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2014

9장 조중전쟁 (朝中戰爭)

  • 입력2011-03-18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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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만 중국군의 남진이 시작된 가운데 교도대, 청년근위대, 노농적위대로 구성된 북한 반란군은 중국군 40집단군을 공격한다. 북한 군부는 김정일 지지파와 2군단사령관 김경식을 주축으로 한 반(反)김정일파, 중립을 표방한 제3세력 세 파로 갈라진다. 김정일은 박성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군의 진주를 ‘내정간섭’과 ‘침략’으로 규정한다.
    • 중부전선에서는 북한군 1개 연대 병력이 한국군에 투항해온다.
    • 이동일은 송아현과의 통화에서 북한 반란군을 ‘혁명군’으로 표현하는데…. <편집자>
    2014


    2014년 7월26일 토요일 14시, 개전 27시간10분25초 경과.

    전화기를 귀에 붙인 심양군구사령관이며 조선진주군사령관 후성궈가 두꺼운 눈꺼풀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예, 제4장갑사단은 전멸했습니다. 사단장 왕이안 중장 이하 참모들까지 모두 전사했습니다.”

    후성궈의 말끝이 떨렸지만 계속한다.



    “곽산에 파견했던 제4장갑사단의 전차 268대 중 살아 돌아온 전차는 없습니다.”

    상황실 안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후성궈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통화 중이다. 그때 수화구에서 시진핑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 상황은 어떻습니까?”

    “425군단은 방어태세를 갖추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후성궈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주석동지, 그러나 이대로 둔다면 해방군의 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재공격의 우려도 커집니다. 따라서…….”

    “기다리시오.”

    차갑게 말을 자른 시진핑이 한 마디씩 차분하게 말한다.

    “북한군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소.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시오.”

    “알겠습니다. 주석동지.”

    그때 통신이 끊겼으므로 허리를 편 후성궈가 길게 숨을 뱉는다.

    “425군단은 39집단군을 투입하면 다섯 시간 안에 궤멸시킬 수 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참모장 양훙이 말했지만 외면하고 있다. 그도 시진핑의 지시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김정일은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윤국순과 친분이 있는 425기계화군단의 대좌 한 명이 비밀리에 연락을 해온 것이다.

    “전멸한 장갑사단은 제16집단군 제4장갑사단입니다. 곽산에서 빠져나간 전차는 단 한 대도 없다고 했습니다.”

    마치 전공을 보고하는 것처럼 말했다가 힐끗 김정일의 눈치를 살핀 윤국순이 헛기침을 했다.

    “지금 425군단은 중국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전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중국군은?”

    김정일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윤국순의 목소리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20분 만에 1개 장갑사단이 전멸했으니까요.”

    김정일은 시선을 돌려 벽에 붙은 상황판을 보았다. 425기계화군단이 위치한 평안북도 정주에는 검은 등이 켜져 있다. 김정일의 지시로 김경식 일당의 군부대가 위치한 지점에는 검은 등을 켜라고 했기 때문이다. 윤국순이 김정일의 시선 끝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위원장 동지, 저 등빛을 바꿀까요?”

    평양 주변 군부대의 등은 모두 붉은색이다. 4군단이 위치한 해주시에도 붉은 등이 반짝이고 있다. 이윽고 김정일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흰색으로 해.”

    그렇다면 중립이다. 황해북도 봉산 근처에 흰 등이 외롭게 켜져 있다. 바로 12군단인 것이다. 김정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주변 장성들은 다 들었다.

    “박정근이가 역사에 애국자로 기록될지도 모르겠군.”

    7월26일 14시20분, 개전 27시간30분25초 경과.

    막사 안으로 들어선 이동일이 도열해 선 해병들을 둘러보았다. 1소대장 황찬우 중위가 보고했다.

    “총원 39명, 부상 8명, 현재원 31명. 집합 끝.”

    46용사가 이제 39용사로 줄었고 그중 부상으로 누워 있는 병사가 8명, 이제 전력은 31명이다. 전사자는 7명. 조한철만 막사 뒤쪽의 공터에 매장했고 나머지는 이곳저곳의 전장에다 버려놓고 왔다. 매장할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시신은 낯선 땅에서 비바람에 시달릴 것이었다.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평안북도 정주에 주둔한 북한군 425기계화군단이 중국군 1개 전차사단을 공격, 전멸시켰다.”

    그 순간 병사들이 동요했다. 생기 띤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본다. 다시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이로써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국군과 북한군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거야, 그래서.”

    목소리를 낮춘 이동일이 다시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12군단 특수정찰대와 함께 북상, 반란군과 합세해 적진을 교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동일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지만 모두 숨죽인 채 주시하고 있다.

    “그래, 난 안다. 우리가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꼭 죽는 생명체, 국민으로서 남자로서 이렇게 멋지게 죽을 기회가 또 있겠냐? 그렇게 생각하고 같이 떠나자꾸나.”

    그러고는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나가버렸지만 남은 30명은 몇 초 동안 숨소리도 내지 않고 서 있었다.

    “자, 준비.”

    그래도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황찬우다. 소리친 황찬우가 뒤에 선 이용섭 하사한테 투덜거리며 물었다.

    “중대장 연설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어?”

    이용섭이 눈만 껌벅였으므로 황찬우가 대답까지 했다.

    “영화에서 말야, 무슨 장군이 한 것 같은데.”

    7월26일 15시, 개전 28시간10분25초 경과.

    최기상 앞으로 다가온 사내가 경례 대신 손을 내밀었다.

    “난 10군단 산하의 92교도사단 회천 군수공장 교도대 소속의 백한성이요.”

    “김형기와 김경식은 도발 후의 여러 변수까지 고려했겠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 못한 것 같소.”

    누가 봐도 지금 가장 곤경에 빠진 세력이 김경식 일당이다. 끌어들인 중국군까지 중립군과 반란군의 협공을 받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전쟁만 일어나면 남으로 밀고 들어가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지요.”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강성일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어서 전쟁이 일어나기만 바란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소. 나뿐 아니라 인민군 병사 대부분이 그랬을 거요.”

    “그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따라 웃은 이동일이 되물었다.

    “남쪽 국민은 열심히 일을 해서 잘 먹고 잘살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건 강도짓 아닙니까?”

    “그걸 따질 정신이나 있습니까?”

    입맛을 다신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인민군도 굶어서 죽게 생겼는데 말이오. 자식을 내다 팔고 중국으로 종살이를 하러 가는 형편인데 강도짓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죠.”

    “내가 궁금하기보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잠깐 말을 그쳤던 이동일이 굳어진 표정으로 강성일을 보았다.

    “지금까지 북한 군인이나 국민이 그런 머저리 같은 정권을 갈아치우지 못한 것이 그래요.”

    강성일의 얼굴도 굳어졌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자유나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누구한테 빼앗아 가질 수도 없는 것이고요. 남한 국민은 스스로 쟁취했고 북한도 그래야 자유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강도처럼, 더구나 같은 민족을 공격해서 뺏다니요. 그렇게 만든 놈들도 나쁜 놈들이지만 따르는 사람들도 못나고 한심하지 않습니까?”

    “이 대위는 잘 몰라요.”

    쓴웃음을 지은 강성일이 천천히 머리를 내저었다.

    “이곳은 이 대위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세상이오. 이곳은.”

    주위를 둘러본 강성일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을 잇는다.

    “북조선 전체가 감옥 같은 세상이오. 민중은 태어났을 때부터 세뇌되어서 짐승처럼 길들었소.”

    문득 말을 멈춘 강성일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그러다가 이제 둑이 무너진 거죠. 그놈들의 오판 덕분에 기회가 온 것이지.”

