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외교아카데미, 레임덕 덫에 걸렸나

서슬 퍼렇던 ‘대통령 어젠다’ 막판 몰려 졸속 진행되는 까닭은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3-23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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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이 심하게 깼다더라.”
    • 모두들 수군거렸다. 이만큼 강한 의지가 실린 과제는 또 없을 거라고도 했다. ‘외교관 충원 방법을 혁신해 대한민국 외교의 새 장을 열겠다’던 외교아카데미 설립방안.
    • 그러나 처음의 서슬과 달리 시간은 하릴없이 흘렀고, 막상 나온 결과물은 ‘달라진 게 없는 용두사미’라는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 하나의 개혁과제가 만들어지고 공론화된 뒤, 한참을 표류하다가 끝내 존폐의 기로에 선 일련의 흐름에서 도출해낸 네 개의 키워드.
    외교아카데미, 레임덕 덫에 걸렸나

    2010년 12월29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통상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왼쪽부터 김병국 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성환 장관, 염재호 정책자문위원장, 신각수 외교통상부1차관.

    “급변하는 국제사회에 기민하게 대처할 외교관을 뽑을 새로운 방안을 연구해보라고 했는데, 근본적인 개혁을 하려 하지 않고 어정쩡한 절충안을 내놓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2010년 3월 청와대 관련부서가 보고한 외교관 선발개혁안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내렸다는 질책이다. 외무고시와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절반씩 뽑거나 외시를 행정고시에 통합하겠다는 두 방안 모두 크게 미흡하다며 화를 냈다는 것. 1년 전 당시만 해도 외교관 선발제도 개혁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는 이렇듯 서슬이 퍼랬다. 대통령 본인의 반복되는 언급, ‘안보라인 핵심’으로 손꼽히는 청와대 인사가 컨트롤타워를 맡았다는 소식, 외교경쟁력강화위원회(이하 경쟁력위) 출범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관계자들을 긴장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관련 소식은 일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외교관 선발 개혁안이 외교아카데미 설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사실은 가뭄에 콩 나듯 전해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형국이 이어졌다. 경쟁력위가 건의안을 작성한 뒤 정부 시안(試案)이 만들어지기까지 4개월, 2010년 6월 열린 공청회 이후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까지는 무려 8개월이 걸렸다.

    비판과 반박

    2월초가 돼서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에 제출된 정부의 최종방안은 3차에 걸친 시험으로 45명 내외를 선발해 1년간 국립외교원(외교아카데미의 정식 명칭)에서 실무교육을 시킨 뒤, 그 가운데 40명을 5급 외교관으로 선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입학자는 일반전형과 외국어 능통자, 지역·분야별 전문가를 각각 6대2대2의 비율로 선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3월3일 외통위 전체회의와 7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갑론을박의 도마에 올라야 했다. 3월10일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기존 외무고시를 형태만 바꿔 유지하는 꼴”이라며 “대통령이 시키니까 바꾸는 시늉만 한 것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행 외시를 일반전형으로, 특채를 외국어나 지역 전문가 전형으로 통합한 것 외에는 신입 외교관 교육기간을 4개월에서 1년으로 늘린 것에 불과한 용두사미라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 1차 전형의 영어와 제2외국어,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한국사 공인성적 전형은 외무고시 과목과 다를 바가 없고, 2차의 전공 평가시험 역시 외무고시 2차의 필수과목인 국제정치학, 국제법, 경제학 등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외통위 전문위원의 관련 검토보고서가 “기존의 체계를 크게 변경시키지 않으려 하는 관료주의”를 배경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외교부 관계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운이 크게 좌우하는 당일 시험이 아니라 공인성적제출 형태로 많은 과목이 바뀐 데다 2차 평가의 사례해결형 에세이, 3차에서의 3일에 걸친 심층면접 등으로 필터링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는 반박이다. 일반전형을 통해 채용된 이들과 전문가 전형을 통해 들어온 이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동안 그간 문제로 지적돼왔던 순혈주의나 동기 문화 역시 상당부분 희석되리라는 것. 한 당국자는 “밖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전형방식이 필요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실무행정을 담당하는 이들로서는 현실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당초 “외교아카데미에서 장기간 치열한 경쟁을 벌여 살아남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선발제도 개혁의 키워드로 떠올랐던 선발인원 규모 문제를 놓고 보면 외무고시와의 차별성은 더욱 찾기 어렵다. 현재 외시를 통해 선발되는 인원 규모 30명 남짓이 고스란히 일반전형 채용으로 옮겨갔기 때문. 입교생 가운데 10% 내외를 교육 과정에서 탈락시키겠다지만, 지금도 외무고시 3차 면접에서 성적이 나쁜 2명 내외가 탈락한다는 게 국회 외통위 측 인사들의 반박이다. 외교아카데미 방안이 처음 거론되던 무렵 경쟁력위는 최종합격자의 5배수에 달하는 인원을 입교시켜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논란에 휘말린 부분은 정부안의 입법 형식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는 대신 기존의 외무공무원법을 일부 개정해 외교아카데미의 설치근거만을 마련하고 조직이나 정원, 교육과정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외교아카데미의 기능과 새로운 채용방식이 구체적으로 법제화되지 않으므로, 추후 국회 동의 없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고 외통위 관계자들은 비판하고 있다. 그간 특별법으로 ‘영구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던 몇몇 의원은 “고시 제도를 선호하는 외교부 일각에서 정권이 바뀐 뒤 원상복귀하기 위해 수를 쓴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쏟아내는 형국이다.

