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서울의 ‘일본라멘’과 도쿄의 ‘신(辛)라면’

한일 라면전쟁

  • 이종각│전 동아일보 기자, 일본 주오대학 겸임교수│

    입력2010-10-29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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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중국 이름 ‘납면(拉麵)’이 일본에 들어가 ‘라멘’이 됐다.
    • 일본의 식품회사 닛싱(日淸)식품은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었다. 개발자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는 타이완(臺灣) 출신의 귀화 일본인이었다.
    • 드라마 ‘겨울연가’로 말미암아 일본에서 분 한류붐은 신라면 등 한국라면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신라면 광고를 붙인 버스가 도쿄 도심을 달렸다. 이제 한국라면은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됐다.
    • 그런 가운데 한국에선 ‘일본라멘’이 꽃을 피우고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일본에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재탄생해 한국에서 꽃을 피운 ‘라면 삼국지’.
    서울의 ‘일본라멘’과 도쿄의 ‘신(辛)라면’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신라면’.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초밥인 ‘스시(壽司)’와 회인 ‘사시미(刺身)’, 튀김요리인 ‘덴푸라(天婦羅)’가 꼽혀왔다. 그러나 요즘엔 라면도 그 안에 포함될지 모른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라면은 일본어 어원의 ‘ramen’으로 소개돼 있고, 일본 매스컴 등은 일본 국민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국민식(國民食)’이라고도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본에서 손님이 줄을 서 있는 음식점은 대체로 라면집이었다. 올여름엔 도쿄(東京) 도심인 시나가와(品川)구의 주택가에 있던 유명 라면집이 수백미터씩 줄을 서 있는 손님들로 인한 소음과 담배꽁초 등으로 이웃주민들에게 폐를 끼쳐 하는 수 없이 가게를 이전키로 했다는 내용이 TV에까지 보도됐을 정도다.

    일본 텔레비전의 음식관련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업종도 초밥집과 라면집이다. 수많은 라면 관련 잡지가 발행되는가 하면, 매주 라면애호가들이 지역별로 매기는 ‘맛있는 라면집 베스트 10’등의 랭킹도 발표된다. 신축 대형건물 한 층에 ‘라면 스퀘어’식으로 이름을 붙인 밀집형 라면전문식당가도 있고, 매년 라면집 주방장들이 라면 맛 실력을 겨루는 ‘라면직인(職人) 챔피언전’도 열린다. 10월 현재 일본 전역에는 8만여 개의 라면집이 영업하고 있다.

    라면에 인생을 건다

    한국 분식점에서 파는 라면은 출출할 때 때우는 간식 개념이지만, 일본 라면집에서 파는 라면은 주식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돼지 뼈인 ‘돈고쓰(豚骨)’를 푹 곤 국물에 그 가게에서 만든 자가제(自家製)면을 넣어 끓인 뒤 편육 몇 점과 삶은 달걀 등을 얹어 내놓는 ‘돈고쓰라면’이나 ‘미소(味·된장)라면’, ‘쇼유(醬油·간장)라면’등이 가장 일반적이다. 라면 가격도 종류와 양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600~1000엔 선으로 싼 편이 아니다. 다른 음식 한끼 값과 비슷하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2000년대 중반 한때 회복기미를 보이던 일본경제는 2008년 리먼쇼크 이후 엔고와 디플레이션 심화 등으로 다시 혼미상태다. 일본경제의 재생이 불투명해지자 소비자는 더욱 지갑을 열지 않으며 저가상품을 찾고, 메이커나 외식기업 등은 고객을 잡기 위한 저가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엔 300~ 500엔대의 싼 라면 등을 파는 면류(麵類) 대형체인점인 ‘고라쿠엔(幸樂苑)’‘히데이 히다카야(日高屋)’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작은 라면집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20~30대의 젊은이다. 체인라면집이 아닌 경우 몇 평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에, 머리띠를 두른 젊은이 혼자서 만들고 서비스하는 식이 일반적이다. 이런 가게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대체적으로 식권발권기가 설치돼 있다. 구멍가게 같은 라면집이지만 장사가 어느 정도 된다면 회사 등에 취직하는 것과 같은 직장을 구하는 셈이 되므로 젊은이들 중엔 라면가게에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몇년 전 TV에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집’으로 소개된 신주쿠(新宿)의 라면집 ‘무사시(武藏)’의 젊은 주방장은 가게 옆에 별도의 연습장까지 차려놓고 라면 끓이는 연습을 하며 라면창작에 몰두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라면(拉麵)은 원래 중국음식

    그렇다면 일본에선 왜 이렇게 라면이 인기 있는 음식이 됐을까?