    강성일의 목소리가 떨렸으므로 이동일은 외면했다. 기회는 맞다. 그러나 이것 또한 민중이 일어나 만든 기회는 아닌 것이다. 손목시계가 16시35분을 가리키고 있다. 개전 29시간45분25초가 경과했다.

    “발사!”

    제16집단군 제21포병사단장 마오융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직접 명령을 내렸다. 상황판 아래쪽 시계가 16시36분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마오융은 포병사단에 북한군 제425기계화군단의 우측면에 위치한 제17, 제18 2개 기계화보병여단에 대한 발사 명령을 내린 것이다. 제425기계화군단은 기계화보병여단 5개를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반면 중국군의 21포병사단은 5개 포병연대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1개는 미사일 연대다. 각 연대는 또 5개의 포병대대로 구성되었고 1개 대대는 155㎜ 자주포 18문과 125㎜ 자주포 18문씩을 보유하고 있어서 사단 전체의 화력을 집중하면 가공할 공격력이 된다. 그때 사령부 벙커에까지 포성과 함께 진동이 전해져 왔으므로 마오융이 머리를 들고 상황판을 보았다. 북한군 2개 여단은 집중 공격을 받으면 10분을 배겨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부대 좌표는 입력된 상태였고 거리는 50㎞ 미만이다. 노출된 북한군은 거의 궤멸될 것이다.

    “바라지 않던 상황이 발생했군.”

    상황실의 무거운 분위기가 거슬렸던지 마오융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북조선군의 자업자득이야.”

    “425군단은 북조선군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참모장 리젠성이 거들었다.

    “반란군입니다. 우리는 반란군의 공격을 받고 대응한 것입니다.”

    그때 상황군관이 무전기를 귀에서 떼고 보고했다.

    “적은 대응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하고 리젠성이 응답했을 때 군관이 말을 잇는다.

    “목표의 65%가 파괴되었습니다.”

    이곳은 오산의 한미연합사 전시상황실 벙커 안이다. 위성 화면을 응시하는 수십 명의 지휘관은 이제 침묵하고 있다. 적위대가 중국군을 공격할 때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지금 모두의 표정은 굳어 있다. 중국군 포병 사단의 위력은 엄청났다. 정주 외곽에 주둔한 제17, 18기계화여단의 포병 진지가 먼저 파괴되더니 장갑차부대, 보병 진지 순으로 포격을 당하고 있다. 북한군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육참총장 조현호가 문득 머리를 들고 물었다.

    “425군단 전차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한국군 장교 하나가 소리쳐 대답했다. 425기계화군단의 5개 여단에서 소집된 전차 150대를 말한다. 기동훈련 중이던 그 전차대가 중국군의 막강한 제4장갑사단의 최신형 99식 전차 270대를 궤멸시켰다. 그런데 그 전차대가 각 부대로 복귀했는지 어쩐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조현호 옆에 서 있던 작참부장 박진상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얘들은 지하 대피소가 너무 많아서 땅속에 박힌 것 같습니다.”

    그때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각 지휘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옆쪽 위성 화면에는 불꽃이 일어나는 생생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음소거 장치를 누른 것처럼 그림만 움직인다. 모두 자리에 앉았을 때 우드워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이 다시 급박하게 변해가는 것 같소. 중국군이 425군단만 제압할 것 같지가 않아요.”

    “화천의 40집단군 병참본부가 피습당하면서 중국군은 인내의 한계를 넘은 겁니다.”

    해리슨이 말하더니 힐끗 상황판을 보았다.

    “중국군은 기계화보병사단을 중심 전력으로 하는 제39집단군을 앞세우고 평양으로 남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평양만 장악하면 북한을 먹게 되니까요.”

    맞는 말이다. 거기에다 김정일과 김경식 양대 세력은 서로 견제하느라고 중국군에 대한 대응은 하지 못한다. 오히려 중국군을 끌어들이려고 경쟁을 벌일 것이었다. 그때 합참의장 장세윤이 말했다.

    “그렇다면 12군단이 다시 키를 쥐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모두 머리를 돌려 상황 스크린을 보았다. 그 옆쪽 위성화면에는 여전히 섬광이 번쩍이고 있었지만 일방적이다. 북한 측 진지에서는 발사 섬광 대신 폭발 화염만 일어나고 있다. 박진상이 머리를 돌려 옆에 앉은 해병사령관 정용우를 보았다.

    “걔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이동일과 해병들을 묻는 것이다.

    7월26일 16시50분, 개전 30시간 25초 경과.

    중부전선 제26사단 참모장 이익순 준장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서서 소리쳐 묻는다.

    “뭐야? 똑바로 말해! 부대라니?”

    이익순은 말끝마다 ‘똑바로’를 붙였기 때문에 별명이 ‘똑바로’다. 그때 전방 GOP를 맡은 제1연대 2대대 1중대장 홍석호 대위의 목소리가 ‘똑바로’ 들렸다.

    “예, 지금 1개 부대 병력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비무장이고 선두에 선 인민군은 장대에 백기를 매달고 있습니다! 1개 부대 이상입니다!”

    “야, 똑바로…….”

    했다가 흥분한 이익순이 말을 바꿨다.

    “투항해온단 말이냐?”

    “예, 참모장님.”

    “도대체 몇 명이나…….”

    “그게 수백 명입니다. 아니, 1개 연대 병력쯤 됩니다!”

    했다가 부하 보고를 받는지 5초쯤 말이 끊기더니 이어졌다. 이제 소리친다.

    “선두에 장군이 있답니다! 소장이라는데요! 그 뒤로 대좌가 두 명, 중좌가 세 명, 병사들은 수를 세지 못하겠답니다! 무더기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까요?”

    “받어!”

    버럭 소리쳤다가 중대장이 ‘똑바로’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서 목소리를 더 높였다.

    “통과시켜라! 내가 연대장한테 따로 지시는 할 테니까 받아들여!”

    GOP 긴급사항은 사단에 직보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이익순이 다시 소리쳤다.

    “1연대장 바꿔라! 2대대장도 함께 듣도록 같이 연결해!”

    이제 인민군의 대량 투항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군이 세 세력으로 나뉘면서 끊임없이 투항병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한국군 지휘부는 이런 대규모 투항을 예상하고 있었다. 세 세력으로 나눠지면서 각각 장악력과 견제가 약해진 반면에 단위 부대장의 결정권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민군 정규군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볼 만한 사안이다. 그때 정보참모가 다가와 소리치듯 보고한다.

    “2군단 소속 제43사단 3연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남북전쟁의 주모자 김경식의 군단이다. 눈을 치켜뜬 이익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시발놈, 이제 곧 제 몸뚱이는 다 떼어져 나가고 주둥이만 제55호위대 벙커에 남게 되겠구만.”

    “남하합니다!”

    위성 스크린을 점검하던 장교가 소리쳤을 때는 17시10분, 개전 30시간20분25초가 경과했을 때였다. 모두의 시선이 위성 스크린으로 모이면서 상황실 안은 조용해졌다. 예상한 대로 제39집단군의 2개 기계화보병사단인 제116, 119사단이 남진을 시작한 것이다. 그 뒤를 제3장갑여단이 따르고 115보병사단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스크린 전체가 출렁이고 있다.

    “빌어먹을.”

    잇사이로 욕설을 뱉은 사내는 평소 점잖던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다. 영어로 욕설을 했으므로 미군 지휘관들도 장세윤을 보았다. 장세윤이 머리를 돌려 육참총장 조현호를 보았다.

    “우리가 저놈들하고 결국은 붙어야 하는 게 아뇨?”

    “그래야 될 것 같은데.”

