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폭우에 잠긴 광화문, 무엇이 문제인가

아스팔트 뒤덮은 광장, ㄱ자로 굽은 배수로가 피해 키웠다

  • 조원철│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woncheol@yonsei.ac.kr│

    입력2010-10-28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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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연휴 서울에 쏟아진 비로 물에 잠긴 한국의 대표 중심가 광화문 사거리의 광경은 많은 이를 경악케 했다. 서울 강서구 일대의 주택가에서는 침수피해를 당한 가옥과 상점이 속출했다.
    • 이 일을 과연 ‘103년 만의 9월 하순 홍수’라는 변명만으로 넘어가도 좋을까.
    • 한국의 수도는 아직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한가. 서울 중심가 도시시설의 배수설계와 서울시 방재대책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부했다.
    폭우에 잠긴 광화문, 무엇이 문제인가

    (왼쪽) 9월21일 오후 서울 지역에 쏟아진 기습폭우로 물바다가 된 광화문 사거리. (오른쪽) 2009년 7월 조성공사 막바지 단계의 광화문광장 모습.

    분명 엄청난 호우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밖에 안 되나’하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물의 흐름과 그 속에 담긴 생리를 공부하며 염려했던 일들이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졌으니 말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된 기상변화를 지켜보며 늘 마음을 졸이던 상황들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큰 비는 예상돼 있었다. 기상이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기상의 극한현상 등 수많은 표현은 이제 일상화하지 않았던가. 그에 대한 대책도 수없이 논의된 바 있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대표적이지만, 세계 어느 국가도 화석연료의 절대 사용량을 줄인 경우는 없었다. 대신 사용하는 에너지 구성비율 가운데 화석연료의 상대적 비율을 줄이는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만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고, 그나마 신흥국가들의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려는 방향으로만 작동해온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번 비보다 더 큰 규모의 호우도 예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극대 홍수’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책결정자들과 당국자들은 “예상을 뛰어넘은 강수량이었으므로 불가항력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거꾸로 당국의 예상과 계획이 충분히 현실성 있는 것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혹은 예상 규모 이내의 호우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나무가 있었다면

    서울시는 광화문 등 시내 중심지역이 시간당 75mm가량의 비가 내려도 무리 없이 배수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이하의 비에도 광화문광장은 물에 잠길 수 있다. 세종대왕의 어좌(御座)와 용포(龍袍)가,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이 물에 잠기는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광화문광장의 설계와 배수시설을 감안할 때 물난리는 사실 당연한 결과다. 먼저 물이 스며드는 재질이 아닌 아스팔트와 석판으로 뒤덮인 광장의 특성도 피해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아보기 어려운 광화문광장의 구조가 가진 한계다. 광장과 배수구역에 충분한 규모의 나무가 있다면 비가 내리는 동안 증발산(蒸發散)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유출을 순차적으로 지체해준다. 광장의 기능을 더하고 홍수 피해를 줄이고 도시 수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광장에 흙과 진정한 투수성(透水性) 포장, 나무 심기를 서둘러야 한다.

    광장 위에 내리는 비가 전부가 아니다. 지금의 설계에 따르면 삼청동길과 인왕산 남측 유역에 내린 비는 광장으로 모였다가 시청 앞을 지난 뒤 숭례문을 돌아 서울역 광장을 거치고 나서 한강대로를 따라 강으로 향한다. 이렇듯 광장으로 연결된 도로망과 배수망을 통해 모여드는 도로 유출수와 지하 배출수를 각기 분산해 처리하는 계획은 아예 반영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개념이 있었다 해도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은 일단 모이면 문제를 유발한다. 거꾸로 문제를 막으려면 가능한 한 현장에서 분산 처리해야 하는 것이 도시 치수방재의 기본이다. 광화문 지역도 마찬가지다. 호우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침수를 막자면 배수구역을 적절히 분할해 물을 분산한 뒤에 처리하는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름 하여 ‘표면수 분산배출 계획’이다. 경복궁 동측의 중학천(삼청동길) 유역과 서측의 인왕산 백운동천 유역 등 사방에서 모이는 물길을 유사시 차단하고 분산해야 한다.

