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양식기 브랜드, 독일의 더블유엠에프(WMF). 쌍둥이칼로 유명한 헹켈스(Zwilling J.A. Henckels).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적 유통업체 이케아(IKEA). 백악관에 식기를 공급하는 미국 전통의 명문 도자기 및 양식기 브랜드 레녹스(LENOX). 그리고 실리트(Silit)와 아우어한(AUERHAHN), 프랑스 쿠존(COUZON)과 이탈리아 삼보넷(sambonet).
- 이들 브랜드에 양식기를 공급하는 회사가 바로 유진 크레베스다. 유진 크레베스는 세계 최고 양식기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가방과 벨트 등 명품 제품에 들어가는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틀을 마련했다.
10월1일, 린쭝 수출자유구역에 들어서자 베트남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길게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인 운전기사는 대만 업체가 운영하는 섬유공장에만 2만명 이상의 베트남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끝없이 이어진 노동자의 행렬에서 중국에 이어 베트남이 새롭게 세계의 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얘기가 실감났다.
유진 크레베스는 린쭝 수출자유구역에 모두 세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식기를 제조하는 1공장과 2공장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고, 양식기 가운데서도 수요가 가장 많은 나이프 생산라인과 명품 브랜드 액세서리를 제조하는 3공장은 1, 2공장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3공장은 2008년에 인수했다.
양식기 종주국에서 인정한 품질
3공장의 위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유진 크레베스의 사세는 날로 확장하고 있다. 양식기 분야 세계 명품 브랜드로부터 인정받은 데 이어 명품 브랜드에 들어가는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상징이 바로 3공장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 양식기는 다소 생소할지 모른다. 서양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을 때나 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 그렇지만 서양인은 최소 하루 세 번 이상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 바로 양식기다. 이 때문에 양식기의 주 수요처는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음식 문화권이다. 양식기의 종주국 독일은 가장 큰 양식기 시장이다. 인구도 많고, 무엇보다 좋은 양식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독일의 고급 양식기 브랜드는 대부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더블유엠에프(WMF)는 15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쌍둥이칼로 친숙한 헹켈스는 28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서 깊은 회사다. 두 회사 모두 독일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쌓은 이들 회사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하자, 자신들이 직접 생산한 것과 같은 수준의 최고급 제품을 생산해줄 회사를 찾았고, 유진 크레베스를 파트너로 택했다. 유진 크레베스가 생산하는 양식기는 곧 세계 최고라는 말과 동의어인 셈이다.
유진 크레베스는 연간 더블유엠에프에 1000만달러, 이케아에 800만달러, 헹켈스에 500만달러, 미국 레녹스에 150만달러어치의 양식기를 공급하고 있다. 단순히 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인 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물량은 디자인과 제품을 자체 개발해 공급하는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자개발생산) 방식이다. 유진 크레베스의 제품 개발 능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이다.
첨단과학의 집합체, 양식기
유진 크레베스가 생산하는 양식기 제품들.
실제 제작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쇼룸이 위치한 1공장을 나와 2공장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금형실. 특수강에 만들고자 하는 디자인의 본을 뜨는 과정이었다. 디자이너가 컴퓨터를 이용해 디자인을 마치면 프로그램에 따라 0.00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CNC 밀링머신이 깎아낸다. 금형제작 과정에서 첨단기술과 장인정신이 결합된 유진 크레베스의 기술력이 집대성된다. 그동안 제작한 금형을 모아놓은 금형 창고는 마치 책을 종류별로 분류해놓은 도서관을 연상시켰다.
수백 종의 금형을 보유하고 있고, 새로운 금형을 바로 제작해낼 수 있는 유진 크레베스는 고객이 어떤 제품을 주문해도 빠른 시간 내에 생산해낼 수 있다.
