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후 대비 월 저축액 17만2000원.
- 자산의 80%는 집값이고 현금자산은 2000만원에 불과한 게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의 현실이다.
- 이런 상황에서는 은퇴 후 30년 이상 이어질 노후생활이 막막할 수밖에 없다.
-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제대로 된 은퇴 후 재무설계 방법을 소개한다.
“은퇴는 먼 훗날 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나이가 돼버렸네. 벌써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다니….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왔는데 막상 돌아보니 노후를 위한 준비를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후회스러워.”
50대라면 동창모임이나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꼭 한 번씩 듣게 되는 이야기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로 불리는 40대 후반에서 50대는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다. 특히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한파를 온몸으로 견뎌냈다. 노부모의 노후를 책임지고, 자녀 교육에 ‘올인’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맸다.
그러다보니 정작 자신의 노후를 위한 준비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모아둔 여윳돈은 주식에 투자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대폭락 장세에서 큰 손실을 봤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는 앞으로 값이 오르기는커녕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를 맞는다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베이비부머의 부모 세대만 해도 노후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은퇴 후 여생이 보통 10년, 길어야 20년이었다. 금리도 지금보다 높은 편이어서 노후자금을 은행에 맡기고 그 이자로 생활해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식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금리로 인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은퇴자금을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은행 예금금리는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는 2018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상회하는 고령사회에, 2026년이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아래 세대에게 노후를 의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생각보다 더 오래 살 확률(장수 리스크)이 높다는 점이다. 통계청 발표(2008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80세다. 하지만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팀이 기대수명을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생존해 있는 1945년 출생자 중 남자 23.4%, 여자 32.3%가 101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55세에 정년퇴직한다면 45년 이상 더 생존하는 셈이다. 의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부부가 필요한 노후 자금 월 210만원
현재 베이비부머의 은퇴 준비 실태는 어떨까. 최근 메트라이프생명이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함께 베이비부머 46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후를 위한 저축액이 월평균 17만2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이 지난해 전국 대도시 거주 2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은퇴 후 부부가 필요한 노후자금은 월 210만원이지만, 실제 준비된 자금은 137만원으로 6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준비가 미흡했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당장 제대로 된 은퇴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이 체계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도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남은 30~40년을 좌우한다. 초년에 고생했더라도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될 수 있다. 반면 그동안 윤택한 생활을 했더라도 이 시기를 놓치면 인생 말년이 괴롭게 된다.
시기별 노후 생활비 예측
부동산은 유동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고, 이를 금융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 김동엽 센터장은 “체계적으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은퇴 이후의 시기별 예상 노후 생활비를 따져보고, 그에 맞춰 저축 목표를 세우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먼저, 노후에 필요한 예상 생활비를 추정한다. 여기서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이미 가입한 연금 상품과 축적된 저축액을 통해 얻게 될 수입액을 차감한다. 노후 수입액은 국민연금 수급 시기, 기존에 가입한 연금 지급 방법에 따라 은퇴 초기(55~63세), 중기(63~75세), 후기(75세 이후)마다 다르므로 꼼꼼하게 계산해야 한다. 노후 예상 생활비에서 노후 수입액을 뺀 차액이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준비해야 할 목표금액이 된다. 노후생활 비용은 부부가 모두 사망할 때까지의 생활비, 부부 의료비(간병비 포함), 취미생활비 등 기타 비용으로 구성된다.