    바로 말을 받았지만 조현호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침묵했다. 이제 40집단군의 뒤를 따라 39집단군과 16집단군이 움직일 것이다. 각각 10여만명의 병력과 장비를 갖춘 30만 대군이 남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할 공군, 해군력이 배후에 있다. 랴오닝성 군구의 5개 항공사단, 그리고 칭다오의 북해 함대에는 수십 척의 구축함과 상륙함, 거기에다 잠수함 전대까지 대기 중이다. 그때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삐라가 북한 땅에 수백 톤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삐라로 도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웬일인지 한국군 지휘관들의 굳어진 표정이 조금 풀린 것 같다. 그러나 한국말을 못 알아들은 미국 지휘관들은 그대로다.

    “투항자는 즉결처분해!”

    버럭 소리쳤지만 김경식의 말끝이 흔들렸다. 얼굴도 상기되어 있다. 전화기를 고쳐 쥔 김경식이 잇사이로 말했다.

    “그 공간을 2연대로 메워! 서둘러!”

    그러고는 상대방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이제야 43사단 3연대 병력 2700여 명이 한 놈도 빠짐없이, 그것도 무기를 모두 내팽개친 채 맨몸으로, 거기에다 부사단장의 인솔로 분계선을 넘어 투항해버렸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다. 이제 전연지대 한쪽은 뻥 뚫렸다. 제2연대 병력으로 메우라고 했지만 그쪽도 위험하다. 호흡을 가누고 있는 김경식의 옆으로 무력부 부부장 심철 상장이 다가와 섰다. 그도 김경식 휘하의 1개 연대 병력이 투항했다는 것을 안다.

    “사령관 동지, 중국군이 남하합니다.”

    심철이 낮게 말하자 김경식은 머리를 들었다. 이곳에 위성 스크린은 없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연락망이 잘 짜여져 있어서 첨단 장비를 이용한 한미연합군 측보다 결코 늦지 않다. 심철이 말을 잇는다.

    “조금 전에 39집단군이 일제히 움직였습니다. 이제 나머지 2개 집단군도 따라오겠지요.”

    이미 425기계화군단을 공격했을 때부터 이쪽에서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잘되었어.”

    어깨를 늘어뜨린 김경식이 길게 숨을 뱉는다.

    “어서 이 난국을 수습해야지. 때맞춰서 움직여주는구만.”

    “위원장이 저항하지는 않겠지요?”

    “그럴 리가?”

    쓴웃음을 지은 김경식이 힐끗 벙커 안쪽을 보았다. 이틀간의 철야 근무에 지친 나이 든 장군들이 벽 근처의 소파에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김경식이 말을 이었다.

    “중국군이 평양에 진입하면 위원장의 존재 가치는 사라져. 인민뿐 아니라 인민군, 그리고 중국 측에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

    “반란군은 소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상황판으로 시선을 돌린 김경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먼저 반란군을 소탕한 후에 저 12군단의 머리부터 자르고.”

    김경식의 시선이 상황 스크린의 평양 쪽으로 옮겨졌다.

    “위원장을 중국으로 보내면 나머지는 모두 다시 뭉치게 될 거야.”

    “중국군 남진.”

    TV화면에 커다랗게 뜬 글씨는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서울 국제신문 사회부장 홍동수가 TV에서 시선을 떼고는 앞쪽 책상에 앉은 송아현을 부른다.

    “송 기자, 나 좀 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송아현이 다가가 섰을 때 홍동수가 묻는다.

    “이 대위는?”

    “실종.”

    외면한 채 대답한 송아현을 보자 홍동수가 입맛을 다셨다.

    “이봐, 내가 해병대 고위층한테서 들은 정보인데 이 대위하고 해병대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어.”

    놀란 송아현이 바짝 다가서자 홍동수는 말을 잇는다.

    “임무 수행 중이라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임무가 중요해진다는구만.”

    “… ….”

    “46용사가 많이 줄었다고 했어. 물론 이 대위는 살아 있지만 말야.”

    “연락은 안 돼요?”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심호흡을 한 홍동수가 지그시 송아현을 보았다.

    “내가 그랬다는 말 말고 해병대 사령부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한테 매달려봐. 그 작자가 이 대위하고 연락을 하는 모양이야.”

    그러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또 모르지. 다시 이 대위를 매스컴에 띄워서 분위기를 전환할 수도 있으니까 말야. 그래서 21세기 전쟁은 전자 게임 같다니까.”

    7월26일 17시30분, 개전 30시간40분25초 경과.

    시계를 내려다본 이동일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딱 한 시간을 꿈도 꾸지 않고 잔 것이다. 바위 밑에서 쪼그린 채 잠이 들었지만 온몸의 피로가 풀리면서 활력이 솟아나고 있다. 그때 옆으로 강성일이 다가왔다.

    “이 대위, 중국군이 남하하고 있어요.”

    옆으로 다가와 앉은 강성일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3개 집단군이 모두 평양을 향해 남하하고 있다는 거요.”

    이동일의 시선이 앞쪽으로 옮겨졌다. 3㎞ 전방이 평양이다.

    “425군단은 중국군의 포격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전력을 대부분 상실했다고 합니다.”

    강성일이 말했을 때, 비탈길로 특수정찰대 상사가 올라오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장동지, 마을 주민들이 옵니다.”

    다가선 상사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씻으며 말을 잇는다.

    “모두 나이 든 노인들인데 어린애도 대여섯 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야?”

    “노인들이 제각기 양곡 자루를 들고 옵니다. 아마 이곳 적위대로 나간 가족들이 약탈해온 것 같습니다.”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강성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동일에게 말했다.

    “대위, 내려갑시다.”

    그 시간에 산본장 지하 상황실에서 대통령 박성훈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면서 말한다.

    “위원장님, 접니다.”

    이번 전화는 박성훈이 요청을 했다. 그러자 스피커를 통해 김정일의 목소리가 상황실 안에 울린다.

    “예, 대통령 각하.”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거북합니다만.”

    전화기를 귀에 붙인 박성훈이 앞쪽 테이블에 둘러앉은 각료들을 훑어보았다. 비서실장 한창환, 안보수석 주명성, 국방장관 임기태다. 박성훈이 말을 이었다.

    “중국군이 남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대한민국에 위협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미연합사와는 달리 중국군 진주와 남하는 명백한 위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원장께서 중국군 진주와 남진을 요청하셨는지를 확인해야만 되겠습니다.”

    박성훈이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말했다. 박성훈의 앞쪽 책상 위에는 그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다. 말이 끝났을 때 방안은 조용해졌다. 김정일이 몇 초간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성훈은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뗀 채로 기다렸고 모두 침묵을 지켰다. 그때 스피커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이며 지도자인 내 요청을 받지 않고 진주했습니다. 반역자이며 매국노, 인민의 적인 김형기, 김경식 일당이 요청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영토에 발을 디딜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정간섭은 물론이고 침략이나 같습니다.”

    김정일의 목소리에 열기가 감돌았다. 다시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김경식 일당과 중국 군부가 사전에 공모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북조선을 중국 영토에 귀속시키려는 음모인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각하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어느덧 박성훈의 얼굴도 상기되었다. 박성훈이 묻자 김정일은 차분하게 말했다.

    “없습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다시 연락을 할까요?”

    “다음에는 제가 연락을 드리지요.”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그러고는 통화가 끝났을 때 먼저 국방장관 임기태가 말했다.

    “이 내용을 세계 각국 뉴스에서 방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성훈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고 이제는 안보수석 주명성이 말했다.

    “대특종입니다. 이것을 저녁 방송에 내고 녹음해서 북한 주민한테도 들려주도록 해야 됩니다.”

    다시 머리를 끄덕인 박성훈이 심호흡을 두 번이나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직도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결국 김정일씨가 중국보다는 한국을 선택하는 것인가?”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배신자.”

