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새터민은 잠재적 간첩?’… 분노하는 탈북자 사회

하나원 근무자 줄줄이 실직, ‘김정은 후계’ 특종기자는 석연찮은 휴직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입력2010-10-18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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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엘리트 사회가 들끓고 있다. 연이어 발표된 ‘탈북자 간첩 사건’으로 사회적 시선은 물론 정부 당국의 분위기가 급변했다는 것.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탈북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실직자가 되는가 하면 성공적인 정착사례로 손꼽혔던 한 중견 언론인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된 일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이들은 ‘탈북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보는 것 아니냐’며 분노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다는 것일까.
    ‘새터민은 잠재적 간첩?’… 분노하는 탈북자 사회

    10월13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에 문상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 때 이야기다. 흔히 엘리트라고 불리는, 북에서도 꽤 잘나갔고 남에서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탈북자들이 모였다. 이날의 화두는 단연 ‘민주당 찍었나?’였다. 최근 정부 여당에서 탈북자를 대하는 방식에 불만이 많다 보니 야당에 투표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선거 직전 ‘휴대전화로 표를 찍어 서로 확인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10월13일 늦은 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 구석에 모여 앉은 탈북 인사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말이다. 경찰관과 정보기관 요원이 곳곳에 즐비한 자리였지만, 술잔이 한 순배를 돌자 이야기는 더욱 거침없다. ‘기관’의 시선에 민감한 탈북자 사회의 평소 분위기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수위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활동의 제약을 받았던 탈북자들이 ‘이제는 할 말은 하고 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게 뭔가. 최근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건 흡사 ‘탈북자는 잠재적 간첩’이라고 미리 단죄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인다. 정부가 북한을 싫어하다 보니 탈북자도 덩달아 싫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08년 8월 불거진 원정화 사건 이래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사건’이 줄지어 발표되면서 탈북자 사회는 초상집이 됐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분위기가 정부기관이나 언론 등에서 일하던 ‘탈북자 사회의 성공 모델’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자리를 잃거나 자리를 떠나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이들의 시각이다. 북한 출신 엘리트에 대한 포용과 정착 성공의 상징으로 불리던 이들에게 연이어 비슷한 일이 생기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는 것이다.

    10명에서 1명으로



    탈북자 정착교육을 담당하는 통일부 산하기관 하나원에서는 올해 들어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60명 남짓의 직원 가운데 7명이던 탈북자 출신 근무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게 된 것. 이와 함께 외곽경비를 담당했던 용역업체에서 일하던 탈북자 3명도 비슷한 시기에 모두 해고됐다.

    하나원에서 해임된 이들 가운데 계약직 6~7급으로 근무하던 세 사람은 정착교육과정상의 교과목을 강의하는 강사였고, 다른 세 사람은 일용직으로 일하며 사감 업무를 맡고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콜센터에서 이미 사회에 진출한 탈북자들과의 상담을 담당했던 일용직원. 이들은 지난해 말과 올해 5~7월 사이에 순차적으로 해임을 통보받고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접촉하는 ‘선배 탈북자’였고 이 때문에 탈북자 사회의 마당발로 통했다. 한국에 정착한 이들 대부분이 그들과 안면이나 친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더욱이 이들은 한국사회가 탈북자들을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서로 믿고 일한다는 사실을 입소자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성실하게 정착 교육을 받으면 정부기관에서도 일할 수 있을 만큼 한국사회는 ‘열린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특히 생활을 함께 하며 애로사항 처리와 관리를 담당하는 사감직의 경우 탈북자 출신 직원들에게 상당한 경쟁력이 있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갓 넘어온 이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히고 어떤 부분에서 한계를 느끼는지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입소자들로서도 비교적 쉽게 마음을 터놓고 애로사항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편한 상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연이은 해임에 대해 많은 탈북자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이유다.

    지난 3월 하나원은 탈북자 출신의 교육담당 계약직 7급 직원 김모씨를 새로 임용했다. 이로써 2010년 10월 현재 시점에서 하나원과 통일부를 통틀어 탈북자 출신 직원은 김씨 한 사람뿐이다. 계약직과 일용직을 포함해 하나원에만 모두 7명, 용역업체까지 포괄해 10명이 일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공교롭다.

    ‘새터민은 잠재적 간첩?’… 분노하는 탈북자 사회

    경기도 안성에 있는 탈북자 정착교육시설 하나원 내부 풍경.