    외교부 측 인사들은 “원상복귀는 절대 없다, 외교부가 느끼는 위기의식을 잘 알지 않느냐”며 거듭 손사래를 친다. 특별법을 만들려면 정원이나 학위 수여 여부 등 이해당사자들끼리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하소연이다. 일일이 챙기다가는 2012년 12월로 예정돼 있는 외교아카데미 개원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올해 중으로 개원준비를 시작한 뒤 연말 시험계획을 공고한 다음 내년 하반기에 첫 입교생을 선발하려면 조속한 법안처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초의 수위 높은 개혁방안과는 거리가 있는 결론, 긴 시간 동안 논의를 진행시키지 못하다가 막판까지 밀린 일정, 여당 의원들도 동의 못하는 형식과 한계까지, 외교아카데미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은 이 이슈가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새로운 외교관 충원제도 마련은 왜 이렇듯 힘이 빠져버린 것일까. 정부 핵심 관계자 모두가 필요성을 공감한다는 개혁작업조차 힘 있게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원인1 흔들리는 추진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정부 핵심의 무신경이다. 정말 중요한 어젠다라고 생각했다면 경쟁력위가 만들어진 초기부터 힘 있게 눌러가며 진행했어야 한다. 쟁점이 결정될 때마다 적절히 언론에 흘려가며 여론을 형성하고 이해당사자들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소한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에 쏟았던 에너지의 10분의1은 투입했어야 옳지 않겠나.”

    그간의 논의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 학계 전문가의 말이다. 특히 경쟁력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이 천안함 사건 직후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논의가 흔들린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것. 외교안보라인 핵심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이 전 총장이 경쟁력위를 맡았을 때만 해도 관료사회 전체에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그의 이임과 함께 경쟁력위가 건의안 작성을 끝으로 임무를 종료함에 따라 개혁작업을 강하게 밀어붙일 추진체가 사라졌다는 해석이다. 이 전문가는 “외교관들이 군인들에 비해 운이 좋았던 셈”이라고 촌평했다.

    ● 원인2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이렇게 되자 본질적으로 경쟁 시스템 자체를 버거워하는 외교관들 특유의 마인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평도 청와대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디어의 혁신성보다는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나 집단항의를 먼저 고려하는 관료사회 특유의 분위기, ‘분란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기류가 강해졌다는 것. 정부안 마련 과정에 정통한 한 청와대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자.

    “최종 임용 인원의 두 배 이상을 뽑아 경쟁을 강제하는 것에 외교부가 난색을 표한 가장 큰 이유는 비(非)임용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때문이었다. 사법연수원생은 판검사가 안 된다 해도 변호사를 개업할 수 있지만 외교아카데미 졸업생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였다. 이 때문에 졸업자에게 학위를 수여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외교부는 교육부의 이견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수도권에 대학교가 추가로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고 있는 마당에 학위 기관을 새로 만들 명분이 없다고 하더라는 얘기였다. 29개에 달하는 각 대학 국제대학원의 반대 로비도 영향을 미쳤다. 외교아카데미 졸업자 가운데 상당수가 학위를 받아 민간 시장에 나올 경우, 국제대학원 졸업생들이 갈 곳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외교아카데미, 레임덕 덫에 걸렸나

    유명환 장관의 딸 특별채용 논란이 한창이던 2010년 9월8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직원조회.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있다.

