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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

죽음 앞의 삶

  • 전지은

죽음 앞의 삶

2/19
“아, 이제 알아들을 수 있구나.”

실험을 하다 잠시 저녁 먹으러 온 남편에게 흥분한 어조로 자랑했다.

“그래, 그러면 이젠 간호사 시험만 붙으면 되겠네.”

남편은 대견하다는 듯 씩 웃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미국 간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일자리를 찾을 차례였다. 신문 광고를 보고 몇 군데 이력서를 냈더니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 병원 경험도 없고 시스템도 몰랐으므로 큰 병원은 자신이 없어 작은 요양병원을 택했다. 인터뷰를 하는데 이번엔 말이 문제였다. 간호과장 질문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Pardon me? Could you repeat it for me?”를 몇 번 하다가 “I will do my best”라고 한마디하고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나와버렸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미국 간호사로서 첫발을 내디디게 된 것이었다.

약국으로 숨어들기



유학생 가정에 차가 한 대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버스 통학이 되지 않는 학교로 남편이 차를 가지고 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내 출근길이 막막했다. 하여 난 밤일을 택했다. 남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밤 11시까지 출근하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아침 7시 퇴근 시간에 맞춰, 남편은 잠이 덜 깬 아이를 담요에 둘둘 말아 차 뒷자리에 싣고 나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나와 아이를 집에 내려놓고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나는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고 숙제를 점검하고 준비물과 가방을 챙겨 통학 버스에 태우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과 학교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 중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하게 되면 난감했다. 동네 이웃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쉽지 않았다. 차가 한 대 더 필요했지만 차를 사기엔 유학생이라는 신분과 할부금이 부담됐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밤 근무를 6개월쯤 했을까. 낮일을 하던 간호사 한 명이 사직을 했다며 내게 낮 근무를 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영어 때문에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밤잠을 못 자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선뜻 “Yes”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남편과 아이를 새벽같이 데려다주고 퇴근 후 데리러 가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남편은 일찍 학교를 가도 할 일을 할 수 있고 도서관도 있으니 괜찮지만 아이는 오전 7시 전엔 학교를 갈 수 없었으므로 또 이웃의 신세를 져야 했다. 새벽, 아이를 깨워 아침 먹이고, 학교 갈 준비를 시켜 이웃집으로 보내면 이웃 아이들과 함께 스쿨버스를 탔다. 아이가 하교할 무렵엔 나도 퇴근을 해 아이를 야구와 태권도 모임 등에 데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더 큰 일은 병원에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트를 보고 약을 주거나 의사의 오더를 시행하는 건 문제없었다. 문제는 전화였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환자 주치의나 환자 보호자와 연락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제일 곤혹스러웠다. 내 딴에는 또박또박 상황을 전달했다 싶은데도 상대편에서 못 알아들어 되묻고 또 되묻고 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환자에게 연락을 해야 할 때는 함께 일하는 조무사에게 시키면 되지만 전화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할 때는 의료법상 반드시 내가 해야 했다. 스펠링을 물어보거나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전화를 피하는 방법이었다. 전화가 울리면 난 잽싸게 약국으로 들어갔다. 병동의 약국은 간호사실 뒤에 붙어 있어 들어가기가 쉬웠다. 전화가 아무리 오래 울려도 난 약국에서 무언가 급한 일을 하는 척하며 위기를 피했다. 전화가 오래 울리면 간호감독이 받아 의사의 처방을 적어서 내게 갖다 주곤 했다. 미국인 간호감독이 적어준 것이니 틀릴 일은 없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눈치를 챈 간호감독이 나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더는 피할 수 없겠구나 싶어 솔직히 털어놓았다. 전화 받기가 가장 두렵다고. 간호감독은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전화가 울리면 둘이 동시에 받고, 둘이 동시에 적어, 둘이 내용을 맞추어본 후 차트에 옮겨 적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너무나 고마웠다. 그 후 전화가 오면 감독과 나는, 서로 연결돼 있는 전화기로 동시에 받았다. 내가 좀 틀리고 못 알아들으면 그녀가 정정을 해주었고, 나쁜 발음은 그 자리에서 교정해주었다. 그리고 서너 달 후, 그녀는 “이제 혼자 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때, 그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두려움에 떠는 새가슴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자신 있게 전화를 받고, 거의 매일 스무 통화 이상 전화를 하고, 매일의 시작과 끝을 e메일로 처리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지 않았을까. 다시 또 생각해도 참으로 고마웠던 분, 이미 퇴직했겠지만 어디선가 아직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곱게 백발을 만들어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도 병실 약국에 오래 있는 신참 간호사를 보면, 물론 투약 준비를 하는 것이겠지만, 혹 불편한 시간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옛날의 나를 기억하며 들여다보게 된다. “뭘 좀 도와 줄까? 바쁜 일 있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얘기해.” 가벼운 이야기를 붙여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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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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