    하나원에서 해임된 한 직원은 “실제로 계약 해지가 된 것은 올해 들어서였지만 분위기는 지난해부터 심상치 않았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 간첩사건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탈북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기류가 팽배해 있었다는 것. 특히 이후 관계부처에서 흘러나온 “내부에서 발생한 보안사고 때문에 탈북자들이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일부 언론에 단신으로 기사화된 것은 이러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비슷하게 볼 만한 사고나 사건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러한 뒷말이 나오는 것은 정부 내부에서 탈북자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해석이다.

    우연의 일치?

    이들의 실직 소식은 탈북자 사회 곳곳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워낙 ‘유명한 존재’이다 보니 상실감도 컸다는 것. 관련부처에는 항의전화가 이어졌고, 단체들을 규합해 서명운동을 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탈북자들을 고용하자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는 정부가 기왕에 일하고 있던 이들조차 내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기업주가 선뜻 동참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일련의 해임에 대한 ‘신동아’ 측의 질의에 하나원 측은 “6~7급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이들의 경우, 해당파트 직원 총 8명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해임하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신규 임용하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탈북자 출신 직원들이 자리를 떠나게 된 것일 뿐 의도적으로 배제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의원면직과 심사과정에서의 탈락, 채용분야 변경 등으로 재계약하지 않은 것일 뿐, 비(非)탈북자 직원들도 계약만료에 따라 함께 해임됐다는 것. 쉽게 말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사감 등 일용직으로 근무하던 이들의 경우에는 “이들은 공식적으로 하나원 직원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하나원 측은 덧붙였다. 감사원과 행정안전부 감사를 모두 받았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탈북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탈북자 사회의 의구심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뜻밖의 인사발령

    최근 탈북 엘리트그룹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중앙언론사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탈북자 출신 최모 기자가 겪고 있는 일이다. 특히 이 사건은 탈북자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언론자유 문제라는 차원에서도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해당 언론사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 정보당국의 개입이 있었음을 의심케 하는 유력한 정황들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1996년 고위관료였던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최 기자는 평양에서 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인정받아 탈북 직후부터 서울의 중앙 언론사 북한 관련 부서에서 언론인 생활을 이어왔다.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기사를 쓰는 사실상 최초의 기자였던 그는, 특히 지난해 1월 “김 위원장이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김정운(당시 알려져 있던 김정은의 이름)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했다”며 ‘김정은 후계자 결정’을 특종 보도함으로써 이름을 높였다. 이후에도 후계논의는 물론 북한의 화폐개혁과 이후의 후폭풍 등에 관해 다수의 북한발(發) 특종기사를 쓴 최 기자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 유력 언론인 단체들이 선정하는 연례 기자상을 줄줄이 수상하기도 했다. 탈북자 사회의 시각에서 보자면 ‘남한 출신 언론인들과 경쟁해 독보적인 성과를 이뤄온 대표적인 성공사례’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최 기자는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던 5월초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기사를 쓸 수 없는 북한 관련 데이터베이스 담당부서로 발령을 낸다는 소식이었다. 대신 부장으로 승진시켜주겠다는 이야기였지만, 기자가 한 명도 없는 부서라는 점에서 사실상의 좌천이었다. ‘기사를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최 기자는 회사측에 승복할 수 없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의 뜻이 이러함에도 인사방침에 변화가 보이지 않자 이에 반발한 최 기자는 결국 무급휴직 형태로 회사를 떠나 있기로 결심하고 휴직원을 제출했다.

    ‘새터민은 잠재적 간첩?’… 분노하는 탈북자 사회

    2008년 8월27일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공개한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증거자료들.

    최 기자의 북한발 기사를 ‘불편해 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계 주변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1월의 ‘김정은 후계’ 특종기사만 해도 기사 게재를 앞두고 이를 사전에 감지한 정보당국에서는 “사상최대의 오보가 될 것”이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는 후문. 해당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에 대해 정부 측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북한 내부 소식통’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표하며 비판하는 일은 ‘신동아’가 직접 접한 것만 해도 부지기수였다.