    하고 말했지만 시진핑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떠올랐다. 시진핑은 방금 박성훈과 김정일의 대화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들은 것이다. 둘의 통화가 끝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러자 옆쪽에 앉아 있던 해방군총사령관 진양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김정일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북조선을 떠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군이 평양에 진주하면 김정일도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먼저 김정일의 수족을 잘라야 합니다.”

    정색한 진양의 시선이 앞쪽에 앉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 펑훙위에게로 옮겨졌다.

    “공작은 잘 진행되고 있소?”

    진양이 묻자 펑훙위가 몸을 굳혔다.

    “예, 사령관들이 모두 주석궁 벙커에 모여 있기 때문에 사단장, 연대장급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의 눈치를 살핀 펑훙위가 말을 잇는다.

    “평양방위사령부 산하 2개 사단장이 포섭되었고 호위총국의 전차 여단장 한 명도 전향 의사를 밝혔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진양이 다시 시진핑에게 말했다.

    “주석 동지, 이 과업만 성공하면 주석 동지는 5000년 중국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되시는 겁니다.”

    그 시간에 일본 총리 히라타(平田)는 방위청장관 하야시(林)가 가져온 녹음테이프를 다 듣고 나서 둘러앉은 각료들을 보았다. 이곳은 총리 집무실 안이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고 히라타가 묻자 하야시가 먼저 대답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반전되고 있습니다. 중국군이 진주했을 때는 조선성이 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중국군이 공격을 당하면서 김경식 일파의 세력이 흔들리다가 이젠 김정일이 한국과 밀착하려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설명이 길었기 때문인지 그동안 두 번이나 헛기침을 한 히라타가 관방장관 미우라(三浦)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미우라씨, 우리끼리 털어놓고 이야기합시다. 마침 우리 셋이 있으니까 말인데.”

    하야시의 시선이 말석에 앉은 총리 비서실장 다나카(田中)에게로 옮겨졌다.

    “그렇지. 넷이군. 그러면 우리 일본국에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뭡니까?”

    “당연히 남북한 통일이죠.”

    당연한 일 아니냐는 표정을 짓고 미우라가 대답했다. 머리를 든 미우라가 히라타와 하야시, 다나카를 훑어보고 나서 말을 잇는다.

    “그럼 통일한국은 자연스럽게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이 되는 겁니다. 이건 중국한테도 턱밑에 칼을 들이댄 꼴이 될 겁니다.”

    “허, 그럼 우리는.”

    “배에 칼끝이 닿은 꼴이죠.”

    하고 하야시가 말을 받았으므로 히라타는 입맛을 다셨다.

    “그 빌어먹을 김정일놈.”

    “이대로 가면 한국은 잭팟을 터뜨리게 됩니다.”

    미우라의 말에 하야시가 다시 말을 받는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 유동적입니다. 중국군이 평양에 진주하고 나서 김경식 세력과 함께 반란군을 소탕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김정일 세력을 회유하거나 설득해서 끌어들이면 조선성으로 굳어집니다.”

    “그것이 우리한테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요.”

    미우라가 말했을 때 히라타도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이 미국 측에도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7월26일 18시 정각, 개전 31시간10분25초 경과.

    “저기 오는군.”

    강성일이 말했지만 이미 이동일은 그쪽을 보고 있었다. 마을을 향해 7, 8명의 인민군 병사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100m쯤 떨어져 있었어도 노농적위대인 것이 드러났다. 나이 든 태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적위대원 앞을 노인 둘이 앞장서 오고 있다. 마을 노인들이다.

    “이쪽 부대는 150명 정도라던데.”

    하고 강성일이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가 이동일에게 말했다.

    “자, 가봅시다.”

    강성일과 이동일, 그리고 서너 명의 병사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마을로 돌아온 노인들을 설득해서 적위대원으로 보낸 것이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의심했던 노인들은 곧 자신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이라면 이렇게 설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쪽에서 다가가자 적위대는 주춤거렸지만 곧 물도 없는 개울가에서 양측이 마주쳤다. 적위대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는 50대쯤으로 군복에 중위 계급장을 붙였다. 중좌 복장의 강성일을 보더니 사내가 경례를 했다. 그것을 본 강성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맙시다. 동무. 난 군복은 입었지만 이제 김정일의 인민군은 아니오.”

    그러고는 적위대원을 둘러보면서 말을 잇는다.

    “꼭 이름을 붙인다면 조선해방군이지. 중국의 인민해방군하고도 다릅니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개울가에 둘러앉자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10여 명의 인민군 정규군과 노농적위대, 노인 둘에다 한국 해병대인 이동일과 최 하사까지 개울가 자갈 위에 둘러앉았다. 그때 강성일이 중위에게 묻는다.

    “나머지 병력은 어디 있습니까?”

    “이곳에서 3㎞쯤 떨어진 반월산에 숨어 있습니다.”

    경계심이 풀린 사내가 고분고분 대답했다.

    “중화에 평방사 기갑여단이 있지만 자체방어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활동은 자유로운 편이지요.”

    “그렇다면 각 마을의 적위대는 모두 흩어져 있습니까?”

    강성일이 묻자 사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예, 몇 개 부대는 뭉쳤지만 대부분은 흩어져서 양곡이나 약탈하는 형편입니다.”

    사내의 이름은 천윤보, 중위 출신으로 협동창고 관리인이었는데 이번 전쟁 때 편성된 825 노농적위대장을 맡았다가 오늘 오전에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다. 이곳에서 12㎞ 떨어진 중화군 군당 보급창고를 840노농적위대와 함께 공격해서 양곡을 약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을 불러 약탈한 양곡을 나눠준 것이다. 천윤보가 말을 이었다.

    “제가 인솔한 병력은 현재 150명 정도이고 840부대는 200명쯤 됩니다. 그리고.”

    천윤보가 눈을 깜박이며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강성일을 보았다.

    “중화 근처의 교도대, 노농적위대 반란군만 합쳐도 수천 명은 될 겁니다.”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이며 지도자인 내 요청을 받지 않고 진주했습니다. 반역자이며 매국노, 인민의 적인 김형기, 김경식 일당이 요청한 것입니다…….”

    TV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리고 있다. 국방부의 지하 상황실도 마찬가지다. 벽에 설치된 대형 TV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따라서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영토에 발을 디딜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정간섭은 물론이고 침략이나 같습니다… ….”

    송아현은 상황실 앞쪽을 둘러보았다.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서 마치 시장통 같다.

    “이거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화장실도 못 가겠네. 모두 정신이 나갔어.”

    안면이 있는 동화일보 기자가 투덜대면서 옆을 지났는데 시선을 마주쳤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도 정신이 나가 있는 것이다. 그때 송아현이 찾던 사람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다가갔다.

    “대령님.”

    “아이구, 송 기자.”

    놀란 최재창이 쓴웃음을 짓고 나서 다시 몸을 돌리려고 했으므로 송아현이 가로막았다.

    “대령님, 이 대위하고 통화하게 해주세요.”

    “글쎄, 이 대위는 지금.”

    “연락하고 계신 줄 알고 있어요.”

    그 순간 최재창의 눈썹이 모아졌다.

    “도대체 언놈이.”

    “지금 상황에선 이 대위하고 다시 연결해도 상관없지 않겠어요?”

    “아냐. 지금 대단히 중요한 상황이야.”

    불쑥 말을 뱉었던 최재창이 입맛을 다셨을 때 다시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것은 북조선을 중국 영토에 귀속시키려는 음모인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각하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해설자의 말이 이어졌을 때 송아현이 바짝 다가섰다.

    “절 이용하셔도 돼요. 어떻게든 이 대위하고 통화하게 해주세요.”

    군복의 어깨에는 대위 계급장이 붙어 있었지만 나이는 최기상보다 대여섯 살 아래로 보였다. 백한성의 손을 쥔 최기상이 뒤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병력은?”