    본래 라면은 중국음식으로 한자로는 ‘납면(拉麵)’이라고 쓴다. 중국에서는 ‘노면(老麵)’‘유면(柳麵)’이라고도 했다. ‘납면(拉麵)’이 일본 발음으론 ‘라멘’이 된다.

    메이지(明治)유신(1868년) 직후인 1870년대 요코하마(橫濱) 등 일본의 개항장에 들어온 중국 사람들이 라면을 노점에서 만들어 팔면서, 일본에 라면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당시에는 라면이란 명칭이 아니고 ‘지나(支那)소바’‘남경(南京)소바’라고 불렸다.

    이후 일본 여기저기에 이 중국 라면을 파는 점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구 일본군으로 중국에 출정한 뒤 1945년 8월 일본 패전 후 라면 만드는 법을 어깨너머로 익힌 사람들이 귀국해, 포장마차에서 중국라면을 만들어 팔았다. 전후 물자가 궁핍하고 경제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값싼 재료에 맛있고, 영양도 있는 라면은 일본에서 인기 있는 식품이 되어갔다.

    서울의 ‘일본라멘’과 도쿄의 ‘신(辛)라면’

    한 여성이 일본 본토 요리인 ‘멘무샤 라멘’을 먹고 있다.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그 지역만의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당지(當地)라멘’이란 것도 생겨났다. 그 가운데 삿포로(札幌)라면, 하카타(博多)라면, 기타카타(喜多方)라면, 요코하마라면 등이 유명하다. 지금은 ‘하카타 잇푸도(博多一風堂)’ 등 전국에 수백 개의 점포와 뉴욕 등에 해외지점까지 가진 라면 체인점도 여러 개 된다.

    한국의 인기 있는 곰탕이나 냉면 전문점은 대체적으로 본점 외에 가족 등이 ‘강남분점’식으로 점포 몇 개를 경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달리 일본의 인기 라면집은 기업형이 많다. 이 같은 기업형은 수백 개에 달하는 전국 체인점에서 대량 소비하므로, 양질의 재료를 싸게 대량 구입해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 최대 면류 체인점인 ‘고라쿠엔’은 2010년 8월 현재 일본 전역에 425개의 점포를, ‘히데이 히다카야’는 260개의 점포를 주로 도회지의 역 주변에 두고 있다. 체인점의 1년 매출이 수백억엔에 달하는 중견기업들이다. 이들 체인점은 10년 이내 각각 1000점포 , 500점포를 목표로 하는 확대전략을 펴고 있다.

    일본 귀화 대만인이 만든 인스턴트 라면

    일본경제가 급속히 회복돼가던 1958년, 전세계 식품업계를 뒤흔들 만한 발명품이 생겨났다. 닛싱(日淸)식품이란 회사에서 개발한 ‘닛싱 치킨 라멘’이란 이름의 인스턴트 라면이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 출현한 것이다. 물만 넣고 몇 분만 끓이면 되는 이 인스턴트 라면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스턴트 라면의 출시와 함께 지나소바 등으로 불리던 라면의 명칭도 ‘라멘’으로 통일됐다. 1971년엔 역시 이 회사에서 세계 최초의 컵라면인 ‘컵 누들’이 출시됐다.

    이 두 가지 라면을 개발한 사람은 이 회사의 창업주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라는 타이완(臺灣) 출신의 귀화 일본인이다.

    우주식 라면도 개발

    1910년,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온 뒤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을 졸업한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1945년 8월 일본 패전 후의 어려움 속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먹는 것, 즉 ‘식(食)’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안도는 자신이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특허 등을 독점하지 않고 국내외 업체에 사용을 광범위하게 허용했다. 한국에선 1963년 삼양식품의 전중윤 사장이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을 한국에 처음 도입, 삼양라면이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첫 인스턴트 라면이다. 필자도 1960년대 후반 고교시절, 연탄불에 끓여 먹던 삼양라면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닛싱식품은 자사 홈페이지에 “자사 이익만을 우선하지 않은 안도의 경영방침이 오늘날의 세계적인 라면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적고 있다.

    도쿄 신주쿠의 코리아타운 인근에 있는 닛싱식품 본사 1층 로비엔 안도의 흉상이 세워져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고, 수많은 라면 관련 서적이 진열돼 있다. 안도의 경영철학은 ‘먹는 것(食)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聖職)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식족세평(食足世平), ‘세상을 위해 먹는 것을 만든다’는 식창위세(食創爲世)라고 그의 자서전에는 소개돼 있다. 안도의 이 같은 경영철학에 의해 인스턴트 라면은 시대와 국경, 인종을 넘어 계속 사랑받는 식문화가 될 수 있었다.

