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중동 민주화 돌풍과 미국의 고뇌

쇠퇴기 접어든 패권 시험하는 ‘원칙 vs 이익’의 딜레마

  • 김기정|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kimkij@yonsei.ac.kr

    입력2011-03-21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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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화와도 같은 중동 민주화 바람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고민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진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전통의 가치를 외칠 것인가, 경제적 이익을 따르는 실용주의를 추구할 것인가. 워싱턴은 이 고전적인 딜레마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내기 위해 분주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동 민주화 확산이 쇠퇴기에 접어든 미국의 세계 패권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력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리더십을 복원하겠다고 공언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목표는 과연 달성될 수 있을지, 중동 사태는 바로 그 분수령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의 중심에 섰다. 집 짓기에 비유하자면 설계자와 현장감독을 겸했던 셈인데, 이후 미국은 대단한 야심과 비전으로 세계정치의 무대를 움직였다. 그 무렵 전세계에 미국의 영향력을 투사하고 각국 여론에 영향을 미쳤던 통로의 하나가 세계 주요지점에 설치된 미국 공보원이었다. 오늘날 표현대로라면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현장거점이었던 셈이다.

    이 공보원마다 미국인의 무한한 자긍심을 상징하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걸어 놓았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미국 탄생의 이념, 즉 ‘자결(自決)의 원칙에 따라 정부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의 권리’ ‘그러한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위반(violate)하는 정부가 있을 때, 그 정부를 변경(alter or abolish)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미국은 그렇게 혁명의 권리에 의해 탄생한 나라였고, 자결의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라였다. 미국은 전후 외교정책을 통해 미국을 탄생시킨 위대한 신념과 가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고 싶어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국은 전후 신생 독립국들에 대해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지만, 그들 국가의 국민은 스스로 정치체제를 결정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로 독립 시기의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가 하면 냉전 초기 미국이 후원하던 보수정권들에 대해 그들 나라의 국민적 저항이 거세졌을 때 저항세력들이 미국 독립정신을 원용하면서 혁명의 신념과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정부는 모든 미 공보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떼어내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자유와 인권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가치, 혁명주의의 신념, 민족자결의 원칙 등은 미국 외교를 구성해왔던 핵심적 요소들이다. 그러나 냉전기 국제정치 역사에서 보듯 미국이 내세웠던 원칙들은 오히려 국익 추구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 외교의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적 전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별 실익이 없는 구호들인 셈이다. 세계의 주요 지역에서 시장을 확보하고 미국의 영향권하에 둬야 한다는 이익 최우선의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그렇다.

    이렇듯 국익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외교정책을 통해 미국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노력은 미국 외교사의 어떤 시대에도 양립적으로 존재한다. 미국 외교정책을 움직여온 두 개의 바퀴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통상 전략적 판단이라는 실용주의적 접근법이 이상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대와 지역, 국가에 따라 반대의 경우도 존재했다. 이상과 현실, 국익과 가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미국 내부에서 논쟁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추진동력과 핵심 행위자도 다르게 구성된다. 요컨대 국익이라는 이름의 물질적 이익과 보편적 가치 추구는 미국 외교의 두 얼굴이며 어찌 보면 미국 외교 자체에 내재하는 일종의 패러독스이기도 하다.



    갈팡질팡 외교의 이유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민주화 열망과 확산 추세를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2011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 열기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외교적 수사(修辭)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전략적 고민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이라는 ‘가치’ 중심적 시각에서 보면 미국 외교정책은 물 만난 고기 같아야 맞다. 전통적으로 인권, 자유 등 보편적 가치와 미국적 이상을 실현할 것을 강하게 주장해왔던 측은 민주당 정부다. 예컨대 민주주의, 인권,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외교정책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려 했던 지도자로는 민주당 출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인권외교를 맹렬하게 추진하려 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이나 탈(脫)냉전기 미국의 세계전략 방향을 개입과 확산(engagement · enlargement)으로 잡았던 빌 클린턴 대통령도 모두 민주당 출신이었다. ‘확산’ 전략이 민주주의 가치의 세계적 확산을 의미하는 것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11년 2월, 이집트 국민의 민주화 요구가 드세지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도움을 간절히 원했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세웠던 원칙도 이전 민주당 정부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고, 미국적 이상을 재천명하고 있다. 그는 이집트 사태에 대해 “폭력 사용에 대한 반대” “이집트 국민이 가져야 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보획득의 자유는 보편적 원칙이라는 점” “변화(민주화)의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을 비롯한 국무부 핵심요직의 정책결정자들도 중동 민주화 사태를 환영하면서 미국 외교가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아랍 지역 국민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의 실제 속내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국익을 앞세워왔던 미국 외교의 전통도 그러하거니와 현재(顯在)하는 이익을 확실한 수단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는 국내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민주화는 적극 환영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 지역에서 가져야 할 이익 또는 지금 확보한 이익은 정세변화에 따라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국익을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때에 따라 노골적인 군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익을 위해서는 동맹국의 독재정권이나 인권탄압에 대해서 눈감아준 적도 비일비재하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입정책이 정당화되기도 했고, 남미의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한 것이나 1980년대 초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했던 전두환 정권을 미국이 용인했던 것도 그러한 판단 때문이었다.

