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보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보상 지연에 피눈물 흘리는 파주 운정3지구 원주민의 피맺힌 절규

  • 구자홍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

    입력2010-10-29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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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서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으로 향하다보면 파주시 경계를 넘자마자 우측에 출판도시가 보이고 그 너머에 심학산이 있다. 좌측에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먼발치에 통일전망대가, 그 너머로 개성 송악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자유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인다.
    •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유로 길가에 검은색과 붉은색 글씨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 ‘보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MB 살려 주세요’ ‘토지보상 늦추는 LH 각성하라’ ‘김문수 지사는 공약을 이행하라’ ‘운정3지구 원주민을 보금자리에 파묻어라’ ‘운정3지구 원주민을 4대강에 수장시켜라’ 등.
    • 궁예가 도읍으로 정하려 했을 만큼 자연재해가 적고 농산물이 풍부해 축복받은 땅이라 여겨졌던 파주시 교하읍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보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2007년 6월28일.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인천 검단지구와 파주시 운정3지구를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했다. 파주시 교하읍 교하리와 당하리, 와동리와 동패리, 목동리, 다율리, 문발리, 신촌리, 연다산리, 오도리 일원에 걸쳐 있는 운정3지구는 692만㎡에 달하는 대규모다. 앞서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된 운정1, 2 지구를 합한 것과 맞먹는다. 당시 정부는 자족형 신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운정1,2 지구에 이어 3지구를 추가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대체농지’ 먼저 산 죄?

    운정3지구가 택지예정지구로 지정되자 주민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운정1, 2지구 개발사업이 일사천리로 추진되는 것을 지켜본 주민들은 담담히 이주 대책을 서둘렀다. ‘수용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대체농지와 공장부지를 마련하는 등 저마다 살 궁리를 했다.

    “정부가 하는 공익사업인데, 내가 반대한다고 철회되겠나. ‘어차피 쫓겨날 텐데 다른 곳에 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대토(대체토지)를 산 죄밖에 없어.”

    교하읍 동패리 김모(50)씨는 처음에는 차분하게 설명하다 갑자기 울화통이 치미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해 죽겠어. 정부 말 믿은 죄밖에 없는데…. 기자한테 하소연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채소 값 올라서 난리인데, 차라리 밭에 가서 채소라도 하나 더 기르는 게 낫지. 아무튼 정부 말 믿었다가 병신 된 거야. 내 땅 수용된다고 하길래 ‘싼 땅 사두자’고 먼저 움직인 죄밖에 없어. 그것도 죄라면 복창 터져 못 살지. (잠시 숨을 고른 뒤) 누구 탓하고 싶지는 않은데,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해달라고 한 적 없고, 농사 짓고 살다가 땅 빼앗아간다길래 다른 데서 농사지으려고 논 샀다가 병신 된 거야. 나이 50에 정부한테 공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원 참.”

    김씨는 운정3지구에 자신과 부친 명의로 절대 농지 2500평과 근린생활시설과 공장이 들어선 2500평을 보유하고 있다. 운정3지구가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자 36억원을 대출받아 파주시 적성면에 농지와 임야를 매입했고, 연천군에 있는 한 영농조합법인을 인수했다. 지구 지정 이후 1년 정도면 보상이 이뤄질 줄 알고 ‘대체농지’를 매입했지만, 보상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공장을 세놓았지만 세입자도 보증금을 이미 다 까먹고 2년치 임대료가 밀려 있는 상태다.

    “월세를 2년째 못 받았는데, 그냥 나가라고 했어. 강제로 내보내려면 소송해야하는데, 이자도 못 갚는 판에 소송할 돈이 어디 있어.”

    2006년 처음 토지수용계획이 발표되고 2007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확정된 뒤 원주민 대부분은 김씨처럼 대출받아 대체토지를 구입했다. 짧으면 몇 개월, 길어도 1년 정도 지나면 토지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상이 한없이 늦춰지면서 막대한 이자 부담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자에) 시달린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돼요. 죽지 못해 사는 분이 많아요. 주민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분노는 대출 이자의 몇 백배쯤 될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멀쩡한 자기 땅이 수용된다고 해서 대출받아 대체토지 샀다가 이자만 물고 있는데…. 신용불량자는 기본이에요. 파산하거나, 사채업자 피해 도망 다니는 분도 여럿 돼요.”

