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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소설가가 연극에 빠진 이유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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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린 첫 연극은 북한 핵무기의 위협을 다룬 ‘그라운드 제로’였다. 졸작 희곡 ‘그라운드 제로’에 바탕을 두고 정일성씨가 각색해서 연출했다. 고맙게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삼성그룹의 지원으로 돈 걱정을 덜었다. 이 작품이 2007년 여름에 공연되자, 철없는 젊은이들이 ‘통일 되면 북한 핵무기는 우리 것이 되잖아요’라는 얘기를 하던 시절에 나라 걱정을 하던 분들이 뜨겁게 격려해줬다.

작가는 물론 자신의 희곡이 연극에서 제대로 구현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이 연출한 작품은, 연출자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아쉬운 대목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다음 작품인 ‘아, 나의 조국!’에선 내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 그러나 연극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은 터라, 스태프의 도움 덕분에 작품을 올릴 수 있었다.

‘아, 나의 조국!’은 2006년 조창호 중위의 장례가 ‘향군장(葬)’으로 치러진다는 신문 보도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가슴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면서, 입에선 “영웅을 이렇게 대접하다니”하는 탄식이 나왔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연희전문 1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군대에 지원해서 장교로 임관했고, 이어 9사단에 배속되어 관측장교로 복무했다. 1951년 5월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에 9사단은 궤멸되었고, 많은 국군 장병이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도 포로가 되어 북한군에 인계되었다. 그는 북한군 8사단에 편입되었는데,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그 죄목으로 북한 군사법정에서 13년 교화형을 선고받았다. 1994년에 무려 43년 동안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중국을 통해서 귀환했다. 그는 북한을 탈출해서 돌아온 첫 국군 포로였다. 이처럼 조창호 중위는 진정한 영웅이었지만, 당시 집권한 좌파 정권은 그런 영웅에 걸맞은 장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 초라한 대접을 보고 내가 느낀 분노와 부끄러움에서 이 작품이 나왔다.

‘아, 나의 조국!’은 ‘전우야 잘 있거라’ ‘외나무 다리’ ‘전선 야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 ‘꿈에 본 내 고향’ ‘꽃 중의 꽃’ ‘굳세어라 금순아’ 등처럼 6·25 전후에 널리 불렸던 대중가요를 대사로 쓰는 악극이다. 1950년대에 인기 높았던 여성 악극을 본떠서, 출연 배우를 모두 ‘문미포 여성 악극단’ 소속 여배우로 캐스팅했다.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2010년 3월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뒤 지방 공연과 호주에서 공연했으며 2011년 2월에는 제1기갑여단을 찾아 위문 공연을 했다. 앞으로 해외 공연에 주력할 생각이다.

지금은 영어 연극 ‘다른 방향으로의 공격(Attacking in Another Direction)’을 준비하고 있다. 6·25전쟁에서 가장 영웅적 전투로 평가되는 ‘장진호 전투’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1950년 11월 북한으로 진격한 아군은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패퇴했다. 당시 흥남에 상륙해서 황초령을 넘어 장진으로 올라갔던 미군 해병 제1사단은 압도적으로 많은 중공군에게 포위되었어도 오히려 중공군에게 훨씬 큰 손실을 입히면서 흥남으로 물러났다. 그래서 ‘장진호 전투’는 미국 사람들에겐 6·25 전쟁을 상징하는 싸움이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미군 해병대 위문 공연을 염두에 두고 구상되었다. 지금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 해병대는 유사시 한반도에 맨 먼저 투입될 부대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부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그들의 존재조차 모른다. 요즈음은 우리가 미국의 도움 덕분에 북한의 침입을 물리쳤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나는 그런 사정이 더할 나위 없이 부끄러웠고 그런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씻으려고 이 작품을 시작했다.

이 작품도 이미 나온 노래들을 이용한 악극이다. 배우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아, 나의 조국!’과 같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삼성그룹, 그리고 SK그룹의 도움을 받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2011년에 첫 공연을 할 예정이다. 여건이 마련된다면, 해마다 오키나와의 미군 해병대 기지를 찾아 위문 공연을 하고 싶다.

예술적 사회참여로서 하는 연극 활동이므로, 나는 자유주의 이념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널리 선양하는 작품들을 만든다. 그동안 북한은 예술 작품을 통한 선전선동(agitprop)에 주력해왔고 우리 사회 안에서도 좌파 세력들이 북한을 대신해서 대한민국을 흔드는 활동을 효과적으로 해왔다. 나는 대한민국을 위한 선전선동 활동으로 연극을 하는 셈이다. 더러 ‘예술가가 선전선동에 몰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물음도 받지만, 나라가 위급하면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들을 나라를 지키는 도구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믿는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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