    특정분야의 개혁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장 민감한 계기가 사전에 예상치 못했던 주변의 이해관계 싸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론에 가깝다. 문제는 목표가 가진 중요성을 대통령 본인이나 정권 핵심 관계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면 당연히 이를 돌파해냈어야 한다는 것. 한 학계 전문가는 “명색이 ‘대통령 어젠다’인데 지엽 말단의 이의 제기에 흔들린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국제대학원이 반발하면 ‘경쟁력 있는 놈이 살아남는 것’이라는 논리로 무시했어야 옳았다”고 평했다. 외교부 일각에서조차 “대통령 앞에서 설전을 벌여서라도 조기에 통과될 수 있도록 밀어붙였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 원인3 “적(敵)은 내부에 있다”

    다음으로 터져 나온 돌발변수는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혜 채용 파동이었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인사관련 주무부서 관계자들이 줄줄이 감사를 받고 쇄신안을 마련하느라 외교아카데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시간을 흘려보낸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안방에서 피어오른 불을 끄느라 딴 생각을 할 수 없었다는 것. 지난해 12월1일에는 파문 수습 실무작업을 주도하던 외교부 기획조정관실 인사제도팀장이 암으로 숨을 거두기도 했다.

    특히 논란의 와중에 외교아카데미가 또 다른 특혜 채용의 수단이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관련 작업 진행을 더디게 만든 요인이었다. 3차 전형과정에서 심층면접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나 해외 경험이 많은 지역 전문가를 20% 선발한다는 부분이 여론의 의혹을 받기 시작한 것. 이러한 관점의 언론보도가 줄줄이 쏟아지자 정권 핵심에서조차 외교아카데미의 성사 가능성에 회의적인 견해를 내비쳤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안보부처 당국자는 “개혁을 앞장서서 지휘해야 할 조직의 수장이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돼버린 이 같은 아이러니는 ‘적(敵)은 항상 내부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고 촌평했다.

    ● 원인4 임기 후반 증후군

    “이렇게 해서 동력을 상실한 외교관 채용방식 변경문제는 타협안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쟁점은 최대한 빼버리고 가급적 외무고시의 큰 틀을 유지하는 방식의 대안이 모색된 것이다. 그 결과물이 학위 수여 문제나 정원 등 세부사항을 대통령령으로 돌린 지금의 정부안이고, 최근에는 타협을 강제하는 가장 큰 ‘떡밥’도 등장했다. 바로 시간의 문제다.”

    사안을 주의 깊게 지켜봐온 외통위 관계자의 말이다. 3월7일 외통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정부안 통과를 보류한 국회는 이를 홍정욱, 윤성현, 송민순 의원이 상정한 특별법안과 함께 심의하기로 하고 3월말이나 4월초 공청회를 열기로 의견을 모았다.

    반면 정부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하고 있는 외교부 측은 “대통령령에 규정하도록 돼 있는 사항들을 상당부분 외무공무원법으로 올릴 수 있다”면서도 “시간이 더 지연될 경우 아예 설립 자체가 물 건너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부족한 형태로라도 일단 시작한 뒤 2~3년 뒤 외교아카데미의 위상이 정착되면 학위과정 개설이나 정원 증가를 통한 경쟁 강화 등을 중장기적으로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설립하지 못하면 다음 정부에서는 완전히 백지화될 수 있다는 뉘앙스는 특별법안을 상정해놓은 외통위원 세 사람 가운데 두 명이 여당 소속임을 감안하면 무시하기 어려운 논리다. 다시 앞서의 외통위 관계자의 말이다.

    “한마디로 외통수다. ‘이렇게 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고 못 박고 싶지만 책임질 것이냐고 묻는 데 할말이 없지 않은가.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이 통과된 것도 시간에 대한 부담 때문이기는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본다. 청와대 일각에서 내심 불만족스러워한다 해도, 일단 정부안이 확정된 뒤에는 그게 ‘공식적인 청와대의 뜻’이 된다. 내년 말 개원을 위해서는 그 6개월 전에 입교생 선발과정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자면 올해 6월 전에 어떻게든 결론이 나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여당 의원들이 느끼는 부담은 급속도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외교부다.”

    레임덕의 덫

    임기 후반으로 접어드는 정부가 결과물에 조급해하면 개혁의 당초 목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 마련. 대통령 임기 내에 반드시 문을 열어야 한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는 견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충분한 토의를 거쳐 외교관 채용 개혁과 외교아카데미 설립에 관한 법률을 구체화해 만들어놓으면, 설립 자체는 임기를 넘긴다 해도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과거로 돌릴 수 없다는 것. 어차피 다음 대통령이 선출된 뒤에 문을 여는 국립외교원의 테이프 커팅을 임기 말의 대통령이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는 반문도 나온다. 정작 문제는 정치적 업적에 목이 마른 정부가 과연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다.

