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재산이 적었던 시절에 상속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1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에는 꼭 재벌이 아니더라도 자녀들 간에 상속재산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상속재산 분할소송이 매년 20~30%씩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늘어나는 것은 사망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망하고 장례를 마친 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망신고다. 사망신고는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에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할 일은 사망자의 재산을 확인하는 것이다. 상속은 재산뿐 아니라 부채도 함께 물려받는 것이기 때문에 부채 현황도 빠짐없이 확인해야 한다.
사망자의 부동산 현황은 시·군·구청에서, 은행 예금·대출·보험·주식·신용카드 부채 현황은 금융감독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망자와 개인 사이의 채권, 채무에 관한 서류도 따로 보관된 것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1등만 기억하는 상속의 세계
민법(제1000조)이 정한 상속순위는 이렇다.
1순위는 사망자의 직계비속이다. 아들, 딸을 말한다. 아들, 딸이 없고 손자, 손녀만 있으면 손자, 손녀가 여기에 해당한다. 양자도 포함되고 사망한 자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도 여기에 들어간다.
2순위는 사망자의 직계존속(아버지, 어머니)이다. 3순위는 사망자의 형제, 자매이고 4순위는 사망자의 4촌 이내의 방계 혈족이다.
사망자의 배우자는 1순위의 사람이 존재하면 1순위와 공동상속인이 된다. 1순위가 없으면 2순위와 공동상속인이 된다. 1, 2순위가 없을 때에는 3, 4순위를 제외하고 단독 상속인이 된다. 특기할 점은 사망자의 배우자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도 출생한 것과 동일한 상속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상속에서 1, 2, 3, 4순위를 복권의 1, 2, 3, 4등과 같이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순위 상속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2순위 이하의 상속인은 단돈 100원도 상속받지 못한다. 상속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인 것이다.
전체 상속재산 중 각 상속인이 차지하는 재산 비율을 상속분이라고 한다. 1990년 민법 개정 전까지는 장남은 다른 자녀보다 50%를 더 받았다. 출가녀는 미혼자녀의 4분의 1만 상속받는 등 상속분에 차별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 개정 이후엔 직계비속인 아들, 딸의 상속분은 똑같게 되었다. 다만 배우자가 사망자의 직계비속 또는 직계존속과 공동상속인이 된 경우에는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보다 50%를 더 받는다.
사망자가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면 상속인들은 상속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협의해야 한다. 다만 사망자가 5년 이내 상속재산을 쪼개지 못하도록 유언했다면 그 기간 내에는 분할협의가 불가능하다.
분할비율에 대해 상속인들 간 동의가 이뤄진다면 민법의 상속분대로 하지 않더라도 무방하다. 이때 상속인들은 상속재산 분할협의서를 작성하면 된다. 그 협의서를 가지고 부동산과 자동차 등 상속분의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신청을 한다. 예금, 보험금은 인출해 나누어 가지면 된다. 주식은 증권회사에 지분대로 명의개서 신청을 하면 된다. 영업자가 사망했다면 영업자 지위를 물려받기로 한 상속인이 지위승계 신고를 해야 한다.
불행히도 상속인들이 분할협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법원에 상속재산 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 소송은 상속인 전원을 피고로 하여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속관계를 한꺼번에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볼썽사나운 형제간 상속분쟁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상속의 10%이상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언장을 잘 남기지 않는 관행이 상속분쟁을 낳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유언장을 남기는 비율은 3%가량에 불과하다. 유언장을 쓰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볼썽사나운 형제간 싸움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피상속인이 유언장에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다. 그러나 유언의 형식만큼은 법에서 정한 형식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 유효하지 않은 유언은 더 큰 싸움을 불러오므로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민법이 정한 유언 형식으로는 자필로 유언증서를 쓰는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술을 받아 적는 방법에 의한 유언 등 딱 5가지 방법만 유효하고 그 이외의 방법은 인정되지 않는다.
●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자필로 빈 종이에 쓰고 도장만 찍으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필증서 유언장은 컴퓨터가 아니라 유언자가 직접 손으로 모든 내용을 써야 한다. 또한 작성일자, 주소, 성명까지 쓰고 날인을 해야 효력을 발생한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는 증인이 필요 없으므로 가장 간편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유언장의 존재사실을 상속인들이 모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 녹음에 의한 유언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과 함께 유언자의 이름, 유언 일자를 말해야 한다. 증인이 “이 유언은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증인의 이름을 말한 것을 녹음하면 된다. 음성 녹음뿐만 아니라 캠코더를 이용한 녹화도 가능하다.
●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변호사와 같은 공증인이 참여하는 유언방식이다. 유언자가 증인 2명과 함께 공증인이 보는 앞에서 유언내용을 구술하고 공증인이 받아 쓴 후 낭독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승인하고 각자 서명을 하면 된다. 유언의 존재를 명확하게 하고 유언장을 안심하고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유언자가 유언 내용과 이름을 써 넣은 유언장을 봉투에 넣고 밀봉한 후 2명이상의 증인에게 유언장임을 말하며 제시하고 겉봉투에다가 제시한 일자를 쓰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을 해야 한다. 이 방식의 유언은 봉투 표면에 기재된 날짜로부터 5일 이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의 확정일자 도장을 받아야 한다. 유언의 내용이 유언자의 생존 시까지는 공개되지 않기를 원할 때 좋은 방법이다.
● 구술에 의한 유언
질병 등의 사유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유언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참석한 자리에서 유언의 내용을 말하고, 그것을 들은 자가 필기하고 낭독해 유언자와 증인이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을 하는 방식이다. 만일 다른 방법의 유언이 가능한데도 구술에 의한 유언증서를 작성한 경우 이 유언은 무효가 된다.
만약 사망자가 자녀 중 제일 속을 썩인 장남에게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유언장을 썼다면 장남은 상속을 못 받는 것일까. 유언에도 불구하고 상속인의 법정 상속분의 일정 부분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유류분 제도다. 사망자의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까지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다.
상속세가 부과되는 재산은 사망자의 주소가 국내에 있을 때에는 재산의 전부가 된다. 국외 주소를 둔 때에는 국내에 있는 재산만 상속세 부과대상이 된다.
상속세 과세표준은 상속 재산의 가액에다 사망자가 사망 전 1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을 더한 뒤 공과금, 기타 사망자의 채무를 공제한 잔액이 된다. 상속세율은 각 상속인의 상속분에 따라 달라진다.(표 참조)
상속세는 관할 세무서에 납부하면 된다. 상속개시일(사망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상속세 납부신고를 하면 10%의 세액을 공제해준다. 반대로 6개월 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20% 이상의 가산세가 붙고 1일당 0.03%의 불성실납부 가산세까지 부과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상속을 피하는 방법
상속은 부채까지 물려받는 것이므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빚만 잔뜩 상속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므로 상속재산을 잘 파악해 부채가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면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 신청을 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상속포기의 경우 선순위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상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선순위 상속인이 후순위 상속인을 골탕 먹이고자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만 상속포기신청을 할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상속포기신청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