기원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전환점은 8·21 비공개 회동이다. 이 회동에서 오간 대화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 대통령이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추측이 많다. 두 사람이 회동한 것은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박근혜 대항마’로 부상할 때였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김 전 지사 지명이 박 전 대표를 의식한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의 소통 확대 차원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국회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친박계의 협조를 당부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대선후보 경선 중립 의지를 표명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내용?

    MB-박근혜 ‘화해’의 속내

    정진석 정무수석(왼쪽)과 임태희 대통령실장.

    8·21 회동을 성사시킨 주역은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MB-박근혜 회동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이 대통령이 전날 오후에 박 전 대표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간접 전달했고, 다음날 곧바로 회동이 성사됐다는 것.

    그러나 실제로는 한 달 이상의 회동 준비 기간이 있었고, 정 수석이 수시로 박 전 대표와 직접 접촉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 회동을 마친 뒤 승용차에 오르다 말고 뒤쪽을 바라보며 배웅 나온 정 수석에게 “정무수석님, 이번에 애 많이 쓰셨어요”라고 했다. 그동안 정 수석의 숨은 역할을 읽게 하는 대목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계자는 “2007년 대선 이후 모두 다섯 차례 회동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뒷말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회동의 의미가 퇴색했다. 이는 회동 추진과정에 여러 사람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박 전 대표가 신뢰하는 정 수석이 박 전 대표 측 대리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접촉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 수석에게 8·21 회동의 진실을 물어보기 위해 인터뷰를 신청했지만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무수석실 관계자는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함께 당분간은 일절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몇 차례 통화를 시도한 끝에 10월12일 오후 늦게 정 수석과 연결이 됐다. 정 수석도 “인터뷰라면 안 하겠다”고 했다. 공식 인터뷰가 아니라는 조건으로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정 수석은 “7월에 취임하자마자 임 실장과 함께 대통령께 가장 먼저 건의한 것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여권 전체의 분위기를 추스르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치러진 각종 선거나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표출된 당원들의 요구사항 가운데 최우선순위가 당내 갈등해소와 화합이었기에 그런 부분들을 이 대통령에게 건의하면서 박 전 대표와의 회동 필요성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정 수석은 “결과적으로 회동이 성공적으로 끝나 당이 확연하게 안정을 되찾게 됐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자신이 박 전 대표와 직접 접촉했는지에 대해선 “저는 조그만 심부름만 했을 뿐”이라고 몸을 낮추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가장 관심거리인 비공개 회동의 대화 내용을 물었다. 정 수석은 “회동 내용이야 확인해줄 수 없는 것 아니냐. (누구라도) 추측할 수는 있는 것”이라고 했다. 뭔가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정 수석은 이내 “(배석자 없이) 두 분만 따로 만난 자리였기 때문에 저 자신도 회동 내용을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고 말을 돌렸다.

    서청원 사면과 경선 중립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처음 언론에 밝힌 인물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다. 안 대표는 7월14일 전당대회 경선을 통해 대표로 선출된 직후인 7월16일 저녁 박 전 대표를 신임 인사차 만난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의 회동을 제안한 뒤 다음날 아침에는 이 대통령과의 조찬 자리에서도 같은 건의를 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면 만나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고, 이 대통령도 “언제든지 좋다”고 화답했다. 그 무렵엔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해 여권 전체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던 만큼 두 사람이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또 과정이야 어떻든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상황이라 회동의 걸림돌도 치워졌다.

    MB-박근혜 ‘화해’의 속내

    박근혜 전 대표가 6월29일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수석은 “사실 임 실장과 정무라인 사이에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안 대표가 제안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며 “대통령과도 그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왔다”고 밝혔다.

    정 수석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 등 야당 의원 및 전 정부 출신 인사들을 8·15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키는 데도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서 전 대표의 경우 정치인 사면 배제 원칙에 어긋난 데다 현 정부 임기 내에 발생한 경우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대다수 참모도 ‘사면 불가’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 수석은 박 전 대표와 화합하기 위해선 서 전 대표 사면이 절대 필요하다는 점을 이 대통령에게 강력히 건의했다는 후문이다. 정 수석은 “8·15 사면·복권엔 계파 화합 차원, 그리고 야당을 포용하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께서 용단을 내려 당내에서 거론된 분들이 폭넓게 포함됐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두 사람의 회동에서 오간 대화의 핵심이 ‘2012년 대선후보 경선 공정관리’였을 것으로 본다. 정 수석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립을 지킬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제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면서도 “교과서적으로 볼 수 있는 문제 아니냐. (대통령이)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거고, 당연히 그렇게 하실 것”이라 했다.

    박 전 대표는 정 수석에게 각별한 친근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 수석의 부친인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강원·충남도지사와 내무부 차관, 여당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박 전 대표는 3선인 정 수석과 정치적인 인연은 없지만 국회 본회의장 좌석이 서로 가까이 있어 자주 대화를 나누곤 했다. 정치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했는데, 그러면서 박 전 대표가 정 수석을 신뢰하게 됐다는 전언이다.

