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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소설가

더 깊은 산중에 오두막 짓고 내 그림자 지우리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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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소설가

‘무소유’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전남 순천 송광사의 불일암.

그러나 산중에 든다고 해 저절로 꽃 피듯 물 흐르듯 모든 일이 걸림이 없는, 혹은 ‘텅 빈 충만(眞空妙有)’의 삶이 이루어질까. 물론 전원생활이나 귀농생활을 염두에 둔 이들은 나름대로의 낭만이나 보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수행생활의 차원에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몸은 산중에 있지만 머릿속은 저잣거리의 생각들로 들끓을 때가 많다. 특히 나의 책이 발간될 무렵에는 전화요금이 몇 배로 뛰어오른다.

스님들이 안거하듯 어떤 계절에는 내가 나를 유배시킨다는 마음으로 밖으로의 발걸음을 일절 끊지만 생각이 산지사방으로 돌아다니게 되니 결과는 허망할 경우가 많다. 내 질서를 철저하게 지키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무엇보다 내 탓이 크지만 외부 환경도 적잖은 원인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뜻밖의 손님들이 계속해서 다녀갔다. 나의 독자라 하면서 찾아온 손님에게 차 한잔 대접하지 않고 보내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나를 과대평가하는 손님이 다녀간 날에는 나는 잠시 멀미를 느낀다. 다시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산중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도피나 은둔이 아니다. 농사짓고 명상하고 글 쓰는 내 삶이 곧 수행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느 선사는 ‘도가 무슨 물건이더냐. 왜 닦으려고 하느냐’라고 말했다. 동감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도 수행이라는 말이다.

어차피 나는 글 쓰는 사람이기에 사회와 소통의 길은 열려 있다고 본다. 더 깊은 산중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느낀 바를 소설이든 수필이든 간에 글로 쓸 것이고,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만의 삶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지금과 같은 산중생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산중에 오두막을 지어 산다 하더라도 더 잘 살 자신이 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산중이므로 적당히 살고, 때로는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잣거리의 삶이 힘겹고 슬픈 사람들에게 죄짓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산중생활 초기에 벽에 호미를 걸어놓기도 했다. 산중 마을의 농부들이 밭 갈고 김맬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더 깊은 산중에 오두막을 짓는다면 글쓰기말고도 또 하나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중학교 때는 독서광이었으나 차츰 독서보다는 글 쓰는 일에 빠져 지금은 자료로서 필요한 서적 이외에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오두막에서는 한 해에 적어도 같은 책을 서너 번 읽더라도 100권 분량은 채울 계획이다. 경전이나 선어록, 그리고 철학서적, 문학작품 등을 두루두루 되짚어볼 터이다. 그래서 오두막 이름도 ‘백권당(百卷堂)’이라고 지어두었다. 그리고 나의 좌우명인 ‘글을 쓰다 죽다’가 묘비명이 되도록 힘쓸 것이다. 내가 나에게 짐 지운 금생의 숙제를 힘껏 하고, 내생에도 승속(僧俗) 가운데 어느 곳에 머물러 있더라도 구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



‘법화경’에 ‘전생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받는 그것이다. 내생의 일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잘 살아야만 좋은 ‘내신성적’을 받아 내생에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 내가 하는 일에 따라 내생의 내 모습이 결정된다고 하니 죽기 전의 내 인생을 어찌 허투루 살겠는가!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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