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베를린의 ‘현빈앓이’ 코미디

  •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학 yule21@empas.com

    입력2011-03-23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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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의 ‘현빈앓이’ 코미디
    최근 몇 달간 영화배우 현빈 얘기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다.

    그의 해병대 입대를 보기 위해 국내외 팬 수천명이 포항 해병훈련소로 몰렸다고 한다. 언론도 서른 살의 이 늦깎이 훈련병을 보도하느라 분주했다. 그가 우리 사회가 그토록 목말라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줬다는 점이 근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현빈은 애국자로 포장된다. 그 또래의 수많은 젊은이가 군대에 입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시시콜콜한 낙수거리도 뉴스가 되고 있다. 이처럼 언론은 애국주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영웅을 만든다. 그것이 너무 지나쳐 옐로 저널리즘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면 더 심해지는 경향이다. 모든 현상을 우리나라 중심으로 몰아간다. 이런 점에서는 붕어빵이나 다름없다. 그토록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견해를 달리하는 보수·진보언론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동소이하다.

    국내의 호들갑, 해외의 냉소



    필자는 제61회 베를린영화제를 둘러봤다. 현빈도 이 영화제에 참석했다. 이 영화제의 현빈 관련 기사는 그야말로 코미디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윤기 감독, 현빈·임수정 주연의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come rain, come shine)’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분에 출품됐다. 국내 언론들은 경쟁부문의 유일한 아시아영화 초청작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 영화가 영화제에서 공개된 직후 해외 언론들의 평가는 냉소에 가까웠다.

    AFP 통신은 ‘조롱거리’라는 의미의 용어를 사용해가며 이 작품을 혹평했다. 영국의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맥 빠진(vacuous) 영화는 아무도 사로잡지 못했다”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국내 언론에서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는 대부분 묵살됐다. 대신 베를린에까지 몰려온 ‘현빈앓이’ ‘현빈 팬덤’의 후끈한 열기를 전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예술영화에 가깝다. 보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감독 또한 그 점을 강조했다. 미국 USC 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늦은 나이에 영화판에 뛰어든 감독으로서는 나름대로 깊은 고민 끝에 내놓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는 좀 더 느린 영화, 덜 감각적인 영화를 강조했다고 밝힌다. 외신들의 혹평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이다.

    현빈이 나오는 영화가 경쟁부분에서 외면당하자 언론은 경쟁부문에 아예 관심을 끊어버린다. 오로지 국내 작품이 진출한 타 분야 보도에 공을 들인다. 특히 아이폰4로 촬영한 ‘파란만장’이 비경쟁부분인 단편부문 최고상을 수상하자 대서특필한다.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를린영화제가 실험 단계의 스마트폰 영화를 높이 평가한 것이라며 찬양 일변도다.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인 애국주의 보도 태도는 소재만 바뀔 뿐이다. 여러 언론은 현빈에게 제공된 승용차가 최고급 BMW라며 현빈을 특별 대우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해당 차량은 영화제 초대 인사 누구에게나 제공된다.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레드 카펫 행사에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인들만 기립박수를 받은 것처럼 보도했던 과거의 부끄러운 태도에서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수상 자체에 일희일비하거나 자국 스타를 과도하게 띄워주는 보도 태도는 여전히 언론의 문제점으로 남는다.

    지나친 애국주의 보도 벗어날 때

    ‘자부심을 갖자, 세계사의 중심에 서자’는 국민계몽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 보통의 한국인을 용감한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 소지도 있다. 지나친 애국주의 보도는 오히려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언론보도가 객관적이고 믿을 만할수록 그 언론의 위상도, 그 언론이 소속된 국가의 위상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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