    현재 아랍권 국가 중에 미국과 가장 가까운 맹방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석유나 무기판매에 걸려 있는 이익도 긴요했지만 사우디와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역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써 지역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이점도 컸다. 지금까지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사우디 왕정의 독재와 비민주성을 비판한 적은 없다. 이익에 대한 판단 때문이다.

    이렇듯 가치와 이익, 이상과 현실의 복합적 공존 때문에 미국 외교정책은 혼선이 빚어지기 일쑤다. 이집트 민주화가 결국 무바라크 퇴임으로 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의 태도는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의 정치개혁을 강력하게 촉구했지만 조 바이든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고 하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바라크 퇴임 결단을 촉구하려 보냈던 미국 특사가 뜻밖에 무바라크와 절친한 인물이었고 이에 따라 혼선이 가중되는 일도 있었다. 민주화라는 매력적인 카드와 오랜 동맹국 이집트와 관련된 이익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아파와 수니파

    중동지역의 민주화는 1980년대 세계를 휩쓸었던 민주화 확산 이후 부활한 세계적 변혁 현상이다. 세계정치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미국은 이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980년대의 변혁기도 그랬지만 중동 민주화의 경우도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강조해왔던 미국 외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 전도사로서 미국은 세계정치의 민주화를 선도해가는 국가이고, 중동 민주화는 미국 외교정책의 승리 혹은 미국 가치의 승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반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이 석유 공급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3년 이라크전쟁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앞세우긴 했지만 미국 석유자본의 이익이 요인이 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가 하면 사우디를 비롯해 미국 무기에 대한 높은 구매력은 군수자본의 이익과도 맞물려 있다. 석유자본의 이익이나 군수자본의 이익은 늘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지만, 그 외에 미국이 공론화하고 있는 중동 지역에서의 핵심이익으로는 이스라엘과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것, 반(反)테러 및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역내 국가들의 협력적 관계를 도모하는 것, 우여곡절 끝에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중동 평화조약 등이 있다. 이것들이 모두 미국이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고 보면 요컨대 역내 질서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하는지가 미국에 당면한 문제가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중동 민주화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의 현실적인 고민은 명확해진다. 열기가 확산돼 미국의 맹방 사우디까지 흔들릴 때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가 첫 번째 쟁점이다. 가치와 이익 사이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내 불안정이다. 이집트처럼 친미성향을 보여왔던 국가들이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친미로 남을 것인지 쉽게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 혁명 때처럼 과격한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지는 않을지, 반미 친(親)이란 성향의 정권이 탄생하지는 않을지 고민이 깊다. 특히 이스라엘은 최근 시위확대로 인해 중동 곳곳에 이슬람 원리주의나 과격한 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경우 자국의 안보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번 민주화 열풍이 아랍권 내부의 묵은 갈등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갈등이 그것으로, 바레인 시위 사태가 그 단적인 사례다. 바레인은 시아파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18세기 이래 소수 수니파 왕족이 통치하고 있다. 이번 민주화 열풍 속에서 시아파는 시위를 이끌고 있다. 바레인에서는 2월14일부터 시위가 격화됐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니파 왕족이 정권 퇴진 위기까지 몰리게 되면 같은 수니파 정권인 사우디가 바레인을 침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바레인 사태를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바레인은 걸프만과 아라비아해, 홍해로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미 해군 5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만에 하나 민주화 시위로 바레인의 수니파 왕권이 물러나고 시아파 정권이 들어설 경우 바레인이 이란의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더욱이 바레인에서처럼 수니-시아파 사이의 갈등이 아랍권 전체로 확산되면 역내 불안정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예의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바레인 국왕에게 전화를 걸어 비폭력적인 시위대에 대한 바레인 당국의 발포를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레인 모델’의 가능성

    그러나 바레인 사태를 지켜보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GCC에는 바레인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산유국들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다. GCC 회원국들은 바레인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2월17일 긴급 회동을 가진 뒤 바레인 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고, 동시에 다각도로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민주주의 가치 때문에 이집트 무바라크의 명예로운 퇴진조차 막았다는 불만도 표명했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이후 이슬람권에 대한 미국의 기존 정책과 태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바마 독트린’의 청사진을 담고 있는 2010년 5월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이슬람권 전부를 사악한 집단으로 단정해버리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선제공격론으로 대표되는 부시 독트린 논조와 차별성을 두면서 ‘이슬람 과격주의’ 대신 일반적인 테러리즘이란 용어로 대체한 것만 봐도 그렇다. 2010년 12월 미 국무부가 발표한 4개년 외교·개발 검토보고서(Quadrennial Diplomacy and Development Review)에서도 소프트파워 중심의 미국 외교 방향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