    “2개 중대쯤 되오. 350명 정도.”

    “나도 2개 중대, 380명이요.”

    “그럼 1개 대대가 되겠군.”

    쓴웃음을 지은 백한성이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회천 서남방 부산리에는 이제 1개 대대급의 반란군이 모인 셈이었다. 접근해온 백한성 부대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고 양쪽 부대원은 뒤섞였다. 그때 백한성이 물었다.

    “회천 보위부 건물에 중국 제40집단군 사령부가 설치된 것 아시오?”

    “온 것은 아오.”

    “회천 서남쪽 제82군수공장에 40집단군 병참본부가 자리 잡았소. 그곳 창고에 양곡과 온갖 물자, 탄약과 기름까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지.”

    “… ….”

    “내가 이곳까지 오면서 두 군데 적위대부대를 만났는데 오늘 밤 같이 중국군 병참 창고를 습격하기로 합의했소. 같이 가지 않겠소?”

    놀란 최기상의 표정을 본 백한성이 빙그레 웃었다.

    “아시오? 곽산에서 425기계화군단이 중국군 제16집단군 소속의 제4장갑사단을 전멸시켰소.”

    “라디오에서 들었소.”

    “중국군은 아직 425군단에 보복도 못하고 있소. 그렇게 되면 중국군과 조선군의 전쟁이 되니까.”

    “좋소. 합시다.”

    마침내 최기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우린 양곡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오.”

    중국군 제16집단군은 3개 보병사단과 1개 장갑사단, 그리고 1개 포병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곽산에서 궤멸된 제4장갑사단이 바로 제16집단군 소속이다.

    “절대로 도발하면 안 된다.”

    하고 사단참모 장샤오 중교가 말했으므로 위푸 상위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끌려들면 안 된단 말야.”

    다시 수화구에서 장샤오의 목소리가 울렸을 때 위푸가 마침내 폭발했다.

    “참모님, 놈들이 공격해도 당하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다.”

    이제는 장샤오가 달래듯이 말한다.

    그러고는 똑바로 최재창을 보았다.

    “부탁드려요. 대령님, 그 사람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요.”

    “검토해볼 테니까.”

    시선을 내리면서 최재창이 발을 떼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이 근처에 있으라고.”

    7월26일 18시30분, 개전 31시간40분25초 경과.

    라디오 주위에 몰려 앉은 적위대, 교도대 출신 반란군들의 표정이 굳어 있다. 최기상은 군복 주머니에서 피우다 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때 라디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러분, 뭉치십시오. 그래야 힘이 강해집니다. 부근의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병사를 모아 편제를 갖추십시오. 그리고 지휘관과 참모를 선출하여 군부대의 체제를 갖춰야 삽니다. 이제 여러분의 적은 분명해졌습니다. 중국군과 중국군을 끌어들인 김경식 일당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 상황이 끝나면 남조선과 유대해 새로운 조선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여러분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뒤에는 남한이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여러분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세상으로 나오게 되실 것입니다. 새 세상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실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주인인 것입니다. 부대를 만들어 각지에서 중국군을 격파하십시오. 독립전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중국인의 노예가 된단 말입니까?”

    그때 라디오의 스위치를 끈 최기상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좋아. 늑대한테 시달려왔는데 쥐새끼한테 죽어지낼 수는 없지. 해보자!”

    “해보자!”

    교도대 출신의 백한성이 따라 소리쳤고 모여 앉은 대원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대원들이 흩어지고 둘이 남았을 때 백한성이 말했다.

    “그래. 우리가 주인이라고 그랬지? 지금은 김정일이 편을 들겠지만 그건 중국 놈들 몰아낼 때까지라고.”

    서해안 지역 전연지대를 맡은 4군단장 우장선은 강골(强骨)이다. 평소에 과묵하고 무뚝뚝해서 김정일의 측근 그룹과 떨어진 인상을 받았지만 이번 전쟁 때 본색을 드러냈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보다 의리를 보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우장선이 눈을 부릅뜨고 4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황해남도 해주시 외곽의 지하 벙커에 앉아 있다. 우장선도 방금 한국에서 방송한 김정일과 박성훈의 통화 내용에 이어서 여자 아나운서의 격한 분위기의 선동까지 들은 것이다.

    “군단장 동지, 개성 근처의 부대에서 이탈자가 심각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에 선 참모장 박명호가 말했지만 우장선은 눈만 껌벅였다. 상황실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여 있다. 그것은 우장선이 일부러 남한 방송을 그대로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박명호가 말을 이었다.

    “2군단 지역은 1개 연대에 이어서 1개 대대 병력이 또 투항한 것 같습니다. 투항병과 총격전이 일어나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 ….”

    “이대로 가면 반란군과 중국군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미 평안남도에서는 10여 건의 조·중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반란군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투를 치르고 있어서 아직 남하하는 중국군 대부대에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그때 대좌 하나가 무전기를 쥔 채 서둘러 다가왔으므로 박명호는 말을 그쳤다.

    “군단장 동지, 12군단장입니다.”

    “12군단장?”

    우장선의 입이 터졌다. 눈썹을 치켜 올린 우장선이 대좌의 손에 쥔 무전기를 노려보았다. 12군단장 이기준은 김경식 일당에 등을 돌렸지만 그렇다고 위원장과의 의리를 지킨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남조선과 내통한 흔적이 있다. 이윽고 우장선이 손을 뻗쳐 무전기를 받아 쥐었다. 남조선 대통령과 위원장의 통화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이기준의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적의 적은 동지인 것이다. 지금은 김경식과 중국군이 적이 되어 있다. 무전기를 귀에 붙인 우장선이 대뜸 묻는다.

    “무슨 일이오?”

    “같이 중국군을 칩시다.”

    이기준도 불쑥 대답했으므로 우장선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금방 작전지도가 펼쳐졌다.

    “815기계화군단하고 820전차군단을 김경식이가 쥐고 있는데?”

    “815군단은 우리한테 가담하기로 했소.”

    “뭐? 조영근이가?”

    815기계화군단장 조영근 대장은 처음부터 김형기, 김경식 측에 붙은 반역자다. 눈을 크게 뜬 우장선의 귀에 이기준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 대장이 계산이 빠른 사람이라 나한테 붙기로 했소.”

    “당신한테 말이지?”

    우장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럼 남조선 측에 붙었다는 말인데.”

    “지금 우리들의 적은 중국군이요, 우 대장.”

    이기준의 목소리도 딱딱해졌다. 다시 이기준의 말이 이어졌다.

    “815군단이 합세하면 우리 3개 군단이 남북을 견제할 수가 있소. 그렇지 않소?”

    맞는 말이다. 남쪽 김경식의 2군단은 좌우의 4군단과 5군단, 그리고 위쪽 12군단에 막혀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유일한 남쪽 탈출구는 남조선, 지금도 2군단 병사들의 탈북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3개 군단은 북쪽 평양을 견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이기준이 말했다.

    “어떻소? 우리는 제3세력이 되는 것이오. 남조선과 연합할지도 모르는 위원장 세력과 중국군을 끼고 있는 김경식 세력, 그리고 남조선과도 유대를 맺되 새로운 북조선을 추구하는 우리가 바로 제3세력이 되겠소.”

    “흠, 그렇게 조영근이를 끌어들였고만.”

    “당신이 그런 식으로 820전차군단을 끌어들여 보시오.”

    그렇다면 명실 공히 제3세력으로 굳어질 것이었다. 한동안 눈만 껌벅이던 우장선이 이윽고 잇사이로 말했다.

    “검토해봅시다.”