    광장의 넓이와 배수구의 규모를 계산해보면 문제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지하에 매설된 배수관거로 이어져 지표수를 배출해야 할 배수구(또는 유입구)의 규모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규격을 40×90㎝로 확대한 것이나, 광장 동측의 중학천 배수로와 서측의 백운동천 배수로의 일부를 연계해 서측의 홍수 부담을 줄인 부분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광장뿐 아니라 연결된 도로 위에도 배수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물이 지하배수구로 충분히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더욱이 광장 밑에 매설된 배수관로의 규모에 대해서는 알 길조차 없다.

    저류조 제안이 거부된 이유

    대부분 90도 직각으로 설계돼 있는 배수관로의 구조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내리는 빗물을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기 어렵게 만든다. 백운동천이 청계천으로 연결되는 부분의 선형이 인위적으로 곡선화된 것은 대표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완전히 복개된 소하천들과 배수관로를 점검해 곡선이나 사선 형태로 유로의 선형을 개선해야만 충분한 배수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듯 도시시설의 설계는 배수문제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계획하고 심의하고 인준해 시공토록 해야 한다. 광장과 도로의 규모와 표면상태, 종횡 경사와 배수구의 연결상태를 모두 정밀하게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나마 청계천이 잘 정비되어 있었기에 주변지역의 더욱 광범위한 침수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예전 복개 상태였던 청계천을 매년 두 차례 이상 드나들었던 경험으로 봐도 분명 그렇다.

    광화문광장을 조성할 당시 여러 전문가는 그 아래에 대규모 저류조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최소한 30만㎥ 규모의 저류조가 필요하다는 추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저류조가 만들어져 있었다면 이번과 같은 호우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저류조의 쓰임새는 도시 홍수 피해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소방, 청소, 조경, 냉각용수 등 도시 수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녹색사업’이다. 이를 미처 고려하지 못한 단견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광화문광장의 역사성과 문화성, 경관과 조경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의 전문가들만 모여 광장의 설계를 심의하고 결정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광장을 이용할 시민들의 편리를 도모하고 만약에 빚어질 수 있는 불안정 요소를 제거하는 방재안전관리 대책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이번 침수사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장 정치적으로 생색이 나지 않는 사업에는 관심이 없다가 막상 일이 터진 후에야 부랴부랴 온갖 대책을 강구하는 관료사회의 습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양수기가 침수됐다?

    한걸음 나아가 서울시 전체의 배수시설을 들여다보자. 앞서 설명했듯 현재의 배수관리 기본정책은 물을 가능한 한 모으고 한강으로, 혹은 안양천과 중랑천, 탄천으로 양수해내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땅속에 물이 있어야 땅 위에도 생물이 살 수 있다는 간단한 원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지표면의 침투성을 강화하고 빗물을 분산해 처리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이를 개선할 첫 번째 원칙이다.

    이번 호우에서도 드러났듯 서울 일부 지역의 골목길은 침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도로를 계속 재포장하는 과정에서 원위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도로의 높이가 마당보다 높아져 골목길의 물이 주택가 마당으로 유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골목길의 배수로망 역시 빗물의 흐름을 불편하게 하는 직각형 구조이기는 마찬가지다. 광화문광장뿐 아니라 다른 도로의 배수구도 규격과 위치와 숫자를 조정해야 한다.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하수구의 3분의 2를 일부러 막아놓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가뜩이나 번번이 막히는 배수구를 일부러 예산을 투입해 막는 것은 불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막아놓은 하수구 때문에 도로가 침수되고 인근의 상가와 지하공간들이 피해를 보아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폭우에 잠긴 광화문,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 도쿄 지하 50m에 있는 와다야요이 간선 내부. 높이 8.5m, 길이 2.2㎞에 달하는 이 거대한 터널은 12만t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어 도쿄의 침수피해를 방지하고 있다.