    이렇듯 아랍권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한층 확대됐지만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중동 지역의 민심 동향에 대해 미국이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는 비판이 잇달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주로 친미 성향을 보이는 관료나 사회 유력인사들만 접촉하는 바람에 광범위한 사회 정서를 읽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이 지역의 뿌리 깊은 반미 정서는 따지고 보면 미국 외교정책의 업보나 다름없고, 정책전환을 시도하더라도 이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워싱턴 역시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바레인의 민주화 과정이나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태도는 이제 하나의 분기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바레인 모델’로, 급격한 정권교체보다는 기존 정권을 지원하면서 민주적 개혁을 지원하는 점진적 정권개조(regime alteration)에 무게중심을 두는 방향이다. “바레인은 무너지게 내버려두기엔 너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는 국무부 고위급 인사의 발언도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동 민주화가 친미 우방국들의 정국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역내 불안정을 야기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라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 외교는 지금 이상과 현실, 가치와 국익 사이의 간극 속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과연 성공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또 일정정도 성공하더라도 역내 안정화라는 전략적 이익은 얻을 수 있으나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미국 외교의 명분과는 엄연히 괴리가 있고 나아가 위선적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겹겹의 고민이다.

    리비아 개입은 제2의 이라크전?

    반면 리비아 사태는 양상이 다르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는 결국 이집트 군부를 움직임으로써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고 퇴로를 찾았다. 그러나 내전에 가까운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좀처럼 정권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국제사회는 미국의 행동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리비아 유혈 사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미국이 계속 립서비스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워싱턴은 카다피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외교적, 경제적 대안뿐 아니라 군사행동까지 포함하는 모든 대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고 발표했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은 꽤나 곤혹스럽다.

    결국 핵심은 군사개입이다. 가까스로 봉합하긴 했어도 미국과 리비아는 이미 군사적 충돌을 경험했던 관계다. 반미정서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지역에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국제적 연대를 앞세워 경제제재를 시행하려 하더라도 우선 비행금지선을 선포해야 하지만,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표현대로 비행금지선 설정은 리비아 공중방공망을 파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이는 사실상 전쟁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수단 사용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네오콘을 비롯한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은 리비아에 대한 즉각적 군사개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로서 이를 따르는 것도 정치적 부담일뿐더러 해외 군사개입의 전선확대가 주는 심각한 어려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 우방국들의 협력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원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적 개입의 명분이 선명해야 한다. 뚜렷한 명분 없이 군사개입을 서둘렀다가 국내외적으로 낭패를 본 2003년 이라크 침공의 전례를 오바마 대통령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미국 국내의 비평가들은 벌써부터 인권과 민주주의가 과연 군사개입의 명분이 되느냐는 의문을 쏟아내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때문에 전쟁을 해야 한다면 미국은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해야 할 판이라는 비아냥이다. 군사적 개입은 일시적으로 군수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미국 패권의 종말을 앞당기는 계기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리비아 사태에 대해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는 향후 중동 지역정치는 물론 세계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계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저무는 미국 리더십의 시험대

    앞서 설명했듯 미국 외교에는 항상 무형적 가치 추구와 물질적 이익 추구라는 두 가지 동력이 내재해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편성을 앞세운 미국 이상의 투사라면 국익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미국 내 자본의 이익 추구나 영향력 확보는 현실의 영역이다. 보편적 가치는 인류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이지만 국익은 미국 개별국가의 이익이다. 미국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해왔으나 내재적 모순이 드러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두 영역이 일치하지 않을 때 미국은 목적과 수단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지만, 세계 시민들의 눈에는 그것이 고민이라기보다 위선적 행동으로 비치고 때로는 기회주의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 외교의 이중성에 대한 외부의 평가 또한 이중적이다. 미국도 결국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익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내세우는 보편적 가치가 한낱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반면 보편적 가치 추구의 노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미국이 그러한 기준을 제시해왔기 때문에 국제정치 전반이 진보할 수 있는 것으로 믿는다.

    중동 민주화 돌풍과 미국의 고뇌
    金基正

    1956년 경남 통영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코네티컷대 석·박사(정치학)

    現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통일부·국방부 자문위원 역임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상, ‘시와 현장’ 신인상

    저서: ‘미국정치의 과정과 정책’(공저) ‘전환기의 국제정치이론과 한반도(공저)’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역사적 원형과 20세기 초 한미 관계 연구’ ‘꿈꾸는 평화’ 외


    열화와도 같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지켜보면서 이제 미국은 일정 정도 내재적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는 선이 어디인지가 그 핵심이다. 다만 확실한 점은 중동 민주화 확산이 미국 외교의 방향을 묻고 미국의 세계 리더십을 시험하는 현안이라는 점이다. 국제정치학의 여러 이론을 굳이 적용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패권 쇠퇴 국면에 접어든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다. 21세기 초반 부시 행정부의 무모한 군사개입은 쇠퇴의 속도를 가속화한 계기로 작용했다.

    물론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 있다. 백악관을 넘겨받은 오바마 행정부는 세계 리더십의 복원을 목표로 정했고 그 방식으로 자의적이고 무모한 군사력 투사가 아니라 여러 국가와의 협력에 초점을 맞췄다. 중동 민주화 사태는 오바마의 미국이 목표로 했던 리더십 복원, 그리고 세계 리더십의 유용성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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