    2008년 1월 국민중심당 소속 의원이던 정 수석이 한나라당에 입당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중국 특사단 단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박 전 대표는 이례적으로 현지에서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박 전 대표는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정진석 의원이 한나라당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큰 인재를 얻었다. 정 의원께서 나라와 당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기대한다. 한나라당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자 정 수석은 따로 박 전 대표를 찾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개헌, 선거구제 개편이 걸림돌

    물론 이 같은 개인적인 친근감이 박 전 대표를 움직인 전부는 아니다. 박 전 대표도 나름대로 이 대통령과의 화해와 당내 소통 강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처분된 이후 박 전 대표의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세종시 문제는 박 전 대표에게 득과 실을 동시에 안겼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견고해졌지만, 너무 고집스러운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각종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렸지만 아성이 흔들린다는 소리도 나왔다. 6·2 지방선거에서는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한나라당 군수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게 패하는 수모도 당했다.

    박 전 대표로선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봤을 법하다. 이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에 응한 것도 이런 차원으로 봐야 한다. 친박계 한 의원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대통령과의 화해, 친이계와의 소통을 건의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문제라면 저에게 맡겨주세요’였다. 하지만 최근엔 같은 건의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도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박 전 대표와의 화해를 통한 여권 결집이 절실한 처지다. 친이계 핵심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대표의 ‘천적’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최근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기회가 되면 생각을 좀 맞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9월28일에는 친박계 의원모임인 ‘여의포럼’ 회원 10명과 여의도에서 오찬모임을 가졌다. 이 장관은 2008년 18대 총선 공천 때 친박계 의원들을 ‘학살(?)’한 주역으로 인식된다. 그는 이날 “지난번에 섭섭한 점이 있었으면 오늘 맥주 한 잔 마시고 다 잊자, 다 씻어버리자”고 했다. 결국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모두의 필요에 의해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두 사람의 오월동주(吳越同舟)가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때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가에선 양대 계파가 결코 화합적 결합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많다. 차기 대선후보 경쟁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충돌을 다시 야기할 수 있는 뇌관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개헌론과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이다. 두 사안에 대해 친이계와 친박계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한집안 두 생각

    이재오 장관은 10월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올해가 개헌의 적기”라며 개헌논의의 군불을 다시 지폈다. 그의 측근인 이군현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0월12일 민주당에 4대강 검증특위와 개헌특위 구성 ‘빅딜’을 제안해 논란을 촉발했다. 10월14일엔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여권 핵심 관계자를 불러 개헌 추진을 독려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 김희정 대변인이 “이 대통령은 지난해와 올해 8·15 경축사에서 평소 생각하던 정치선진화에 대한 문제인식에서 (개헌 필요성을) 말했었다. 그러나 개헌의 방향성에 대해 어떠한 공적, 사적 자리에서도 말한 적 없다”며 서둘러 진화를 시도했지만 잔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개헌론자다. 최근에는 개헌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꾸준히 개헌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그러나 개헌의 방향에 대한 생각엔 이 대통령과 큰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표는 평소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실험이 끝났으니, 이제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반면 현재 친이계가 추진하는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목적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 즉 분권형 대통령제다. 대통령의 임기 문제보다는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친이계의 분권형 대통령제 구상이 ‘박근혜 고립화’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갖고 있다. 지금 개헌논의가 시작되면 친이계가 차기 대권구도의 주도권을 쥘 뿐만 아니라,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권력분산으로 힘을 뺄 수 있다는 속셈이란 게 친박계의 시각. 따라서 친이계가 무리하게 개헌정국을 조성할 경우 박 전 대표가 다시 반발해 친이계와 친박계의 재격돌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도 충돌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정치발전과 선진화를 이룰 수 있도록 현 정부에서 선거제도를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 제도를 2명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영남에서 호남 후보가, 호남에서 영남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선거구제 개편에 부정적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친박계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학자들에게 들어보니, 대통령책임제 아래서는 소선거구제가 적합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차기 대권가도에서 정국의 주요 이슈로 등장할 수도 있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둘러싼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상반된 시각이 다시 갈등을 야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진석 수석은 지금의 화합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여권이 앞으로도 계속 화합해야 한다는 것이 당원과 국민의 준엄한 명령 아니냐”고 했다. 정 수석은 국회정보위원장 자리를 내놓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배지를 떼면서까지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맡았다. 이 때문에 그에게 정무수석 이상의 임무가 부여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바로 ‘포스트 MB’ 구도를 짜는 일이다. 그는 평소 사석에서 “다음은 박 전 대표가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순리”라는 말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재오 특임장관 등 ‘친이계의 대안들’에 에워싸인 박 전 대표가 포위망을 뚫고 대선후보로 등극할지, 이 과정에서 정 수석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을 모은다. 정 수석은 8·21 청와대 회동 이후에는 박 전 대표와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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