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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황장엽 선생을 추모하며

“기자라고 바쁘다는 핑계 대지 말고 그저 열심히 공부하라우”

  • 신석호│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

고(故) 황장엽 선생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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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황 선생을 지켜보는 동안 깐깐한 할아버지의 마음속에 살아 뛰노는, 환히 웃는 어린아이의 성정을 봤다. 2009년 8월7일 동아일보에 온 그가 최남진 화백이 그려준 캐리커처 액자를 받아 들고, 또 자신이 총장으로 있던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주성하 기자를 만나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10년 8월15일 광복절에 만나 꼭 65년 전인 1945년 8월15일 강원도 삼척에서 강제징용 중 해방을 맞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는 마치 22세 청년으로 돌아간 듯 미각과 청각과 시각이 젊어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원도 말이 ‘와’ 자를 써. 어데가시와? 그러는 거지. 그 짝에 참 경치 좋은 데 많~습니다. 주문진 같은 데도 아주 깨끗했어. 강릉도 감이 좋은 것이 있지(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감, 그중에서도 곶감이다). 막걸리는 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시큼한 것을 한 사발씩 먹기도 했다. 지금 막걸리는 잘 만들어 좋지만. 그래도 해방된 날 누군가 쌀막걸리를 만들어 돌렸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금방 가버렸어….”

북한 급변사태론에 동의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버린 첫날 저녁 빈소에서 만난 한 측근은 “선생은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 때 가장 행복해했던 것 같다. 마치 돌잔치의 주인공인 아이처럼 기뻐했다”고 회고했다. 아마도 책을 쓰고 싶어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북한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그래서인지 황 선생은 1997년 남한에 온 뒤 올해 5월 제자인 이신철 박사와 함께 ‘논리학’(시대정신)을 낼 때까지 모두 20여 권의 책을 남겼다. 그는 사망 당시에도 이 책을 비롯해 몇 권의 개정 증보판을 준비 중이었다. 회고록도 1998년 처음 낸 뒤 2006년 개정판을 냈다.

이 글을 통해 선생의 철학과 평소 주장을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선생이 2009년 8월7일 동아일보에 와 강연한 내용은 8월10일자 동아일보에 소개했다. 열흘 뒤인 8월20일에 그는 다시 회사를 방문해 인터넷뉴스 방송인 동아 뉴스스테이션에 출연했다. 천안함 사건 및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이 보낸 암살조 검거 이후인 올해 4월23일 만나 나눈 내용은 다음 날 인터뷰 기사로 실렸다. 선생의 광복절 회고담은 올해 8월17일자에 나갔다.



선생의 철학과 사상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한다면 ‘중간의 철학’이라는 점이다. 선생은 말하고 글을 쓸 때 어느 것이나 양쪽의 편향을 지양하고 수렴, 창조적 발전의 원리를 강조했다. 따라서 선생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극보수’가 아니다.

선생은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강조한 집단주의가 싫어 한국행을 택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개인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자주 “인간은 개인적인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 존재의 두 면을 가지고 있다. 개인만 강조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고, 집단만 강조하면 개인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면이 훼손될 수 있다. 두 면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의 인간중심철학의 중요 테마가 되는 집단주의와 북한 등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시도했다 실패한 계급주의적 전체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민주화운동을 위한 전략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유행처럼 번진 북한 급변사태론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김정일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을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엘리트들이 뭉쳐 후계체제를 확립할 것이라는 데 한 표를 줬다. 이는 북한이 곧 무너져 남한이 독일식 통일을 이뤄야 하고, 이룰 수 있다는 보수 진영의 기대심리와는 다른 것이다.

선생이 북한민주화를 위한 대안과 전략의 일계(一計)로 한미동맹 강화를 제시한 것은 보수진영의 논리와 같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미국과의 관계만큼이나 든든하게 해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일종의 ‘용중론(用中論)’이라고 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맹주를 넘어 세계 제2의 파워가 된 중국을 넘어 중국의 뒷마당에 있는 북한 문제를 우리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전략적인 태도인 것이다.

그런데 중국식 개혁개방이란 공산당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경제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보수진영이 있으며 선생과 함께 망명한 김덕홍씨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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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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