    전쟁 이틀째로 접어든 오후부터 한국 사회는 평상시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라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와 검문소가 세워졌고 군인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긴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급락했던 증시는 가파르게 회복되는 중이었으며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증시의 외국 자본도 만 하루 만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전시라지만 북한 땅에 일어나는 전쟁인 것이다. 북한 군부가 세 세력으로 갈라지고 반란군으로 뒤덮였으며 중국군까지 진주해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남한에는 총소리 한 번 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정부와 계엄군은 이 기회를 이용해 친북 세력을 소탕하고 있었으니 일석삼조, 일거삼득의 행운이나 같았다.

    “이게 도대체.”

    노동민족당 국회의원 임민희가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더니 남편 오종구를 보았다. 눈을 치켜떴고 어금니를 악문 모습이다. 저녁을 먹던 중이어서 오종구가 힐끗 옆에 앉은 아들 오연수의 눈치를 보고는 낮게 묻는다.

    “무슨 일인데?”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방송은 계속해서 특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남쪽은 가만있는데도 북한 땅이 격동하는 중이었다. 전국이 반란군으로 뒤덮여 있으며 군부는 세 세력으로 나뉘었다. 김정일은 한국 대통령 박성훈에게 진주한 중국군을 침략자로 성토했으며 휴전선에서는 인민군이 수천 명 단위로 투항해오고 있다. 몇 시간 전까지 조선성으로 편입될 것 같았던 북한 땅이 이제는 남북한 통일이 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그 주모자가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다.

    “걱정 마. 중국군이 어디 바지저고리야? 곧 평양을 장악하고 북한 땅을 평정할 테니까.”

    “김정일이 문제야.”

    임민희가 잇사이로 말했다. 김정일과 박성훈의 대화가 방송되었을 때 화가 난 임민희는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던져 박살을 냈다. 그래서 지금 TV는 손으로 만져서 작동한다. 힐끗 오연수의 눈치를 살핀 임민희가 소리죽여 말을 잇는다.

    “한국 주도의 통일은 우리한테 최악의 시나리오야. 김정일이의 미친 짓을 어떻게든 막아야 할 텐데 큰일 났어.”

    “글쎄, 두고 보자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오종구의 표정도 어둡다. 그때 밥을 삼킨 오연수가 문득 머리를 들고 임민희와 오종구를 번갈아 보았다.

    “엄마, 김정일이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 때문에 통일이 되는 거야?”

    방송에서 계속해서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초등학교 5학년인 오연수가 그 정도로 감을 잡을 만했다. 그때 임민희가 대뜸 말했다.

    “아니, 배신자, 반역자야. 그놈 때문에 아주 나쁜 통일이 될지 모른단다.”

    홧김에 뱉은 말이어서 그렇게 말한 임민희 자신도 무슨 소린지 아리송했다.

    7월26일 19시, 개전 32시간10분25초 경과.

    “나야.”

    하고 이동일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앞쪽 스크린에 얼굴이 떴다. 휴대전화의 영상화면이었지만 선명하다. 이동일의 깎지 않은 수염도 생생하게 드러났다. 송아현은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먹먹해졌고 목이 멘다. 그리고 눈에 불티가 들어간 것처럼 뜨겁게 따끔거린다. 송아현이 꾸물대는 것이 불안했는지 뒤에 선 군 홍보 관계자들이 부스럭거렸다. 다시 46용사의 현장 화면이 방영되는 것이다. 송아현이 물었다.

    “오빠, 몸은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응, 그래. 난 괜찮아.”

    화면에 비친 이동일의 표정이 어둡다. 다시 숨을 들이쉬며 송아현이 묻는다.

    “46용사는?”

    “7명 전사, 8명 부상, 현재 전력은 31명이다. 이제 31용사가 되었어.”

    그 순간 송아현보다 뒤쪽 군 당국자들이 놀란 듯 수선거리는 소리가 커졌다가 그쳤다. 그때 옆쪽에 서 있던 최재창 대령이 계속하라는 손짓을 한다.

    “오빠, 그쪽 상황은 어때?”

    “인민들이 모두 총을 들고 일어난 것이나 같아. 군부대를 제외한 모든 곳이 노농적위대, 교도대, 청년근위대 등의 혁명군으로 뒤덮여 있다.”

    화면에 비친 이동일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목소리도 떨렸다. 이동일은 지금 반란군을 ‘혁명군’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이들은 군부대나 보위부, 당의 창고를 약탈해서 인민들에게 분배해주지만 질서를 지켜가고 있어. 각 혁명군끼리 연합을 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는 중이야. 이젠 ‘인민혁명군’의 새로운 세력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동일이 열띤 목소리로 말했을 때 옆쪽 벽에 붙어선 최재창이 번쩍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주먹을 쥔 손의 엄지가 이쪽으로 솟아 올라가 있다.

    “저런, 31명이 되었어.”

    일산 호수공원 앞쪽 대호식당 안에서 사장 김대호씨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그는 손님들과 함께 TV를 보는 중이다. 저녁시간이어서 식당 안에는 손님이 가득 찼지만 모두 TV를 보느라 조용했다.

    “아이고, 어쩌끄나. 일곱 명이 전사했고 여덟이 부상이라네.”

    손바닥으로 카운터를 두드리는 김대호씨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아이고, 저 대위도 살어 돌아와야 헐틴디.”

    그때 화면이 바뀌었으므로 손님들은 제각기 머리를 돌렸지만 김대호의 사설이 이어졌다.

    “그려, 인민혁명군이라고 했지? 잘 헌다. 참말로 북한 사람들이 자랑스럽네. 잉?”

    혼잣소리였지만 옆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 두 명이 제각기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안쪽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자, 31용사 허고 인민혁명군을 위하여 건배합시다!”

    (10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그때는 여지없이 박살을 내도록.”

    통신이 끝났을 때 위푸가 무전기를 무전병에게 건네주며 투덜거렸다.

    “이게 뭐야? 장갑사단이 전멸했는데 꼼짝 말고 있으라니. 우리가 외교관이야?”

    “어느 놈이 적인지 모릅니다.”

    소대장 타오다스가 쌍안경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은 16집단군 소속의 제46보병사단 직할 수색중대다. 16집단군은 진주군 사령부 직속이어서 사령부가 박천에 같이 있다.

    “아냐, 다 적이다.”

    역시 쌍안경을 눈에 붙이면서 위푸가 말했다. 수색중대는 지금 정주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야산 기슭까지 진출해온 것이다.

    “저놈들은 반란군 같습니다.”

    하고 타오다스가 말했으므로 위푸가 쌍안경을 그쪽으로 돌렸다. 30여 명의 인민군 병사가 길을 건너고 있다. 거리는 400m 정도였는데 복장이 엉망이고 모두 갖가지 물건을 등에 메거나 손에 쥐었다. 약탈물 같다.

    “노농적위대, 교도대까지 합하면 600만 대군이 된다고 입만 열면 자랑하더니 이젠 600만 반란군이 되었구만.”

    그들을 보면서 위푸가 말했다.

    “도대체 산에 나무 하나 없고 말라비틀어진 이 땅이 뭐가 좋다고 군대까지 보내는 거야?”

    “글쎄 말입니다.”

    맞장구를 치던 타오다스가 와락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시 방향! 북한군입니다!”

    두 시 방향으로 쌍안경을 돌린 위푸가 개울을 건너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북한군을 보았다. 이열횡대로 다가오는 북한군과의 거리는 300m 정도. 조금 전 길을 건넌 북한군과는 다른 부대 같다. 쌍안경에서 눈을 뗀 타오다스가 위푸를 보았다.

    “중대장 동지, 이대로 두면 우리하고 부딪칩니다. 어떻게 할까요?”

    위푸는 심호흡을 했다. 물러나려면 뒤쪽 산을 넘어야 한다. 옆으로 피한다면 북한군에게 송두리째 노출될 것이었다. 그때 타오다스가 말했다.