    안도는 91세 되던 2001년엔 일본우주개발사업단의 협력을 얻어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宇宙食)라면 개발을 진두지휘한다. 그가 발명한 ‘스페이스 럼’으로 명명된 우주식 라면은 미우주항공국의 심사를 통과해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먹을 음식으로 선정됐다.

    2005년 7월,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野口聰一)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 스테이션에서 사상 처음 라면을 먹는 중계 장면을 보고 안도가 감개무량해하는 모습을 일본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는 1997년 전세계 라면생산메이커 최고경영자들의 회의체인 ‘라면 정상회의(RAMEN SUMMIT)’를 조직, 의장으로 취임해 매년 각국에서 회의를 개최하며 라면산업의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 거기에다 우주라면까지 발명한 안도는 ‘인스턴트 라면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1999년에는 ‘식(食)’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인 ‘인스턴트라면 기념관’이 오사카(大阪)부 이케다(池田)시에 세워졌다. 2010년 4월초, 도쿄 도요스(豊洲)의 한 전시장에선 ‘인스턴트 라면 발명이야기 안도 모모후쿠 생탄 백주 기념전’이 열리고 있었다. 안내 책자는 다음과 같이 그를 소개하고 있다.

    “이 20세기를 대표하는 발명은 안도라는 한 사나이의 독창과 불굴의 정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수많은 곤란에 직면하면서도 기성관념에 구애하지 않는 발상력과 행동력으로 세계의 식문화에 혁명을 일으켰다.”

    NYT, 미스터 누들에 감사

    현재 인스턴트 라면은 전세계에서 연간 약 1000억개(2008년 기준)가 소비되는, 쌀과 빵에 이은 인류의 식량이다. 부유층이나 중산층에서도 먹지만, 특히 서민과 기아선상에서 끼니를 잇지 못하는 세계 각국의 빈민들에게 인스턴트 라면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주식이 되고 있다. 1980년대 무렵부터 북한에도 한국산 라면이 들어가 ‘꼬부랑 국수’라고 불리며 가장 인기 있는 식품 중의 하나가 됐는데, 한국에서 북으로 보내는 수해지원 물자 중엔 반드시 컵라면이 포함돼 있다.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식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도씨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노벨상위원회로부터 연락은 받지 못한 채 2007년 1월 9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뉴욕타임스’는 ‘미스터 누들(면)에 대한 감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안도의 공적을 칭찬했다.

    “인스턴트 라면으로 끓인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안도는 인류 진보의 전당에 영원의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수 있지만, 사람에게인스턴트 라면을 주면 더 이상 무엇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

    한국에 온 일본라멘

    매년 발표되는 세계라면협회(WINA)의 통계(2009년 기준)에 따른 국가별 라면소비량에서 한국은 34억개로 중국(408억개), 인도네시아(139억개), 일본(53억개), 베트남(43억개), 미국(40억개)에 이어 6위지만 한국은 국민 1인당 인스턴트 라면 소비량에선 수십년간 세계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이 69개로 1위이고 2위 인도네시아(58개), 3위 일본(44개), 5위 중국(32개)의 순이다.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라면 먹고 뛴’ 여자 육상선수(임춘애)가 3관왕이 됐다고 언론에서 집중보도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러나 후일 그녀는 라면만 먹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명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요리의 독특한 맛인 매운맛을 살린 ‘신(辛)라면’은 역시 매운맛을 즐기는 히스패닉 국가 등에선 인기가 있었으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매운 것을 거의 먹지 않는 일본에선 주목받지 못했다.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NHK 방영과 함께 일본에서 한류붐이 일면서 김치와 함께 신라면 등 한국라면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대형 신라면 광고를 붙인 버스가 도쿄 도심을 달리는 광경을 보고 일본도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요즘 신라면, 김치라면 등은 동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의 라면코너에 일본라면과 나란히 진열돼 있을 정도의 인기품목이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선 서울 압구정동 이나 홍대 앞 등 곳곳에 ‘일본라멘’이라고 쓴 간판이 붙어 있는 일본라면 전문점이 생겨나고 있다. 9월 현재 서울에 수십 개의 일본라면집이 성업 중이라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중국에서 연원하는 라면이, 일본 귀화 대만인에 의해 인스턴트 라면으로 개발돼 세계적인 식품이 되고, 한국만의 독특한 맛을 지닌 신라면 등이 중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니 동양 삼국 간의 라면 교류사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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