    이전 정부의 개혁작업에 깊이 관여했던 전직 안보부처 핵심 관계자는 “이 문제는 관료사회의 내성만 키운 채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비록 초기에는 강하게 언급했다지만, 외교안보 분야에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했던 대통령 본인부터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듯하다는 해석이다. 정말 의지가 있었다면 외부인사로 장관을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해주며 개혁작업의 방향타를 맡겼어야 한다는 것. 만에 하나 설립 자체가 무산된다면 전형적인 개혁 실패사례로 기록될 테고, 정부안대로 통과된대도 시작 무렵의 팡파레에 비하면 실망스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는 형평성이나 기회 균등이라는 관점에서 외교아카데미가 고시보다 비판받을 구석이 더 많은 제도라고 본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통령이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으면 어떻게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정권의 능력이고 참모들의 존재이유다. 경쟁력위로 대표되는 추진세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 것이나, 이해관계자들의 로비와 압박에 하릴없이 물러선 것이나, 관료들의 손에서 공전하는 동안 꼼꼼히 채근하지 못한 것 모두 능력과 의지 부족의 소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임기에 쫓겨 어설픈 결과를 추인하게 되면 그게 바로 ‘레임덕의 덫’이다.”

    외교부 인사문제 들여다보니

    근본원인은 정사각형 인력구조 경쟁 불어넣을 묘안 절실


    “외교관들은 본질적으로 경쟁을 버거워한다.”

    외교부 당국자들 역시 인정하는 이 같은 문화야말로 외교아카데미 문제가 긴 시간 공전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성 진급이나 검사장 발령이 ‘하늘의 별 따기’인 군과 검찰에 비해, 외무고시를 통해 일단 입부한 외교관들은 대과(大過)가 없는 한 대부분 공관장이 되는 시스템이 이러한 문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재외공관 수가 150여 개에 달하는 까닭에 피라미드형이 아닌 정사각형으로 정착된 외교부 특유의 인력구조 때문이다.

    여기에 다수 인원이 해외에 나가 있는 근무 특성 역시 인사 문제를 더욱 까다롭게 만든다. 대부분의 직원이 함께 일하는 다른 정부 중앙부처와 달리 상하 직원들이 서로의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직접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기 때문. 그렇다 보니 간부가 된 후에도 예전에 같은 공관이나 부서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을 부하직원으로 발탁하는 ‘연줄 문화’나 몇몇 사람의 평판으로 인사를 결정하는 이른바 ‘복도통신 인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고시 보고 들어왔는데 누구는 워싱턴 가고 누구는 아프리카 가느냐”는 인사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근무조건이 좋은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후진국에서 번갈아 근무하도록 발령 내는 이른바 ‘냉온탕 원칙’이 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패턴이 특정지역과 사안에 대해 외교관의 전문성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최근 수년 새 도마에 오른 문제점의 상당 부분이 경쟁의 부재에서 비롯된 셈이다.

    전문성 축적이 부실하다 보니 임지로 부임하기 직전까지 본인의 발령 사실을 예상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현재 공관장으로 임명된 외교관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현지화 교육기간은 단 3일. 발령 1년 전에 내정을 통보해주고 준비를 독려하는 미 국무부의 인사 시스템과는 천양지차다.

    장관 딸 특혜 채용 의혹 이후 대대적인 인사제도 혁신에 나선 외교부 역시 그간의 비판과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8명 국장으로 구성된 제2인사위원회에서 마라톤 회의를 벌여가며 실무직원 인사를 결정한 최근의 정기인사만 봐도 그렇다. 공정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이전의 근무지 인연이나 학연이 작용할 수 없도록 하고 특정 공관이나 부서가 우수 인력을 싹쓸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했다는 것. 간부 인사에서도 본부 국장을 지내고 나면 한가한 선진국 공관으로 보내던 관행을 무시하고 일이 많은 에너지·자원 부국에 발령 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외교부는 외무공무원법을 개정해 인사평정에서 최하위를 세 차례 기록하거나 무보직 기간이 3년을 넘으면 퇴출심사에 회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참사관이나 고위공무원단 직위에 보임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자격심사에서 세 번 이상 탈락하면 아예 한동안 응시를 못하도록 제한해 상위직급에 임명되는 것을 막는 제도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여전히 ‘경쟁을 통한 퇴출’보다는 ‘문제 있는 직원 솎아내기’에 가깝다. 큰일만 터지지 않으면 자연스레 공관장이 되는 인력구조를 피라미드형으로 바꿀 묘안이 필요하다는 것.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 해외공관장의 3분의 1을 외부인사로 채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꺼내든 바 있지만, 해당부처의 반대와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점진적인 추진’으로 물러섰다가 끝내 흐지브지 되고 말았다.

    과감한 외부인사 등용에 숨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외부에 개방되는 공관장 자리가 대부분 대선 캠프 출신이나 정치인들의 낙하산으로 채워져왔기 때문. 최근의 ‘상하이 스캔들’에서 확인됐듯 외부 출신 공관장들의 자질 부족이나 업무능력 문제는 국가 전체 이미지에 돌이키기 힘든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개혁에 앞장서는 주체의 도덕적 정당성이야말로 성공하는 개혁의 최우선 전제조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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