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여 년 전,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은 음식을 요리하고 보관하는 데 사용되는 후추 등 향신료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21세기, 이제 중국과 미국, 일본은 첨단무기 생산은 물론 현대 경제의 각종 필수제품에 극소량 사용되는 희소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9월말 악화일로로 치닫던 센카쿠(尖閣) 열도 갈등에서 일본을 순식간에 무릎 꿇린 것은 다름아닌 중국의 희귀광물 통관수속 중단 조치였다.
- 주기율표에 잠들어 있던 원소들이 국제정치의 주요 변수로 작동하는 글로벌 시대의 이면을 해부한 해외 전문가의 글을 소개한다. 영문 계간지 ‘글로벌 아시아’ 가을호에 게재된 이 글은, 한국의 자원 수입 리스크를 분석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이어지는 기사)와 함께 이 문제에 관해 종합적인 시각을 제공해줄 것이다. <편집자>
세계 각국이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는 주요 희소금속. 가운데 검은 금속부터 시계 방향으로 프라세오디뮴, 세륨, 란탄, 네오디뮴, 사마륨, 가돌리늄이다.
중국과 일본, 미국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존재조차 익숙지 않은, 그러나 그 전략적 중요성이 급증하고 있는 희귀원소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세 나라의 경합은 최근 들어서야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그간 석유나 천연가스, 석탄 같은 ‘유명한’천연자원에 가려져 있던 희소금속 쟁탈전은, 공업기술의 첨단화와 친환경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 희귀자원의 공급량 예측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자국의 주요 경제·산업 분야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요 산업국가들은 전략적인 중요성을 갖는 희소금속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중국, 일본, 미국이 그동안 벌여왔던 천연자원 획득 경쟁이 희소금속 확보 경쟁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희소금속은 어디에나 매장되어 있으므로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토양의 백만 분의 수십 수준에 불과할 만큼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희귀광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희귀광물 채굴을 위한 탐사와 추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정제 과정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는 것. 이 비용을 상쇄할 만큼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양을 채굴해내는 게 관건이다. 전세계를 통틀어 희귀광물 채굴 광산의 대부분은 중국에 분포되어 있고, 그중 최대 광산은 네이멍구 자치구의 바오터우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국이 사실상 세계 희귀광물 공급을 독점한 상태다.
희소금속은 일반재에서 특수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제품군에서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특히 전자제품이나 이른바 친환경 제품에서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네오디뮴은 헤드폰의, 리튬과 백금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및 연료전지에 꼭 필요하다. 디스프로슘은 풍력터빈이나 자동차 엔진에 적합한, 가벼우면서도 인장강도가 높은 철강재의 생산에 사용된다. 또한 많은 종류의 희소금속이 미국산 M1A1 에이브럼스 전차나 이지스 SPY-1 레이더 등의 미사일 유도시스템, 레이저 시스템 등 각종 군사장비에 사용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들 희소금속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다만 그 양이 극히 소량이어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이 때문에 희소금속의 중요성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를 둘러싼 경쟁 또한 간과되어왔던 것이다.
현재 전세계 희소금속 공급량의 90% 이상은 중국에서 나온다. 1992년 바오터우의 희소금속연구소를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소금속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향후 희소금속의 중요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미리 내다본 언급이었다. 반면 일본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중국, 희소금속의 중동
중국의 산업화가 가속화하면서 희소금속의 중국 내 소비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첨단기술과 친환경산업으로의 전환이 진행됨에 따라 중국의 왕성한 희소금속 수요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나리오대로라면 중국에서 채굴되는 희소금속 대부분은 수출이 아닌 국내 수요로 소진될 것이다. 호주의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전세계 희소금속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동시에 수요량의 6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희소금속의 전략적·경제적 가치가 급등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중국이 그 수출을 제한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안 그래도 공급이 부족한 희소금속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8년 10월 중국 정부는 자국 내 희소금속 관련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이 관련 거래를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9년 9월 중국은 바오터우 광산에서 채굴되는 희소금속의 수출을 통제하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했다. 당시 자오슈앙롄 네이멍구 자치구 부성장은 규제책의 도입 목적이 “희소금속 생산을 관리하고,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수출을 줄여 더 많은 국내외 투자자들을 자치구 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희소금속 수출이 정부의 밀착규제를 받게 됨에 따라 외국기업들은 이제 중국 내에서 직접 희소금속 조사 및 개발 사업을 진행해야 할 판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간접적으로나마 희소금속 산업 전반에 걸쳐 독점력을 더욱 높일 수 있게 됐다.
희소금속 공급량을 더욱 제한하기 위해 2010년 3월 중국 국토자원부는 2011년 6월30일까지 텅스텐과 안티몬의 신규 채굴허가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 12월 중국 산업정보기술부 관계자는 자원보호 강화를 위해 희소금속 비축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중국의 강도 높은 규제 도입으로 인해 중국 내 채굴기업들은 국제 희소금속 가격이나 공급량이 결정되는 데 있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또 다른 희소금속 주소비국인 미국과 일본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이 뒤늦게나마 희소금속 공급 차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이유다.
