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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부실 사태

PF 부실채권 5조2000억원, 살아 있는 뇌관…실사 끝나는 올 7월 제2의 분수령

  • 이진우│이데일리 기자 cnetkr@naver.com

저축은행 부실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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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산소호흡기로 연명
  • ● PF 대출시 무등급 시공사 지급보증 27.1%
  • ● 부실 은행끼리 인수합병 돌려막기
  • ● 허울뿐인 8·8 클럽
저축은행 부실 사태

금융당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에 대한 가지급금 신청이 시작된 날,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에 가지급금을 받으려는 예금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난 1월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회의실. 삼화저축은행이 제출한 경영개선계획안을 심사하기 위해 저축은행 경영평가위원 5명이 모였다. 이들 경영평가위원은 금감원 직원이 아닌 민간인들이다. 저축은행 입장에서 볼 때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들이다. 저축은행 영업정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이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저명인사들로 구성돼 있다는 소문만 있을 뿐 이들의 면면은 일체 비밀로 돼 있다. 치열한 로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 분위기는 유독 싸늘했다. 회의 막바지 결국 한 경영평가위원이 입을 열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문 닫읍시다.” 다음날인 14일 새벽 임시금융위원회가 소집됐고,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가 결정됐다. 올해 초부터 8개의 저축은행이 잇따라 문을 닫는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는 이렇게 시작됐다.

사실 삼화저축은행은 지난해 10월쯤에 문을 닫았어야 했다. 지난해 6월말 기준 BIS비율(국제결제은행이 정한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이 -1.42%로 영업정지 기준인 BIS비율 +1%에도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 등 주요 현안을 앞두고 있던 금융당국은 계속 시간을 끌고 삼화저축은행에 기회를 줬다. BIS비율이 -1.42%라는 사실도 12월 초가 돼서야 공시했다. 다른 저축은행이 6월 말 기준 BIS비율을 모두 공시한 뒤 2개월이나 지나서였다. 대주주가 증자도 하겠다고 했고 다른 곳에 팔겠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삼화저축은행이 문을 닫자 ‘다음 순서는 누구냐’는 불안감이 급격히 번졌고 좀 어렵다더라는 소문이 돌던 저축은행에서는 거액의 예금이 속속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약 한 달 후인 2월17일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이 나가떨어졌다. 이틀 뒤인 2월19일에는 부산저축은행의 계열사인 부산2저축은행, 중앙부산저축은행, 전주저축은행이 쓰러졌고 목포의 보해저축은행도 문을 닫았다. 역시 뱅크 런(예금인출사태)이 원인이었다. 사흘 뒤인 2월22일 춘천 도민저축은행도 예금자들의 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표면적으로는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가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됐지만 저축은행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미 팔다리가 썩어가는 총상 환자 같은 처지였다. 악취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붕대로 감고 있었을 뿐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왜 저축은행의 부실을 미리 공개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축은행 상황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더라면 뱅크 런으로 문을 닫는 곳이 예닐곱 곳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나마 금융위기 직후 지금까지 몇 년을 끌어오면서 저축은행 대주주들에게 증자도 하게 하고 조금씩 부실을 줄여온 게 이 정도”라고 말했다.

저축은행들의 상처가 의외로 깊다는 것은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여러 대책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부터 올해까지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에 빌려줬다가 못 받은 부실채권 5조2000억원어치(원금 기준. 원리금 포함시 6조1000억원)를 사들였다. 부실채권을 국가에서 보증하는 자산관리공사채권으로 바꿔준 셈이다. 이것은 3년 시한부다. 3년 후에는 다시 부실채권으로 되돌려 받게 된다. 총상으로 팔과 다리가 썩어가는 환자에게 썩어가는 팔다리 대신 깨끗한 의족과 의수를 3년 시한부로 달아준 셈이다. 현재 저축은행들의 그나마 괜찮은 성적표는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응급대책을 거친 결과다.

캠코가 가져간 썩은 팔과 다리는 3년 동안 캠코의 냉동실에 보관한다. 3년 후 그 썩은 팔다리를 깨끗하게 낫게 해주는, ‘부동산 경기 활황’이라는 신약이 나오면 담보로 잡아놓은 20만원짜리 땅은 다시 100만원짜리 땅이 될 것이고 그 땅에 아파트를 지어 팔면 그 부실대출의 원리금은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만약 3년 후에도 부동산 경기가 그대로라면 문제는 다시 커진다. 저축은행을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라고 하는 이유다.

2008년부터 캠코가 잠시 맡아준 부실채권들이 올해 연말부터 3년의 보관기간이 끝나 저축은행들로 되돌아온다. 지난해에 사준 4조4000억원은 2013년에 돌아온다. 정부는 올해도 저축은행 부실채권 3조5000억원어치를 더 사주기 위해 국회에서 구조조정기금 승인을 받아놨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들이 갖고 있는 PF대출 채권 잔액은 12조원인데 이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금액을 또 사주겠다는 의미다. 카드 대금을 한 달 만기의 현금서비스로 돌려 막는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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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이데일리 기자 cnet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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