    “보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파주 운정3지구 보상이 지연되면서 원주민 대부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이자 부담에 고통 받고 있다. 보상을 마치고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운정 1,2지구(왼쪽)와 바로 인접한 운정 3지구(오른쪽)의 모습이 대비된다.



    “보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파주 운정3지구 수용비상대책위 정상교 사무국장(왼쪽)과 임인숙 부위원장(오른쪽). 임 부위원장 집에는 붉은 페인트로 쓴 번호가 매겨져 있다.

    파주 운정3지구 수용비상대책위 정상교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짧게 잘린 그의 머리카락은 악에 받친 듯한 주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가정파탄까지 부른 보상 지연

    비대위 사무실에서 만난 동패리 황모(49)씨는 “택지로 지정되면 어차피 강제수용될 테니, 농사지을 땅이라도 사두자는 생각에 대출을 받아 (대체토지를) 샀다”고 했다.

    운정1, 2지구에 거주하던 지인들이 토지보상금을 받은 뒤 대토를 매입하려다 땅값이 올라 낭패를 본 것을 지켜본 것이 화근이었다.

    “운정2지구에서 농사짓던 사람이 1000평을 보상받았는데, 보상금 받아 땅을 사려고 알아보니까 700평밖에 살 수 없었다고 그래요. 지구로 지정돼서 보상금 나오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데 그 사이 땅값이 올라서 수용된 땅만큼 살 수 없었던 거지. 그런 얘기를 들은 터라, 조금이라도 쌀 때 땅을 사둔다는 것이 그만….”

    황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했다. 비상대책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갤러리 林’ 임인숙 대표는 보상이 지연되면서 신용불량자가 됐고, 최근에는 법원에서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임씨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 자녀에게 돈을 빌려 가정파탄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탄했다.

    “2000년에 400평 정도 땅을 사서 파주로 이사 왔어요. 내가 원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작업실과 전시장, 창고 등을 지어 갤러리를 운영했지요. 2004년에는 5층 규모로 증축하려고 설계까지 마쳤죠. 그런데 택지지구로 지정 된다 안 된다 말이 많아서 증축을 미뤘어요. 그러다 정 안 되겠길래 2006년에 부동산에 매물로 내놨어요. 애초 이 땅을 살 때 대출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때(2006년) 덜컥 지구 지정(택지예정지구)이 된 거예요. 그래서 이사 가서 살 요량으로 일산 덕이동에 아파트를 분양받았죠. 계약금으로 7800만원을 줬어요. 2008년 12월31일에 사업승인이 떨어져 곧 보상이 이뤄지나 했더니 지금껏 미뤄진 거예요. 작년에는 지장물 조사 나왔다며, 집이며 창고에 다 빨간 페인트로 번호를 다 매겨놓아서 1년 넘게 갤러리 운영도 못하고 있어요.”

    임씨는 보상이 지연되면서 갤러리 운영도 못하고 자금흐름이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법원에 드나드는 주민들

    “빨리 보상이 안 되면 아파트 계약금도 다 날릴 판이에요. 중도금은 건설사가 무이자로 해줘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데, 연말에는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그것뿐이 아니에요. 수용지구 외에 공장으로 쓰는 땅이 300평이 있는데, 보상 받으면 상가나 원룸을 지으려고 설계를 했어요. 그래서 2008년부터는 세도 안줬죠. 한 달에 300만원씩 세를 받았는데…. 그런데 보상이 늦어지니까, 이자가 또 이자를 낳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예요. 공장 있던 땅도 대출을 끼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매달 300만원 정도 이자를 냈는데, 지금은 1100만원으로 이자가 늘었어요. 결국 아들이 집 사려고 모아놓은 1억5000만원을 빌려 썼죠. 그 돈 때문에 가정불화까지 왔어요.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나를 미워하고, 사돈댁에서도 자기 딸 아파트도 못 사게 됐다고 원망하고. 이제는 왕래도 없어요. 올해 초에 딸아이 결혼하는데 아들 며느리 없이 결혼식을 치렀다니까요.”