    최 기자가 인사발령에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음을 확신하게 된 것은 이후 확인한 일련의 정황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당국에서 주변 인사들에게 ‘대공 용의점’을 거론하며 북한 내부 소식통과의 접촉현황 등을 묻고 다녔다는 것. 여기에 7월 남편이 몸담고 있는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의 책임자가 했다는 말은 더욱 의미심장했다. 부부 동반 여행을 위해 출국을 보고하러 간 남편에게 ‘어차피 최 기자가 국정원 내사를 받고 있어서 출국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최 기자 측에서는 국정원 관계자에게 “이는 언론인 사찰이며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엄중히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국회의 질타

    결정적인 정황은 도리어 회사 측에서 확인됐다. 비슷한 시기 기사작성 부서로의 복직을 요구하며 면담한 회사 고위 간부가 ‘조만간 국정원 최고위층의 인사변동이 있을 듯한데, 이것만 마무리되면 복직이 가능할 것이므로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 해당 언론사 안팎에서는 이 발언이 최 기자의 인사발령 뒤에 최고위층의 질책을 부담스러워한 국정원 측 압력이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이후 북한의 굵직한 변동이 정보기관 보고보다 언론보도를 통해 먼저 확인되는 일들이 이어지자 청와대와 국회 정보위원회를 중심으로 ‘국정원의 무능’을 강하게 질타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1월30일 단행된 화폐개혁 소식. 사흘 뒤 ‘세계일보’ 12월3일자는 “당일 오후 북한 전문 인터넷매체들이 관련사실을 확인해 보도한 것과 달리 국정원 핵심간부는 저녁까지 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화폐개혁 당일 열린 국정원의 국회 보고에서도 관련 언급은 없었다는 게 정보위 관계자들의 설명. 이튿날인 12월1일 오전에도 국정원 측은 “아직 정보당국 차원에서 사실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후 열린 국회 보고에서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 부재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일을 계기로 국정원 핵심 관계자들이 북한 담당 부서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일이 있었음은 안보부처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청와대 안보라인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국정원이 그 많은 예산을 쓰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언급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국정원, “그런 사실 없다”

    일련의 정황이 가리키는 바가 사실일 경우, 이는 언론인에 대한 사찰이 이뤄졌고 해당 기자가 정부의 압력에 의해 사실상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북한 내부 소식통을 접촉해 취재활동을 벌인 일이 형식논리상 실정법 위반이라면,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북한 전문 매체들이나 북측 소식을 전하는 NGO들은 물론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뉴스를 발빠르게 전하고 있는 주요 언론사 기자들은 누구나 언제든지 같은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 더욱이 그간 최 기자가 보도했던 일련의 기사들이 상당부분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혼란상, 민심 동요 분위기 등에 관한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최 기자에 대한 ‘대공 용의점’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언론계와 탈북자 사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새터민은 잠재적 간첩?’… 분노하는 탈북자 사회

    2009년 10월29일 오전 국가정보원 회의실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국정감사.

    10월11일 오전 ‘신동아’는 최 기자 문제와 관련한 국정원의 공식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장문의 질의서를 보냈다. ▲최 기자에 대해 내사나 조사를 벌인 일이 있는지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 책임자의 발언에 대해 국정원 측이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는지 ▲해당 언론사의 북한 관련 보도로 인해 관련부서가 질책을 받은 일이 있는지 ▲최 기자의 인사발령에 국정원이 관여한 정황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이었다.

    이에 대해 10월12일 국정원 대변인실측은 “질문의 내용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짤막한 답변을 통보해왔다. “최 기자에 대해 내사를 벌인 일이 없으므로 다른 사항 역시 해당 사실이 없다”는 게 대변인실 관계자의 말이었다. 기자가 “인과관계에 있는 질문들이 아니다, 내사 사실과 북한 관련부서 질책은 별개의 일 아닌가”라고 되묻자, 이 관계자는 “담당부서에서 통보해온 답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뿐이어서…”라며 말을 흐렸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국정원의 공식입장에도 불구하고 일방의 주장을 사실로 단정해 기사화하면 공식대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 기자의 남편에게 내사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 책임자 역시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조직 운영 편의상 장기간의 해외여행은 사전에 여유를 두고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했을 뿐 최 기자에 대한 내사가 진행 중이었는지 알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탈북자 간첩’은 실적 쌓기용?