신한은행 PB고객부 한상언 팀장은 “은퇴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퇴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노력”이라고 조언했다. 은퇴시기를 늦춘다는 것은 단순히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늦추는 게 아니라 노후에도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회사에는 정년이 있지만 경제활동에는 정년이 없다. 퇴사나 공식적 은퇴 이후에도 또 다른 방식의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은퇴시기를 늦추는 만큼 노후를 준비하는 시간은 늘어나고 노후 기간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55세 정년퇴직을 할 때 은퇴자금으로 1억원이 있다고 하자. 월 100만원씩 10년을 채 쓸 수 없는 돈이다. 그러나 정년퇴직 후 10년 동안 경제활동하면서 그 돈을 연 7% 복리로 투자하면 노후자금이 두 배 가까운 1억9670만원으로 늘어난다. 훨씬 더 안정적인 노후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한상언 팀장은 “은퇴시기를 늦추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주변을 살펴보면 은퇴 후 두 번째 경제활동을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양질의 선택 기회를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줄이고, 건강보험 꼭 가입
은퇴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산운용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곽병훈 차장은 “노후 소득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좋다”며 “특히 부동산은 유동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고, 이를 금융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미래에셋 퇴직연구소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 세대 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구당 총 보유자산은 5억4000만원 정도였다. 여기에서 평균 부채액 6000만원을 뺀 순자산은 4억8000만원. 그런데 거주용 부동산의 평가액이 4억6000만원으로, 이를 뺀 금융자산은 2000만원에 불과했다. 30년 넘게 예상되는 노후의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2009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금순환 통계를 봐도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구성비는 부동산 80%, 채권 15%, 주식 5%로 이뤄졌다. 곽병훈 차장은 “바람직한 은퇴자산의 구성비는 부동산 30%, 금융자산 70%이며, 금융자산은 또다시 주식, 채권, 연금, 보험, 현금 자산으로 나눠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부동산이 과거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었지만 앞으로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렇다고 무조건 집 없이 전세를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후대책으로 거주용 주택을 보유하는 것은 유리하다. 부부 모두 만 60세가 넘고, 시가 9억원을 넘지 않는 거주용 주택은 주택연금을 활용할 수 있다. 주택연금은 주택을 이용해 적절한 노후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거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석이조 상품이다.
준비된 노후 자금은 건강한 노후를 책임진다. 광주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
김동엽 센터장은 “노후 준비에서 많은 사람이 놓치는 부분이 노후 의료비”라며 “노후 생활비와 별도로 의료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퇴직 후 생각만큼 생활비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 병원비, 간병비 등 의료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것.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71세로 평균수명 80세보다 9살이나 적다. 아프면서 살아야 하는 기간이 9년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다.
곽병훈 차장도 “의료비는 언제 병이 생길지 모르는 데다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갈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보험으로 준비해두는 게 좋다. 기존 건강 관련 보험은 70~80세까지만 보장해주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의료비가 본격적으로 지출되는 것은 그 이후다. 따라서 통원과 입원에 따른 병원비를 실비 보상해주는 ‘실손 보상 의료비 보험’과 질병이나 상해를 당했을 때 목돈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정액 보상 보험’은 되도록 가입해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은퇴자금은 별도계좌로 운용
노후자금 적립 방법에 대해 곽병훈 차장은 “국민연금은 최소 61세가 되어야 지급이 시작된다. 55세에 정년퇴임한다면 그 사이 기간에 사용할 생활비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이 돈들은 은행 정기저축이나 채권비중이 높은 상품에 가입해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대신, 최소 10년 후에 필요한 자금은 보다 공격적인 상품에 투자하는 게 좋다고 한다. 장기투자할수록 은행예금보다 수익률이 더 높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상언 팀장은 “노후자금은 은퇴 후 매월 일정액의 수입을 확보함으로써 현금흐름이 안정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은퇴 이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개인연금 관련 상품에 가입해 저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금은 10년 이상 가입을 전제로 소득공제나 비과세 등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일반 금융상품에 비해 충분한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젊었을 때 미리 가입해둔 연금 상품이 있다면 이에 대한 저축액을 늘리면서 은퇴 이후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부족한 연금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 연금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라면 은퇴설계를 바탕으로 필요한 시기에 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연금은 상품마다 연금을 받는 시기와 방법, 수급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김동엽 센터장은 “은퇴자금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별도 계좌로 운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퇴자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50대는 자녀 대학등록금이나 자녀 결혼비용 등 목돈이 들어갈 일이 산적해 있는 시기다. 이런 경우에도 노후자금은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은퇴 후를 위한 연금 상품으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연금비교닷컴 상담TF 김진수 팀장은 “즉시연금보험은 비과세 혜택을 받으면서 안정적인 연금재원으로 수령할 수 있어 노후대비를 하지 못한 채 퇴직한 사람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금은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 적립하거나 거치식으로 예치한 뒤 은퇴시점에 맞춰 연금으로 받는 형태다. 이에 비해 즉시연금보험은 일시납 가입 후 바로 매달 연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신형은 처음부터 원금과 이자를 분할방식으로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한다.