    임씨의 갤러리 건물들에는 붉은 글씨로 20010이란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현관 유리에는 전기료 체납에 따른 단전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임씨가 대출금을 갚으라며 찾아오는 은행 직원들에게 쓴 ‘미안하다’는 내용의 장문의 편지도 붙어 있었다. 등기로 배달된 우편물은 자동차 압류 경고 통지서였다. 견디다 못한 임씨는 지난달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법원에 갔더니 개인회생 신청했다고 판사가 무슨 상장같이 생긴 것을 하나씩 나눠주더라고요. 뭐 좋은 일이라고….”

    비대위 사무실에서 주민들과 점심식사를 막 마칠 즈음 황모(59)씨가 “법원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들어섰다. 정상교 비대위 사무국장은 “운정3지구 주민 가운데 황씨처럼 법원을 드나드는 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황씨는 운정3지구 지정 이후 자신 명의의 1400평 땅이 수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10억원을 대출받아 문발리에 주택부지를 구입해 건물을 올린 것이 발목을 잡았다. 보상이 지연되면서 건축비를 지급하지 못했고, 결국 건축업자가 제기한 ‘건축비 지급 소송’에 휘말린 것. 황씨는 “1억 정도 (건축비를) 못 주고 있다”며 “살다보니 법원을 드나들 일도 다 생깁디다”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공장문도 닫아야 할 판

    운정3지구 보상이 지연되면서 피해를 보는 이들 가운데에는 농사짓던 주민 외에도 이곳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이들도 있다. 이들은 막대한 이자부담에 공장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동패리에서 부품제조 공장을 운영하던 유모씨는 운정3지구가 수용된다는 소식을 듣고 공장을 이전할 부지를 물색, 김포에 대체토지를 구입했다 낭패를 봤다.

    “공장이란 게 하루아침에 이전이 됩니까. 토지에 건물까지 올라가 있어야 기계를 옮겨 공장을 바로 가동할 수 있는 건데.”

    유씨는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시설자금 30억원을 대출받아 몇 년째 꼬박꼬박 이자를 갚아왔다. 그런데 거치기간이 끝나고 원금까지 납부해야 하는 시한이 도래해 또다시 대출을 받아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했다. 원금을 갚기 위해 또다시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대출 한도가 다 차서 대출도 안 된답니다. 이러다가 흑자 도산하는 것 아닌가 몰라요. 65년 동안 피땀 흘려 모아온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릴 판입니다. 억울해서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유씨는 보상이 지연되면서 이자부담이 산더미처럼 커져 올 연말이 지나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와 국토해양부, LH공사와 경기도 등에 탄원서를 보냈지만, 어느 곳에서도 이렇다 할 답변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정부 말을 못 믿으면 누구 말을 믿어야 한단 말입니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고. 답변조차 안 하니,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

    유씨는 2008년 있었던 숭례문 화재사건을 언급했다. “(방화한 사람이) 고양시 풍동에 살던 사람이에요. 그분도 건설사와 보상 문제로 억울해하다 그런 일을 저지른 겁니다. 억울함이 사무치면 혼자 안 죽습니다. 원통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거예요. 제2의 숭례문 화재사건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단 말입니다. 제발 우리의 억울한 사연을 잘 좀 전해주세요.”

    “보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보상지연으로 대출이자는 물론 전기료도 내지 못해 단전 경고문이 나붙었다. 가운데는 리스 차량 법조치 예정 안내장이고 우측은 집에 찾아오는 채권자를 위한 사과문.

    보금자리와 4대강 때문?

    유씨의 호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나온 절규였다. 돈 잘 버는 공장을 갖고 있던 그가 정부 말을 믿고 수용에 대비했다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게 된 사연은 안타깝다 못해 참담했다.

    주민들은 2007년 대선과 토지공사와 주공이 통합한 LH공사 출범 등을 거치며 운정3지구가 격랑에 휩싸였다고 보고 있다.

    “정권 바뀐 뒤로 이 모양이 된 게야. 보금자리를 한다, 4대강을 판다 하면서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한 운정3지구 사업은 나 몰라라 하는 거지. 정권 따라 말이 달라지면 누구 말을 들어야 되는 거야. 보금자리도 정권 바뀌면 운정3지구 꼴 나는 것 아닌지 몰라.”

    교하읍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김모(46)씨의 푸념이다.

    김씨는 직접 운정3지구에 토지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도미노처럼 지역 상권이 무너지면서 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경우다.

