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본 시민이 생존자 명단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고 있다.
이 일본인 여성의 인터뷰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TV는 해일이 시커먼 거품을 일으키며 집과 자동차를 장난감마냥 쓸어버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한 자동차가 필사적으로 달려보지만 이내 죽음의 물결에 휩싸이는 게 생생하게 중계된다. 시민들이 1만명 단위로 실종되고 바닷물을 부어 원전을 끄고 방사능을 피해 피난을 떠나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3월11일, 금요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전 국민의 시선을 일본으로 향하게 했다. 짐작건대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가 한 5일 내내 하루 1~2시간은 미디어를 통해 일본 시민들의 이 믿기지 않는 불행을 지켜봤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 국민이 평범한 일본 시민들의 생활상을 이렇게 오랫동안 지켜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인도 참 불행한 민족”
이러한 장시간의 노출은 우리와 일본 시민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배우 이병헌이 말한 대로 일본인을 일본인이기 전에 사람으로, 같은 서민으로 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세월이 흘러 저는 참 일본인도 불행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지진이라는 공포, 천황제라는 이름 아래 동원된 전쟁, 경제성장의 소용돌이에서 개인의 삶을 뒤로하고 일만 했던 일본인…” 이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의 지나온 역사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재난의 와중에 일본 이재민들이 보여주는 질서의식에 찬사를 보낸다. 기자도 같은 생각이지만 한편으로 에도 막부시대 ‘베어버려서 미안’이라는 법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무사계급에겐 길을 가다 어깨만 부딪쳐도 상대를 벨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일본시민의 예의바름과 질서의식의 DNA는 이러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일본 시민은 체제에 순종적이다. 국회의원직의 세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2009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정권을 교체한다. 일본에는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가 없다. 대부분의 시민은 전철로 출퇴근하고 작은 집에서 노후를 걱정하며 산다. 이번 지진 피해의 희생자들도 대부분 이런 소시민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서민은 우리의 서민과 마찬가지로 약자로 보이다.
‘일본침몰’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이 정말로 바닷 속으로 가라앉는다는 내용이다. 이때 놀란 건, 일본 국민이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는데 가장 가까운 한국을 새로운 정착지로 선택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점이었다. ‘두 나라 국민 사이의 간극이 이 정도로 넓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TV드라마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는 일본인들을 조용히 바꿔놓고 있다. 한국을 더 잘 이해하고 좋아하게 됐다. 한 논문은 그 과정을 재미있게 해석한다.
“일본인은 ‘겨울연가’를 보면서 그 스토리와 스타일에 자신을 동화시킨다. 이것은 한국 방문으로까지 이끈다. 한국을 둘러보며 이들은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게 드라마처럼 낭만적이지 않으며 누추한 곳이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묘하게도 ‘그래, 한국도 우리처럼 사람 사는 데구나’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서울특파원 발령 나던 날
일본 모 방송사의 서울특파원은 기자에게 “서울로 발령 났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던 날, 결혼한 이래로 아내가 이날만큼 기뻐한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서울특파원은 일본의 언론인과 그 가족이 가장 얻고 싶어하는 직책 중 하나가 됐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동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일본인이 한국인에게서, 한국인이 일본인에게서 서로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는지 모른다. 공유(共有)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대재앙이 가져온 반전일 수 있다. 앞으로도 독도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이 공존하는 게 인간 세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