    배수구역 계획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관련 당국자들은 한강변의 최종출구를 중심으로 모든 계획을 만든다. 그러나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벌어지는 침수는 최종출구 부근에서뿐 아니라 상류에서도, 중류에서도 발생한다. 이번 호우 때 침수된 광화문과 강서구 일대가 대표적이다. 배수능력을 따질 때 관로 단면의 크기만 계산할 뿐 관로망 전체의 물 흐름 성능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결과다.

    각종 지하시설과 지하도에 설치한 양수기는 막상 써야 할 순간에는 고장을 일으켜 가동되지 않는다. 침수됐기 때문이란다. 언뜻 그럴듯한 변명으로 들리지만, 양수기는 원래 침수되기 전에 가동해 침수를 막는 것이 목적이다. 우기(雨期)가 오기 전에 전기시설과 방수 여부를 확실히 점검하고 가동책임자나 가동규칙을 분명히 해둔다면 피해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임무가 무엇인지 아예 모르는 듯 ‘침수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되뇌는 것이다.

    유수지에 설치돼 있는 양수기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초대형 양수기는 일정 규모의 물이 있어야만 양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만큼 물이 찰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규모로 물이 차면 유수지의 저수능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배수 초기에는 소형 양수기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이유다. 소형을 사용하다 양수능력이 모자라면 차례로 큰 양수기를 투입하는 것이다. 각 양수장에 배치된 양수기를 소규모, 중규모, 대규모의 조합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도로 침수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관리자들이 현장에 나와 침수지역의 위치와 규모,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는 실제로 침수가 진행되고 있을 때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차후에 도로를 재포장하거나 개선하는 데 활용해야만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로가 침수되어 교통혼잡이 극에 달해도 이러한 목적으로 현장에 나오는 관료들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사무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넥타이 차림에 노란 작업복을 입은 자세로는 현장성 있는 대책 마련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발생빈도 기준’의 문제점

    이번 일을 겪은 뒤 관계당국은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유수지를 만들고, 대규모 지하배수로도 구상하고, 양수기도 증설하고, ‘물먹는 도로’라고 이름 붙은 투수성 도로포장도 실시하겠다고 한다. 모두 좋은 대책이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미 서너 차례는 반복해서 발표됐던 대책들이다. 막대한 규모의 예산과 공사 시간을 고려했는지, 계획과 설계와 시공지침은 확립했는지, 대안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성급하게 마련된, 대책을 위한 대책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다. 각각의 대안이 어떤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좀더 깊이 생각한 후에 결정해야 옳다. 더 많은 눈과 지혜를 모으고, 대규모 지하저류조나 지하하천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카고와 도쿄, 오사카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세 도시의 거대한 지하시설을 직접 살펴본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를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정과 부지 문제 해결, 효율성 검토 등 쉽게 넘기기 어려운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선진 도시들은 치밀한 사전조사와 계획을 바탕으로 이러한 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도 새로운 시설을 추가하고 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계획규모를 결정하는 현재의 방법 자체에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것은 지금까지 금과옥조로 사용해온 이른바 발생빈도 개념이다. 어떤 시설물이 설계상 처리할 수 있는 물의 양을 공학용어로 설계 수문량(水文量·hydrologic quan tity)이라고 한다. 발생빈도는 바로 이러한 수문량을 결정하는 데 쓰인다. 골목길 배수관은 10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호우까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더 큰 도로의 배수관은 20년에 한 번…하는 식이다.

    각종 배수시설의 수문량은 극치(極値) 통계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발생빈도 이론을 활용해 소위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최근 들어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초극치 현상이 발생할 확률을 제대로 산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2002년 발생한 태풍 ‘루사’의 강우량은 확률적으로 보면 발생빈도가 수백만년, 혹은 수천만년 수준의 규모였다. 도저히 실감할 수 없는 숫자인 것이다. 더욱이 비는 골목길과 주요도로에 똑같이 내린다는 점에서 기준에 차별을 두는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평범한 시민들은 일정 설계기준으로 설계하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쉽다. 정책결정권을 가진 관료들도 발생빈도에 대한 인식 자체는 일반 시민과 별 차이가 없다. 전문가 그룹에서도 무조건 큰 규모로 설계하는 게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주장하기 일쑤다. 이 문제에 관해 일관되고 통일된 기준을 설정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다른 기준을 갖다 붙이게 되는 이유다. 당초 발생빈도 80년 수준의 강우를 견디도록 설계한 뒤 불확실성에 근거한 여유고를 더했던 청계천을 두고, 200년 발생빈도 수준이라고 오인해 ‘이제는 안전하다’고 자위했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발생빈도 개념 자체가 현장에서 갖는 공학적 의미를 고민하지 못한 단견이다.

