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는 먼 훗날 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나이가 돼버렸네. 벌써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다니….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왔는데 막상 돌아보니 노후를 위한 준비를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후회스러워.”
50대라면 동창모임이나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꼭 한 번씩 듣게 되는 이야기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로 불리는 40대 후반에서 50대는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다. 특히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한파를 온몸으로 견뎌냈다. 노부모의 노후를 책임지고, 자녀 교육에 ‘올인’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맸다.
그러다보니 정작 자신의 노후를 위한 준비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모아둔 여윳돈은 주식에 투자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대폭락 장세에서 큰 손실을 봤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는 앞으로 값이 오르기는커녕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를 맞는다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베이비부머의 부모 세대만 해도 노후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은퇴 후 여생이 보통 10년, 길어야 20년이었다. 금리도 지금보다 높은 편이어서 노후자금을 은행에 맡기고 그 이자로 생활해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식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금리로 인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은퇴자금을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은행 예금금리는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는 2018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상회하는 고령사회에, 2026년이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아래 세대에게 노후를 의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생각보다 더 오래 살 확률(장수 리스크)이 높다는 점이다. 통계청 발표(2008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80세다. 하지만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팀이 기대수명을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생존해 있는 1945년 출생자 중 남자 23.4%, 여자 32.3%가 101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55세에 정년퇴직한다면 45년 이상 더 생존하는 셈이다. 의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부부가 필요한 노후 자금 월 210만원
현재 베이비부머의 은퇴 준비 실태는 어떨까. 최근 메트라이프생명이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함께 베이비부머 46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후를 위한 저축액이 월평균 17만2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이 지난해 전국 대도시 거주 2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은퇴 후 부부가 필요한 노후자금은 월 210만원이지만, 실제 준비된 자금은 137만원으로 6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준비가 미흡했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당장 제대로 된 은퇴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이 체계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도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남은 30~40년을 좌우한다. 초년에 고생했더라도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될 수 있다. 반면 그동안 윤택한 생활을 했더라도 이 시기를 놓치면 인생 말년이 괴롭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