즉시연금보험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10년 이상 유지 시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초과하면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 할 뿐 아니라,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비과세 상품은 종합소득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10년 후부터 사용할 은퇴자금을 마련한다면 개인연금 비중을 최대한 높일 필요가 있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세제혜택과 노후준비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연금저축’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연금저축은 재테크와 세테크의 시작으로 불린다. 은행에서는 연금신탁, 증권사는 연금펀드, 보험사는 연금저축보험 상품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최소 납입기간이 10년 이상으로, 연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있다.
연금펀드나 연금신탁은 일정 비율을 주식에 투자한다. 따라서 10년 이상 장기투자하면 연금저축보험보다는 수익률이 높을 수 있다. 대신 연금수령이 10년, 20년 등 확정돼 있다. 반면, 연금저축보험은 시중금리에 연동하는 공시이율을 적용해 수익이 안정적이고, 사망시까지 연금지급이 보장되는 종신형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연금저축은 어느 한 상품만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상품에 나눠 가입할 수 있다.
연금저축에 연 400만원을 넣은 후 남는 돈이 있다면 비과세연금인 연금보험이나 변액보험에 넣는 것이 좋다. 비과세연금은 소득공제 혜택이 없는 대신 10년 이상 유지하면 이자소득세가 비과세돼 장기적인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어 장기수익률이 높다. 연금 수령 시에도 과세되지 않는다. 또한 종신형을 선택하면 사망시까지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어 가장 적합한 노후준비 금융상품으로 꼽힌다.
저축성보험인 연금보험이 시중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공시이율을 보장받는 반면, 변액보험은 주식 등에 투자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다. 연금보험 상품에 비해 입·출금이 가능하고 추가납입의 한도가 높은 것도 장점이다.
‘실적배당보증형 변액보험’ 눈길
변액보험은 변액연금과 변액유니버셜보험으로 나눌 수 있다. 변액연금이 최소한 원금을 보장해주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반면, 변액유니버셜보험은 보다 공격적인 운영을 통해 고수익을 추구한다.
변액보험은 상품마다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있어 이모저모 잘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 40% 등 일정한 수익률에 한번 도달하면 이후 투자수익이 악화되더라도 이미 달성한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스텝업’ 특약이 있다. 언뜻 이 특약이 고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보험사에서는 목표 수익률에 도달한 후에는 수익률 하락 위험을 줄이기 위해 주식 비중을 낮추고 채권 비중을 높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특약의 수익률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기존 대부분의 변액연금은 연금 지급 개시 전까지만 펀드 운용이 가능하고, 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하면 시중금리에 연동되는 공시이율을 적용한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실적배당보증형 변액보험’은 연금 지급 개시 이후에도 계속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해 얻은 수익을 연금액에 더해주는 상품이다. 투자실적이 좋으면 연금재원이 늘어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반면 투자실적이 떨어지면 오히려 전보다 연금이 줄어드는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최근 몇몇 보험사에서 투자실적과 관계없이 한번 오른 연금액은 그대로 보증지급하는 ‘실적배당보증형 변액보험’ 상품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김진수 팀장은 연금 선택기준으로 “복리효과라는 시간에 따른 장기투자를 노리고, 투자의 원칙인 분산투자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한 “연금보험은 장기상품으로 본인의 투자성향과 재무상황을 고려하고 상품을 올바르게 이해한 후에 본인에게 맞는 연금보험을 선택해야 한다”며 은퇴자금을 설계할 때에는 전문기관의 상담을 받을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