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시 ‘절정’이다. 이번 글은 이 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고 싶다.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 중 한 사람인 이육사는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바로 이 시에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육사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서릿발 칼날진 위에 서서 결코 굴복할 수 없는 정신의 고고한 세계를 그는 ‘강철로 된 무지개’로 표현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바로 이 고고한 세계의 연원으로서의 선비정신이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다. 근대식 교육을 받았지만 동시에 전통적 한학을 수학했다. ‘절정’에 담긴 정신의 세계는 근대인의 세계라기보다는 지조와 절개를 중시하는 전통인의 세계, 다름 아닌 선비정신에 잇닿아 있다.
서구사회와 비교해 한국 지식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선비정신을 꼽을 수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선비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선비란 말에 담긴 의미는 이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다시 사전을 보면, 선비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의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탈물질주의적 생활을 추구하는 게 선비정신의 중핵을 이룬다는 점이다.
선비정신의 기원과 발전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중국의 유교를 분석하면서 우리나라의 선비 집단과 유사한 문사계급(Literati)을 주목한 바 있다. 문사계급은 유교사상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은 귀족적 지식인계층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문사계급이 갖고 있던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유교의 군자 이념이다. 군자불기에 담긴 뜻은 고귀한 인간이란 자기목적이지 도구처럼 하나의 특수화된 사용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교의 군자 이념은 자기완성의 윤리적 이상이라는 점에서 서구사회의 몰가치적 직업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대립하고, 결과적으로 직업에 필요한 전문적 권한의 함양을 방해하는 동시에 저지한다는 게 베버의 견해다. 이러한 주장은 바로 중국에는 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베버 논리의 핵심을 이뤘다.
현재의 관점에서 한 세기 전에 제시된 베버의 이러한 주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듯하다. 한편에서 문사계급의 군자 이념은 근대 자본주의에 요구되는 직업 정신과 상충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군자 이념에 내재된 교육에 대한 강조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의 산업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뿐만 아니라 문사계급의 유교사상과 정확히 짝하는 선비정신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특히 지식사회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이러한 선비정신의 기원은 멀리 통일신라시대 최치원과 같은 유학자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선비정신의 출발은 고려 말로 소급된다. 당시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유학자 그룹이 등장했으며, 이들에 의해 선비정신이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특히 고려에 대한 지조와 절개를 지킨 정몽주와 길재의 학문을 이으려는 조선시대 사림파는 선비정신을 유독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선비정신이라 하면 흔히 사림파 지식인을 떠올리게 된다. 평소에는 자기 수양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지만, 때가 되면 과거 시험을 통해 관리가 되어 군주를 섬기고 백성을 돌보려고 했던 이들이 다름 아닌 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