    “놈들은 반란군입니다. 모두 나이 들었고 장비도 소총뿐입니다.”

    그 순간 위푸는 마음을 굳혔다.

    “타타타타타타!”

    “꽝! 꽈꽝! 꽝!”

    요란한 총성과 폭음이 울렸으므로 질색을 한 주위 병사들이 흩어졌다. 그러나 모두 10년 이상 군 생활을 해온 노병(老兵)이다. 즉각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기 때문에 서 있는 병사는 보이지 않는다.

    “뭐야?”

    역시 바위 뒤에 엎드렸던 고일중이 버럭 소리쳤다. 총성과 포성도 더 격렬해졌다. 그러나 뒤쪽에서 울리고는 있었으나 이쪽을 향한 것은 아니다. 거리는 500m 미만. 군 생활을 18년간 한 터라 제대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듣기만 해도 그쯤은 안다. 그때 뒤쪽에서 이천승이 허리를 굽힌 채 달려왔다. 이천승은 중위 출신으로 부대의 후위를 맡은 부지휘관, 청정노농적위대 부대장이었다가 고일중의 부대로 합류한 지 세 시간이 되었다.

    “대장! 중국군이요!”

    “뭣이?”

    놀란 고일중이 눈을 치켜떴다.

    “중국군이 뭘?”

    “적위대를 공격합니다!”

    “어느 적위대?”

    “그건 모르겠소.”

    자리를 차고 일어난 고일중이 뒤쪽으로 내달렸다. 정규군이 적위대를 공격했다면 이렇게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7월26일 15시30분, 개전 28시간40분25초 경과.

    오산의 한미연합사 지하 상황실에 모인 지휘관들이 모두 벽에 방영되는 위성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처음에 탄성과 함성이 일어났지만 10분쯤 지난 지금은 흥분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날씨가 맑아서 화면은 생생하다. 중국군이 발사하는 기관총 탄피가 튀어 오르는 것까지 다 보인다. 우두커니 그것을 보던 육본작전참모부장 박진상이 문득 누구를 찾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해병사령관 정용우 옆으로 다가가 섰다.

    “기무사령관은 어디 갔소?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나갔어. 저것 때문에.”

    정용우가 턱으로 앞쪽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중국군은 300명 가까운 반란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중이었다.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저 소식을 삐라로 날린다는 거요.”

    “그 양반이 제일 바쁘구만.”

    “기무사 역할을 제대로 하는 셈이지.”

    그때였다.

    “와앗!”

    화면 앞에서 다시 함성이 일어났으므로 박진상과 정용우는 시선을 돌렸다.

    “아앗!”

    둘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이제는 중국군이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중국군 앞을 지났던 반란군 같다. 멀리 떨어지기에 화면에서 제외되었던 부대가 중국군에게 되돌아와 양쪽에서 공격하고 있다.

    “잘한다!”

    정용우가 소리쳤고 박진상이 다시 누구를 찾는 시늉을 했다. 기무사 장교를 찾는 것이다. 이 정보가 삐라에 추가되어야 한다.

    트럭에서 내린 부대원들은 재빠르게 일렬횡대를 지어 도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선다. 앞장을 선 것은 12군단 특수정찰대원이다. 이동일이 인솔하는 해병 30명은 후미에 배치되었다. 총원은 80명, 트럭 3대에 분승해 황해북도 황주 근처까지 북상했다가 이제 트럭을 버리고 도보로 산길을 타려는 것이다. 걸으면서 이동일이 손목시계를 본다. 오후 15시40분, 개전 28시간50분25초가 경과한 시간이었지만 이동일은 그 계산까지는 못하고 있다. 뒤를 따르던 황찬우가 바짝 다가붙더니 이동일에게 말했다.

    “윤 중위가 조 중위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된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동일은 대답하지 않았고 황찬우는 말을 잇는다.

    “만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

    “전쟁 중이라 그럴까요?”

    “그런 것 같다.”

    마지못한 듯이 이동일이 대답하자 황찬우가 다시 묻는다.

    “중국군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지요?”

    “당연하지.”

    대열 선두는 산길로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이젠 뒤쪽 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군 장갑사단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궤멸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후에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동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우리한테 이롭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때 황찬우도 혼잣소리처럼 대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구만요.”

    그러고는 문득 정신이 난 듯 쓴웃음을 짓더니 이동일에게서 떨어졌다.

    7월26일 15시50분, 개전 29시간25초 경과.

    무전기를 귀에서 뗀 참모장 양훙이 사령관 후성궈를 보았다. 표정이 굳다.

    “사령관, 제46사단이 직할 수색중대를 구출하려고 1개 연대를 현장으로 출동시켰습니다.”

    후성궈가 잠자코 상황 스크린만 보았고 양훙의 보고가 이어진다.

    “남한에서는 조금 전부터 수색중대와의 전투 상황을 라디오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위성으로 찍은 영상을 퍼뜨리고 있으니 곧 삐라로도 뿌려질 것입니다.”

    “도대체, 당에서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마침내 버럭 목소리를 높인 후성궈가 양훙을 노려보았고 상황실 안이 조용해졌다. 구석 쪽에서 참모들과 의논을 하던 16집단군 사령관 우저우징이 머리를 돌려 후성궈를 보았다. 눈을 부릅뜬 후성궈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전문을 쳐! 평양으로 진군하는 수밖에 없다고! 김정일이, 김경식이는 우리 안에 갇힌 돼지들이야! 놈들은 반란군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고! 이때 평양으로 내려가는 거야!”

    그렇다. 장갑사단이 궤멸된 지 2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김정일은 물론이고 김경식 측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두 김씨는 이제 북한 땅에서 지도력을 상실했다. 아무도 이 난국을 수습할 수 없다는 증거였다. 그때 양훙이 머리를 들고 후성궈를 보았다.

    “사령관 동지, 425기계화군단하고 제12군단이 걸립니다.”

    두 김씨 집단 외에 중립적 위치의 군부세력이다. 후성궈의 시선이 상황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이윽고 스크린을 노려보던 후성궈가 잇사이로 말했다.

    “저놈들은 한국과 통하고 있어. 격파하는 수밖에 없어.”

    전화기를 넘겨받은 김정일은 심호흡을 했다. 주석궁 지하 깊숙한 전시 상황실 안에는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덮이고 있다. 옆쪽 테이블에 앉은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 등 지휘관은 외면하고 있었지만 귀는 활짝 열어놓고 있을 것이었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김정일이 말했다.

    “박정근 대장, 나 국방위원장이요.”

    그러나 저쪽은 응답이 없다. 이미 국방위원장 전화라고 밝혔는데도 그렇다. 헛기침을 한 김정일이 다시 말했다.

    “박정근 대장, 듣소?”

    “예, 듣습니다.”

    그 순간 김정일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제425기계화군단장 박정근은 지금까지 대여섯 번 만난 기억이 있다. 군단장급이니 자동차나 시계,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명절이면 온갖 선물을 받았을 터였다. 언젠가 자신이 건네준 술잔을 받으면서 감격한 얼굴로 충성을 맹세하던 장면도 떠올랐다. 그것은 김경식도 마찬가지였다.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던 놈이 김경식이다. 다시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중국군을 왜 공격했소?”

    그러자 박정근은 또 침묵했다. 상황실 안은 더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터라 수화구에서 울리는 박정근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정적을 깨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그쪽 상황은 어떻소?”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야 박정근이 차분하게 말했고 옆쪽 테이블의 전백준과 윤국순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김정일이 묻는다.

    “중국군하고 말이오?”

    “그렇습니다.”

    “당할 수 있겠소?”

    “그땐 다 죽지요.”

