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함께 논란에 휘말린 부분은 정부안의 입법 형식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는 대신 기존의 외무공무원법을 일부 개정해 외교아카데미의 설치근거만을 마련하고 조직이나 정원, 교육과정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외교아카데미의 기능과 새로운 채용방식이 구체적으로 법제화되지 않으므로, 추후 국회 동의 없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고 외통위 관계자들은 비판하고 있다. 그간 특별법으로 ‘영구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던 몇몇 의원은 “고시 제도를 선호하는 외교부 일각에서 정권이 바뀐 뒤 원상복귀하기 위해 수를 쓴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쏟아내는 형국이다.
외교부 측 인사들은 “원상복귀는 절대 없다, 외교부가 느끼는 위기의식을 잘 알지 않느냐”며 거듭 손사래를 친다. 특별법을 만들려면 정원이나 학위 수여 여부 등 이해당사자들끼리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하소연이다. 일일이 챙기다가는 2012년 12월로 예정돼 있는 외교아카데미 개원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올해 중으로 개원준비를 시작한 뒤 연말 시험계획을 공고한 다음 내년 하반기에 첫 입교생을 선발하려면 조속한 법안처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초의 수위 높은 개혁방안과는 거리가 있는 결론, 긴 시간 동안 논의를 진행시키지 못하다가 막판까지 밀린 일정, 여당 의원들도 동의 못하는 형식과 한계까지, 외교아카데미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은 이 이슈가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새로운 외교관 충원제도 마련은 왜 이렇듯 힘이 빠져버린 것일까. 정부 핵심 관계자 모두가 필요성을 공감한다는 개혁작업조차 힘 있게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원인1 흔들리는 추진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정부 핵심의 무신경이다. 정말 중요한 어젠다라고 생각했다면 경쟁력위가 만들어진 초기부터 힘 있게 눌러가며 진행했어야 한다. 쟁점이 결정될 때마다 적절히 언론에 흘려가며 여론을 형성하고 이해당사자들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소한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에 쏟았던 에너지의 10분의1은 투입했어야 옳지 않겠나.”
그간의 논의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 학계 전문가의 말이다. 특히 경쟁력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이 천안함 사건 직후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논의가 흔들린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것. 외교안보라인 핵심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는 이 전 총장이 경쟁력위를 맡았을 때만 해도 관료사회 전체에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그의 이임과 함께 경쟁력위가 건의안 작성을 끝으로 임무를 종료함에 따라 개혁작업을 강하게 밀어붙일 추진체가 사라졌다는 해석이다. 이 전문가는 “외교관들이 군인들에 비해 운이 좋았던 셈”이라고 촌평했다.
● 원인2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이렇게 되자 본질적으로 경쟁 시스템 자체를 버거워하는 외교관들 특유의 마인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평도 청와대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디어의 혁신성보다는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나 집단항의를 먼저 고려하는 관료사회 특유의 분위기, ‘분란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기류가 강해졌다는 것. 정부안 마련 과정에 정통한 한 청와대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자.
“최종 임용 인원의 두 배 이상을 뽑아 경쟁을 강제하는 것에 외교부가 난색을 표한 가장 큰 이유는 비(非)임용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때문이었다. 사법연수원생은 판검사가 안 된다 해도 변호사를 개업할 수 있지만 외교아카데미 졸업생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였다. 이 때문에 졸업자에게 학위를 수여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외교부는 교육부의 이견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수도권에 대학교가 추가로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고 있는 마당에 학위 기관을 새로 만들 명분이 없다고 하더라는 얘기였다. 29개에 달하는 각 대학 국제대학원의 반대 로비도 영향을 미쳤다. 외교아카데미 졸업자 가운데 상당수가 학위를 받아 민간 시장에 나올 경우, 국제대학원 졸업생들이 갈 곳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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