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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표류’ 사례연구

외교아카데미, 레임덕 덫에 걸렸나

서슬 퍼렇던 ‘대통령 어젠다’ 막판 몰려 졸속 진행되는 까닭은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외교아카데미, 레임덕 덫에 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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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의 덫

임기 후반으로 접어드는 정부가 결과물에 조급해하면 개혁의 당초 목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 마련. 대통령 임기 내에 반드시 문을 열어야 한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는 견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충분한 토의를 거쳐 외교관 채용 개혁과 외교아카데미 설립에 관한 법률을 구체화해 만들어놓으면, 설립 자체는 임기를 넘긴다 해도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과거로 돌릴 수 없다는 것. 어차피 다음 대통령이 선출된 뒤에 문을 여는 국립외교원의 테이프 커팅을 임기 말의 대통령이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는 반문도 나온다. 정작 문제는 정치적 업적에 목이 마른 정부가 과연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다.

이전 정부의 개혁작업에 깊이 관여했던 전직 안보부처 핵심 관계자는 “이 문제는 관료사회의 내성만 키운 채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비록 초기에는 강하게 언급했다지만, 외교안보 분야에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했던 대통령 본인부터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듯하다는 해석이다. 정말 의지가 있었다면 외부인사로 장관을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해주며 개혁작업의 방향타를 맡겼어야 한다는 것. 만에 하나 설립 자체가 무산된다면 전형적인 개혁 실패사례로 기록될 테고, 정부안대로 통과된대도 시작 무렵의 팡파레에 비하면 실망스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는 형평성이나 기회 균등이라는 관점에서 외교아카데미가 고시보다 비판받을 구석이 더 많은 제도라고 본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통령이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으면 어떻게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정권의 능력이고 참모들의 존재이유다. 경쟁력위로 대표되는 추진세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 것이나, 이해관계자들의 로비와 압박에 하릴없이 물러선 것이나, 관료들의 손에서 공전하는 동안 꼼꼼히 채근하지 못한 것 모두 능력과 의지 부족의 소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임기에 쫓겨 어설픈 결과를 추인하게 되면 그게 바로 ‘레임덕의 덫’이다.”

외교부 인사문제 들여다보니



근본원인은 정사각형 인력구조 경쟁 불어넣을 묘안 절실


“외교관들은 본질적으로 경쟁을 버거워한다.”

외교부 당국자들 역시 인정하는 이 같은 문화야말로 외교아카데미 문제가 긴 시간 공전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성 진급이나 검사장 발령이 ‘하늘의 별 따기’인 군과 검찰에 비해, 외무고시를 통해 일단 입부한 외교관들은 대과(大過)가 없는 한 대부분 공관장이 되는 시스템이 이러한 문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재외공관 수가 150여 개에 달하는 까닭에 피라미드형이 아닌 정사각형으로 정착된 외교부 특유의 인력구조 때문이다.

여기에 다수 인원이 해외에 나가 있는 근무 특성 역시 인사 문제를 더욱 까다롭게 만든다. 대부분의 직원이 함께 일하는 다른 정부 중앙부처와 달리 상하 직원들이 서로의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직접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기 때문. 그렇다 보니 간부가 된 후에도 예전에 같은 공관이나 부서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을 부하직원으로 발탁하는 ‘연줄 문화’나 몇몇 사람의 평판으로 인사를 결정하는 이른바 ‘복도통신 인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고시 보고 들어왔는데 누구는 워싱턴 가고 누구는 아프리카 가느냐”는 인사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근무조건이 좋은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후진국에서 번갈아 근무하도록 발령 내는 이른바 ‘냉온탕 원칙’이 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패턴이 특정지역과 사안에 대해 외교관의 전문성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최근 수년 새 도마에 오른 문제점의 상당 부분이 경쟁의 부재에서 비롯된 셈이다.

전문성 축적이 부실하다 보니 임지로 부임하기 직전까지 본인의 발령 사실을 예상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현재 공관장으로 임명된 외교관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현지화 교육기간은 단 3일. 발령 1년 전에 내정을 통보해주고 준비를 독려하는 미 국무부의 인사 시스템과는 천양지차다.

장관 딸 특혜 채용 의혹 이후 대대적인 인사제도 혁신에 나선 외교부 역시 그간의 비판과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8명 국장으로 구성된 제2인사위원회에서 마라톤 회의를 벌여가며 실무직원 인사를 결정한 최근의 정기인사만 봐도 그렇다. 공정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이전의 근무지 인연이나 학연이 작용할 수 없도록 하고 특정 공관이나 부서가 우수 인력을 싹쓸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했다는 것. 간부 인사에서도 본부 국장을 지내고 나면 한가한 선진국 공관으로 보내던 관행을 무시하고 일이 많은 에너지·자원 부국에 발령 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외교부는 외무공무원법을 개정해 인사평정에서 최하위를 세 차례 기록하거나 무보직 기간이 3년을 넘으면 퇴출심사에 회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참사관이나 고위공무원단 직위에 보임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자격심사에서 세 번 이상 탈락하면 아예 한동안 응시를 못하도록 제한해 상위직급에 임명되는 것을 막는 제도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여전히 ‘경쟁을 통한 퇴출’보다는 ‘문제 있는 직원 솎아내기’에 가깝다. 큰일만 터지지 않으면 자연스레 공관장이 되는 인력구조를 피라미드형으로 바꿀 묘안이 필요하다는 것.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 해외공관장의 3분의 1을 외부인사로 채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꺼내든 바 있지만, 해당부처의 반대와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점진적인 추진’으로 물러섰다가 끝내 흐지브지 되고 말았다.

과감한 외부인사 등용에 숨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외부에 개방되는 공관장 자리가 대부분 대선 캠프 출신이나 정치인들의 낙하산으로 채워져왔기 때문. 최근의 ‘상하이 스캔들’에서 확인됐듯 외부 출신 공관장들의 자질 부족이나 업무능력 문제는 국가 전체 이미지에 돌이키기 힘든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개혁에 앞장서는 주체의 도덕적 정당성이야말로 성공하는 개혁의 최우선 전제조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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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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