    “박정근 대장.”

    부르고 난 김정일이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고 나서 묻는다.

    “내 명령을 듣겠소?”

    “거부합니다.”

    차분하게 말한 박정근이 덧붙였다.

    “나는 위원장께 충성하려고 중국군을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알겠소.”

    심호흡을 한 김정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동무하고 대화를 하고 나니 내 마음이 가벼워졌소. 고맙소.”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정일이 전백준과 윤국순을 둘러보며 웃었다.

    “박정근이가 남자로군.”

    “김경식 일당이었습니다.”

    뱉듯이 말했던 전백준이 외면한 채 말을 잇는다.

    “그런데 지금은 이기준하고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분 후인 16시5분(개전 29시간15분25초 경과).

    오산 한미연합사령부 벙커에서 김정일의 마지막 말이 통역되었을 때 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가 참모장 모건 해리슨에게 묻는다.

    “설득하려던 것일까?”

    그들은 한국군 지휘부와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으므로 대답은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 했다.

    “아니, 떠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해리슨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박정근이 김경식 무리에서 벗어난 건 확실합니다.”

    “12군단장 이기준의 설득이 효과를 본 것이죠.”

    다시 장세윤이 말했고 잠자코 있던 육참총장 조현호도 거들었다.

    “어쨌든 박정근이 김정일을 궁지에서 구해낸 건 사실이죠. 이것으로 김정일을 망명시키려던 공작은 쑥 들어간 것 아닙니까?”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우드워드가 쓴웃음을 짓는다.

    “이거, 수시로 전황이 변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군.”

    그러나 우드워드의 태도는 드라마틱한 영화를 보는 관객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은 전혀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북쪽만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기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을 보았다. 100m 앞쪽의 건물 3동은 본래 회천의 제82 군수공장이었다. 그러나 군용 차량의 부품을 생산하던 저 공장도 다른 군수공장처럼 폐쇄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다 지금은 어제 진주한 중국군 제40집단군의 병참본부가 된 것이다.

    “2개 중대 병력은 되네.”

    옆에 엎드린 박장서가 말했다.

    “하지만 해볼 만해. 저기 왼쪽에 쌓인 건 쌀 아닌가?”

    “밀가루 같소.”

    “쌀이건 밀가루건 다섯 포대만 집에다 갖다놓고 와야겠네.”

    “그건 나중 일이요.”

    친척뻘이 되는 박장서를 향해 눈을 흘겨 보인 최기상이 손에 든 AK-47을 고쳐 쥐었다. 백한성의 교도중대와 적위대, 2개 부대는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쪽에서 총성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최기상의 노농적위대 2개 중대가 중국군 병참본부를 공격할 것이었다.

    7월26일 16시15분, 개전 29시간25분25초 경과.

    “앗!”

    위성사진을 살펴보던 연합사 측 장교 하나가 외친 탄성이 상황실을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벽에 확대된 북한 측 위성사진으로 모아졌다.

    “중국군 진지입니다!”

    사진을 더 확대시키면서 장교가 외쳤다. 그 순간 모두 번쩍이는 섬광과 폭발하는 건물을 보았다. 재빠르게 위치와 부대를 파악한 다른 장교가 소리쳐 보고했다.

    “평안북도 회천, 중국 제40집단군 병참본부가 기습을 받고 있습니다.”

    “와앗!”

    몇 명이 함성을 뱉는다. 곽산의 제16집단군 4장갑사단에 이어서 수색중대, 그리고 이번에는 제40집단군이 공격받는다. 세 번째다.

    “어느 부대야? 2개 대대는 되겠는데.”

    참모장 해리슨이 소리쳐 묻자 장교가 대답했다.

    “반란군 같습니다!”

    “그런가?”

    해리슨의 목소리가 다소 맥이 풀린 것처럼 들렸다. 그때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이 큰 소리로 말했다.

    “북한 제10군단에서 떨어져 나온 교도사단이나 적위대인 것 같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이제 중국군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싸우든지 돌아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되겠지요.”

    “저 뉴스도 방송해! 얼른!”

    육참총장 조현호도 거들었다.

    “당장 한국과 북한에다 터뜨려!”

    “잠깐, 장군, 자꾸 그러지 마시오.”

    하고 해리슨이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말투가 거칠지는 않다. 입맛을 다신 해리슨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자꾸 먼저 나가면 곤란합니다. 연합사 체계를 지켜주시오.”

    “아, 물론이죠.”

    조현호가 목청을 높여 말하고는 자리에 다시 앉았을 때 박진상은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있다. 손발이 잘 맞는 팀이다.

    “타타타타!”

    달리면서 쏘아댄 총탄에 중국군 병사 두 명이 팔다리를 내저으면서 쓰러졌다.

    “꽝! 꽝!”

    이쪽에서 던진 수류탄이 건물 안에서 폭발하면서 파편과 불기둥이 문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겼다!”

    저도 모르게 소리친 최기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 번째 건물 현관 앞에 멈춰 섰다. 이제 총성은 점점 잦아들고 있다.

    “끝냈어!”

    소대장 오대길이 왼쪽에서 소리치며 달려왔다. 뒤를 대여섯 명의 적위대가 따르고 있다. 삼면에서 기습 공격을 받은 중국군은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전멸했다. 병참기지 근무병으로 중화기도 소지하지 않은데다 불시에 기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쪽은 병력도 많다. 3개 중대 가까운 중국군은 전멸했고 도망친 병사는 몇 명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뒤쪽에서 일단의 병사를 이끈 백한성이 다가왔다.

    “자, 가져갈 건 양곡뿐인데, 갖고 떠납시다!”

    “무기도 챙겨야지!”

    그렇게 대답했지만 모두 10년 이상씩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이다. 낡은 총은 바꿀 것이고 실탄도 주워 챙길 것이었다. 최기상은 서둘러 양곡이 쌓인 곳으로 휩쓸려 간다. 이제는 총성이 뚝 끊긴 병참기지 안에서는 무수한 발걸음 소리만 울리고 있다. 전투에서 대승을 했는데도 함성은커녕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대원들은 양곡 야적장 쪽으로 한 무리가 되어서 내달리고 있다. 그들과 함께 뛰던 최기상이 문득 머리를 돌려 좌우를 살폈다. 그러고는 소리쳐 부른다.

    “박장서 동무!”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전사했소!”

    놀란 최기상이 눈만 치켜떴다. 걸음을 늦춘 그의 등을 몇 사람이 밀면서 앞질러 뛴다. 다시 이번에는 옆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막사에서 발사된 총탄을 맞아 바로 죽었소! 내가 보았소!”

    그 사이에 최기상은 산더미처럼 쌓인 양곡더미 앞에 와 섰다. 수백 명의 적위대, 교도대원은 흰색 포대를 두 개, 세 개씩 어깨에 메고 등에다 진다. 그러나 다섯 포대를 집에다 갖다놓겠다던 박장서를 떠올린 최기상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저곳부터 평양이오.”

    턱으로 앞쪽을 가리킨 강성일 중좌가 말을 이었다.

    “평양방위사령부 구역이지. 저놈들은 잘 먹고 장비도 최고급이요.”

    둘은 야산 기슭의 바위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부대원들은 흩어져 쉬는 중이다. 이곳은 평양특별시 경계선 남쪽 지역으로 옆쪽으로 20호가량의 마을이 있지만 텅 비었다. 그래서 강성일은 마을에 감시조를 파견해놓았다. 머리를 든 강성일이 이동일을 보았다.

    “이 대위는 전황이 어떻게 될 것 같소?”

    “중국군이 공격받는다니 상황이 변할 것 같습니다.”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한테서 정보를 들은 터라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뭔가 희망이 보입니다.”

    “통일 말이오?”

    그러더니 강성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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