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9월21일 오후 서울 지역에 쏟아진 기습폭우로 물바다가 된 광화문 사거리. (오른쪽) 2009년 7월 조성공사 막바지 단계의 광화문광장 모습.
큰 비는 예상돼 있었다. 기상이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기상의 극한현상 등 수많은 표현은 이제 일상화하지 않았던가. 그에 대한 대책도 수없이 논의된 바 있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대표적이지만, 세계 어느 국가도 화석연료의 절대 사용량을 줄인 경우는 없었다. 대신 사용하는 에너지 구성비율 가운데 화석연료의 상대적 비율을 줄이는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만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고, 그나마 신흥국가들의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려는 방향으로만 작동해온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번 비보다 더 큰 규모의 호우도 예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극대 홍수’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책결정자들과 당국자들은 “예상을 뛰어넘은 강수량이었으므로 불가항력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거꾸로 당국의 예상과 계획이 충분히 현실성 있는 것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혹은 예상 규모 이내의 호우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나무가 있었다면
서울시는 광화문 등 시내 중심지역이 시간당 75mm가량의 비가 내려도 무리 없이 배수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이하의 비에도 광화문광장은 물에 잠길 수 있다. 세종대왕의 어좌(御座)와 용포(龍袍)가,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이 물에 잠기는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광화문광장의 설계와 배수시설을 감안할 때 물난리는 사실 당연한 결과다. 먼저 물이 스며드는 재질이 아닌 아스팔트와 석판으로 뒤덮인 광장의 특성도 피해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아보기 어려운 광화문광장의 구조가 가진 한계다. 광장과 배수구역에 충분한 규모의 나무가 있다면 비가 내리는 동안 증발산(蒸發散)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유출을 순차적으로 지체해준다. 광장의 기능을 더하고 홍수 피해를 줄이고 도시 수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광장에 흙과 진정한 투수성(透水性) 포장, 나무 심기를 서둘러야 한다.
광장 위에 내리는 비가 전부가 아니다. 지금의 설계에 따르면 삼청동길과 인왕산 남측 유역에 내린 비는 광장으로 모였다가 시청 앞을 지난 뒤 숭례문을 돌아 서울역 광장을 거치고 나서 한강대로를 따라 강으로 향한다. 이렇듯 광장으로 연결된 도로망과 배수망을 통해 모여드는 도로 유출수와 지하 배출수를 각기 분산해 처리하는 계획은 아예 반영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개념이 있었다 해도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은 일단 모이면 문제를 유발한다. 거꾸로 문제를 막으려면 가능한 한 현장에서 분산 처리해야 하는 것이 도시 치수방재의 기본이다. 광화문 지역도 마찬가지다. 호우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침수를 막자면 배수구역을 적절히 분할해 물을 분산한 뒤에 처리하는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름 하여 ‘표면수 분산배출 계획’이다. 경복궁 동측의 중학천(삼청동길) 유역과 서측의 인왕산 백운동천 유역 등 사방에서 모이는 물길을 유사시 차단하고 분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