따라잡기 나선 미국
한때 미국은 희소금속 채굴의 일인자였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한 중국의 환경안전 기준 덕분에 중국 내 희소금속 채굴 비용이 낮아지면서 미국 회사들의 경쟁력은 크게 낮아졌다. 대표적인 채굴 기업인 몰리코프사(社)는 8년 전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던 희소금속 광산의 채굴을 중단했다가, 최근 들어서야 중국 회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5억달러 규모의 기업상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광산 개발을 재개하겠다고 나섰다. 몰리코프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희소금속에 관한 기술 제품은 거의 100% 중국산(産)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미국 정부는 희소금속이 갖는 전략적·경제적 가치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희소금속 채굴 회사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2008년 12월 미 국방부는 특수광물, 즉 희소금속은 “필수적 물질은 아니다”라며 “장기적인 국내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국방부가 행동을 취해야 할 만큼 중대한 국가안보 요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사실상 모든 미국 군사장비에 희소금속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희소금속이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렇듯 극소량이 사용되는 광물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하자면 플라스틱이나 고무도 관리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이는 희소금속이 다른 자원과 전혀 다른 상태라는 사실, 즉 현재 미군이 소비하는 희소금속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를 대체할 만한 인공물질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었다.
불과 1년 남짓 만에 미국 정부는 상황이 변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희소금속에 대한 중국의 독점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잠재적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결론 내린 듯하다. 지난 3월16일 미 하원 과학기술분과위원회는 ‘희소금속과 21세기 산업’이라는 주제의 청문회를 개최해 자국 내 관련 전문가들의 증언을 청취한 바 있다. 희소금속이 다양한 무기체계에 폭넓게 쓰이고 있으므로 중국의 희소금속 독점은 향후 미국의 안보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골자였다.
비슷한 시기 마이크 코프만 하원의원은 ‘리스타트 법(Restart Act)’이라고 이름 붙인 법률안을 상정했다. 미국 희소금속 산업을 활성화하고 중요 광물의 해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략적인 광물을 비축하자는 내용이었다. 4월14일에는 미 회계감사원(GAO)이 미국산 무기체계의 희소금속 사용현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대규모 채굴이나 정제에 필요한 전문인력이 부족한 미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국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 에너지부 데이비드 샌덜로 차관보는 3월 열린 희소금속 관련 회의에서 희소금속 수요 유지를 위한 전략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5월6일 미 에너지부는 이를 공식화하면서 갈륨, 리튬, 코발트, 인듐, 텔루륨, 백금 등의 희소금속을 주요 대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이 중국산 희소금속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국내 공급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음은 이제 명확해졌다.
일본, 해외로 눈을 돌리다
중국의 희소금속 독점이 야기한 경쟁을 일본이라고 손놓고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월24일 러시아 카자톰프롬사(社)와 일본 스미토모 상사는 합작 벤처 설립계약을 체결하고 카자흐스탄 내 희소금속의 채굴과 가공을 추진키로 했다. 세계 최대의 희소금속 수입국인 일본이 천연광물의 공급체계 다분화를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이 신생 벤처기업은 채굴부터 정제까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직통합적 형태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를 통해 희소금속의 수요·공급상의 급변이나 중국의 가공시설 독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뿐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일본계 기업이 대부분을 투자한 희소금속 공장이 신축되어 연간 800t 규모의 디디뮴과 디스프로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이 공장은 지난 5월 가동에 들어갔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 개발의 선두주자다.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급증함에 따라 이들 자동차의 인기도 더해갈 것이다. 기존의 니켈수소 전지는 용량의 한계 때문에 전기자동차의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없었지만, 용량이 훨씬 큰 리튬 전지는 이야기가 다르다. 차세대 자동차 산업에 희소금속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동차 산업이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리튬 공급은 일본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알려져 있는 리튬 매장량의 90% 이상은 남미의 볼리비아와 칠레에 집중되어 있다. 이렇듯 매장량은 한정돼 있고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는 반면,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판매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리튬 공급부족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를 타개하고자 2010년 4월 일본은 볼리비아에 막대한 재정지원 보따리를 재빨리 풀어놓았다. 볼리비아 살라드우유니 광산의 리튬 우선 채굴권을 획득하기 위한 조치였다.
해외 확보 외에 일본은 자신들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라고 주장하는 해저에서 희소금속을 채굴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진행 중인 미나미토리시마와 오키노토리시마 환초(環礁) 지역의 기반시설 개발이 대표적이다. 각각 일본의 최동단과 최남단에 위치한 이들 섬에 대해 지난 1월14일 일본 정부는 방파제 건설 예산을 승인한 바 있다. 우선은 자신들의 EEZ 주장에 쐐기를 박고, 더불어 해저 희소금속 탐사의 기지 역할을 할 항만을 건설하겠다는 취지다. 일본의 EEZ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이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신(新) 향신료 전쟁
음식을 준비하고 보존하는 데 쓰이는 향신료가 국가안보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면 농담으로 치부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400여 년 전 유럽의 열강은 이를 두고 적잖은 마찰을 빚었다. 급증하는 희귀 향신료 원료 확보의 주도권을 놓고 각축전을 벌인 것이다.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 희소금속의 수요를 둘러싼 갈등은 분명 비슷한 맥락을 담고 있다. 다양한 제품에 극소량 사용되는 금속의 수요와 공급이 주요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 미국, 일본은 이제 희소금속의 전략적·경제적 가치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사용량이 미미하다 해도 대체가 불가능한 특성 때문에 민간경제와 군사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정책결정자들은 천연자원 확보 경쟁이 더 이상 석유, 가스, 석탄 등 전통적인 에너지자원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주기율표 속에 잠들어 있는, 일견 의미 없어 보이는 이들 희소금속 때문에 새로운 무역전쟁이나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 일본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합은 그러한 조짐을 보여주는 실례다.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http://globalasia.or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