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고 있는 강원도 평창군은 누가 뭐래도 국내 동계스포츠의 메카다. 동계스포츠가 너무 유명하다보니 사계절 레포츠 적지(適地)로서의 매력은 오히려 간과되고 있을 정도다. 평창은 국내 유일의 체험형 동굴인 백룡동굴이 소재한 생태관광 명소다. 동계스포츠 메카에 이어 녹색 생태관광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평창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평창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대한민국 유일의 체험형 생태관광지인 ‘백룡동굴’이 평창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근에야 일반인에게 문을 연 탓에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듣고 인터넷 예약을 하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관람형이 아닌 체험형 동굴로 운영되는 백룡동굴에는 대한민국 그 어떤 동굴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숨어 있다.
동굴복과 장화, 그리고 헤드랜턴
10월5일. 청명한 가을 하늘을 벗 삼아 한국형 생태관광 10선에 선정된 백룡동굴 탐험에 나섰다. 백룡동굴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에 소재하고 있다. 대부분의 스키장과 관광지가 영동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데 비해 평창에서도 오지인 마하생태관광지는 사람의 손길이 비교적 적게 닿아 미개척지와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백룡동굴로 향하는 길에서는 호젓한 강원도 두메산골의 정취를 맘껏 즐길 수 있다. 높은 산과 그 옆을 유유히 흐르는 동강의 정경은 참으로 여유로웠다.
백룡동굴 탐험에 앞서 모든 관광객은 동굴복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어야 한다.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동굴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과정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졌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옷을 갈아입는 데 대해 다소 싫은 내색을 하자 직원이 웃으며 답한다. “가보시면 알아요.”
동굴복은 소재가 면인 것만 빼면 우주복과 흡사하다. 동굴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벨트를 매고 헤드랜턴이 달린 동굴모 등 개인 탐사장비로 완전무장한 뒤에야 비로소 동굴 탐험에 나설 수 있다. 그것도 동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매표소와 탈의실에서 동굴 입구까지는 800m 정도. 동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절벽을 따라 데크가 설치돼 있는데, 낙석에 대비해 철제 지붕으로 튼튼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내년부터는 매표소에서 동굴입구까지 배를 타고 이동해서 동굴을 탐험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헤드랜턴을 켜고 동굴에 들어섰다. 전기 시설을 하지 않은 동굴은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어두웠다. 헤드랜턴 빛을 따라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디딜 수밖에 없다. 동굴을 조금 내려가다보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동굴에서 불을 지펴 살았던 흔적이란다.
백룡동굴은 5억년 전쯤 만들어졌지만 동굴 초입은 오래전부터 마을주민이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99년에 영월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가 영월댐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일반인에게 동굴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백룡동굴이 생태동굴로 각광받게 된 계기는 1976년 동굴 주통로 중간에 있던 좁은 통로, 일명 ‘개구멍’이 확장된 것이 계기가 됐다. 개구멍을 통해 동굴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서 동굴 전 구간에 대한 조사가 가능하게 됐고, 이후 백룡동굴 내부 경관과 학술적 가치가 학자들에게 알려져 1979년에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됐다. 한동안 문화재청의 보호를 받던 백룡동굴은 최근에야 생태학습형 체험동굴로 일반에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동굴탐험의 진수, 개구멍
평창 동강민물고기생태관 앞에 설치된 거대한 물고기상.
뭐니뭐니 해도 백룡동굴 탐험의 백미는 개구멍 통과다. 납작 엎드려 기어야만 개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 동굴복으로 갈아입도록 한 이유를 개구멍을 통과하면서 절실히 깨닫게 됐다. 10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어르신의 출입을 제한하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개구멍을 통과하고 난 뒤 동굴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너 차례 오리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그 사이 동굴복은 흙범벅이 됐고, 온몸은 땀범벅이 됐다.
가이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동굴을 제일 잘 탄다”고 했다. 몸이 작고 유연해 좁은 통로를 잘 빠져나가기 때문이란다. 백룡동굴의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각종 렌즈를 담은 가방과 삼각대까지 가져간 사진기자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백룡동굴 깊숙이 들어가자 어릴 적 재밌게 봤던 ‘톰소여의 모험’이란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친구들과 횃불에 의지해 동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톰소여 일행과 백룡동굴 탐험객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대구에서 단체로 백룡동굴을 찾은 50대 초반의 여성 단체관광객들은 난생 처음 해보는 동굴탐험이 재밌기만한 모양이다. 한 관광객은 “여러 동굴을 가봤는데 백룡동굴이 가장 스릴 있고 재밌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백룡동굴 탐험에 가이드가 동행하는 이유는 안전상의 문제도 있지만, 불빛이 없는 동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멋진 종유석과 석순 등 동굴의 볼거리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기 위해서다. 주요 명소에서는 가이드가 별도로 가져간 랜턴으로 밝게 비춰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백룡동굴에서는 종유관과 종유석, 석순과 석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동굴 맨 안쪽에서는 백룡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에그프라이형 석순을 감상할 수 있다. 동굴 내부 물웅덩이에서는 개미보다 작은 아시아동굴옆새우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굴과 어둠, 그리고 빛
동굴 맨 안쪽으로 들어서자, 앞서가던 가이드가 “동굴 어둠을 맛보라”며 헤드랜턴까지 껐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둠과 고요 속에 잠시 서 있다보니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곧 동굴 반대편에서 환한 불빛이 들어오며 자연이 빚어낸 예술작품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전기를 끌어오는 대신 배터리로 조명을 밝히다보니, 오후에는 배터리 수명이 다해 아주 잠시 동안만 감상할 수 있다. 10초 내외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둠이 빛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일반적으로 갈 때 느끼는 거리감에 비해 돌아나올 때 느끼는 거리감이 짧다고 한다. 그런데 백룡동굴은 갈 때나 올 때나 거리감이 비슷했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나와야 하기 때문인 듯했다. 동굴을 막 빠져나올 때쯤 석양이 동굴로 스며드는 광경이 마치 레이저쇼라도 보는 듯 멋졌다.
동강민물고기생태관
백룡동굴은 사전에 인터넷 예약(http://cave.maha.or.kr)을 하거나 당일 현장에서 입장권을 사서 관람할 수 있다. 비좁은 동굴을 헤드랜턴에 의지해 탐험해야 하는 만큼 하루 관람객 수는 엄격하게 제한된다. 1회당 20명씩 모두 9차에 걸쳐 180명만이 동굴체험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루 두 차례 운영되는 패키지상품을 이용하면 동강 래프팅까지 겸할 수 있다. 걷고 기고 오리걸음으로 동굴탐험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동굴 체험을 하려는 관람객은 여분의 속옷과 양말을 준비해오는 것이 좋다. 매표소에는 별도의 샤워시설이 완비돼 있다.
백룡동굴을 중심으로 한 평창군 미탄면 일원은 자연휴식지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동강이 휘돌아 흐르는 이곳에 서식하는 다양한 민물고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마하생태관광지에 동강민물고기생태관이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20개의 수조가 마련된 생태관 1층 전시장에는 동강은 물론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크고 작은 민물고기 46종이 전시돼 있다. 생태관 해설사는 “동강민물고기생태관에서만 볼 수 있다”며 취재진을 1m가 넘는 메기가 있는 수조로 안내했다. 생태관은 1200미의 민물고기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수조뿐 아니라, 물고기 탐험관과 동강체험관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동강의 물속을 탐험하고 뗏목을 타보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을 구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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