밀링머신에서 금형이 제작돼 나오면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을 한다. 얼마나 매끄러운 표면을 유지하느냐가 제품의 완성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베트남 여성 노동자들이 각기 하나씩 갓 제작돼 나온 금형을 앞에 놓고 아이스크림 막대와 같이 생긴 도구로 표면을 밀고 또 밀었다. 모든 금형은 이처럼 최소한 1시간 이상 표면을 다듬는 작업을 한다. 그래야만 세계 최고 수준의 흠결 없는 매끄러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금형 표면작업이 끝나면 이제 절삭기에 금형을 설치하고, 네모반듯하게 잘라놓은 판을 절삭기에 넣어 숟가락과 포크 모양으로 잘라낸다. 처음에는 손잡이 부분만 완성된 가제품이 나온다. 이 가제품을 다시 기계에 넣어 숟가락 모양과 포크 모양으로 절삭한다. 그 다음 압력을 가해 안이 오목하게 파인 숟가락 고유 모양으로 완성한다. 네 개의 살로 이뤄진 포크는 앞뒤를 먼저 잘라내 좌우 살을 만든 뒤 다시 가운데를 잘라내 포크 모양을 완성한다. 이 과정은 모두 사람 손으로 이뤄진다. 절삭기의 정확한 위치에 숟가락과 포크 가제품을 집어넣어 균일한 제품을 뽑아내는 숙련도가 놀라웠다.
“절삭기마다 적절한 위치 기준이 표시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품을 하나씩 집어넣어 프레스로 누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제품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의 숙련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계 최고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기술력과 함께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대기 사장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의 능력을 자랑했다.
치보 납품, 그리고 화재
양식기 제조 공정마다 불량품을 골라내는 검수요원이 배치돼 있다.
첫 대량 공급은 성공적이었다. 제품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유럽 전역에 유통망을 확보한 치보(Tchibo)로부터 주문을 따냈다. 유럽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치보에 제품을 납품한다는 것은 곧 품질의 우수성을 공인받은 것과 다름없다. 90일 만에 300만개를 치보에 납품하면서 유진 크레베스는 탄탄대로의 길에 진입한다. 그러나 공장이 본격 가동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 화재라는 시련이 닥쳤다.
“당시 공장에는 변변한 소방시설이 없었어요. 눈앞이 캄캄한 심정으로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베트남 직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물동이를 날라 불을 끄고 있더라고요. 그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화재 이후 ‘더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더 좋은 품질, 고급 제품 개발에 매진한 결과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장 화재는 오히려 노사가 일치단결해 더 좋은 제품 개발에 매달리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魂이 담긴 제조과정
유진 크레베스는 명품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불량률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고급 브랜드일수록 우리가 납품한 제품을 일일이 검수합니다. 자신들이 요구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되돌려 보내요. 결국 공정마다 검수요원을 배치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생산과 직접 관련 없는 인력을 더 투입하게 돼 비용은 늘었지만, 불량률을 낮추는 데는 효과적이었습니다.”
|
양식기 제조는 제조 공정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절삭과 압착공정을 통해 숟가락과 포크가 제 모양을 갖추면 이제 연마공정을 통해 표면을 매끄럽게 한다. 다음 공정은 도금이다. 숟가락과 포크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드는 핵심공정이다. 도금까지 마친 제품은 건조 과정을 거쳐 포장하기 전에 불량품이 없는지 다시 한번 검사한 뒤 포장을 한다.
3공장 2층에서는 손잡이 부분의 속이 비어 있는 나이프 생산이 한창이었다. 위 아래로 절반씩 만들어진 조각을 자동납땜기로 한데 붙이고 여기에 칼날을 붙여 연마와 도금을 하는 다소 복잡한 과정이었다.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흠결이 없어야만 완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단다. 양식기 제조는 과정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유진 크레베스가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는 양식기는 하루 25만개, 연간 8000만개에 달한다. 모든 제품은 유럽과 미국 등지에 100% 수출된다. 양식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은 유진 크레베스는 여세를 몰아 명품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유진 크레베스가 미국의 C사에 제품을 납품하게 된 일화는 어느 분야에서든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 다른 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액세서리 제조 경험이 전혀 없는 문대기 사장은 최고급 양식기 샘플을 들고 명품 브랜드 관계자를 찾아가 설득했다고 한다. “이 정도 양식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력이면, 명품에 들어가는 액세서리 제조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예술품과도 같은 고급 양식기를 요모조모 살펴본 이들은 유진 크레베스의 실력을 인정했고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액세서리 제조 공정은 양식기 공정에 비해 10분의 1 수준입니다. 그만큼 생산성이 높고 품질관리에도 유리합니다. 우리는 도금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명품 액세서리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레베스는 ‘Creative Investment’의 합성어로 앞글자 C를 K로 바꾸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창조적 투자’ 정도. 불모지와도 같던 베트남에서 양식기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유진 크레베스는 이제 명품 액세서리 분야에도 창조적 투자를 시작했다. 유진 크레베스가 명품 양식기 대명사에 이어 명품 액세서리 대명사로 다시 한번 세계 시장을 제패할 날도 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