    최 기자는 10월 중순 현재까지 5개월 넘게 무급휴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복귀일정을 가늠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무기한 휴직이다. 당초 최 기자는 6개월이 지나면 기사작성 부서로 복귀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회사 측과 연이어 면담한 후 사실상 기대를 접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 기자는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할 말은 많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코멘트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전했듯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일련의 사건이 2008년 8월 공개된 원정화 간첩사건을 계기로 확산된 ‘탈북자는 잠재적 간첩’이라는 인식과 관계가 깊다고 보고 있다. 정식조사와 절차, 교육을 거쳐 남한에 정착한 인물이 군 부대를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했다는 사건 발표를 계기로 정부의 강도 높은 보안대책이 쏟아져 나온 것은 주지의 사실. 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원정화 사건 이후 국내에 들어와 있는 탈북인사들에 대해 관리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심사기간을 현행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하고 관련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국정원을 비롯해 각 관련부처들이 조직하는 합동신문팀에서, 신분을 위장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전보다 강화된 심사를 하겠다는 취지다. 이렇게 되면 조사 기간에 하나원에서의 정착교육 기간 3개월을 더해 최장 9개월이 걸려야 한국사회에 진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을 지켜보는 탈북자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우선 원정화 사건 자체가 ‘함량미달인 사건을 억지로 키운 게 아니냐’는 것. 원씨가 본인의 진술과는 달리 통상의 ‘정예 간첩’이라고 볼 수 없다거나, 평소 과시욕이 심했던 터라 사회적 관심을 끌어 ‘제2의 김현희’가 되기 위해 행적을 과장 진술한 것이라는 탈북자 사회의 평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위축됐던 보안수사 담당부서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인원과 예산이 보강된 후에도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깜이 안 되는’ 말단 프락치를 거물급 탈북자 간첩단으로 키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이는 원씨가 우리 측 정보당국으로부터도 돈을 받고 북한 측 정보를 캐내오려고 시도하거나 국내에서 수집했다는 정보의 함량이 떨어진다는 사실 등이 확인되면서, ‘제2의 마타하리’라는 당초의 떠들썩한 평가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평가가 뒤늦게 퍼진 것과 관계가 깊다. 원씨의 핵심 배후인물로 함께 기소됐던 의붓아버지 김동순씨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은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더한다. 공안당국이 사실관계를 바꾸면서까지 ‘실적 쌓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2009년 12월25일자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김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수사자료 일부가 김씨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발췌 편집, 왜곡됐다고 판시했다. 원씨와 유선전화로 통화하던 김씨가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옮겨가기 위해 “휴대폰으로 전화해라”라고 말한 것이, 검찰 측 자료에서는 통신보안에 신경 쓰라는 취지로 “휴대폰으로만 전화해라”라고 말한 것으로 바뀌는 식이었다. 기사는 법원 관계자가 “수사기관이 사법부에 자료를 왜곡해 제출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2012년 총선 공천 받으려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나갔던’ 북한 출신 인사들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두고 “언제까지나 잠재적 간첩 취급을 당하고 살 수는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를 집단적으로 문제 제기한 탈북자 단체는 아직 없다. 관계부처나 정부 당국자들에게 개인자격으로 항의하는 경우는 많았어도 조직화하지는 않았다는 것. 이는 우선 정부 비판적인 집단 의사표시에 소극적인 탈북자들의 특성과 관계가 깊지만, 젊은 층에서는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 은밀히 내미는 ‘당근’에 현혹돼 지도급 인사들이 할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탈북 인사를 비례대표에 공천해 국회에 진출토록 하는 방안이 심도 깊게 논의된 바 있다. 전문성과 대표성을 갖춘 인사를 정계에 끌어들여 2만명에 육박하는 탈북자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고 통일 이후 남북한 사회통합에 대비한다는 명분이었다. 당시의 논의는 현실화되지 못했지만, 이후 정부 여당 관계자들은 ‘2012년 총선 공천 가능성’을 거론하며 탈북자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협력을 구해왔다.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특정인사가 여권의 어떤 실력자와 친분이 두터워 공천을 받기 쉬울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다.

    또한 정부 최고위 당국자들이 몇몇 활동력 강한 단체 대표들을 골라 은밀히 면담하는 등 선별적인 관리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탈북자 사회에서는 공지의 사실에 가깝다. 한마디로 ‘정부를 곤란하게 만드는 행동을 자제해달라’는 취지다. 북한에서 중앙당 관료로 일했던 한 장년층 탈북자는 “현 정부의 탈북자 정책은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전부일 뿐, 이들을 활용해 긍정적인 정책 마련이나 통일대비에 활용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2등 국민’이라는 자괴감

    러시아 출신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신동아’ 10월호 기고에서 “탈북자들을 장차 통일 이후 북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기반으로 보고 대안 엘리트 세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굳이 통일이 이뤄지지 않아도 이를 통해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영원한 2등 국민’으로 남을 운명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정책이라는 지적이었다. 앞서 살펴본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탈북자 사회를 동요하게 하는 분노의 뿌리는 바로 이 ‘2등 국민’의 자괴감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통일을 준비하는 정부의 능력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밖에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성적은 낙제점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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