    “처음에는 분위기 좋았어요. 개발되고 보상금 나온다고. 그런데 이제는 사업이 아예 안돼요. 운정3지구 안에 있는 상가는 다 철시해서 흉물처럼 방치돼 있잖아요. 처음에는 무슨 창고형 매장이다 뭐다 하면서 장사들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운정3지구 보상이 늦어지면서 인근 상권까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만 불쌍하지. 자기 땅에 말뚝하나 못 박게 됐으면서도 이자만 물고 있는 꼴이라니. 쯧쯧”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면 각종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신축은 물론 증축 등 시설물을 고칠 수조차 없다. 벌써 3년 넘게 행위제한을 받게 되면서 매매는 아예 실종된 상태다.

    “누가 와서 땅을 사겠어. 건물은 텅텅 비고. 동네 자체가 아주 을씨년스러워. 서로 쉬쉬하니까, 동네사람끼리도 말을 잘 안 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파주 운정3지구와 교하읍 일대는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상 대대로 교하에서 살아왔다는 70대 촌로는 “하루빨리 보상이 이뤄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정말 누가 죽어나가길 바라는 건가. 왜 자꾸 미루는지 몰라”라며 장탄식을 쏟아냈다.

    사채업자 무서워 피신하기도

    운정3지구가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된 이후 LH공사가 2008년 3월 파악한 운정3지구 내 대출 현황은 7793억원에 달했다. 2600명의 원주민이 1인당 3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주민들과 비대위 측은 “적어도 1조2000억원 이상 될 것”이라고 했다. 보상이 2년 이상 지연되면서 이자 부담이 커진데다 친인척에게 빌린 돈과 사채를 포함하면 금융기관 대출 총액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비대위 사무실이 있는 여기만 해도 LH공사가 파악한 대출총액에는 제대로 포함이 안 된 거예요. 여기 사장님은 이자를 감당 못해 사채를 끌어썼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었요. 지금은 (사채업자를 피해) 피신 중이에요. 비대위원장이 사채업자 무서워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까요. 답답한 노릇이에요.”

    정상교 비대위 사무국장의 얘기다.

    박용수 비대위원장은 가구공장을 짓기 위해 동패리에 땅을 샀다가, 전시장을 짓고 공장을 막 지으려던 시점에 지구 지정이 발표되는 바람에 4년 가까이 나대지로 방치한 상태다. 수용될 것을 예상하고 대출받아 별도로 공장 지을 땅을 샀는데, 이자를 감당 못해 사채를 끌어 썼다 피신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

    자기 땅을 버젓이 두고 도망다녀야 하는 박 위원장의 처지가 딱해 보였다.

    LH는 누구를 미소 짓게 하는가

    그렇다면 파주 운정3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신도시 사업을 총괄하는 LH공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파주신도시사업부, 본사 신도시사업부, 사업조정심의실 등 해당 부처를 찾아 연락을 취했다.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대답을 피했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더니 “우리 공사 입장은 홍보실을 통하기로 했다”며 홍보실로 답변을 미뤘다.

    홍보실 관계자는 “공사 재무개선과 사업구조조정이 맞물려 검토 중에 있다”며 “사업조정 결과에 따른 영향이 크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1월 중순쯤에나 정확한 발표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9월말까지는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다 다시 11월 중순으로 미뤄졌다. 주민들은 ‘G20 정상회의 때문에 미루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 전에 사업 취소 결정이 나면 주민들이 가만있겠어요. 그것을 우려해 뒤로 미룬 것 아닌가 싶어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대놓고 얘기를 못해요. 혹시라도 밉보일까 싶어서….”

    주민들은 감당 못할 이자 부담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보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절규는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지구 지정만 안됐어도 내 땅에서 떵떵거리면서 농사짓고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이게 뭐야. 맘대로 지정할 때는 언제고, 이랬다저랬다 사람을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야.”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중에도 주민의 피맺힌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LH공사의 통화대기음은 운정3지구의 절규와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를 웃게 하죠. 사랑이 숨쉬는 곳. 나를 행복하게 하죠. 행복한 우리 집은 LH. 웃음이 넘치는 LH. Make me smile. Make me happy. 당신의 친구, 당신의 LH.’

    LH는 도대체 누구의 친구이며, 누구를 미소 짓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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