    미국에서는 하천의 수문량 규모를 정할 때 100년 발생빈도 규모에 90여㎝까지 여유 높이를 더하는 기준을 적용한다. 미국 국가한림원은 2006년부터 이러한 기준이 각각의 하천지점에 대해 어떤 신뢰도 혹은 위험성을 갖는지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역시 통일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과 함께 이를 각각의 현장에 맞게 해석하고 기준을 넘어서는 상황에 대해서도 고려할 줄 아는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하다. 단순히 매뉴얼만 따지지 말고 수치의 합리성과 공학적 판단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수문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불합리한 발생빈도 기준을 대체하기 위한 논의도 상당부분 진행돼 있다. 강우량과 강우지속시간, 배수유역의 특성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각각의 호우 상태별로 그 유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침수 수심, 면적, 손해 정도 등)을 구하는 방식이다. 이를 근거로 당국에서 투입할 수 있는 재정능력에 따라 적정 계획규모를 결정하는 이른바 한계비용방법(Marginal Cost Method)이다. 여기에는 예상되는 침수위험성을 사전에 주민들에게 알려서 ‘재해와 더불어 사는 방식’을 몸에 익히는 인식의 전환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자기가 사는 곳의 위험성을 미리 알고 비상시에 필요한 기초적인 행동요령을 인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는 이러한 자세가 매우 부족하다. 예를 들어 지하실 하수관의 역류를 방지하는 장치는 서울의 각 구청에서 무료로 제공하지만 관심을 갖는 시민은 별로 없다. 재해를 무조건 정부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최소한의 자구노력과 관심을 기울이는 행동하는 시민의 자세가 중요한 이유다.

    불확실성에 마주하는 자세

    앞서 말했듯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극한 기상현상이 지구촌 곳곳을 괴롭히는 현실은 그 대처방식에도 이제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극대홍수에 대비해 일본이 준비하고 있는 갖가지 대응책은 중요한 타산지석이다. 한국도 각각의 도시 특성에 적합한 시설과 규모를 근거 있게 마련해 장기적으로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시행해야 한다.

    극한 기상현상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는 언제나 ‘예산이 부족하다’는 당국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방재를 위해 확충한 기반시설은 시민의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당장 정치적으로 생색이 안 나는 ‘낭비사업’이라는 것이다. 규모 있는 방재시설 투자가 엄청난 손실을 막아주는 또 다른 의미의 투자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단견이다. 금전출납부와 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지도자들이 정책결정권을 오로지하고 있는 한 재해 피해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폭우에 잠긴 광화문, 무엇이 문제인가
    조원철

    1949년 경북 영덕 출생

    연세대 토목공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미 드렉셀대 토목공학 박사

    국립방재연구소장, 대통령비서실 수해방지대책단장 역임

    現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저서 :‘수리학’ ‘도시수문학’ ‘하천계획과 관리’ 외


    치수관리의 기본인 수공학(水工學)은 불확실성에 근거한 실용학문이다. 불확실성을 가시화, 계량화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 작업은 반드시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요구한다. 자연은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불확실성을 제대로 이해할 때만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제품과 시설,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기능이 지속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유지관리, 기능의 일부나 전부가 마비되는 상황을 최소화하는 예방복구 능력도 모두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 불확실성을 회피하거나 간과하지 않고 제대로 마주하는 자세의 중요성, 그것이야말로 이번 광화문 침수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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